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철벽을 쳐요 /채셔
7. 한 겨울 밤의 꿈
"아저씨, 나 꿍꿔떠."
"뭔 꿈."
아저씨가 후다닥 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까지 몇 분을 기다리다가 결국 잠들어버렸다. 몇 시간을 자다 슬쩍 눈을 떴을 때는 옆에 아저씨가 앉아 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신음을 흘렸다. 으음, 하고 고개를 돌리며 눈을 뜨자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 차가운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전기장판은 왜 이렇게 온도가 높은지 꼼짝없이 탈 뻔 했다. 게다가 아프지도 않은데 그저 장난으로 던진 미끼에 달려온 아저씨 덕에 연기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하마터면 생으로 아저씨에게 잡혀 의사 앞으로 질질 끌려갈 예정이었지만 주사 핑계로 겨우 벗어났다. 예전에 그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면 결국은 아저씨의 재촉에 병원에 갔을 거고 다 들통나서 아저씨에게 꼼짝없이 혼났을 거다. 이런 건 손 들고 있기 한 시간 정도의 심각한 중죄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 뜻밖의 월척은 아저씨가 내 입술에 제 의지로 키스를 했다는 것.
"아찌가 나한테 키스하는 꿈."
그래서 이렇게 놀려먹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말을 하자마자 아저씨의 귀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무슨 그딴 꿈을 꿔. 아저씨가 서둘러 변명을 하며 제 뒷목을 긁적였지만, 다 안다. 부끄러워서 저러고 있다는 걸. 나는 이불을 목끝까지 올리고, 코를 찡긋이며 웃었다. 아니, 근데 꿈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아저씨에게 말하자, 아저씨는 갑작스럽게 벌떡 일어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는 고개를 돌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꿈이야."
"근데 입술에 뭔가 감촉이 남아 있다니까."
"내가 미쳤냐? 너한테 키스를 하게."
아저씨는 고개를 돌리고 제 머리를 다시 긁적였다. 이내 목이 따끔한지 기침을 켁켁 한다. 눈을 깜빡이며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옮았잖아. 아저씨의 말에 반박하려다 할 말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는 애초에 없었는데. 밖에서 옮아온 건 아저씨면서…. 눈을 깜빡이자 아저씨는 '너 다 나았으면 나 간호 좀 해.'하고 침대의 빈 공간으로 뛰어 들어와 몸을 뉘였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던 아저씨는 제 이마에 팔을 턱 올렸다. 머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아, 더 뻐팅기려고 했는데. 나는 할 수 없이 엉덩이를 질질 끌어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누운 아저씨가 다시금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저씨."
"뭐."
"누워 있으니까 덮치고 싶다."
"누워 있으니까 덮치고 싶다."
이게 미쳐가지고…. 아저씨는 순간 열이 올랐는지 내게 빽 소리를 치다가 순간 머리가 띵했는지 잠시 이마를 짚고 숨을 골랐다. 하아, 하고 숨을 내뱉으며 아저씨는 나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굴하지 않고 아저씨가 옆에다 둔 대야에다 수건을 한 번 적시고 쭉 짠 뒤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저씨, 내 꿈에서 있잖아. 아저씨는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또 그 꿈 얘기냐. 질리지도 않아?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수건을 아저씨의 이마 위에다 올렸다. 차가웠는지 아저씨는 어깨를 잠깐 떨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은 틈을 타 아저씨의 입술에 그대로 내 입술을 들이댔다. 아저씨가 내게 키스했던 것처럼.
"………."
"아저씨가 이렇게 했다구, 그냥."
"……죽을래."
입술을 서서히 떼고 멍한 아저씨에게 웃으며 말하자, 아저씨는 괜히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마 늘 똑똑이인 아저씨도 이건 모를 거다. 내가 아저씨 표정 같은 건 제일 잘 알아낼 수 있다는 것. 분명 당황한 얼굴이다. 게다가 내가 키스할 때 밀어내지도 않았는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아저씨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왜인지 아저씨 이마 위에 얹어진 수건이 더 뜨거워진 기분이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아저씨의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아저씨는 뭐해, 하고 짜증을 냈고.
"나도 아프단 말이야."
