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평소에도 경수는 나때문에 바쁘지만
(그정도의 성찰은 하고 있어..)
경수가 유독 바빠지는 때가 있어
그래.. 바로 한달에 한번 나를 찾아오는 그분을 영접할때야.
-…경수야.
-응, 약 여깄어.
경수가 건네주는 약을 받았어
경수는 친절하게 물까지 따라서 내 손에 쥐어주었어
-왜 한알이야?
-이거 많이 먹으면 안좋은 거 알잖아.
-한알은 효과가 없다고.
일단 먹어보고 얘기하자.
경수는 더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세륜 단호박)
내 입에 알약을 넣어주었어
-경수야, 나 채널 좀 돌려줘.
때아닌 여름에 핫팩을 배에 끼고 엎드리고 있는 나의 옆에서
그림을 마무리 하고 있던 경수가 리모콘을 나에게 쥐어줘.
나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갑자기 치미는 짜증에 텔레비전을 끄고
리모콘을 내려놓았어.
경수는 그런 나를 알았는지 붓을 놓고 나에게 다가왔어
-왜 또. 짜증나?
-응. 조금.
-아휴.
경수는 한숨을 쉬더니 내 옆에 앉았어.
그리고 머리를 쓸어주기 시작했어
-너 이래가지고 나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몰라. 그런 말 하지마.
-왜 하지마. 찬열이가 이래 줄 사람은 아닌데.
-….
-너 진짜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야겠다.
-어. 그럴거야.
조금 건방지게 말했지만 경수는 유독 그분이 오시면 민감해지는 나를 알아서인지
별말없이 계속 머리를 쓸어줬어
-배는.
-아파.
-얼마나.
-약 한개가 그만큼이지, 뭐.
-내가 복용량 잘못알았더라. 너 위도 안좋은데, 약 많이 먹는 거 안좋아.
-아프니까 그러지.
경수는 한웅큼 사온 초콜릿더미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서
내 입에 물려줬어
-이래야 말을 안하지.
-….
-나 진지해. 약 많이 먹는 거 안좋으니까, 앞으로도 많이 먹지마.
-…아픈데 어떡해.
-아프면 박찬열 불러서 배 문질러 달라고 하고.
말 나온 김에, 돌아누워봐.
내가 돌아누우니까 배를 살살 쓸어줘
-그리고?
-그때쯤 되면 초콜릿같은건 미리미리 사놓고.
-또.
-짜증나면 박찬열한테 너 좋아하는 노래나 실컷 불러달라고 해.
-내 말을 듣냐, 오빠가.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해? 새삼스럽게.
내 말에 경수는 얼버무려
그냥 언제 자기가 없을 수가 있다고.
-너 귀찮아서 그러지?
-….
-치사하게.
-….
-남자가 쪼잔해.
-….
-그냥 귀찮으면 귀찮다고 하면 되지.
-그래. 귀찮아서 그런다.
경수가 갑자기 정색하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나는 좀 쫄아가지고 고개를 슬쩍 돌려서 경수를 봐
그러니까 경수가 웃어
-쫀 것 봐라.
-아, 뭐야 도경수!
경수는 다시 내 배 위에 핫팩을 얹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밥해올게, 기다려.
….
그래 알아 나도 뭔가 도경수 엄청 부려먹는 느낌인걸.
자라면서 도경수같이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도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뭔가 늘 받아오기만 해서, 습관처럼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경수를 찾고
그랬어 그래서 아마 그날도 그랬던 걸꺼야.
-도경수ㅠㅠㅠㅠ
번개가 진짜 미친듯이 치던 밤이였어
갑작스런 태풍에 창문은 덜컹덜컹거리고
오빠는 비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다고 창문에 신문지 붙여놓으라고 도움안되는 소리나 하고
(동방에서 잘것 같대...)
나는 때맞춰 전기까지 나간 집에서 마치 경수가 나의 생명줄인양
경수를 찾았어
-너네 집 전기 나갔지.
-어.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뭐. 지금 나간다. 괜히 촛불킨다고 설치다가 데이지 말고 이불 뒤집어쓰고 딱 있어
-지금 오게?
나는 밖에 쏟아지는 비를 봤어
아무리 내가 도경수를 부려먹어도 여기까지 오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 왜.
-됐어. 오지마.
-왜?
-비 많이 오잖아.
