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2319984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중임무황태 전체글ll조회 466


1. 

 

너와 짝이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은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더니, 왜 갑자기 너와 접점이 생기는건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보는 네 모습은 너를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비슷해져 있었다. 옷차림은 단정했고 담배 냄세를 가리려 뿌린 역한 페브리즈 향도 없었다. 공부에 열중하는 반 분위기 덕에 쉬는시간에도 교실은 조용한 편이었다. 나도 말 없이 내 할 일을 했고 너도 무얼 하는진 알 수 없었지만 쉬는시간 내내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2. 

 

짝이 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너와 난 단 한 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오늘부터 짝끼리 남아서 청소하고 간다. 1분단 맨 앞줄부터 뒤로 돌아갈거야. ㅇㅇㅇ이랑 최한솔이, 둘이는 교실 깨끗이 청소하고 가고, 이상 종례 끝." 

 

종례가 끝나자마자 교실 뒷편의 청소도구함으로 향했다. 옆자리에 멀쩡한 척 앉아있는 것도 고역인데, 청소까지 너와 함께 하게 되었다. 부딪힐 일은 없게 할 자신이 있지만 학기 초부터 이렇게 계속 엮이는 것이, 예감이 좋지 않다. 빨리 끝내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바닥을 쓸었다. 

 

 

3. 

 

치울 것이 많지 않아 청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눈치를 보니 너도 대충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 창문을 잠그고 출석부를 집어들었다. 출석부를 가져다놓는 일은 내가 맡겠다는 표시였다. 혹시라도 누가 문을 잠글 것인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일이 생길까봐 선수를 친 것이다. 

 

 

4. 

 

문을 닫고 열쇠로 자물쇠를 채운 뒤 품 속의 출석부를 고쳐안았다. 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당황스럽게도 네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날카롭고 진한 눈매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주보고 서 있기에 달가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들어 네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두컴컴한 복도에 정적이 흘렀다. 힘을 주어 크게 뜬 눈이 아파올 무렵, 네 입술이 움직였다.  

 

"출석부 내가 갖다 놓을게."  

 

비장하게 쳐다보던 네 입술에서 나온 말은 별 게 아니었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허, 작은 실소를 내뱉은 뒤 망설임 없이 너에게 출석부를 건냈다. 출석부를 건내받은 넌 먼저 뒤 돌아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복도쪽으로 몸을 돌렸다.  

 

 

5.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과까진 바라지 않았다. 네가 조금이라도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했다. 그런데 너는 지나치게 태연했고,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작년 한 해동안 나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너를 엄청나게 신경썼었다. 너와 짝이 되고 어떻게 행동해야 최대한 무심해보일까 고민하던 내 시간들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6. 

 

어젯 밤은 네 생각으로 마음이 뒤숭숭해 잠을 설쳤다. 덕분에 눈은 부어서 그 크기가 평소의 절반으로 줄었고 입술은 터져서 평소보다 두 배는 퉁퉁해져있었다.  

 

종이 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도착했다. 넌 이미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가방을 고리에 걸고 조용히 의자를 꺼내 앉았다. 눈만 재빠르게 굴려 티나지 않게 너의 모습을 살폈다. 넌 내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문제집을 푸는 데만 집중했다. 나도 눈길을 거두고 교과서를 열었다. 

 

 

7.  

 

수업이 모두 끝나고 교실엔 청소당번인 너와 나 둘만이 남았다. 조용한 교실에선 간간이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달그락, 달그락 들렸다.  

 

청소도구함까지 정리를 모두 마친 뒤 가방을 맸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고개를 드니 이번엔 네가 먼저 출석부를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줘. "  

 

"...."  

 

"달라고, 내일은 네가 갖다 놓고. "  

 

말이 퉁명스럽게 튀어 나왔다. 왜 답지않게 친절을, 그것도 출석부를 가져다 놓는 일에만 후하게 베푸는건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교무실 들러야돼서 그런건데 싫으면 너가 하던가." 

 

"...." 

 

이 상황에서 다시 너에게 출석부를 맡기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네 품 안의 출석부를 한 손으로 뺏어들고 몸을 홱 틀어 교무실로 향했다. 몇 초 후 타박타박 내 뒤를 걸어오는 네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세븐틴/최한솔] 출석부1  1
9년 전

공지사항
없음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헉 여주랑 한솔이 심상치않아요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랬다는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ㅅ건데!!!! 흥미진진 하군뇨 신알신하구갑니당
9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피어있길바라] 천천히 걷자, 우리 속도에 맞게2
10.22 11: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존재할까
10.14 10: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쉴 땐 쉬자, 생각 없이 쉬자
10.01 16:56 l 작가재민
개미
09.23 12:19
[피어있길바라] 죽기 살기로 희망적이기3
09.19 13:16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09.08 12:13 l 작가재민
너의 여름 _ Episode 1 [BL 웹드라마]5
08.27 20:07 l Tender
[피어있길바라] 마음이 편할 때까지, 평안해질 때까지
07.27 16: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같은 마음에게78
07.24 12:2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자2
07.21 15:4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야1
07.14 22: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2
06.30 14:1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새끼손가락 한 번 걸어주고 마음 편히 푹 쉬다와3
06.27 17:28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일상의 대화 = ♥️
06.25 09: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우리 해 질 녘에 산책 나가자2
06.19 20:5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오늘만은 네 마음을 따라가도 괜찮아1
06.15 15: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상에 너에게 맞는 틈이 있을 거야2
06.13 11:5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6
06.11 14:3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잎클로버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2
06.10 14:2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네가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1
06.09 13:15 l 작가재민
[어차피퇴사]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 말 걸1
06.03 15:25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회사에 오래 버티는 사람의 특징1
05.31 16:3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퇴사할 걸 알면서도 다닐 수 있는 회사2
05.30 16:21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어차피 퇴사할 건데, 입사했습니다
05.29 17:54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혼자 다 해보겠다는 착각2
05.28 12:1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05.27 11:0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출근하면서 울고 싶었어 2
05.25 23:32 l 한도윤


12345678910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