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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훈 우지호 그리고 우리 08
며칠 전 친구들에게 일방적으로 한 커밍아웃. 어제저녁잠이 들기 전 박경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만나서 대화를 하자는 내용.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짧게 답을 하고는 잠이 들었다. 7시에 눈을 뜨고 평소처럼 화장실로 가 뻐근한 몸을 차가운 물을 틀어 몸을 씻어내고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소파에 누워 잠이 든 표지훈의 옆으로 간다. 시간이 흘러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저녁으로 라면을 끓이고 있는 표지훈의 옆으로 가 주위를 서성이다 옆에 서 이미 면과 스프를 넣어 붉어져있는 라면을 젓가락으로 휘어젓는 표지훈의 손을 본다. 표지훈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표지훈”
“응?”
“며칠 전에 사귀는 거 말했잖아. 그걸로 애들이랑 대화하기로 해서 집에 혼자 있어야 할 것 같다.”
“다녀와….”
흔쾌히 다녀오라는 말은 하지만 표정에서 아쉬움과 섭섭함이 묻어나있다. 섭섭함을 표현하듯 식탁 위에 올려진 라면을 먹는 동안에도 아무런 말이 없다. 며칠 동안 저녁은 항상 라면으로 먹은 탓에 지겨울 만도 하지만 표지훈이 라면을 좋아해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먹는다. 다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곤 소파에 앉아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표지훈을 집에 혼자 두고 가는 내 마음은 5살 어린아이를 두고 먼 곳으로 가는 엄마의 마음과 같다. 약속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15층으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눌러 기다리고 있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함과 동시에 표지훈의 집 문이 열리며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표지훈이 따라나온다.
"데려다 줄게"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 어느덧 10월 말이 되어 이미 겨울과 다름없는 추위에 집 앞을 나가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찔러 찡하다. 평소처럼 표지훈은 엘리베이터를 안에 먼저 들어가 나를 기다렸고 나는 천천히 표지훈의 옆으로 가 서있는다. 티는 내지 않으려 하지만 그런 문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기에 추운 날씨에 손에 땀이 생길 정도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 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말없이 천천히 걸어가자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잡는다.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체 나온 그날. 어느새 지름길 골목으로 들어오고 벌써 어두워진 골목은 사람 없이 휑하다.
“나랑 사귄다니깐 형들이 뭐라 안 해?”
“못 들었어”
약속 장소로 다가오고 일방적으로 말한 탓에 어떤 말을 들을지 긴장이 되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날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다 말해주었다. 표지훈은 아무 말없이 내 말을 들어준다.
“형들 나쁜 말하면 나 불러 혼내줄게”
“집이나 지켜”
“그런 말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가 보다. 나는 어떤 말 이든 들을 자신이 있었고 더군다나 바퀴벌레 하나 못 잡아서 쩔쩔매는 순대 하나 못 먹어서 쩔쩔매는 표지훈 같은 겁쟁이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고는 술집을 박차고 나왔기에 내가 집으로 간 후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친구들은 더 대화를 해 봐야 할 것 같다며 박경을 통해서 약속을 잡았다. 술집 앞으로 도착하고 표지훈은 손을 놓고는 아프지 않게 등을 토닥이듯 두드려주고 둘이서 걸었던 거리를 뒤돌아 혼자 걸어간다.
한참을 앞에서 망설이다 “안 들어가?” 박경의 목소리에 아무렇지 않은 듯 안으로 들어간다. 생각 외로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결국 커밍아웃에 대하여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표지훈이랑 사귀어”
“그게 왜”
어떻게 생각하면 고맙다. 놀라는 리액션은 저번에 했으니 이번에는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모습. 그저 평범한 나로 대해주는 분위기에 이끌려 맨 정신으로 하지 못할 말들이 많아 생각도 하지 않은 체 술을 마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진지한 이야기로 흐르고 자연스레 차분한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고3 때 처음 보는 애가 사귀자고 했어”
사귀었지. 오는 사람 안 막았으니깐 호기심도 있었고, 처음엔 관심 없었는데 서서히 좋아지더라 그때 표지훈 집에 두고 온 이유가 사귀는 거 말하려던 거였는데 그냥 표지훈도 없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딴 식으로 지껄이는 게 듣기 싫더라
“야 근데 지훈이한테 너무 까칠해 너”
“몰라”
아직 술의 힘을 빌렸지만 취하지는 않은 지금 일부러 딱딱하게 말하고 까칠하게 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표지훈과 나 사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금방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새벽 3시가 되고 술집을 빠져나온다. 오랜만에 마신 술이라 몸을 가눌 수 없어 안재효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내 몸을 부축하였다. “야 내가 여기서 표지훈한테 노래 불러줬어”애국가 1절을 시작한다. 집으로 가는 도중 안재효는 조용히 좀 하라며 찡찡거리듯 부탁했지만 상관없다. 내 기분이 좋으니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앞으로 도착하자 애국가 4절이 끝나고 능숙하게 표지훈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자 애국가 부르던 것을 들은 것인지 먼저 나와 신발장에 마중 나온 표지훈에게 다가간다.
