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아프다고 말했어야지!"
승관의 볼 위로 눈물이 후두둑 쏟아진다,
운다.
나 때문에,
나의 세븐틴이, 나때문에 운다.
[세븐틴/홍일점]
이터널 선샤인 (5/5)
자리에 주저앉은 승철이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날 업고 얼마나 달려온건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보이는 큰 대학병원 하나.
그리고 내 옆에서 무릎을 잡곤 헥헥거리는 멤버들.
바보야, 이 바보들아.
어쩌자고 이 먼데까지 온거야.
+
"김세봉님, 들어오실게요"
간호사 언니의 청량한 목소리,
그리고 병원 로비에 앉아 훌쩍이고 있는 13명의 남자들.
"쓰러지셨다구요?"
"예"
"음, 조명이 깜빡일 때 느껴지는 이명.."
"이명이 들리면 몸이 휘청해요"
"음......먼저 MRI 찍어볼게요"
"예"
+
"여기 보이시죠? 이 부분? 여기가 반고리관이라는 부분이예요,
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기면 어지럼증이 생기는데,
보시다시피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당연히 그렇겠지.
이건 내가 아닌 김 가온의 몸이니까.
".....그..그럼 왜 쓰러진거죠?"
"아마, 강도 높은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 부족인 것 같아요."
승철의 떨리는 목소리,
"앞으로 밥 꼬박꼬박 챙겨먹고, 일주일 정도는 집에서 푹 쉬도록 해요"
"예"
나 쉴 필요 없는데,
나, 나 말이예요. 그냥, 멤버들하고 있는거 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김세봉!! 밥 먹을거니까 자지 마라!"
바깥에서 들리는 소란스런 소음
그리고 그 소리를 뚫고 들리는 김민규의 목소리.
똑똑, 가볍게 들리는 두번의 노크
"세봉아, 나 들어간다?"
승철이다.
얼마나 운 건지 퉁퉁 부은 승철의 눈
"오빠 울었어?"
"아냐, 안 울었어"
안 울긴, 속일 사람을 속이지.
"......................"
"몸은 좀 괜찮아?"
"응. 괜찮아"
"세봉아, 너 앞으로 일주일 정도 활동 중단할거야."
"...............그래?"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다.
우리가 숙소로 돌아온 직후, 승철은 매니저와 회의실로 불려갔고,
그곳에서 나에 대해 긴 토론을 했겠지.
퀭한 승철의 눈이 내 눈에 비쳤다.
아프지마. 승철아, 나 떄문에 상처입지마.
"세봉아, 난 네가 우리 멤버여서 너무 기뻐,
너랑 같이 노래부르고 춤 추는게 너무 행복해"
승철의 진심이 담긴 말.
있잖아 승철아, 나 너무 고마운데.
너무 고마워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무 것도 없어.
네가 너무 좋아서. 세븐틴이 너무 좋아서.
다시금 승철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
"......그러니까, 그러니까..아프지마"
+
내 손을 잡고 엉엉 울던 승철을 달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울다 지쳐 잠에 든 승철.
내 침대 위에 누워 몸을 구기고 있는 승철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승철아, 아니 승철 오빠. 미안, 이런 동생이라서 미안.
아니, 김세봉이라서 미안.
승철의 옆에 걸터앉아 곤히 자고 있는 승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예쁘다. 승철아, 너 너무 예뻐.
승철의 얼굴을 한참 보았을까, 지잉- 하고 울리는 휴대전화.
그리고 전원버튼을 누르니 보이는,
*우리 예쁜 어머님* (37)
*우리 아버지* (9)
*우리 집* (3)
수많은 부재중 전화들.
그리고 상단바 위로 보이는 수많은,
세봉 언니 괜찮아요?
언니ㅠㅠ 나 오늘 무대 보다가 진짜 울었어요ㅠㅠㅠ
언니 진짜 괜찮은거 맞죠ㅠㅠ
세봉아, 우린 네가 아프지 않고
이전처럼 건강하고, 밝고 명랑하기만 하면 돼.
