BGM 타히티 - 몰라몰라
이상한 기도를 하고 나니 새삼 배가 고파져 짜장면을 시켰다.
이사하고 나서는 짜장면을 먹어야지. 그럼.
내친김에 탕수육까지 시켜 알차게 배를 채운 나는 뭐 할까 고민을 하다 영화나 보기로 결심하고 영화 채널을 틀어 계속 보고 있었다.
재밌는 거 많이 하네. 쿵푸팬더도 하고 쿵푸팬더도 하고 쿵푸팬더도 하고... 무슨 하루 종일 쿵푸팬더만 틀어주냐.
이쯤 되니 방송국 사장이 쿵푸팬더 사부님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방송국에 전화를 한번 해볼까 생각했다가 관뒀다.
왜냐면 난 영어를 못 하니까. 근데 저 사부님은 영어만 하시잖아.
쿵푸팬더만 연속으로 3시간쯤 보다 보니 슬슬 잠이 몰려왔고 난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잠에 들었다.
분명 해가 밝을 때 잠이 든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해가 없다. 이게 뭐야. 뭔데 나 5시까지 쳐 잠?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겨우 떠 시계를 본 나는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고개를 돌리니 한 쪽에 쓸쓸하게 놓여있는 빨간 베개가 보였다.
더 이상 저 빨간 나부랭이는 보고 싶지 않아 한쪽에 치워두고 이제 뭐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뭐지. 올 사람이 없을 텐데.
주인아주머니 신가, 싶어 달려가 문을 여니 택배 아저씨가 앞에 떡하니 계신다.
웬 택배가...
"성이름씨세요?"
"예."
"여기 싸인 좀 해주세요."
이게 무슨...
택배 아저씨가 가신 자리에는 조립형 침대라고 크게도 써있는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고 난 이사 첫날 엄마와 했던 통화가 떠올랐다.
늦게 시켰다던 침대가... 이거야 설마?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안 받으신다.
아니. 왜 안 받는 거야, 또.
일단 집에 옮겨놔야겠다 싶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무거운지 전혀 안 들린다.
"뭐야. 엄마는 무슨 딸을 어벤저스로 아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상자를 뜯어서 내용물을 집에 옮겨 놓자는 생각이 떠올라 집에서 가위를 꺼내와 상자에 붙은 노란 테이프를 뜯었다.
주욱 소리를 내며 날씨만큼 시원하게 찢어지는 테이프에 상자 안을 여니
"이게 무슨..."
내 생각보다 거대한 사이즈의 조립식에 당황해 내용물을 빼지도 못하고 허공에 있던 손만 길을 잃었다.
이쯤 되니 우리 엄마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물이 상자만 해.
그렇게 밖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옆에서 정전국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성이름씨? 뭐예요, 그건?"
"아, 이거. 조립식 침대요."
창문을 활짝 연 채 창틀에 기댄 정전국씨에게 모든 걸 얘기했더니 픽 웃으며 기다려봐요,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뭐야. 뭘 기다려.
그 말을 남긴지 몇 초 지나지 않아 정전국씨네 집 문이 열리고 반팔에 츄리닝 바지를 입은 잠옷 상태 그대로의 정전국씨가 나왔다.
"안 추워요?"
나는 내복에 긴팔에 기모 후드티까지 입어도 추운데 저 인간은 반팔을 입고 다니네.
"네. 별로요."
정전국씨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리를 뻗었고 쉽게도 우리 집 벽에 닿았다.
설마...
"지금 거기로 넘어오겠다는 거예요?"
"네. 안 돼요?"
위험하다며 말리려고 그에게 다가갔으나 내가 지금껏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여기... 30센티였지.
나와봐요, 라며 내게 손짓을 해 보이기에 옆으로 비켜서니 그는 가볍게 뛰어넘어 순식간에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니까. 지금 이 상자가 무거워서 그러고 있었다는 거예요?"
"네."
"몸집만 봐서는 이 집도 들어 올리게 생겼는데."
정전국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집을 가리키며 나를 약 올렸고 열이 확 오른 나는 결국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정전국씨는 걷어 차인 정강이를 붙잡고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고 나는 새침하게 그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그러게 누가 그런 말하래요?"
내 말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툭 밀친 그는 도와주러 와도 뭐라고 하냐며 바지를 걷어 걷어차인 부분을 보여줬고 꽤나 세게 쳤는지 벌써 조금씩 멍의 조짐이 보이는 그의 다리에 조금 미안해져 무릎까지 올라간 그의 바지를 조심히 내려줬다.
"미안하죠?"
"네..."
