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시끄러. 웅웅대는 커다란 사운드에 골이 띵하게 울려왔다. 이런데는 왜 오자고 해서. 입시도 마무리되고 방학도 한 터라 한가로이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던 와중, 친구년에게 전화가 와 힙합 공연 가지 않을래? 물어오는 것이었다. 원체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됐다고 했지만 거머리 마냥 끈질긴 꼬드김에 결국에는 오케이를 해버렸다. 누구를 탓하겠수. 다 내 탓이지. 그냥 아프다고 하고 쨀걸.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와 달리 배수지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입장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 방방 뛰어대고 있다.
"야. 오늘 라인업 대박. 대박. 박찬열도 나온다."
박찬열? 힙합에는 문외한이기에 익숙치 않은 이름을 되묻자 배수지가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훠이 훠이. 입에 파리 들어갈라. 살포시 입을 닫아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조잘대기 시작한다. 박찬열이 누구냐면, 눈부신 꽃미모에 허스키한 보이스, 화려한 랩핑 모든걸 갖춘 그야말로 홍대 전설의 레전드..
배수지의 하이퍼한 목소리가 채 멈추기도 전에 클럽 앞쪽에서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씨방 늦었어!! 찰진 욕설과 동시에 배수지의 손이 내 손목을 낚아 챘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악력에 이끌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 마이. 스테이지 바로 앞이다. 고 년 참, 힘 한 번 좋네. 그나저나 적당히 빠지기는 글렀다 이제. 쯧 혀를 차며 결국 스테이지를 붙잡았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떠밀려가며 처음 들어보는 노래들의 후렴구를 따라부른 지 얼마나 됐을까. 한참을 이어진 공연에도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는 기색이었다. 공연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해 갔고, 뒤에서 점점 거세게 밀어대는 사람들에 의해 딱 압사당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직전, 무대가 암전되며 낮은 목소리가 클럽 안에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밝혀진 조명 아래 커다란 키의 누군가가 서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순간 남자가 모자를 휙 돌려 썼다. 또렷하게 잘생겼지만 어딘가 앳된 얼굴이 조명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다부진 팔에서 뻗어나온 손이 마이크를 쥐고 있었고, 기다란 목선을 따라 올라가자 작고 동그란 얼굴이 있었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고 오똑한 코가 반듯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마주친 시선이 한동안 허공에 머물렀다. 분명했다. 남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야, 배수지. 옆에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수지를 쿡쿡 찔렀다.
"저기 저 남자 누구야?"
"박찬열!"
박찬열. 커다란 음악 소리,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사람들의 함성소리. 그 위로 또렷이 들려온 세 글자가 귓가에 선명히 박혔다. 박찬열. 한참을 입 안에 그 이름을 되뇌어보아도 어지러운 머리 속이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확실한 건 단 한 가지였다. 박찬열이, 나를, 보고 있었다.
비트 위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완급조절을 하며 흐르는 낮은 목소리에 그저 멍하니 박찬열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뜬금 없이 내 쪽으로 다가온 찬열이 사람들에게 뒤로 가라는 듯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뛰어 내립니다! 안 다치시게들 뒤로 가주세요!"
굵은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외친 말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곧 내 옆으로 물꼬가 트이듯 적당한 크기의 반원이 생겼다. 박찬열이 서 있던 절묘한 위치 덕에 나와 배수지는 원의 지름 양 끝, 즉 박찬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박찬열이 일부러 그 자리를 골랐던 건 아닐까. 왜? 아직도 시끄러운 소리들로 어지러운 머리 속에 의문이 스쳤지만, 그마저도 이제 더욱 가까이서 들려오고 있는 그 저음의 목소리에 곧 집어 삼켜져 버렸다.
순간, 우연처럼 또 한 번 내 쪽으로 돌아선 그가 이번에는 아예 작정한 듯 내게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어. 멈췄다. 내 앞에 멈춰선 그가 아주 선명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커다란 눈이 정확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 목소리가 아니라, 박찬열의 육성 그대로가 내 귓가에 내려 앉았다.
난 너를 알고 싶어.
지금 우리 둘 주위를 둘러봐.
