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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그때 널 사랑했다면,
지금의 너와 난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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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널 처음본건, 아마.
"엄마. 나 석민이랑 놀기시러.."
"왜? 왜 내가 시른데?"
"너 맨날 나 놀리자나! 너 왜 그래애!"
"재밌으니까!"
"난 하-나도 안 재미써!!"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짧다면 짧았고, 길었다면 길었을 17년의 인생동안,
슬프나, 기쁘나 넌 항상 나와 함께였고.
뭐, 그래서 서로를 친구이상으로 보게되는게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세봉아"
"응?"
"만약에, 만약에 말야"
"응"
"내가, 널 좋아한다면 어떨것같아?"
"니가? 나를? 미쳤냐? 야, 꺼져"
그리고 장난스럽게 막아버린 너의 진심.
그때, 왜 난 너의 흔들리는 눈동자보다 그 안에 비친 나에 더 집중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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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속의 단비같은 주말,
그리고. 늘상 반복되는,
"야, 김세봉 일어나"
"으으........"
"야, 어머님이 감자전 부쳐주시고 가셨다고. 눅눅해지면 맛없단 말야!"
"아, 언제는 우리 엄마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그땐 너랑 결혼할 생각했었으니까 잘 보일려고 그랬고."
".......잠이 덜 깼지 아주"
그리고, 이젠 지운건지, 묻어버린건지
나를 좋아했던 마음들을 "예전"이라고 치부하는 너.
근데 있잖아, 네 마음이 떠났는데, 왜 내 마음은 너에게 달려가는걸까?
"빨리 얼굴 닦고 나와, 나 못생긴 애랑 밥 안 먹어"
"나도 못생긴 애랑 밥 안먹거든? 나가"
"니가 나 내쫓아도 나 니네집 비밀번호 알아서 괜찮아"
"지랄, 아, 오늘 바꿔야겠네"
"어차피 어머님이 나한테 알려주실텐데 뭐.
너희 어머님이 나 완전 사랑하시잖아"
"응 꺼져;;"
늘 그랬듯 투닥거리는.
"아, 내가 뭍히고 먹지 말랬지"
감자전을 집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입가를 닦아주는 너,
그리고 사소한 행동에 설레는 나.
석민아, 예전의 너도 이랬을까?
툴툴거리며 눈을 맞춰오는 네 눈동자에 비친 나보다,
이젠 날 바라보는 네 눈빛이 더 예뻐.
근데,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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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그래? 말수가 왜 이렇게 없냐?"
어깨를 툭툭 쳐대며 물어오는 이 개새끼, 아니 남자애는
내 짝꿍 부승관이다.
"내가 말수가 없건 말건- 남이사"
"남이사가 아니거든? 너때문에 내가 맨날 이석민한테 혼나잖아"
"뭐라는거야"
"맨날 이석민이 나 때문에 너 말수 없어진거라고 그런다고
진짜 성가셔죽겠어!"
"응"
이석민이, 내 걱정을 하고다니나보다.
치, 지때문인데.
눈치없는 새끼,
아, 방금 그 말 취소.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 비긴걸로 하자. 석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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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부승관한테 왜 그런말 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늘 걷는, 물에 살짝 젖은 촉촉한 아스팔트 길
".....무슨 말?"
"왜 부승관한테 잔소리했냐고, 애가 막 투덜거리잖아-"
"............내 친구한테 내가 잔소리도 못하냐?"
"너는 밥 먹을때만 보겠지만 난 아니라서"
"..................."
갑자기 멈춰선 이석민, 그에 저절로 멈추는 내 발걸음.
이석민 주위를 맴도는 냉기,
그리고,
"ㄴ.......너 부승관 좋아하냐?"
떨리는 이석민의 목소리.
그리고 더 떨리는 내 앙다문 입술.
"ㅁ....무..뭐?"
".......부승관 좋아하냐고 물었어"
그리고, 내 양 팔을 붙잡곤 눈을 맞춰오는,
네 눈에 비친 당황스러운 표정의 나,
그리고 촉촉해진 이석민의 눈가.
"....너 울어?"
"부승관 좋아하냐고 묻잖아!!!"
나를 향해 소리지르는 이석민,
그에 움츠러드는 몸,
이석민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줄기.
".........아..아니?"
내 음성에 붙잡고 있던 손을 떨구는 너.
갑자기 껴안아오는,
그리고 나즈막히 속삭이는 네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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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세봉!!!!!!일어나!! 어머님이 찜닭해주셨는데 완전 맛있다고!!!"
"아 시끄러- 니네 집 가라고"
"시른데~~"
"아 왜 저래;;"
"우와~ 어머님!! 너무 맛있어요!!"
"진짜? 어유~ 우리 석민이 같은 사위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핳핳하, 아녜요 어머님, 하ㅏ하핳"
바깥에서 들리는 이석민과 엄마의 대화소리.
씨, 또 나만 빼놓고.
"김세봉 기상했습니다"
"세봉아, 나 여기서 살까봐"
"응 저리가"
"어머님!!"
"야, 김세봉! 너 왜 우리 사위 괴롭혀!"
"사위?"
그리고 생글생글 웃어대는 이석민.
내가 졌다,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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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잖아."
"ㅇ..왜 그래"
".............."
아무말도 하지 않고 품속으로 파고드는 이석민.
아, 이런말 하면 변태같은 거 아는데,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
이석민이 날 너무 꼭 껴안아서,
이석민의 숨소리가 귓가에 멤돈다.
간질간질한 이 기분.
"세봉아"
귓가에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ㅇ.....응?"
"우리 사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