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 망태기님 . 호빵님 . 규요미님 . 식빵님 . 깨금님 . 학학이님 . 투잡님 (포인트 쓰면서 읽는 글 이것밖에 없다고 해주셔서 감동받아서 이번 화 구독료 없앴습니다!↗▽↖)
표지훈 우지호 그리고 우리 11
아무 일이 없는 듯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표지훈의 어머니. 이미 차려진 밥상에 우리가 방 안에서 나오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어머니는 밥그릇에 밥을 가득 퍼 식탁 위에 놔두고는 자리에 앉으시며 먼저 수저를 든다. 적막이 흐르는 주방.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는 표지훈을 따라서 의자에 앉아 밥을 숟가락에 가득 퍼 입에 넣자 모래알처럼 목 안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밥 한 숟가락 김치찌개 다섯 숟가락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서로 각자의 밥그릇을 바라본 체 한참 동안 주방은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
“엄마”
적막을 깬 표지훈의 목소리가 주방을 울리고 어머니와 나는 동시에 동작을 멈추고 표지훈을 바라본다. 아직 한 숟가락 체 먹지 않은 밥. 떨리는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있고 그런 표지훈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린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터질 듯이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힌다. 다시 정적이 흐르고 한참 동안이나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려 어머니를 보더니 천천히 입술이 열린다.
“…지호 형이랑 사귀어.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될지는 몰랐어 미안해”
이미 방금 전의 상황에 눈치를 챘지만 직접 듣자 몰려오는 충격 탓에 흔들리는 눈동자는 뚫어져라 표지훈을 바라본다.
“많이 사랑해. 진짜 미안한 게 헤어지라고 한다고 헤어질 만큼 가벼운 마음 아니야. 지금 말해서 미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어색한 식탁에서 어머니는 밥을 반도 먹지 않은 체 모두 버리셨고 표지훈과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이미 식어버린 밥알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아직도 마음 정리가 되지 않으신 건지 20분이나 넘어도 밥그릇 하나를 씻고 있는 물 소리는 끊기질 않는다.
“아들”
물 소리가 끊기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울고 계신 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온다. 목소리가 들리자 표지훈과 나는 느릿느릿 억지로 밥을 먹던 행동을 그만두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시선이 향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몇 시간 동안 아들을 위하려 내린 결과. 표지훈은 의자에서 일어나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고마워” 작게 속삭인다. 무거웠던 마음이 가볍게 느껴지고 긴장이 풀린 탓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면서도 숨겨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후련함과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에 마음이 가볍다.
표지훈과 나는 어색하게 어머니의 앞에 앉아 서로의 눈치를 본다. 한층 편안한 목소리로 어떻게 만났냐는 말에 표지훈은 “18살 때 내가 먼저 고백했어” 아직 어색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시간이 흐르고 표지훈의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되자 표지훈은 평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없음에도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는다. 가부장적인 엄격한 아버지. 보수적이신 아버지. 엄한 교육을 받아 아버지와 친하지도 않았고 심하게 혼난 기억 탓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표지훈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기 전까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11시가 지나자 문이 열리고 표지훈의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표지훈은 문 앞으로 걸어가고 나도 표지훈의 뒤를 따라가 고개를 숙여 인사드렸다. 평소 장난이 많고 웃음기도 많았지만 항상 아버지가 있을 때는 차분해지는 표지훈. 표지훈과 나는 육체적 피곤함에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소파에 앉으시는 아버지의 옆에 선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표지훈은 “저 남자 좋아합니다…. 우지호 형….”말을 듣자 표지훈을 보지도 않은 체 아무런 표정 없이 TV를 바라보신다. “어머니한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고는 자리에 일어서 표지훈의 앞에서 뒷짐을 져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이를 악물고 있는 표지훈의 뺨을 세게 후려친다.
“오늘부터 넌 내 아들 아니다. 나가라”
소파 옆 나란히 서있던 나와 표지훈을 지나쳐 가자 아래로 깐 눈을 그대로 고정시킨 체 아버지 앞으로 가 무릎을 꿇는다. 몇 시간 전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 난 무엇을 해야 할지 소파 옆에 서 몸을 돌린 체 표지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열린 입술 사이로 작게 들리는 떨리는 목소리.
“죄송합니다. 고민 끝에 말씀드린 겁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이런 말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헤어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간 허락해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인정하지 않으시더라도 저희는 평생 함께 있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소파 옆에 멀뚱하게 서있는 내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간다. 근처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작은 초등학교 벤치에 앉아 집에서 빠져나와 손을 놓지 않은 체 편의점으로 가 산 맥주 캔을 손에 쥔 체 말없이 캔을 따 작게 한 모금 마신다. 표지훈은 어둠 속에서 나를 보며 평소처럼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다.
