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죽음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어느날에는 파란 지붕 집주인의 딸을 죽인 사형수의 죽음을 점쳤고 또 언제는 위독한 병에 걸린 할아버지의 유언을 대신 읊어주었다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를 죽음의 눈을 가졌다라 내게 조심하라 일러주었다.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뒷산에서 풀들을 캐며 혹은 양들을 치며 울타리앞에 누워 아무생각없이 하늘의 구름이나 세던 나에겐 그 소녀 이야기는 어디 소설에서나 나올법했다.
그 날은 하늘 다른날보다 우중충해 양들을 산 아래로 몰고있었을때였다. 앞마을 할아버지는 심히 고지식해 융통성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양반이었다.사실 황혼즈음에 사고로 아내와 아들들을 잃었으니 그리 양반팔자라 할수도 없었다. 그의 손은 금방이라도 부러질듯이 삐걱거렸다. 그런 손으로도 양들을 참 잘 몰았다. 양만 잘몰면 뭐하나,할아범에게는 그걸 자랑할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그러니 손자뻘되는 나라도살갑게 굴어야지 아니라면 분명 지금쯤 자신의 집 대문에 목이라도 걸어 자살했을게 분명하다. 나는 꽤나 여린맘에 소유자라,그리고 비위도 약해서 시체치우는 일은 양들 시체만으로도 버겁단 말이다.
내가 그 할아범을 만나지는 두해하고도 열달이 넘어가니 새삼스레 시간의 흐름앞에 놓인 기분이 들어버린다. 할아범은 나와 꽤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연말에 가족을 잃고 혼자 내앉게 된것도 그날밤 줄에 목을 매달려 했던것도 결국엔 양들을 몰게된것도.
나는 15살이 되던해 홀로 날 키우던 어머니를 여의었다. 애초에 남들의 가사를 도우며 뜬눈으로 잡일을 하였는데 몸이 버티지 못한건 당연했다. 나를 낳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떠난 아버지탓에 나와 어머니는 덜컥 밖에 내앉게 되었다. 앵벌이를 하며 연명하는 삶은 굉장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시내에 나가 배우는 셈도 저 멀리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배우는 일도 내겐 흥미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시내에서 집 골목으로 오는 길 사이에 있는 들판에서 피는 꽃들을 구경하는 맛에 어머니 몰래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닌것이다. 어머니가 새우잠을 자던 날들을 틈타 조금씩 긁어모은 금화들을 학교의 어른에게 건네주며 나는 항상 그 들판에서 뛰노는 상상했다. 가끔씩은 양들도 그곳에서 풀을 뜯어먹던데,나는 내 옆에 갖가지 색의 양들도 그려넣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가 겪었던 무엇보다도 초라했다. 그날 아침 학교에선 발음이 신기한 외국말을 가르쳐 주었고 옆자리의 김남준은 어물쩍하게 헤메고 있는 내게 케싯키-라 일러주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흐릿하면서도 잊혀지지 않아 금방이라도 날 삼켜낼듯 하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나는 항상 그러하듯 색색들이 만연한 풍경들을 거닐었고 한손에는 김남준이 쥐어준 비스켓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모습은 들고 있던 바늘에 자신의 손이 꿰어진채도 모른채 엎드려 식어있었다. 아-주머니엔 금화3개와 자신의 처지같이 곪아버린 골무가 있었다. 학교를 다닐수 있었던 금화3개.
나는 그날 오후 내가 거닐던 향현들을 지나쳐 김남준이 살고 있는 시내로 뛰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않았지만 쉬지 않고 뛰었다. 시내에 도다르고 나는 단숨에 김남준이 사는 집앞에서 소리쳤다. 김남준은 놀라 큰눈을 한채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만해도 딱딱한 비스켓에 실실 웃던 내가 눈물범벅인채로 서있었으니,김남준도 여간 놀라게 아닌채 한참동안 나를 살폈다. 나는 김남준에게 금화3개를 쥐어주며 말했다.
