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철벽을 쳐요 /채셔
1. 꼬맹이, '마음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오빠아, 나 여기, 여기 다쳐쩌….'
'야, 아저씨라고 불러.'
'아저씨는 오빠의 아빤데, 그럼 아저씨가 아빠야아?'
'아니거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하면, 아저씨라고 불러.'
'아저씨 이상하단 말이야아….'
'아저씨라고 부르면 뽀뽀해줄게.'
'진짜아?'
카페에서 몰래 아저씨를 지켜보다 옛날 생각이 나기에 가만히 웃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저기…. 번호 좀 주시겠어요? 남자의 용기 가득한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저 남자친구 있어요, 하고 대답해주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순간인데. 이내 남자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제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막 아저씨의 얼굴에 물이 뿌려졌다. 잠시 멍한 저 표정이 마음에 든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 나를 두고 아저씨는 늘 새디스트니 정신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권했었다. 내가 그럼 아저씨는 마조히스트라고 맞받아치니, 어릴 때부터 수십 만번을 맞아온 꿀밤이 돌아왔었다.
"언니, 완전 고마워요.''
"응, 다음에 밥 한 번 사."
다가가 앉아있는 언니의 목을 끌어안으며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0.1%의 가능성이겠지만 만약 아저씨가 언니를 마음에 들어했다면, 이런 친근한 인사는 절대 없었을 텐데. 벙찐 얼굴의 아저씨가 헛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흘렸다. 너 진짜 죽고 싶지. 아저씨의 살벌한 말에 오히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더… 멋있어졌다. 이러니까 내가 아저씨를 포기 못하는 거야. 어렸을 때에도, 그리고 격동의 사춘기 때에도, 지금도.
"너 왜 여기에 있어."
"……."
"한국 들어온 거야?"
나는 가까이 아저씨에게 다가섰다. 하얀 얼굴이 그대로 내 눈동자에 담긴다. 어렸을 때부터 아저씨는 내 세상이었다.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사람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이 미친 행동도, 내 인생에 있어 절반보다 더 긴, 20여 년을 그대로 아저씨에게 헌납하고 있는 것도. 모두 아저씨였으니까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가만히 다가서서 눈을 감고 아저씨의 입술을 가져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바로 밀쳐졌지만. 나 이제 꼬맹이 아닌데. 아저씨의 볼을 쓸며 말했다. 꼬맹이가 아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저씨에 맞는 여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죽도록 노력했는지, 아저씨는 죽어도 모를 거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내 첫사랑을 이뤄보려고 한다. 부디 내 20여 년이 헛되지 않길. 아니, 20여 년을 끌어온 이 숨바꼭질의 승리자가 내가 될 수 있길.
"아저씨 철벽은 여전하네."
"내가 언제 철벽 쳤다고."
"치, 아저씨 자체가 철벽이잖아."
자리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삐죽이며 내 앞에 마주앉았다. 스타일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언제 이렇게 더 멋있어졌지. 나는 아저씨가 마시던 커피를 뺏어 마셨다. 아저씨의 눈길이 무심하게 제 커피잔에 닿는다. '그래도 아저씨, 잘했어.'하고 말하자 그 눈길이 내게 닿았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반질거리는 눈동자에 오롯이 나만이 담겨 있다. 다른 여자한테도 철벽 치는 거, 잘했어. 하고 미소를 짓자 아저씨는 별 일이 아니라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나는 아저씨의 입술 자국이 묻은 데로 입술을 갖다댔다. 간접 키스 하는 기분이야. 나도 참 중증인가 보다. 이런 데에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너, 집은 있어?"
"응."
"어딘데?'
"아저씨 집."
"아저씨 집."
아, 장난 치지 말고. 내 앞에 마주앉은 아저씨 얼굴이 다시 확 찌푸려졌다. 진짜 집.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 없어요. 내 말에 아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제 지갑을 꺼내 카드를 들이밀기에 의문스레 아저씨를 바라봤더니, 대뜸 '이걸로 써.'라는 말을 해왔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아저씨는 다시 '이걸로 모텔 방이라도 잡으라고.' 하고 짜증을 냈다. 나는 카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것밖엔 되지 않는 걸까. 이 상황에서 다른 남자와 모텔 방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건, 예전의 내가 하는 '땡깡' 밖엔 되지 않는 걸 안다. 좀 더 고단수의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아저씨."
"뭐."
"여자 혼자 모텔 들어가면 엄청 위험하대."
"그래서."
"아줌마한테 전화할 거야."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아저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엄마한테 전화하기만 해 봐. 아저씨의 눈이 이글거린다. 내가 전화해서 아줌마에게 하소연하면, 그대로 아줌마의 잔소리가 아저씨를 폭격하겠지? 이것도 뭐 쓸만한 고단수의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절박했다. 간절한 내 눈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짜증이 났는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내 나가려는 듯 뒤돌던 아저씨는 작게 말했다.
"일주일만이야. 집 구해서 나가."
"아저씨…, 나 한국 들어와서 짐도 받아야 하고, 엄마도 만나야 하고, 또…."
"그래서 나 보고 어쩌라는 건데."
"한 달만. 딱 한 달만 아저씨 집에 있을게."
이내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뱉은 아저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너 알아서 해. 짜증 나니까.'하고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다. 마무리는 좋지 않았지만 반쯤 성공이었다. 아저씨는 이래서 안 되는 거다. 마음의 불을 모두 꺼놓아도, 내가 어딘가에 부딪혀 아파하지 않게 꼭 작은 촛불 하나를 켜둘 테니까. 이제껏 그 불빛 하나만을 보고 20여 년을 달려왔다. 20여 년을 버텨내기에 촛불의 빛은 너무나도 작고 야위었었지만. 아저씨니까. 그 누구도 아닌 아저씨니까.
아저씨:
[집부터 구해] PM 07:22
[귀찮게 하지말고] PM 07:23
한 달이다. 한 달만에 아저씨를 내 남자로 만들지 못하면 나는 한국을 영영 떠날 것이다. 이 정도의 각오가 아니라면 절대 아저씨의 벽을 넘어뜨릴 수 없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각오해, 아저씨. 예전의 그 애기 같던 꼬맹이는 이제 더 이상 안 할 테니까.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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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린가여!!! 암호닉 글 댓글... ㄷ...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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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아 윤기 글이 이제 시작이라니... 윤기 글은 아저씨 / 꼬맹이 로 나뉘어져서 연재합니다!
내일부터 폭풍유혹이 시작되겠네오 우리 모두 꼬맹이에게 힘을 불어줍시다ㅏ 이야ㅏ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