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셰프 민윤기 철벽 뚫기
나는 오늘도 새벽 6시부터 셰프의 노예가 되었다. 나는 여자고! 셰프는 남자인데! 짐을 내가 다 든다니....... 6시부터 8시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장을 보러 다니면서 여태 나를 노예로 부려 먹는 동안에 그 흔한 아침밥 하나 사 주지 않았다. 내가 원래 아침밥을 안 먹어서 다행이지 아침밥을 챙기는 편이었으면 나는 당장 이 레스토랑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나오는 게 얼마나 서러운데.
"셰프, 내일부터 김태형이랑 오시면 안 돼요?"
"어, 안 돼."
"그럼 저희도 주문해서 배달로 받으면 안 돼요?"
"어, 안 돼."
뭘 다 안 된대. 인생을 부정적으로 사나.
"아, 왜요!"
"너 지금 나한테 짜증 냈냐?"
하하, 설마요. 제가 감히 셰프님께 짜증을 내겠습니까.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셰프님을 못 본 척하며 앞서 걸었다. 진짜 이럴 때마다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니까. 얼굴 잘생기고 요리 잘하면 뭐 하냐고! 무서워 죽겠는데. 오늘따라 짐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건지 모르겠다.
낑낑대며 앞서 걷는 내가 조금은 불쌍해 보였는지 셰프님이 내 손에 있는 짐을 빼앗아 갔다. 예의상 제가 들어도 되는데...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됐어, 또 오기 싫다는 얘기 할까 봐 오늘만 들어 주는 거야."
그 말은 앞으로도 저를 노예로 계속 부리시겠다는 말씀...? 속 시원히 욕 한 번 하고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밤새 그 다음 날 아침에 가서는 꼭 그만 둬야지 하면서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폰 뱅킹을 확인하면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고이 접어야 했다.
그렇게 민윤기의 노예와 주방 보조 아닌 보조로 버티기를 일주일. 드디어 주방 보조가 새로 뽑혔다. 나 혼자 여자여서 이번에 보조는 여자이길 바랐는데 또 남자란다. 왜! 내가 오프인 날 면접을 보고 뽑냐고! 나도 같이 면접 보고 싶었는데...
"아, 저 홍일점 탈출하고 싶다니까요!"
"이름아(야), 우리 주방에는 여자가 없어. 그 말은 뭐겠어? 홍일점이 없다는 뜻이지."
"김태형, 오늘 죽고 싶냐? 인생이 지루하고 그래?"
"죄송합니다, 누님. 제 입을 닫겠습니다."
내가 언젠가 김태형 저 입을 꼬매고 죽을 거다. 아니 어떻게 가만히 있지를 않지? 처음에 들어왔을 때 김태형 첫인상이 꽤 날카로웠고 목소리도 낮아서 낯도 가리고 말수도 없는 줄 알았다. 수 셰프가 제일 시끄러운 줄 알았더니...... 수 셰프는 그냥 나를 빨리 적응 시키기 위해 말을 걸었던 것이었고 제일 시끄러운 건 김태형과 박지민이었다. 아니 지민이는 착하니까 제외. 김태형이 제일 시끄럽다. 내가 셰프님한테 혼날 때마다 깐죽거리는 것은 기본, 그냥 내 일이라면 자기 일인 마냥 오지랖을 부렸다. 그 덕분에 제일 먼저 친해지긴 했지만, 정말 가끔은 살인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 김태형과 죽이네 마네 하는 동안 아홉 시가 되었고 주방 보조가 오기로 한 시간이 되었다. 딱 아홉 시 반이 되자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키는 김태형이랑 비슷한데 얼굴은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아기네 아기. 분유 냄새 나게 생겼어.
"오늘부터 첫 출근을 하게 된 전정국입니다. 나이는 23살이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이름 (이) 이제 안 힘들겠네?"
역시 우리 주방에서 나 챙겨 주는 건 수 셰프 하나라니까. 수 셰프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그만 두었을지도 모른다. 수 셰프, 사랑합니다.
"우리 정국이 잘생겼다!!!!!!"
"나를 이어 우리 가게 꽃미남이 되겠어."
분유 냄새 나게 생겼는데 23살이라니... 나랑 겨우 2살차이다. 2살. 우리 주방에서는 볼 수 없었던 꽃미모다. 설거지통 탈출인 것도 좋았지만 매일마다 눈호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정국이는 내 옆에 있는 설거통 앞에 섰고, 나에게 잘 부탁한다며 옆에서 많이 도와달라고 했다. 당연히 도와야지 저런 꽃미모를 가지고 있는데.
정국이는 지민이 고향 동생이라고 했다. 같이 학교 다닐 때 춤도 같이 추고 요리도 했다나. 지민이와 정국이는 이미 친한 사이였고, 김태형과 나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다들 조용히 하고 오픈 준비하자. 야, 호석아 오늘 예약 건수 좀 말해 봐."
"오늘 점심에는 3팀 있고, 저녁에는 5팀 있습니다."
"오늘도 정신 없을 것 같고, 막내도 왔으니까 지민이가 호석이 커버 좀 치고, #성이름 너는 태형이 커버 쳐."
"예, 솊!"
폭풍 같은 런치 타임이 지나갔다. 예약 팀도 예약 팀이었지만 일반 손님들이 평소보다 많았기 때문에 배로는 더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점심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누나 올해 25살이라고요?"
"슬프니까 조용히 좀 해 줄래...?"
"아니, 놀라서 그렇죠. 처음에 저랑 동갑인 줄 알았어요."
"사회 생활 좀 할 줄 아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센스까지 넘쳐."
우리의 꽃막내 정국이는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사회 생활도 매우 잘했다. 25살로 안 보인다니... 나 정말 울 뻔했다. 왜냐면 내가 김태형과 박지민보다 무려 한 살이나 어린데 나는데 처음에 내가 누나인 줄 알고 김태형과 박지민이 존댓말을 썼다. 그게 익숙해져 지금은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거고.
주방에는 셰프님과 나, 정국이만 있었는데 우리 대화가 끝나자 나를 또 무섭게 쳐다보는 셰프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못 느낀 척 뒤뜰로 나가려는데 셰프님이 나를 불렀다.
"야, 성이름."
"...네?"
"오늘 저녁 마감 네가 해."
"예? 왜요? 오늘 수 셰프 차례..."
"걔 오늘 약속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네가 해."
예예, 갑질 한 번 장난 없네. 어제도 마감하고 들어갔는데 또 나라니. 오늘 김태형이랑 오랜만에 맥주 좀 마시나 했더니만... 이렇게 내 약속은 또 날라가네~ 저 갑질에 내가 날린 약속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그냥 자기 기분이 별로일 때마다 나를 부려먹는 듯 싶었다.
난 오늘도 마음속으로 외친다.
민윤기 나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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