너 지금도 충분히 예뻐. 알지?
팬, 아니 사람들의 걱정.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
그리고 인터넷 앱을 실행하자 가장 먼저 보이는,
1.가온 new
2. 세븐틴 new
'
'
나와 세븐틴.
그리고, 그 이름들을 보자마자 액정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 두 방울,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승철이 깨지 않게, 밖에서 날 위해 요리하고 있을 멤버들이 듣지 못하게.
+
"세봉아! 밥 먹자!"
울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나보다,
방 문 밖으로 들리는 권순영의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승철,
"어, 나갈게-"
아, 큰일났다.
목이 잠겨버렸어.
이러면, 내가 운걸 알텐데.
그럼 멤버들이 속상해할텐데.
"큼. 크흠-"
목을 잡고 한참을 큼큼대자 뒤에서 날 짧게 안아오는 승철.
".....어...언제 일어났어?"
"목 안 풀어도 돼. 애들 그만큼 눈치 없지 않아"
단호하지만 다정한.
".........그럼, 알지"
"얼른 나가자, 밥 먹어야지. 우리 세봉이"
"그럼"
+
승철과 방 문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아마도, 상 위에 놓인 저 갈비찜은 민규의 솜씨일테고,
저 콩나물 국은 석민이,
그리고 까맣게 탄 저 동그랑땡은 순영의 짓이겠지.
"먹자 먹자!!!"
우리가 나오기 만을 기다렸던 건지,
숟가락을 들고 낄낄대던 12명의 소년들이
음식을 허겁지겁 퍼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조용해져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울릴뿐이다.
+
배불렀던 저녁식사 이후,
멤버들의 대부분은 연습을 하러 연습실로 떠났고,
작사를 하겠다는 핑계로 지훈만이 내 옆에 있어주었다.
치, 가도 되는데.
"어지러운건 좀 괜찮아?"
작사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무심하게 묻는 지훈.
".......응"
그리고 이내 찾아온 정적,
노트위에 글씨를 써내려가는 지훈의 연필 소리만이 귀를 기분좋게 간지럽힌다.
"세봉아, 넌 평행세계에 대해 믿어?"
"평행세계?"
"응. 저번에 니가 엘리베이터로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냐고 물었잖아.
그거 듣고 사실 좀 찾아봤는데, 평행세계라는게 있을지도 모른데."
"......................"
"예를 들면, 뭐 다른 세계에서는 세븐틴이라는 그룹이 혼성이 아니라 남성 그룹이고,
넌 그냥 우리 팬일 수도 있고. 뭐 그런거?"
지훈의 낭랑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꽃힌다.
이젠, 얘기해야되는걸까?
"오빠"
"......응?"
"평행세계, 어쩌면 있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바쁘게 움직이던 지훈의 손이 툭, 하고 멈췄다.
그리고 이내 흔들리는 지훈의 눈동자
이젠 이야기해야해. 나의 세계로 돌아가야해.
세븐틴이 나로인해 힘들지 않은
"미친소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사실 나 이 세계 사람이 아냐"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툭, 하고 건드리는 지훈의 손가락
"뭐래는거야 얘가- 장난하지마"
"어쩌다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세계에선 세븐틴이 남성 그룹이고, 난 그냥 공부에 찌들어사는 세븐틴 팬이야.
난 평범한 아침처럼, 그래, 그렇게 학교에 가다가 친구가 보낸 카톡을 봤고,
엘리베이터로 다른 세계에 이동할 수 있다길래 그냥 그걸 해봤어
실패해도 상관없었어. 어차피 살고 싶지 않았거든.
어차피 이걸 하나 안하나 똑같이 힘든데,"
"......................."
진지해진 지훈의 눈빛
"그러니까 오빠. 아니, 지훈아. 난 가온이가 아니야.
어쩌면,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닐 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김세봉. 장난 치지마.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는거 아냐"
빠르게 뱉어내는 지훈의 말에 가려,
지훈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에 번지는 글씨들.
"니 말이 진짜면, 우리 가온이는 어딨는데.