생각보다 많이 미안해 고개도 못 들고 상자만 만지작거리니 정전국씨는 내 팔을 잡아 정전국씨 다리 쪽으로 가져갔다.
"내 다리한테 사과해요."
"네?"
"제 다리한테 미안하다고 해요, 빨리."
이 사람... 또라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진심인 건지 입술까지 꽉 깨문 그의 표정이 조금 웃겨 살짝 소리 내 웃었더니 왜 웃냐며 자기 다리를 모욕하는 거냐며 날뛰는 그를 겨우 달래고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다리야. 걷어차서 미안해."
아이 달래듯 나름 부드럽게 다리에 대고 사과를 했더니 그는 꽤나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리가 괜찮대요?"
"사과가 좀 많이 성의 없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네요,"
내 말에 그는 조금 고민하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말했고 그 표정이 얄미워 다른 쪽도 차버릴까, 하다가 이번에는 다리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할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도와주러 온 거면 이거 좀 집 안으로 옮겨줘요,"
자기 다리를 만지며 울상 짓기 바쁜 정전국씨에게 상자를 툭툭 치며 말했더니 자기가 이 구역의 상남자라며 자신 있게 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온갖 기합을 넣으며 상자를 들어 올렸다.
"하압!"
"허!"
"호!"
"이야!"
"후아!"
약 열댓 번의 시도 끝에 그는 민망한 표정으로 나를 봤고
"가서 반대쪽 좀 잡아봐요."
턱으로 상자 반대쪽을 가리켰다.
상남자는 얼어 죽을 상남자. 반팔 입고 얼어 죽을 상남자.
피식 웃으며 그의 반대쪽에 서서 상자를 잡았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이상한 기합 소리와 함께 상자를 들어 올렸는데 역시 하나보단 둘이 낫긴 한 건지 조금 버겁지만 들리는 상자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아!"
상자를 든 채 뒷걸음질을 치던 정전국씨는 현관문 옆에 머리를 박았고
"이봐요, 정전국씨. 잘 좀 들어봐요."
조금 정 없어 보일지 모르나 일단 내가 박은 게 아니니 잘 좀 들어보라며 잔소리를 했다.
내 말에 나를 사납게 노려보던 정전국씨는 방향을 틀어 집 안으로 들어갔고 상자는 무사히 집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상자를 내려놓고 나니 아까 머리를 박은 게 신경 쓰여 얼음이라도 줄까요? 하고 물었더니
"괜찮아요. 저는 상남자니까요. 하하하."
라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웃어댄다.
눈을 금방이라도 울 듯이 눈물이 맺혀가지고 빨개졌는데 굳이 아닌 척하는 게 안쓰러워 그냥 모르는 척해주기로 했다.
상남자가 얼어 죽었네, 얼어 죽었어.
고개를 저으며 상자를 엎어 내용물을 밖으로 꺼냈다.
조각조각 흩어진 판자에 설명서를 봐도 전혀 모르겠어서 결국 뒤돌아 머리를 붙잡고 훌쩍대는 정전국씨를 불렀다.
"저기요. 이거 할 줄 알아요?"
내 말에 급히 눈가에 소매를 가져다 댄 정전국씨는 여전히 훌쩍대며 내가 내민 설명서를 가져갔고 판자들을 한쪽으로 치운 정전국씨는 아예 자리를 한 평쯤 차지하고 앉았다.
설명서를 보며 판자를 하나씩 살펴보던 정전국씨는 하나둘씩 순서를 맞춰보기 시작하더니 설명서를 바닥에 펴놓고 본격적으로 맞춰보기 시작했고
"이게 이쪽인가?"
"반대쪽 아니에요?"
"아니, 그거 말고 저거요."
"이거요?"
"아니 그... 아니에요. 내가 할게요."
혼자 애쓰는 게 미안해 도와주던 나는 어째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요?"
판자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정전국씨는 내가 일어나자 고개를 들었고
"아니 뭐... 마실 거라도 줄까요?"
나는 일어난 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정전국씨는 내 팔을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고
"됐으니까 그냥 앉아있어요."
앉아있으라는 말에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로 했다.
섣불리 뭐든 건드렸다간 안될 것 같아 조용히 앉아있다가 시선을 옮겨 정전국씨의 얼굴을 보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좀 잘생긴 것 같기도 했다. 성격만 좋으면 참 좋을 텐데.
아니 뭐라는 거야. 뭐가 좋아. 뭐가 잘생겼어. 정신 차려 성이름. 정신 차려.