“잘 풀렸다 표지훈”
그리곤 입술에 입을 맞춘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뭐 하냐” 술이 확 깬다. 술에 심하게 취해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고 모든 것이 정신없었던 아까. 눈앞에는 표지훈이 아닌 안재효가 있었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야…. 그게 아니고”
“재효 형 일단 나가”
“뭐 어떻게 된 거야”
안절부절못하던 안재효는 집 밖으로 빠져나갔고 표지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이 차갑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정신은 말짱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 듯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시아가 흐릿해져 결국은 신발장을 짚어 기대어 몸을 똑바로 서 표지훈을 바라본다. 표지훈의 입술이 열린다.
“딴 세 끼들 앞에서 술 처마시지 말라고 했지”
“순간 너로 보였어. 많이 취했나 봐”
“내 말이 우스워?”
하나하나 들리는 그 말들이 가슴속에 쐐기를 박았다. 이대로 끝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평소 화난 모습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표지훈의 모습이 아니다. 신발장을 짚어 표지훈의 앞으로 걸어가 똑같은 눈높이에 살짝 고개만 튼 채로 입을 맞춘다. 닿은 입술에도 먼저 입술을 빨아들이던 표지훈이 아닌 아무런 미동 없는 표지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입술을 떼어내고 차가운 손을 잡는다.
“다시는 술 안 마실게 미안하다 지훈아”
잡은 두 손에 한참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길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 너 믿는다”그리고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실수는 다 할 수 있는 거래, 샤워해야 되지?”
거실에서 옷을 벗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머리가 핑 돌아 잘 움직이지 못 했던 나를 욕조 안에 앉히고는 샤워기를 들어 대신 씻겨주고 있다. 정신은 있었지만 술기운이 깨지는 않은 것인지 평소답지 않게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다 말해준다. 말을 다 듣는 것인지 말이 끝날 때마다 “응” 하며 대답을 한다.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고는 머리를 말리지 않은 체 침대로 돌아와 팬티를 입고 티셔츠와 트레이닝복을 입고는 침대에 눕는다.
개운함과 동시에 두꺼운 이불 탓에 차가웠던 몸이 따듯하게 녹는듯하다. 표지훈은 거실에 벗어놓았던 옷을 정리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와 혹시 차가운 바람이 세어 들어오지는 않을까 문을 닫는다. 그리고 불을 끄고는 폰을 켜 어둠 속에서 나에게로 다가와 침대에 눕는다. 4시 조금 넘는 시간. 곧 있으면 해가 뜨겠지만 지금 이 시간 우리는 눈을 감는다.
“미안하다고 하는 거 처음 들어봐, 그래서 화는 나는데 화가 다 풀리더라”
어두운 정적 속에서 표지훈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아까의 긴장감이 지금은 풀려서인지 술에 취해 나른해진 몸 탓인지 아니면 늦은 시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서인지 곧 잠이 들 듯이 뻐근함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진다. 표지훈이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을 한다.
“그리고 형 이야기하는 거 처음인 것 같다”
또다시 정적이 흐른다. 표지훈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인지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생각나지 않자 아직 술이 깨지 않아 띵한 머리 위에 손을 짚는다.
“오늘 무서웠다”
“왜?”
“이 일로 너랑 모르는 사이 될까 봐”
웃으며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나를 껴안는다.
“바보야 내가 평생같이 살자고 프러포즈했잖아”
아 결혼한 건가
표지훈 우지호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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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쓴 글이라 피곤해서 내용이 산으로 갈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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