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의 일기]
오늘, 그 아이를 처음 보았다
형들에게 한바탕 시달리고 난 후에 답답해져서
바닷가로 나간 거였는데, 아이는 바다에 풍덩, 하고 빠졌다
구하고 나서 보니, 아이는 맑은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데 아이는 물에 빠져 자신의 생명을 버리려 했다
왜 그런걸까.. 혹시 아이도 나처럼 외로운 걸까?
누나들은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거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첩의 자식이 본가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이가 또 보자고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내일도 아이를 또… 볼 수 있을까?
인간은 무조건 무섭다고, 우리와 적이라고 했던 유모의 말은 틀렸던 것 같다
아이는 너무 착하다
나긋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렇지만 몸이 약한 것 같다
오늘도 기침을 스무번도 넘게 했다
그런데도 매번 나에게 춥지 않느냐고 묻는다 정작 추워보이는 건 그 아인데….
아이가 해주는 이야기가 재밌다
아이는 말할 때마다 맑고 투명한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그 눈을 볼때면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간질거리기도 하고, 좀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하다
아…, 이상해. 내일은 몸에 좋은 약을 갖다 줘야겠다
아이가 나를 낮에 보고 싶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나도 늘 춥고 어두운 밤에 아이를 만나는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 듸지 않으려면, 형들이나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내가 아이를 만난다는 게 알려진다면 아마 나는 추방당할 것이다
다신 인어의 세상에 고개를 내밀 수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안된다고 했더니 아이가 지었던 실망한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나처럼 자유롭고 싶다던, 아이의 말도.
아이는 때때로 너무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보인다
그 예쁜 눈이 슬퍼보일때 어딘가가 따끔거리는 것 같다
아이는 금방 가버렸다
아이에게 아무런 일도 없어야 할텐데….
아이가 몇일 째 바다에 나오지 않는다.
아픈걸가? 아니면….
자꾸 아이가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자유롭고 싶다는, 물에 뛰어들어버리겠다는.
아이가, 나쁜 생각을 한게 아니어야 할텐데….
걱정된다.
아이가 보고 싶다. 너무, 보고싶다
혹시 아이가 낮에 나왔을까 아이를 만나러 가는데 큰 형한테 들켜버렸다
누나는 나를 변호하려 했지만 이미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린 뒤였다
아주 오래전 인어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멸종당할 위기에 처했고
그 후로 인어는 사람과의 연을 끊었다는 말을 형은 다섯번도 넘게했다
혹시 형이 아이에게 해꼬지를 할까, 아이의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형은
아이의 이야기를 하며 나를 조롱했다
아이는 나에게 나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말했지만, 자유롭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나를 추방시켰다
나는 아이처럼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아이의 곁으로 갈 것이다
나의 심장을 찌르려는 순간 마녀가 찾아왔다
마녀는 나에게 다가와 날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아이는 지금 몹시 아프다고, 날 찾고 있다고.
아픈 아이가 걱정되었다
나는 내가 가진것을 내어주기로 마녀와 계약을 했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에게 갈 수 있다면
아이와 생활하는 것이 즐겁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이것 저것을 설명해주고, 나를 즐겁게 한다
아이가 이따금 검게 변한 내 머리를 보고 속상해 하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아이가 나 때문에 마음 아파 하는 것이 싫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아이의 친구인 종대가 잠든 아이를 확인하고 나를 불렀다
아이에게는 새엄마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새엄마는 아이의 엄마를 밀어냈다고.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라 했다.
이제야 아이의 서늘함이, 이따금 짓는 슬픈 표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와 반대의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난 아이의 외로움을,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악몽을 꾸는 듯 뒤척이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직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지만
앞으론 매일 잘자라고, 인사를 해주어야겠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종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대는 아이가 이사오기전에 발레 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발레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춤이란다
그럼 춤을 추면 아이가 기뻐할 것 같냐고 물었다
종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나를 놀렸다 그렇게 좋냐, 하며
종대가 구해준 비디오 테잎과 책을 보며
서서히 춤을 익혔다
이제 막 완전히 걸을 수 있게 된 두 다리로
아이를 기쁘게 할 춤을 출 생각을 하니까 조금 두근 거린다
사람이어도, 빛나지 않아도 아이가 나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
아이의 새엄마가 집에 왔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 나도 모르게
아이와 입맞추려했는데,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때, 아이의 새엄마가 왔다
아이는 작고 연약한 동물처럼 떨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화에
아이를 그냥 끌어안고 말았다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아이를 지킬것이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니까.