"옆에 있는 것 좀 줘봐요,"
정전국씨를 계속 보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든 정전국씨에 놀라 급히 고개를 돌리자 잠시 갸우뚱하며 날 보던 정전국씨는 손가락을 뻗어 내 옆을 가리켰고 나는 그에게 침대 다리로 추정되는 기다란 통을 전해주었다.
보다 보니 조각을 척척 맞춰가는 게 신기해 나도 모르게 넋 놓고 계속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거의 완성된 침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
내 감탄사에 뿌듯한 표정으로 마무리까지 끝낸 정전국씨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침대를 살폈고 별안간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게 말했다.
"근데, 거실에서 잘 생각이에요?"
"네? 아뇨."
"근데 왜 조립을 거실에서 해요?"
아...
생각해보니 난 방에서 잘 거니까 애초부터 조립을 방에서 했어야 했는데.
그걸 이제야 깨달은 나는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정전국씨를 쳐다봤고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더니 어깨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한쪽을 붙잡았다.
"뭐 해요. 옮겨야죠."
아까 상자를 들 때처럼 턱으로 반대쪽을 가리키는 그의 말을 따라 반대쪽을 붙잡은 나는 또 한번 정전국씨의 기합과 함께 침대를 들어 올렸고
"그 쪽 아니에요."
"좀 더 오른쪽."
"거기 벽이에요. 조심해요."
아까처럼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힐까 걱정돼 계속 방향을 알려줬더니
"조용히 좀 해요. 거 참 시끄럽네."
도와줘도 난리다.
"아!"
조용히 하래서 조용히 했더니만 얼마 가지 않아 벽 모서리에 등을 부딪힌 정전국씨가 몸을 비틀며 아픔을 호소했고
"놓지 마요. 놓지 마요 진짜로."
"잘 좀 들어봐요."
이번 역시 내가 부딪힌 게 아니므로 열심히 잔소리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방에, 원하던 위치에 침대를 옮겼고 정전국씨는 감동에 젖어 침대 사진을 대여섯 장 찍은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와, 드디어 침대가 생겼다. 드디어!
난 기쁨에 젖어 침대를 만지작댔고 난 새삼 깨달았다.
"아, 이불..."
깔고 잘 이불도, 덮고 잘 이불도 없다는 거.
오늘도 빌려야 되나.
다리도 걷어 차이고 뒤통수까지 두 번이나 박았는데 이불까지 빌리는 게 어째 조금 미안해 터덜터덜 걸어 창문을 열어 정전국씨네 창문을 두드렸는데
"잠깐만요!"
그가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 다급하게 말하기에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원래 빌리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전국씨네 창문이 활짝 열렸고
"이거 받아요!"
정신 차려보니 내 팔에는 이불 두 장이 쌓여있었다.
"이게 뭐예요?"
"이불 덮을 거 없잖아요. 어제도 내 거 빌려놓고. 그것도 나름의 집들이 선물."
정전국씨는 아침에 내게 베개를 줄 때처럼 손으로 딱 소리를 내며 내게 윙크를 하고 창문을 닫았고 난 진심으로 창문에 대고 절할 뻔했다.
엄마! 엄마 딸 성공했어요! 이제 엄마 딸이 혼자서 이불도 얻어요!
난 기쁜 마음으로 침대 위에 이불을 깔았고 정전국씨가 준 망할 빨갱이도 침대 위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려다 아차,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물론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기에 화장 같은 건 하지 않았으나
"침대가 생긴 첫날인데 깨끗이 씻고 자야지."
뭔가 모르게 설레는 마음에 아닌 저녁에 샤워까지 깨끗하게 마친 나는 기분 좋게 핸드폰과 함께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슬슬 따뜻해지는 몸에 핸드폰을 든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
나 완전 잠만보네. 이러니까 살이 찌는 건가.
내일은 꼭 딸기를 사 먹으리라 다짐하며 잠을 자서 그런지 꿈에서 딸기 빨리 먹기 대회에 나갔다.
정전국씨가 생각보다 잘 먹어서 진 건 비밀.
일어나서 괜히 화나는 마음에 잘못 없는 베개를 괜히 내려친 것도 비밀.
정국에 뷔온대 사담
세 번 날려먹고 나니 해탈이 되네요.
또 날려먹으면 컴퓨터를 날려먹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오늘은 3센티나 줄었어요. 침대 조립+이불 선물의 콤보.
이름이가 자기만 하는 건 아마 제가 오늘 내내 자기만 해서일 겁니다. 아... 어제네요 이제.
전 자러 갑니다. 와... 잔다...
p.s. - 아직 암호닉 안 받아요.
p.s.2 - 정전국 아닙니다. 전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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