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난 얘기 다 했으니까 이제 3년 반 후로 다시 돌아와서 지금 얘기 차근차근 해 줄게.
음... 우리라고 연애하는 게 별다른 건 아니야. 무슨 죄 지은 사람처럼 숨어서 연애하기만 하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서, 우리의 대부분의 데이트코스를 말해줄까 해.
아침에 만약에 열한 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칠게. 그러면 한 여덟시 즈음 일어나는데, 빨리 일어나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전화해서 일어나라고 깨워 주지. 근데 대부분 내가 해. 우리 애인님이 아침잠이 좀 많아야지. 무슨 애도 아니고, 내가 전화하면 일단 안 받아. 그럼 난 자나보다 해서 씻고 오지. 머리 말리고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전화가 와. 귀엽게. 그럼 머리 말리다 말고 머리 젖은 채로 가서 전화 받지. 그럼 다급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자기가 잤다고 막 목소리 덜 깬 채로 말해. 그럼 나는 화나지도 않았으면서 그 안달복달한 목소리 좀 더 들으려고 화난 척 하다가 결국 들키고. 계속 웃고. 그러다가 내가 씻고 오라고 말하면 수화기에 대고 쪽 하고 사라지고. 으그으그 진짜.
그럼 난 물 뚝뚝 떨어지는 머리 마저 말리고, 가서 옷 고르고. 내가 사는 오피스텔 옷장을 보여줄 순 없겠지만 진짜 단순해. 이제 거의 졸업이라 인턴 마무리하고 입사 준비도 해야 해서 이제 제대로 회사 출근할 때 입는 수트 두 벌, 거기다 넥타이 색깔 다른 거 몇 개, 대부분 애인이 골라준 거. 셔츠도 애인이 고른 거. 그다음에 그냥 데이트 하거나 학교 갈 때 입는 옷들. 대부분 조금 차분한 색감의 셔츠 입고, 추우면 자켓 걸치고. 우리 애인이 가끔 와서 골라주기도 해. 음.. 우리 애인님은 뭘 입어도 다 잘 받아서. 근데 파스텔톤도 잘 받아. 남자인데도. 옷 다 고르고 셔츠 꿰어 입고 있으면 한 아홉시 반쯤. 그럼 그때 전화가 와. 다 씻었다고. 우리 애인은 시시콜콜한 것도 다 말해주고 싶어하거든. 나도 그걸 좋아하고. 말할 때는 대부분 우리 애인이 나한테 재잘재잘 말 걸면 나는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고. 어쨌든, 그렇게 전화가 오면 빨리 옷 입고 오라고 내가 재촉해. 사실, 우리 약속시간에 만난 적이 별로 없거든. 좀 더 빨리 만나. 대부분 내가 애인님 데리러 좀 빨리 나가거나, 아님 애인이 내 오피스텔 오거나. 애인님이 오피스텔에 도착하면, 그때서야 같이 늦은 아침 같이 챙겨 먹어. 메뉴는 밥일 때도 있고, 가끔 애인님이 솜씨발휘하면 온갖 재료 다 넣은 샌드위치. 아님 그냥 스킵할 때도 있긴 해. 아침 다 먹고, 양치하고. 그때서야 나는 자켓 챙겨 입고 애인님 한 번 꽉 안아 주고 밖으로 나서는 거지.
우리가 자주 가는 데는 정해져 있어. 우리나라가 아직 이런 데에 완전히 오픈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래도 사람이 좀 덜 있는 데로 가긴 해. 나는 상관 없는데 우리 애인이 좀 불편해하고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지니까 좀 힘든가봐. 그래서. 대부분 조용한 데 숨겨져 있는 숲길같은 거 내가 손 끌어서 데려가.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다가도 손에 초콜릿바 하나 쥐어 주면 곧잘 걸어서 걸음마 갓 배운 애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쉬엄쉬엄 한시간 반 정도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점심시간쯤에 가면 되게 한적하거든. 그러면 아무도 없을 때 분위기 타서 키스도 하고. 안 예쁠 때가 없어. 진짜로. 계속 걷다가 다리 아프면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또 이야기하고. 뭐가 그렇게 말해줄 게 많은지 계속 조잘대는데 목소리가 쨍쨍대는 톤이 아니라서 듣기가 편해. 애인 무릎에 길게 누워서 이야기하는 거 가만가만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이야기하는 거 멈추고 사락사락하게 내 머리카락 쓸어 주기도 해. 그러면 거기서 한참 그러고 있다가 일어나서 다시 차 타고 드라이브 하다가 길거리에 내려.