마녀는 나에게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탐나는 것이 없다고, 그래서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와 아이의 엄마만 안전하게 해준다면, 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마녀는 나에게 어리석다했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된 나는, 가진 것이 없으니까.
마녀는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시간동안이라도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원없이 보고 싶다
다시, 아이의 눈이 반짝일 수 있기를.
아이가, 오늘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보드라운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이에게 보여주려 준비했던 춤을 오늘에서야 보여 줄 수 있었다
아이는 내 춤을 보고 울었다
왜였을까
아이가 우는 것을 보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는 분명 날 사랑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아무래도 아이를 보고 와야겠다
잠든 아이를 밤새 안고 옆에 있고 싶다
나도 아이처럼,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다….
[현재]
-어머니, 오셨어요.
종대가 인사를 하고 안에 있던 종인이 나와 꾸벅 인사를 했다
중년의 여자는 그런 종인을 아들이라고 불렀다
-아들, 밥은 먹었어?
종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흐뭇한 듯 웃더니
종인을 끌어 안았다
-아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종대는 그런 여자를 보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저도 아들 취급해주신다면서요
-그럼, 종대도 우리 아들이지.
여자가 쾌활하게 말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조용한 집을 바라보다 조금 흐릿하게
그리고 조금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집이 텅 빈 것 같다
-….
순간 조금 조용해지더니 이내, 종대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식사 아직이죠? 이쪽으로 오세요
-어, 그래.
종인은 종대와 여자가 식당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가볍게 숨을 내뱉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방의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림을 종인은 멍하니 바라봤다
종인을 그린 그림
종인이 사랑한 여자가 그린
종인의 그림
종인이 손가락으로 그림 위를 살짝 쓸었다
붓터치가 느껴졌다
종인은 눈을 감고 다시 그림을 쓸었다
오돌토돌한 그림의 감촉이 느껴지고
종인은 그 감각을 느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
종인이 뒤로 돌아 문에 다가가 천천히 문을 열자
서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미…안.
여자아이의 옷에 잔뜩 묻어있는 치약에
종인은 여자아이 곁으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욕실로 향했다
물을 틀어 여자아이의 옷에 묻은 치약을 닦는데
푹 수그린 여자아이의 고개가 들어온다
-별로 안묻었는데.
종인이 말했다
-…그래도….
-이제 다 됐다
종인이 싱긋 웃어보이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여자아이의 칫솔에 치약을 짜주었다
-…종인아
-응?
-나…지금 괜찮아?
여자아이의 물음에 종인은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응. 너무 예뻐.
어머니가 새로 사온 옷으로 갈아입은 여자아이는 리본을 잘못 묶었다
-너무 예쁘다
종인은 그런 여자아이를 껴안아 말없이
여자아이의 등에 잘못 묶인 리본을 조심스레 다시 묶었다
-간지러워
여자아이는 종인이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조금 웃으며 몸을 꼬았다
-너무 예뻐서 오늘은 산책 나가야겠다
-산책! 나 바다 가고 싶어.
-그래, 가자. 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종인의 어깨에 기대 바다소리를 듣던 여자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가 되었어도 괜찮아?
조금 무거운 물음에 종인은 멈칫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응, 이라 답했다
-예전 같지 않아도 괜찮아?
-응.
-…눈이 보이지 않아도,
-….
-그래서 그림을 다시 못그려도
-….
-…괜찮아?
종인은 여자아이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여자아이를 보았다
여자아이의 혼탁한 눈은 무엇도 향하지 않고 있지만,
분명히 종인을 담고 있었다
살짝 흘러내린 원피스 때문에 드러난 가슴의 흉터를
종인은 옷을 끌어 올려 가리면서
천천히 여자아이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괜찮아.
-….
-내 사랑이 널 지킬테니까.
[과거]
-지켜준다면서요.
지켜주기로 했잖아요.
종인이 괴로운 듯 말하자 마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럼 목숨은 남겨줄게, 그대신
-….
-네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아이의 눈을 가져가지.
-….
-그래도 넌 여자아이를 사랑할텐가?
물론. 내 모든 것을 걸어서.
-
끝
이제 진짜 끝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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