[비스킷 값이야. 그리고 케싯키 뜻말이야. 까먹었어.다시알려줘]
나는 그날 마지막 금화3개를 맛은 지지리도 없었던 고무 비스켓 값으로 내버렸다.김남준은 바보였다.그래서 울고있는
날 달래지도 못하고선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는 내게 바보같이 케싯키의 뜻이나 계속 말해주었다. 귀에 딱지가 앉을 때 까지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 그 망할 비스켓꾸러미를 양손에 한아름 들고 와 울지말라며 내게 안겨주었다. 김남준은 꽤 똑똑했지만 어딘가 어벙한 구석이 있었다. 아마 내가 그아이 앞에서 결국 살풋 웃어버린 것이 고무 비스켓때문이라고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けしき
***
어쨌든 지금 내 상황은 그러했다. 태생적으로 주위것에 관심이 없게 태어난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무정한 놈이다,나란 놈은.흥미를 끄는건 적지 않았지만 깊지못해 이또한 빠르게 식었고 나이가 들고 돈을 벌기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이마저도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무엇일뿐 나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죽음을 보는 눈이라니,나는 한손으로 습기찬 날씨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끈을 이끌며 양들을 끌었다. 속으로는 계속 그 여자애의 모습을 상상했고 오늘따라 미끄러지는 손에 신경질이 나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애초에 오늘은 하늘이 노한듯이 검은데 꿋꿋이 양들에게 풀을 뜯어먹게 시켰던 노인네의 잘못이 크다. 하루라도 양들을 풀어놓지 않으면 안된다며 노인의 신념은 양치기 치고는 단단하고 굳셌다.
번쩍-하고 번개가 내리쳤다. 나는 깜짝놀라 울타리와 연결된 끈을 놓쳤다. 안그래도 미끄러웠던 끈을 놓자마자 양들은 혼비 백산해 이리저리 뛰어 더녔고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양들을 허망하게 바라볼뿐이었다. 분명 영감에게 폭언을 들을테지만 나는 그것보다 내 곁을 떠나는 양들만이 내 눈에 선했다.영감을 만난 이후로 양에 대한 애정이 내게 옮은것인지 내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그것들이 갑자기 떨어져나가자 느낀 공허함인지 모를 감정이 솟구쳤다. 나는 바보같이 차오르는 눈물에 몇번이고 감정을 삭혔다.들판의 갈대들은 세차게 흔들려 장관을 만들어냈고 저 멀리서는 나뭇잎들이 날려 한치 앞을 보기 힘들정도로 시야를 가렸다.
나는 빨리 양을 찾아야했다.아마 지금부터 끈을 잡아 울타리문을 당기면 대부분의 양들을 다시 되찾아 영감에게 꾸지람역시 듣지 않을것이다. 그는 눈도 나쁘니 솜뭉테기를 모어서 양들 사이에 던져놓아도 자신의 양들이 잘 있는 줄 알것이다. 하지만 발은 너무 무거워 떨어지려하지 않았다.그저 울타리를 넘어 어디론가 급히달려가는 양들을 보며 어릴적 내가 지겹도록 그렸던 풍경들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구름한점 없는 푸른 하늘아래였지만 지금은 어두움이 내려앉은 모습이었다.그런 하늘과 달리 양들은 새하애 어둠에 쉬히 잠식되었다. 나는 그 어둠속에서 더욱 빛날거라 생각했는데 그 밝은 색은 어둠속에 검게 그을렸다.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른 풍경에 나는 눈을 감았다.
"누구야?"
나는 아무런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결국은 내린 비에 홀딱젖어 머리칼에서 볼을 따라 물이 떨어졌고 그런 몰골로 저멀리 뛰어다니는 양들을 끝까지 바라보았다.나는 홀로 비내리는 들판을 내려갔다.하늘은 무심히도 다시 푸르러 밝게빛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민윤기."
나는 양들을 모두 잃은 그날,어느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검은색의 벨벳 망토를 휘두른채 꼿꼿이 서 나를 바라보았다. 망토의 그림자 사이로 연갈색의 눈동자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얼마나 반짝이던지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 안 빛들이 산란되어 내눈을 아프게했다. 소녀의 연갈색눈동자는 어느 바다 보다 깊었고 어느 늪보다 나를 옭아맸다. 티 뭍지 않는 순수함 아래 얕게 깔려있는 매혹적인 눈빛에 나는 넋을 놓은채 소녀의 눈을 마주쳤다.
"누구야?"
듣기좋은 미성이었다. 소녀의 이미지와 잘 들어맞는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홀리듯 대답했다
"민윤기."
"양들은?"
"잃어버렸어."
소녀는 내게 다가왔다.발로 걷는것이 아니라 유영하는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금세 내 앞에 다가서서는 나를 올려다보았다.소녀는 뭐가 그리 맘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뿌리며 내게 다시 되물었다.