왕따들은 바쁘게 눈이 굴러가.
걔네들은 죽어도 우리 둘을 못 봐.
지금이야 지금.
내 목에 팔을 둘러봐.
(Beenzino - Boogie on & on 中)
"너만 괜찮다면 너의 허리에, 내 손을 올릴게."
눈 깜빡할 새였다. 아직 그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내지도 못한 내가 뒷걸음질 치려던 순간, 가사 그대로 그의 팔이 내 허리에 감겨왔다. 사람들의 환호성, 여전히 웅웅대는 음악 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선명한 목소리.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소년같은 얼굴. 마주친 시선. 그런 것들이 자꾸만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와... 어지러워졌다. 심장이 쿵쿵대는 것도 같다. 음악 소리 때문인가. 어지러워.
"넌 어때."
박찬열의 팔이 떨어져 나가고도, 그 감촉이 또렷하게 남아 나는 움직이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공연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야 ㅇㅇㅇ 대박. 존나 부러워 진짜. 너 전생에 뭔 짓을 한 거야. 뭔 짓을 했길래 박찬열의 허리 안기 스킬을 시전받느냔 말이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곁으로 다가와 재잘대는 배수지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꿈이 아니었다. 그러면 아까 시선이 마주쳤던 것도, 그가 하필 내 앞에 와서 섰던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었나.
"헐. 내 사랑 도끼 오빠다. 야 여기 있어. 나 사인 좀 받고 올게!"
휭하니 사라져버린 힙덕 배수지 때문에 덜렁 혼자 남겨지는 바람에 뻘쭘하게 바에 다가가 뭐라도 하나 시킬 요량으로 메뉴판을 기웃대고 있는데 내 앞으로 불쑥 맥주병 하나가 튀어나왔다. 엄마야. 고개를 들어 쳐다본 곳에는 아까 그 새하얀 얼굴이... 박찬열?
"아. 혹시 맥주 싫어하시나."
"아, 아니, 아니에요!"
갸웃거리며 말하는 박찬열의 손에서 얼른 맥주병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다시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지어보인 그가 반대편 손에 들린 맥주를 한 모금 넘긴다. 으. 시원하다. 그러고도 한참을 맥주만 들이키는 박찬열 덕에 우리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나만 어색한 건가.. 어색함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우물쭈물대는 내가 보였던 건지 박찬열이 먼저 입을 뗐다.
"아.. 별 건 아니구요. 아까 공연 중에 무의식적으로 팔이 나갔는데, 혹시 기분 나쁘셨나 싶어서.."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진짜."
아니라며 손을 내젓는 나를 바라보던 박찬열이 소리 없이 웃는다. 찬열아! 누군가 그를 찾는건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가야겠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박찬열은 돌아서서 가지 않고 그저 바지만 툭툭 털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잠깐 망설이던 그가 천천히 쓰고 있던 모자를 벗더니 그것을 내게 씌웠다. 모자 챙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공연비라고 치고 받아요. 제 공연을 멋지게 만들어준 데에 대한 수고비."
갈게요. 맴돌던 목소리가 파스스, 사라진 공간에 저벅거리며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어섰다. 발소리가 아주 작아지고 나서야 모자를 벗어 들었다. 툭. 발치에 떨어진 무언가에 허리를 굽혀 주워들자 작은 쪽지가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조심스레 펼쳐보자 열 한 자리 숫자가 나왔다. 쿵, 쿵. 아까부터 쿵쿵대던 심장소리가 더 커진 것도 같았다. 음악 소리는 아까보다 작아졌는데.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클럽 안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다른 시원한 밤 공기가 얼굴에 닿아왔다. 선선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일렁이는 심장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저랑 만나볼래요? 010-xxxx-xxxx ]
§§
↑↑오늘 찬열이는 요런 찬열이로 빙의해주세여!!
예~전에 조각으로 썼던 건데 오늘 우연히 지노어빠 앨범 다시 듣다가 생각나서 업!뎃!
찬열이 우상도 빈지노라던데 노래 하나 해줬음 좋겟당..목소리도 좋아서 잘 어울릴 것 같은데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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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