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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훈 우지호 그리고 우리 12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 우리는 잠이 들기 직전 짐을 정리해둔 캐리어를 챙겨 밖으로 나온다. 2시간 채 자지 못해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6시가 되기 전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표지훈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살포시 감는다. 그냥 살짝 눈을 감았을 뿐인데 “지호야 도착했어"그제야 눈을 뜨고는 비몽사몽 버스 뒷문으로 걸어나간다.
“졸려?”
학생 몇 명이 앉아있는 버스 안. 귓속에 작게 속삭이며 어깨에 손을 올린다. 말없이 눈을 감은 체 표지훈에게 기대 고개를 끄덕인다. 버스가 멈추고 버스 문이 열리자 눈을 떠 버스에 내린 후 사람이 없는 거리를 걸어간다. 아직 눈을 반쯤 감아 표지훈의 어깨에 기대어 느리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시외버스 터미널로 도착해 이른 아침 기다림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의자. 제일 구석으로 가 앉는다.
“뭐 사 올게”
표지훈에게 기대고 있을 땐 온기가 느껴졌지만 혼자 앉아있는 의자는 너무나 춥다. 시외버스 터미널과 붙어있는 편의점으로 간 것인지 얼마 되지 않아 옆으로 와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꺼낸다. 그리고 영화에서 본 것인지 후드 집업 주머니 속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준다. 물과 과자 그리고 김밥과 빵 우유 캔 커피.
“왜 이렇게 많이 샀어?”
“형 배고플까 봐”
자기가 배고팠던 것은 아닐까 앉자마자 김밥을 뜯고는 입안에 하나 넣더니 가만히 보고 있는 나의 입에도 넣어준다. 저 입안으로 김밥이 3개 정도가 들어가자 볼이 둘리처럼 가득 찬다. 입을 다 문체로 바보같이 웃음을 짓는다. 시계를 확인하자 버스가 올 시간은 20분이 남고 말없이 입안에 있던 김밥을 다 삼킨 표지훈은 한동안 말없이 잠긴 목을 푼다.
“형 부모님은 어떤 분이야?”
가끔 같이 걷다가 본 적 밖에 없던 표지훈. 한 번도 집에 들어온 적도 없었고 집 앞에서 엄마와 마주치거나 그것이 끝이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 우리 아버지는 외국에서 일을 하신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한국에서 계셨고 크는 동안 친구처럼 지냈기에 모두가 소중하지만 아버지는 제일 소중하신 분이다.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모든 것을 나를 믿고 밀어주셨던 분이다.
“날 믿어주는 사람”
그저 나를 믿어주시는 분.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은 알 수 없었다. 은근슬쩍 떠 본적 또한 없었고 TV에서 동성애 코드가 나오더라도 말없이 보셨던 분이셨기에. 버스가 도착하고 우린 버스에 올라타 자연스럽게 맨 뒷자리 앞 좌석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소중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보다 너를 택한 이유는….
“넌 내가 왜 좋아?”
피곤했던 눈이 감기지 않고 자꾸만 창밖으로 시선이 가 모두 자고 있을 버스 안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러자 잠시라도 고민을 할 줄 알았던 표지훈은 한순간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냥 너니깐”
귀가 붉어진다. 비닐봉지에서 조금 전 샀던 과자를 꺼내고는 뜯어 입안에 넣는다. 아무 말도 없는 버스가 달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버스 안은 아삭아삭 표지훈이 과자를 먹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손에 2개를 쥐어 내 입안으로 넣어주는 표지훈.
부모님께. 나를 믿고 있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러 간다.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서울로 가면 갈수록 얇게 내리던 눈이 빗물로 변한다. 몇 시간이 지나자 유리 밖으로 풍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세게 빗물이 유리창을 때린다.
서울로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는 편의점으로 가 우산 두 개를 사고는 신발 사이로 물이 들어오는 거리를 걷는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우리. 그리고 여러 사람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 우리.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형”
생각에 빠져있던 탓일까 뒤에서 애타게 나를 부르는 표지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거리를 걸어가다 등을 툭툭 건드려 뒤를 돌아보자 붕어빵 포장마차를 가리킨다. 비가 쏟아지는 이른 시간 붕어빵 기계에 반죽을 붓고 계시는 할머니.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우산을 접고는 인사를 한다.
