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이 안좋았어. 그래서 결국 섬으로 이사를 와야했지. 물론 새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더 큰 이유였지만.
계속 집에만 있기는 답답해서 나와 같이 내려온 종대 몰래 바닷가로 갔어.
제방 위에 올라서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밤에 보는 바다는 정말 낮과 다르더라.
뭔가 되게 고요하고 먹먹한데 빨려들 것 같은 느낌.
바다를 한참 바라보는데 어깨에 두르고 있던 숄이 갑자기 바람에 날아가는 게 아니겠어?
내려다보니 제방의 끝에 걸쳐져 있어. 좀 무섭긴 했지만 주워야겠다 싶어서 천천히 내려갔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멈춰서 조심히 손을 뻗었는데 순간 몸이 기우뚱하면서 물에 빠져버렸어.
얼음장 같은 물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어. 몸을 움직였지만 아래로 가라앉기만 했지.
무서웠어. 정말 이대로 죽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어.
환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그리고 그게 점점 가까워져서 나의 손에 닿았던 것 같은데, 난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어.
다시 눈을 떴을 땐 나의 방이었어ㅓ. 눈이 뻑뻑해서 몇번 감았다 뜨니 얼굴을 찌푸린 종대가 보였어.
-OO, 괜찮아?
나는 종대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서히 떠올렸지.
-너, 누가 밤에 혼자 나가래. 찾으러 나갔다 해변에 쓰러져있는 거 보고 놀랐잖아!
종대는 나에게 화를 냈어. 나는 미안하다고 하고는 달력을 보았어. 내가 물에 빠진지 삼일이나 지나있더라.
아마 열이 나서 못깨어났었던 건가봐. 종대가 죽을 가지러 나가고 나는 그날 밤 일을 떠올렸어.
'괜찮아? 정신 차려.'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어. 금빛 머리를 가진 한 아이의 얼굴이. 순수해보이던 큰 눈동자, 그래 분명히 날 구해준 누군가가 있었던 거야.
종대는 줄곧 내 옆에 있었어. 내가 괜찮아 졌는데도 그랬어.
나는 하는 수 없이 종대가 잠든 틈을 타 몰래 집을 빠져나왔어. 저번과 같은 위치에 멍하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바다위로 무언가가 튀어올랐어.
그러는가 싶더니 내 옆으로 무언가가 놓여졌어. 자세히 보니 저번에 내가 주우려했던 숄이야.
숄을 쥐는데 물에 파문이 일더니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본능적으로 날 구해준 아이가 왔다는 걸 알았어.
-저기, 잠깐만!
아이는 내 외침을 들었는지 그 자리에 멈췄어. 나는 궁금해졌어. 왜 아이가 늦은 밤에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지.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안 추워?
내가 묻는데 아이가 천천히 나를 보았어. 달빛에 비친 아이의 얼굴이 온전히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금빛 머리카락은 반짝 빛이 났어.
-죽으면 안돼. 목숨은 소중해.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가려고 했어. 나는 아이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죽으려던게 아니라고, 그냥 실수로 물에 빠진거라고 말하는 것 대신에
다시 뛰어들어버리겠다고 소리쳤어. 아이는 놀랐는지 다시 내쪽으로 헤엄쳐왔어.
-왜 목숨을 함부로 대해?
아이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어.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어.
-나와. 나와서 이야기 하자.
아이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어.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어. 내가 싫은가. 실망스러운 표정이 되자, 아이는 천천히 말했어.
-나는 너와 달라.
-뭐가?
-나는….
아이가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물속으로 들어갔어. 어어. 내가 당황하는데 물 위로 무언가가 올라왔어. 이건…. 그래 분명히 꼬리였어.
동화 인어공주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지느러미. 꿈인가 싶어 눈을 비비는데 아이가 다시 나왔어. 아이는 조금 불안한 얼굴이었어.
-…무서워 할 필요는….
-예쁘다, 너.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 아이의 표정이 변하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종대의 목소리였어. 아이가 금방 물에 숨었어.
-내일 또 올게!
나는 아이에게 외치고는 종대에게 향했어.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밤 바다에 나갔어. 종대에게 사실대로 말하니 종대는 처음에 안믿는 눈치였지만 곧 내가 바다에 가는 걸 허락해주었어.
집에만 있을 때보다 건강이 좀 더 나아진 것 같았거든. 밥도 더 잘 먹고.