"몽땅?"
맞아 다 잃어버렸어.아마 영감은 날 죽이려들거야.그 자신 같은 양들을 모두 잃어버렸으니까.그래도 난 그의 유일한 가족이잖아.
"영감은 너를 때릴거야."
"그럼 너는 나 대신 맞아줄수 있어?"
"미안,그건 안돼."
소녀는 어색하게웃었다. 자신이 대신 맞아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도와줄 수는 있다며 나를 기대에 찬 모습으로 올려다보았다.소녀의 눈동자는 회색이었다. 아마 아까의 연갈색 눈동자는 나뭇가지에 비쳐서 만들어진 색이었나보다.
널 꼭 도와줄게.소녀의 의지적인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소녀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선 따라웃었다. 그녀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눈도 동글 코도 동글 망토사이로 보이는 흰색의 앞머리도 동글했다. 복실복실하게 부푼 앞머리가 망토사이로 빛났다. 양같아.
집안에서 나무 침대가 삐걱거렸다.영감이 늦잠에서 깬모양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날 만나기 전부터 그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에는 잠을자는 나대신 양들을 지키고 아침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때가 되면 그제서야 자신의 침대에 몸을 눞혔다.그의 뒤척거림에 내가 눈을뜨면 그게 나와 노인의 하루일과의 시작이었다.
"할아버지가 깼어."
소녀는 급히 내게서 멀어졌다. 내게서 멀어질때도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황급히 언덕을 내렸다.나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급히달리느라 거세게 흔들리는 망토를 한손으로 부여잡은채 빠르게도 달렸다. 혹여 노인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수풀에 스쳐 소리가나면 소스라치게 놀러 뒤돌아봤다.
[○○○,내이름이야!]
***
나는 한3시간동안 죽을듯이 맞았다.할아범은 비에 홀딱젖은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양들의 안위를 물었고 내가 젖자마자 투박한손으로 내 뺨을 갈겼다.내가 중심울 잃고 휘청거리자 마자 그는 폭언을 내뱉었다. 가족도 없는 것을 거두어 키워줬구만 이런식으로 자신을 물먹이냐며 나를 키운 어머니에대한 모욕으로 까지 이어졌다. 노인은 자신의 분을 주체하지 못한채 쉴새없이 나를 내리쳤다.그는 끝까지 잊을 앙다문채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나에게 질렸다며 나를 밖으로 내쫓았다. 입안가득 피맛이 비릿하게 났다. 집밖으로 나오자마자 시린 저녁공기에 아까 맞은 상처들이 더욱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
소녀는 언제주터 저기 있었던 것일까.소녀의 하얀 머리칼이 가시덤불속에서 빛났다. 아까 노인에게 맞을때 눈을 잘못 맞았는지 퉁퉁 부어오른 눈때문에 소녀의 모습을 알아보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소녀는 차마 날 쳐다보지도 못한채 뒤돌아 내게 물었다. 울먹거리며 묻는 말에 나는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아파...아파죽겠어"
"..."
"그러니까 너가 치료해줄래?"
소녀는 그제서야 몸을 돌려 나를 마주했다. 소녀는 내 얼굴을보자마자 제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선 다른 한손으론 뻗어 내 얼굴에 조심스레 가져다댔다. 소녀의 손이 닿은 부분들이 화끈거렸다.
"아프겠다..."
"네가 도와준다며,나 치료안해줄거야?"
"미안,도와줄수가 없었어. 할아버지는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았거든"
소녀의 회색눈동자는 이제 밤처럼 짙푸렀다. 중간중간 별의 노란색도 박혀져있었다. 소녀는 참 재미있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죽는다고?그 노인네는 지독히 고약해서 절대 죽지않을 거야."
"아니 분명 돌아가실거야."
바보같은 소리,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죽음의 눈을 가진 소녀를 조심해]
[죽음의 눈이 어떻게 생겼는데?]
[...글쎄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어느 사람은 바다처럼 청아색을 띈다고 했고 또 어떤이는 회색을 띈다고 했어.아- 밤하늘보다 더 짙은 색을 띈다고도 했어!]
"나는 죽음을 볼 수 있거든"
소녀의 눈동자안 샛노란 색의별이 그녀의 눈 속에서 사라졌다. 밝은 빛이 사라진 눈빛,어느 색보다 더욱 진득한색의 눈동자가 내게 말했다.
나는 죽음의 풍경을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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