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닿은 시선을 먼저 거둔 것은 그 남자였다. 나와 김태형을 무심하게 번갈아 쳐다보더니 곧 자신에게 달려드는 한 마리의 좀비에게 총질을 이어갔다. 정말 구조대인가 싶어 그 남자의 모습을 천천히 뜯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구조대의 모습은 군복을 차려입고 탱크나 군용차를 몰고 다니는 군인들이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검붉게 얼룩진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바지의 단출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 그 이상의 특별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 손에는 권총을, 허리 춤에 맨 혁대에 또 다른 권총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고 등에는 꽤나 기다란 샷건 같은 것을 매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아는 구조대의 이미지와 전혀 매치되지 않았다. 또 경찰이라고 보기에도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머리색이 가장 튀었다.
밤낮으로 시끄럽게 울부짖었던 좀비들을 몇 번의 총질로 말끔하게 정리한 남자는 자신의 허리춤에 권총을 꽃아 넣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떠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나였다.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로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이 끊긴지 오래였다. 그로 인해 외부인의 방문이 반가운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동네를 벗어날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 남자의 발걸음은 마을 출구가 아닌 익숙한 길로 들어섰다. 바로 김태형네 집으로 말이다.
우리 집과 김태형네 집이 좀 가까운가. 김태형네 집을 자기 집 마냥 망설임 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자의 행동에 나와 김태형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대문을 여는 순간에도 권총을 손에 꽉 쥐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남자였다. 끼익, 하고 소름 돋는 쇳소리가 허공을 찔렀다.
커다란 소리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남자는 성큼성큼 김태형의 집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여러 번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는 남자의 표정이 보였다. 좀비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현관문 단속을 하지 않는 바보가 어딨겠는가. 굳게 잠겨있는 문이 열릴 일이 없었다. 는 나와 김태형의 생각이었다. 그 두껍디두꺼운 쇠문이 전혀 열릴 리가 없다며 안심한 우리 둘은 곧 입을 떡 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권총을 문고리에 조준하더니 곧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타앙. 두 번의 총성이 울렸다. 현관문의 모습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떠한 장애물이라도 다 막아 줄 것 같았던 현관문에 두 개의 구멍이 보기 좋게 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안 봐도 비디오였다. 이내 남자는 문을 향해 발길질을 시작했고 얼마 안가 큰 소리와 함께 둔탁한 무언가가 나가떨어졌다.
너무나 가볍게 열려버린 현관문에 나와 김태형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웠던 소음들이 사그라들고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을 보아 아마 집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서늘한 바람이 몸을 스쳐지나 갔다. 혹시 우리에게 무슨 해코지 같은 것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물밀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 저, 저 사람 지금 우리 집으로 들어간 거 맞지. "
" 으응, 맞는 것 같은데. "
" 저기 확실히 우리 집 맞지?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라. "
" 맞아, 태형아. "
" 저기 우리 엄ㅁ… "
' 콰앙! '
순간이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강한 총성이 가깝게 들린 것은. 그리고 김태형의 방 문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은. 그 구멍 사이에서 회색빛 연기가 흘러들어오고 있었고 동시에 검은색에 가까운 액체가 문 벽을 타고 두 줄기로 흘러내렸다. 방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일렁이더니 가볍게 뜯겨 바닥에 뒹굴었다. 문이 힘없이 앞으로 쓰러지자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남자였다. 그 남자가 벌인 짓이었다. 그의 한 손에는 기다란 샷건이 들려있었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어떤 여자가 머리채를 붙잡힌 채 죽어 있었다. 시체의 뒤통수는 보기 좋게 뻥 뚫려 검은색 피를 이리저리 흩뿌려대고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김태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태형은 상당히 굳어있었다. 머리색이 화려한 남자는 머리채가 붙들린 여자를 방구석에다 내던지 듯 던져놓고 터벅터벅, 우리들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 상황이 두려운 나머지 마른침이 목뒤로 넘어가도 나의 눈은 그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쫓고 있었다. 나와 김태형, 그리고 그 남자는 마침내 서로의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 매서운 눈으로 말이다. 이 숨 막히고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김태형의 목소리였다.