아이의 이름은 종인이었어. 아이는 나의 말을 들어주거나 바다 속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어.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어. 마치 꿈을 꾸는 듯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거든.
그리고 아이에게 이따금 조앧가 들려준 것들을, 내가 키우는 꽃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즐거웠어.
-이게 뭐야?
하루는 종인이 바다에서 무언가를 들고 나왔어. 편지가 든 유리병이었어.
사람들이 막 바다에 던지고 그러잖아. 나는 답을 해주었어.
-편지.
-편지?
-응.
-근데 왜 유리병에 담아서 던져?
-멀리 있는 사람한테 전하고 싶을 때나,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을 땐 그렇게 하는거야.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 유리병을 보았어. 나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웃었어.
-종인아.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어. 어둠에 익은 얼굴은 완전하지 않았어. 그리고 난 아이의 몸을 온전하게 낮에 보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혔어.
-응?
-낮에 널 보고 싶어.
-….
-밝을 때 널 보고 너와 함께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 사실 난 내가 아이처럼 인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자유자재로 물을 헤엄치고,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에 반사된 반짝이는 빛들을 바라보고. 거기선 여기처럼 갇혀있지도, 아프지도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치만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어.
나에게는 종대가 있고, 어딘가 살아있을 엄마가 있으니까. 비록 새엄마에게 쫓겨났지만 말야.
-OO아.
아이는 내 이름을 불렀어. 나는 아이를 보았어. 아이의 큰 눈이 서늘하게 아래로 향해있었어.
-사람들 눈에 띄면 우린 다시 만나지 못할거야.
-….
-물론 넌 착하지만, 다른 사람은….
나는 고개를 수그렸어. 아이의 대답이 서운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위험한 것을 오ㅛ구한 내가 바보 같아서였어.
아이는 나의 반응을 오해했는지 당황한 표정이 되었어.
-아, 그게 사람들이 무조건 나쁘단게 아니라, 나도 물론 널 보고 싶지만….
OO아, 가자!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되었는지 종대가 나를 불렀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
-나도 너처럼 자유롭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언뜻 본 아이의 표정이 변해있었어. 나는 나를 재촉하는 종대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어.
-그러니까 네가 몰래 보낸 편지 때문에 이 사단이 난게 아니니!
새엄마는 나를 몰아부쳤어. 실은 종대를 통해서 엄마를 찾아달라는 편지를 보냈거든.
이때껏 엄마가 죽은 줄만 알았던 아빠가 그 편지를 읽었나봐.
나는 새엄마를 노려보았어.
-엄마는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일 뿐….
순간,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이 번쩍했어. 아줌마! 종대의 외침이 들리고 차가운 목소리가 돌아왔어.
-먹여주고 재워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네 엄마꼴 되기 싫으면.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 엄마가 어떻게 됐냐고 묻기도 전에 새엄마가 말했어.
-아마 넌 네 엄마를 다신 못볼거야.
새엄마가 나가고 종대가 나를 일으켰어. 몸이 떨렸어. 눈물이 터져나와서 종대의 품에 안겨 울었어.
곧 열이나고 눈앞이 어지러워졌고, 종대가 다급하게 의사를 부르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어.
긴 시간을 누워있어야 했어.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두려움에 떨다가도 아이를 생각했어.
아이가 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는 나에게 종대는 굳은 얼굴을 해보였어.
며칠이 지나고 열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종대는 나를 놓아주었어.
나는 고답로 바다로 달려갔지만, 아이는 없었어.
그리고 나는 곧 내가 늘 앉아잇던 자리 밑에 놓인 유리병을 보았어.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종이가 들어있었어.
「어딨어. 또 아픈거야?」
난 주위를 둘러보았어. 이렇게 생긴 유리병이 몇개나 더 있었어.
「낮에 보지 못해서 서운해? 혹시 내가 낮에 올까 기다려?」
「OO아, 이제 나 안봐? 아님 설마….」
「아니지? 또 나쁜 생각한 거 아니지?」
「OO아, 제발 답을 줘. 정말 너.. 나쁜 생각한거야?」
나는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터져나오려는 울음에 입을 틀어막았어.
아이가 나를 이렇게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리고 마지막 유리병에 있는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유리병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어.
「그렇다면 나도 네 곁으로 갈게.」
=
상 하?
아니면 상중하?
고민중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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