“2000원어치 주세요”
표지훈의 집은 부유하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데이트 비용은 표지훈이 냈고 나는 몇 년째 반복되는 이 상황에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고 있었다. 지갑을 꺼내 붕어빵을 사려는 표지훈의 손을 제지하고는 하루 동안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지갑을 꺼내 2000원을 내민다.
“사주는 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감동이다” 한참 동안을 나를 바라본다. 붕어빵을 받고는 우산을 최대한 붙여 따뜻한 붕어빵을 갈라 먹는다. 평소와 같은 이 길을 걸어가는 지금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다.
긴 거리를 걸어 집 앞으로 도착하고 표지훈을 처음 보았던 장소, 열쇠를 열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일어나 샤워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있는 형. 그리고 깨끗한 집을 청소하고 계시는 엄마. 오랜만에 들어오는 집이 새롭다.
“안녕하세요”
넉살 좋게 웃으며 인사하는 표지훈, 워낙 넉살이 좋아 몇 번 보지 않은 우리 엄마를 보고 제 엄마인 듯 엄마 하고 부르곤 했다. 우리는 멀뚱멀뚱 신발장 앞에 서있다 어색하게 거실에서 형과 엄마를 불러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조용히 말을 꺼낸다.
“나 지훈이랑 사귀어"
아무런 말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우리를 바라본다.
“2년 됐고 어제 지훈이 부모님한테 말씀드리고 왔어.”
“좋은 말할 때 둘 사이 정리해라”
비밀을 털어놓아 한결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낄 때 들리는 형의 목소리가 쐐기를 박는다. 항상 밝던 표지훈이 고개를 숙이고 나는 어머니의 손을 보고 있다 고개를 들어 형의 눈을 바라본다.
“그 말 듣고 정리했으면 이미 끝났지. 가벼운 마음 아니야”
순식간에 올라오는 형의 주먹에 내 고개는 자연스레 왼쪽으로 돌아갔다.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믿었던 형에 대한 배신감. 표지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상황에서는 참아주었으면 했지만
“저가 고백했어요. 지호형 여자 좋아해요 원래, 왜 내 잘못인데 지호형을 때려요. 맞아야 할 사람은 난데 왜 지호형을 때려”
표지훈을 살짝 건드리자 그제야 흥분했던 마음을 정리시킨다. 그리고 죽일 듯이 나를 보고 있던 형을 말리는 엄마의 손길.
“엄마는 우리 지호랑 지훈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 눈치 보지 말고”
그러자 표지훈의 표정은 그새 밝아지며 “엄마, 허락한 거예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을 고개를 꾸벅거리고 절을 한다. 작게 욕을 읊조리며 집을 나가는 형.
“씨발”
형이 집을 나가기 전 들리게 욕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한참 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MP3을 듣고 있는 내 옆으로 오는 표지훈. 귀에 꽂혀있는 MP3을 뽑고는 “봉” 옆에 누워 말없이 나를 안아준다.
“사랑해”
기분이 좋지 않아 가만히 방에서 누워있기만 하다 저녁이 되고 형이 방으로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 MP3을 나눠끼며 폰을 만지고 있던 우리를 대충 흝고는 손에 들려있는 비닐봉지를 흔들더니 “따라와”형의 방으로 따라가자 비닐봉지에 있던 맥주 캔들 꺼내고 안주를 꺼내놓는다.
“앉아”
표지훈은 캔맥주 하나를 따고는 원샷을 하더니 “지호형 평생 웃게 할 수 있습니다.”굳은 다짐이 보이는 눈과 굳은 의지가 보이는 큰 소리로 힘차게 말을 하고는 앞에 있는 과자를 집어 입안에 넣는다. 이유 없이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소리 없이 웃으며 형을 보자 형도 표지훈을 보고는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어떻게 만났어?”
“집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말투와는 달리 그새 귀가 붉어지며 부끄러워하는 표지훈. 몇 시간 동안 새벽이 되도록 지금까지 우리의 사이를 물어본다. 표지훈은 티는 내지 않지만 긴장된 것인지 계속해서 캔 맥주를 비워냈고 형과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기에 느리게 캔 맥주를 비워낸다.
“형이 아침에는 갑작스럽게 그 말을 들어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있어서 그런가 당황해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간 것 같다”
취한 표지훈은 “괜찮습니다!” 또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나를 보며 웃다 자리에서 일어나 큰 절을 한다.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지훈 우지호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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