" 당신이 죽인 저 사람, "
" …… "
" 누군지 알고 멋대로 죽인 거야? "
" 태형아. "
" ……. "
" 당신이 죽인 사람 우리 엄마야. "
" ……. "
" 우리 엄마라고!!! 네가 함부로 죽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
" 김태ㅎ… "
" 살려내, 살려내라고!!! "
" 아직 애들이라 그런가, 상황 파악이 전혀 안된 모양이네. "
이를 얼마나 세게 악물었는지 바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김태형이 한 걸음 바짝 움직인 것을 멈춘 남자의 첫 마디였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했다. 남자는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떠는 김태형의 행동을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샷건을 들어 보였다. 그 행동이 상당히 위협적이었기에 나와 김태형은 반사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우리의 행동을 보더니 바람 빠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샷건을 자신의 눈 높이쯤 들어 한번 쭉 훑어보더니 앞으로 휙 내던졌다. 그 커다란 총으로 위협을 할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그와 다르게 의외의 행동을 보인 남자에 무슨 상황인가 싶어 둔탁한 소리가 난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랗고 긴 은색의 샷건이 빛을 받아 번쩍거리고 있었다. 몸을 한결 가볍게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발코니 난간에 한 손을 짚고 가볍게 나의 방으로 뛰어넘어 들어오는 남자였다. 제일 먼저 보이는 그의 새하얀 와이셔츠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말라버려 거뭇하게 변한 핏자국 위에 생긴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빨간 피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 너머로 난간을 짚었던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피로 물든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
" 너, 말 조심해라. "
내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생수통을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초면부터 반말을 해대는 김태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말이다. 큰 생수통의 뚜껑을 열어 입을 대지 않고 한 모금 벌컥 들이켜는 남자의 행동에, 김태형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멱살을 잡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태형에게 잡힌 멱살을 내려다보고는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짓던 남자는 김태형의 손을 가볍게 내려친 뒤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의외로 쉽게 나가떨어진 김태형은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 마른 몸집을 가지고 어마 무시한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뒤로 김태형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남자는 들고 있던 큰 생수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렇지 않게 방을 쓱 둘러보다 침대를 발견하자마자 벌러덩 누워버리는 그였다. 푹신한 침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푹 꺼져버렸다. 두 손을 깍지 낀 채 뒤통수에 받치고 왼 다리를 오른쪽 다리에 교차시켜 올려놓은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내 침대에 벌러덩 누워 제 집 마냥 예의 없는 행동을 보고만 있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김태형이나 다른 남자 같았으면 꺼지라고 진작 발로 차버리고도 남았는데, 그의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서운 분위기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또 진짜 발로 차버렸다가는 저 남자가 소지하고 있는 총기에 좀비가 아닌 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가. 당장 여기서 꺼져."
" 두 번 말 안 해. 말 조심해."
" ……. "
" 새파랗게 어린 새끼한테 그딴 말 들을 정도로 고운 성격 아니니까 기분 좆같게 만들지 말라고. "
나는 김태형과 저 남자의 살벌한 신경전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김태형은 남자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아차렸는지 아까보다는 화가 조금 사그라진 모양이었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김태형이 잠잠해지자 서서히 눈꺼풀을 내리는 남자였다. 그의 와이셔츠에 묻은 피들이 침대의 하얀 시트를 붉게 적셔가고 있었다. 잠에 빠진 것인지 눈을 꼭 감고 뜰 생각을 하지 않는 남자를 천천히 쳐다보았다. 화려한 금발의 머리,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총기들. 좀비들을 죽이는데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 흔한 두려움조차도 말이다. 게다가 정체 또한 알 수 없으니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이 남자, 뭔가 위험하다.
해가지고 어둠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더니 새벽이 찾아왔다. 벽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벌써 숫자 2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수상한 남자는 침대에 위에 앉아서 자신의 총기들을 여기저기 늘어놓더니 하나하나 손수건으로 피를 닦고 있었고 나는 침대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아 있었다. 김태형은 벽 방향으로 웅크려 누운 채 몇 시간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김태형을 몇 번이나 흔들어 보았지만 건들지 말아 달라는 차가운 말만 돌아왔기에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고요한 침묵이 찾아오고 밖에서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커튼을 크게 들썩였다. 바람이 훑고 지나간 공간에 철컥, 하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적막 속 크게 울리는 소음에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자신의 샷건을 손에 쥐고 날카로운 눈빛을 한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남자가 보였다. 무슨 일이냐며 입술을 달싹이는 나를 쳐다본 그는 곧 조용히 하라며 크고 흰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그가 보는 시선을 따라 내 시선도 그쪽으로 옮기면, 발코니 너머로 김태형의 방 쪽에서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일정하지 않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곧 내게 침대 위로 올라오라며 눈짓을 주는 그 때문에 조용히 침대로 올라온 뒤 벽에 등을 맞대고 찰싹 붙었다. 또다시 쿵, 쿵 울려대는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의문의 소리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 사이로 김태형의 방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나는 서둘러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다시 벽에 꼭 붙어야 했다. 수많은 좀비들이 김태형의 방을 가득 매워가고 있었다. 낮게 그르렁 거리는 소리들이 귓가를 시끄럽게 맴돌았다. 몰려오는 두려움에 눈동자를 굴리면, 저 앞에 아직까지 웅크린 채 미동도 없는 김태형이 눈에 들어왔다. 김태형을 깨워 침대 쪽으로 데려오려 엉덩이를 떼는 순간, 남자는 내 팔목을 붙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 움직이지 마. "