여깄어, 우리 가온이 여기있다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는 지훈의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 비친 내 모습,
"그런 거짓말 하지마. 몰카지? 재미없어"
애써 웃어넘기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잖아 지훈아.
미안, 이런 나라서 미안.
"........그럼 돌아갈 수는 있어? 너?"
".....왔던 것처럼,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면.."
".........됐어, 안 돼. 만약에. 그래,
이 세계가 가짜고, 넌 가온이가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왔어도
난 너 못 보내. 넌........"
"..............."
".......세봉아"
"응?"
"....장난 안 치고 이거 다 진짜야?"
".................응...."
"네가 사는 세계에도 내가 있어? 우리, 세븐틴이 있어?"
"...........응"
"그럼, 돌아가. 그 세계의 내가 널 기억할게.
그 세계에 있는 우리가, 세븐틴이 널 기억할게"
"............지훈아.."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 세계가 가짜던,
평행세계가 진짜 있던 난 아무 신경 안쓸래,
네가 돌아가고, 거기서 행복하다면 됬어.
이 세계의 너랑 그 세계의 너는 같은 사람이잖아.
그 세계의 나랑 내가 같은 것 처럼."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지훈.
네 목소리가 꽤나 담담하다.
담담한데, 툭 치면 쓰러질듯 위태로워.
"가자, 엘리베이터로. 네가 원래 사는 곳으로"
+
지훈의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지훈아, 널. 널 내 두 눈에 담고 잊지 않아야하는데,
그래야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잘 보이지가 않아
'딩동, 3층입니다'
귓가에 들리는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음성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따뜻한 지훈의 품
"내가 널 기억할거야. 여기의 내가, 세븐틴이.
잘가, 잘가 세봉아. 아니, 가온아"
닫히는 문,
그 사이로 보이는 웃으며 손을 흔드는 지훈.
안녕, 세븐틴.
안녕, 나의 행복.
+
코를 찌르는 약 냄새,
귓가에 울리는 '만세'
힘겹게 눈을 뜨자 보이는.
엄마다.
우리 엄마.
".......엄마?"
"세봉아!! 선생님!! 여기 세봉이요!!"
엄마의 목소리에 의사선생님 한 분이 병실로 들어오셨고,
내 상태를 한참동안 체크하시더니,
내 머리에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런 장난을 치면 어떡해요. 엘리베이터에서"
".......네?"
"거식증 있었다면서. 거식증 때문에 저혈압이 생겼어요.
근데 그런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게다가 한번에 그렇게 많은 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당연히 쓰러지지"
거식증으로 인한 저혈압, 그리고 그 저혈압으로 인한 졸도.
그게 내가 세븐틴을 만나고, 가온이 된 이유였다.
지훈아 미안해. 네가, 우리가 있던 거긴 가짜였어.
내가 만들어낸,
정말 고마웠어, 날 업고 그 멀리까지 달려준것도,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것도,
같이 춤 연습해준것도,
그리고. 내 말을 믿어준것도.
이젠, 안녕
안녕 나의 세븐틴.
bonheur |
"Say The Name! Seventeen! 안녕하세요, 세븐틴입니다! 열심히하겠습니다!"
우렁찬 13남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잔뜩 곤두선 신경
그 일이 있은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그 이후로 난 지훈과, 세븐틴과 약속했던걸 지키기 위해 부던히 노력을 했더랬다.
음식도 꾸준히 먹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전처럼 우울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난, 날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싶었으니까. 그때, 그들이 날 사랑하고 아껴준 것 처럼.
그리고, 난 내 세계의 세븐틴 앞에 서있다.
"안녕하세요"
날보고 방긋, 웃는 지훈.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 한결같이 예쁘구나.
"넘어가실게요"
사인하는 지훈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보니, 다음 멤버로 넘어가야하는 시간이 왔다.
지훈아, 나 너랑 한마디도 못 나눴어도. 그래도, 나 너무 행복한거 있지,
지훈과 인사하곤 사인받은 종이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쓰여진,
To. 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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