아저씨에게 꾀병을 부리며 아픈 목소리를 내자, 아저씨는 눈썹을 까딱 올렸다. 나 아직 머리 울려…. 아저씨의 옆에 누워 똑같이 이마를 문지르자, 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저씨는 제 큰 손을 슥 내 이마 위로 올렸다. 아직 열 나네.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내 이마가 뜨거운 게 아니라 자기 손이 뜨거운 건데. 그러고보면 아저씨가 제일 잘 속는 것 같다. 전정국은 한 번을 안 속던데. 흐으, 하고 작게 신음하며 아저씨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웬일인지 오늘은 전혀 밀쳐냄이 없다. 오랜만에 마음에 든다, 순종적인 민윤기라니.
"아찌, 나, 여기도 아파."
"어디."
아저씨의 옆에 딱 붙어 아픈 목소리로 말하자 아저씨는 다시 눈썹을 올리며 물어보았다. 여기, 하고 심장을 가리키자 아저씨는 코웃음을 친다. 진짜란 말이야, 하고 울먹이자 아저씨가 다시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심장이 아프다고? 아저씨는 표정만큼이나 심각한 말투로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막 답답해. 고구마 먹은 것 같이.'하고 힘없이 말하자 아저씨는 내 얼굴을 살짝 들어 그 밑으로 팔을 집어넣곤, 내 등을 감싸 툭툭 두들겨주었다. 내일 진짜 병원 가보자.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기분이 몽글몽글하다. 덕분에 아저씨의 팔베개에 누웠으니까.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결국 헤에, 하고 웃자 아저씨가 잔뜩 굳어 나를 바라보았다. 또 속았지롱, 바보 아저씨.
"진짜 죽을래?"
"아니, 진짜 심장이 아픈 건 맞단 말이야."
"너 이거 사기죄야. 사람이 신뢰가 중요한 법이라고 몇 번을 말해. 내가 이렇게 가르치던?"
"나 상사병인 것 같아."
"개뿔."
"아저씨 때문에 심장이 이렇게나 뛰는데…."
아저씨의 손을 내 심장으로 가져다댔다. 둥둥 울리는 박동을 느껴보라고 얹은 덴데, 그러니까, 정말 막 흑심이 있었던 건 아닌데. 심장 쪽을 대다보니 자연스레 내 가슴에 아저씨 손이 얹어졌다. 아저씨의 얼굴이 마침내 홍당무가 됐다. 서로 민망해져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아저씨의 손을 떨궜다. 아저씨는 귀가 새빨개졌으면서도 태연한 척을 했다. 가슴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똑같아. 아저씨의 말에 아저씨의 배를 퍽 쳤지만 가슴에 올려졌던 아저씨의 감촉이 사라지질 않았다. 침을 꼴깍 삼키며 흠흠, 하고 다시 헛기침을 하자 아저씨는 침대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죽 사올 테니까 꼼짝 말고 있어."
아저씨의 말에 이불을 목끝까지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그러니까… 지금만큼은 꼬맹이가 아니라, 여자로 아저씨 앞에 선 기분이다.
덧붙임
*암호닉은 프롤로그 편에서만 받습니다!
바보탄이 눈치를 보며 들어온다 (눈치)
암호닉 정리를 항상 올렸었는데,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이 불편하실 것 같아 다음에 암호닉 정리글을 한 번 올릴게요! 그리고 생존 신고도 할 겸!
암튼 기억 삭제 넘나 감사한 것... 원래 이렇게 단 편이 하나 있었다구여 (울뛰) 전 정말 바보예여 흡
찌통과의 연결고리가 없었어서 독자 분들도 당황하셨을 텐데 넘나 미안해요... 갑자기 윤기가 고답이가 될 줄이야!!!!!
그래두 윌 스미스 아찌 덕분에 강제 기억 삭제해쓰니까 차근차근...
뜻밖의 스포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전개해볼게여... 흡.... 그리고 너무 늦게 온 것 같아서 미안해요!
하 개강ㅎㅎ 넘나 힘드네요 이번에 또 이중전공을 할 시점이라 지난 학기보다 더 바빠진 기분이에요
우리 예쁜이들도 개강 개학 시즌이라 바쁘겠죠? 우리 힘내기로 해요. 힘! 힘....! 힘.......!
마니 사랑해오, 늘! 그리고 마니 고마워오, 항상!
다들 뽑뽀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