우린 딱히 뭘 하는 데에 돈 잘 안 써. 그 대신 우리는 군것질을 많이 하지. 밥 먹는 거랑. 단골메뉴는 버블티. 손에 하나씩 쥐고, 밥 먹을 거 찾아서 이리 돌아다니고 저리 돌아다니고. 내가 우리 애인 허리 끌어당겨서 감싸안는 걸 좋아해서 자주 그러고 다니는데, 애인은 사람 많은 데 가면 괜히 욕먹는다고 불편해해. 근데 난 이게 왜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거든. 그래서 살살 달래고,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니라고. 그러고서는 계속 그러고 다니지. 내가 좀 고집이 세거든.
그렇게 거리 돌아다니다가 길 걸으면서 꽂힌 데 무작정 들어가서 밥 먹는 게 우리가 좋아하는 거. 약간 맛집탐방 같기도 하고. 우리가 자주 밥 먹으러 가는 데는 레스토랑 같은 데 말고 그냥 간단한 파스타 먹으러도 다녀. 애인도 나도 무거운 분위기에서 조용하게 밥 먹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꼬맹이들 바글바글한 분식집도 가고. 물론 레스토랑도 가지. 가끔은 고기도 썰어줘야 하거든. 하여간, 우리는 얘기하면서 천천히 먹고 디저트까지 알차게 챙겨 먹고 나와서 밥 먹는 것도 데이트 시간이 꽤 많이 소비돼. 특히나 요즘 나는 애인 밥 챙겨 먹이는 데 취미를 붙여서. 우리 애인이 꽤 말랐거든. 조금 통통해서 말랑말랑해도 귀여울 텐데 말이지. 물론 지금도 귀엽지만. 어쨌든, 밥까지 다 챙겨 먹으면 한 네다섯 시. 그럼 바로 우리 집 가는 거야.
우리 집에 하도 우리 애인님이 많이 들락날락거려서 칫솔부터 시작해서 옷, 잠옷, 이불까지 다 있거든. 그럼 옷 갈아입혀 주고, 씻고. 내가 먼저 씻고, 그 다음 애인님 들어가면 난 그 동안 볼 영화 같은 거 정해놓고 있지. 가끔은 사심 가득 담아서 좀 야한 영화 선택할 때도 있고. 사실 뭐 어떻게 해 보겠다는 의도보다는 얼굴 새빨개져서 너 미워 하면서 칭얼대는 그게 보고 싶은 거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소파 위에 내가 길게 앉고, 내 다리 사이에 애인님 앉혀서 반쯤 누운 자세로 영화 보다가 눈 맞으면 입 맞추고. 더 진해지고. 그럼 내가 먼저 정신이 나가고. 그럼 그때부터 영화는 없는 거야. 뭐 어떡해. 예쁜 사람이 잘못이지. 안 그래?
아, 아니다. 예쁜 얼굴로 내 다리 사이에 앉은 게 더 잘못.
그리고, 뭐 더 듣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줘. 그리고, 과거부터 차근차근 올라갈까, 아님 이렇게 현재 얘기 하다가 가끔 과거 이야기 끼워넣을까? 애인이랑 연애하는 건 사이에 말할 것도 많고 앞으로 말할 것도 많거든. 그리고 항상 복잡하고 글솜씨 없는 글 읽어줘서 고마워. 이 모든 사랑을 당신들과 우리 애인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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