" 그치ㅁ… "
" 네가 움직이면 너도 죽고 저 새끼도 죽어. "
높낮이 없이 일정한 말투로 내뱉는 그의 말에 벌벌 떨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저 너머로 무언가가 하나씩 떨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한밤중 꾸는 악몽 같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소리에 놀란 김태형이 그 자리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자신이 극도로 싫어하는 남자 옆에 꼭 붙어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는 내 눈빛을 본 김태형이 이 상황을 아무것도 모른 채 인상만 찌푸렸다. 나는 검지를 쫙 피고는 무언가를 콕콕 쑤시듯이 발코니 바깥쪽을 가리켰다. 나의 행동에 신경질적으로 발코니 너머에 있는 자신의 방을 보더니 순식간에 몸이 굳는 김태형이었다. 김태형은 상당히 노출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만약 좀비들이 우리 쪽을 보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김태형은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엉덩이만 들어 올린 어정쩡한 포즈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얼른 이곳으로 오라며 손짓을 해댔고 남자는 어정쩡한 모습의 김태형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바닥에 짚은 손과 함께 굽혔던 허리를 펴고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오는 김태형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 발씩 내딛는 그 순간,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있던 큰 생수통이 힘차게 바닥을 굴렀다. 김태형이 생수통을 발로 차버린 것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과 함께 남자는 작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저 미친, "
( * 다음에 좀비짤이 나옵니다. 주의하세요. )
' 크르르…크어… '
' 크아아아!! '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이곳저곳 데구루루 구르는 생수통을 잡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김태형은 서 있는 자세로 몸이 굳었고 좀비들은 괴기한 소리를 내며 발코니에 몰려들었다. 수많은 좀비들이 발코니를 넘어오려고 버둥거렸다. 그곳을 넘으려다 사이로 떨어져 바닥에 추락한 좀비들도 몇 있었다. 우리를 잡으려는지 쭉 뻗은 손들은 한참 썩어들어가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썩은 냄새에 나는 소매로 코를 막아버렸다.
남자는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들고 소음기를 장착하더니 침대에서 튕기 듯 나가 김태형 방에 꽉 들어찬 좀비들을 하나씩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와 김태형도 몸을 움직여 그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꼭 붙었다. 발코니로 몰려든 좀비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서로를 밟고 밟으며 결국 내 방의 발코니까지 발을 들여놓은 좀비들을 남자는 여유롭게 하나씩 죽여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나의 권총으로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좀비들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총을 쏘아대더니 이내 방 문을 활짝 열어 재끼며 어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 빨리 나가, 빨리! "
" 김태형! 빨리 와! "
" ㅇ,어어…! "
나와 김태형은 밖으로 서둘러 나가며 계단을 뛰다시피 내려왔다.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남자를 걱정하며 계단 위를 올려다보자, 양손에 들린 권총을 번갈아 쏘며 뒷걸음으로 나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발을 쏘고 더 이상 탄창에 탄피가 없는 것을 깨닫고 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왔다. 그 뒤로 물밀듯 밀려나오는 좀비들의 모습에 나와 김태형은 기겁을 하며 현관문까지 달렸다. 등을 떠밀며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손이 자꾸 엇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온답시고 굴러떨어지는 좀비들을 보랴 문 손잡이를 돌리랴 바빴다.
그런 나의 행동이 답답했는지 내 손을 탁 쳐내고는 자신이 현관문을 여는 남자였다. 김태형과 나를 먼저 문 밖으로 내보낸 후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온 남자가 거세게 현관문을 닫았다. 간발의 차로 닫힌 문이 쿵, 쿵 부서질 듯 울려댔다. 온몸으로 현관문을 막고 있는 남자의 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그렇게 큰 몸집도 아니면서 덜컹거리는 문을 홀로 막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나 또한 서둘러 문을 막는 것을 도왔다. 나의 행동을 혼자서 덩그러니 보고 있던 김태형 역시 문에 달라붙었다. 혼자 막고 있었을 때 보다 셋이 달라붙어 있으니 시끄러웠던 문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오래 버티고 있을 만큼 우리의 체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물론 나와 김태형만 말이다. 체력적인 한계가 다다르자, 그것을 눈치챈 남자는 자신이 신호를 주면 절대 뒤돌아 보지 말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라 하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는 없으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와 김태형은 조용히 남자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다. 곧 작게 카운트다운을 속삭이던 남자가 이내 큰 소리를 내뱉었다. 뛰어!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김태형은 문에서 몸을 떼어내고 앞으로 냅다 달렸다. 문을 막고 있던 힘들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수많은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