“우리 짐 놔두고 왔어 다시 집 가야 돼”
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12시가 되어있고 특별한 대화가 아닌 평소와 같이 평범한 대화로 시간을 때운다.
“우리 엄마한테도 말씀드리자”
“근데….”
맥주를 다 마신 것인지 힘을 주어 맥주 캔을 구기던 표지훈은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대충 넣고는 차가운 손을 내 손위에 곂쳐 올린다.
“우리 허락받으면 결혼해?”
모든 신경이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죄로 집중되어 있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볼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며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한다. 이미 시간은 1시를 지나 2시를 향해 다가가고 곂쳐 올린 손을 잡고는 벤치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나를 따라서 표지훈도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초등학교 밖을 나간다.
“어디 가?”
“집”
새벽 공기는 차다. 차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길.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오는 차가운 도로. 어두운 밤 차가운 도로를 걷는 우리의 위에서 새하얀 눈이 내린다. 언제 내리나 기대했던 눈이 이제야 내린다. 눈송이가 잡은 손위로 차갑게 떨어지고 닿자마자 무섭게 녹아버리는 눈송이. 잡히지도 않은 체 사라져없어지는 차가운 눈송이. 도로로 내려와 차 하나 오지 않는 조용한 도롯길 제 세상인 양 얼마 오지 않는 눈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빙빙 돌아다닌다. 작년 봄. 이 시간 분홍빛의 연꽃으로 가득 찼던 거리. 서서히 하얗게 덮이기 시작한다.
“눈싸움할래?”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송이에 눈싸움 대결을 신청하는 표지훈. 마냥 천진난만해 보인다. 걸어서 20분 거리를 1시간을 뛰어놀며 집으로 향한다. 서서히 눈이 내리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생각만큼 쌓이지 않은 눈 탓에 표지훈의 바람대로 눈싸움은 하지 못했지만 집으로 향하던 무거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자 내일이면 쌓이기라도 할 것인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이 거리는 새하얀 눈이 얇게 덮여있다. 내일이면 표지훈과 눈싸움을 할 수 있다.
첫눈이라는 설렘에 들떠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린다. 표지훈의 집 앞으로 도착하고 문을 열자 아무런 발도 닿지 않은 마당은 눈이 어느 정도 쌓여있다. 들어가기 전 마당에 쪼그려 앉아 얇게 쌓인 눈을 억지로 모아 주먹만 한 눈사람을 만든다. 맨손으로 만들어 손이 찢어질 듯 얼어버렸지만 첫눈에 대한 설렘에 들떠 눈사람을 만들기에 바쁘다. 오른쪽 구석에 주먹만 한 눈사람을 두 개 만들어 세워놓고는 표지훈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어두운 밤에 플래시를 터트려 사진을 찍는다. 잠시 스친 표지훈은 손도 얼음장처럼 차갑다. 얼어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열쇠로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불은 모두 꺼져 있지만 우리가 걱정되었던 것인지 소파에 앉아 TV를 보시다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현관문 앞으로 마중 나와 “춥지?” 하며 걱정을 해주신다. 표지훈은 붉어진 손으로 폰을 열더니 갤러리로 들어가 방금 만든 주먹만 한 눈사람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한다. 그리곤 표지훈의 방 안으로 들어가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한다.
“시간 남았는데 조금이라도 자고 가”
걱정이 섞인 어머니의 말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랜만에 집으로 내려온 아들의 모습이 그리웠던 건지 한참 동안 표지훈을 바라본다. “아빠랑은 엄마가 얘기해볼게. 신경 쓰지 말고” 표지훈은 말없이 한참 동안이나 어머니를 안아주었다. 어느새 3시가 넘어버린 차가운 새벽. 두껍게 감싸고 있던 옷을 벗으며 내일은 눈이 쌓여있을까 하는 설렘에 표지훈은 몇 번이곤 창문 밖을 보며 얼마나 눈이 쌓여있는지 확인한다. 나는 그 사이 욕실로 가 가볍게 샤워를 하고는 옷을 입고 나와 표지훈의 방으로 들어간다. 한참 전부터 데워놓은 건지 뜨거운 전기장판. 이불속으로 들어가자 차가운 몸이 샤르르 녹는다.
모든 불이 꺼진 늦은 새벽.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손잡자”
깍지를 껴 손을 잡는 표지훈. 그제야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아 잠을 청한다.
표지훈 우지호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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