-….
-그리고 나도 이제 애 아니거든?
-…알았어.
전화는 끊겼어 나는 찬장을 뒤져서 촛불을 켰어
그리고 휴대폰으로 막 일부러 웃긴 사진 찾아보고 그랬는데
창문이 깨질 듯 덜컹거리고 바람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리고
가끔 천둥소리는 진짜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도경수의 예언대로 두번째 촛불을 켜다가 손도 데였어
-…아, 울고 싶다.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다고 깜빡거릴때에야,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다는 걸 알고
충전기를 연결하는데 그제야 생각했지, 지금 정전이라 충전도 안된다는 걸.
-헐.
딱 생명줄 끊긴 느낌.
거의 절망적인 느낌에 눈물이 날것 같은데 집전화가 울렸어
아, 전화는 정전 중에도 되는 구나! 싶어서 놀라다가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으니까 누군가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려.
-…변태에요?
-뭐?
아, 도경수다.
나는 그제야 뭔가 긴장이 풀렸어
-도경수!
-왜이렇게 반겨. 너 왜 휴대폰 꺼졌냐.
-배터리가 없어….
-뭐해.
-뭐하긴 그냥 있지.
-시간 늦었어, 자.
-….
막상 늘 와주던 경수가 이렇게 자라고 단칼에 말하니까, 안오니까
이 비를 뚫고 경수가 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단걸 아는대도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거야.
-야, OOO? 왜 답이 없어.
-몰라, 끊어.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어
하늘은 그런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벌주기라도 하듯
번개와 천둥을 서라운드 형식으로 들려주고
나는 몸을 더 웅크리는데 누군가 문을 쿵쿵, 하고 두드려
처음엔 잘못들었나 싶었는데 계속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니까
나는 순간 공포에 휩싸였어
스크림,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사건, 십삼일의 금요일의 사이코들이 떠오르고
이내 천천히 이불을 뒤집어 쓴채로 대문으로 다가가
-누구..세요?
-나…야! 문열어!
-…누구요?
-도경수라고!
아. 그제야 나는 재빨리 문을 열었어
비에 쫄딱 젖은 채로 서있는 경수가 내가 한켠으로 비켜서자
안으로 들어와
-어떻게 왔어?
-뛰어왔지 어떻게 왔겠냐.
-우산은?
-너 이 날씨에 우산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아.
어쩐지 경수가 너무 반가운 느낌이었어.
경수는 내가 가져다 준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더니 오빠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어
-애 아니라더니.
경수는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나를 보다가 갑자기 말해
-손.
나는 얼결에 경수 말에 따라 손을 내밀었어
경수는 내 손가락 끝을 휴대폰 빛으로 비춰가며 꼼꼼히 삼키더니 말해
-이봐, 여기 데였네.
-….
경수가 채워둔 온갖 연고와 약이 들어있는 서랍장에서 경수는 데인 곳에 바르는
연고를 들고 내 옆에 앉았어
연고를 발라주는데 따끔거려서 내가 얼굴을 찌푸리니까 경수가 말해
-너네집이랑 우리집은 이중창이라서 유리창이 깨질 염려는 없고,
천둥번개에 놀라는 거 보면 죄지은게 많나봐.
-…뭐래.
연고를 다 바르고 손을 씻고 온 경수는 나한테 말해.
-늦었으니까 이제 자.
나는 경수에게 등 떠밀려서 내 방으로 들어왔어
하지만 뭐 달라지는 게 있나
여전히 소리는 요란하고 무서운데.
-…도경수.
결국 빼꼼히 고개 빼놓고 경수를 불렀어
경수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나를 보고 좀 놀라더니
이내 말해
-왜 또.
-…잠이 안와.
에휴. 경수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소파에 앉아서 나한테 손짓해.
나는 경수의 옆에 가서 앉았어.
경수는 내가 뒤집어쓰고 있다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이불을 들고는
자기 무릎을 두드려.
-뭐?
-베고 누우라고.
왠일이래.
나는 경수의 무릎을 베고 누웠어
경수가 이불을 덮어주더니 이내 머리를 가만가만 쓸었어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마리.
-….
그리고 내가 잠이 안올때마다 해주는 도경수표 양세기가 시작되었어.
-양 네마리. 양 다섯마리. 양 여섯마리.
-…근데 왜 늑대는 안나와?
-늑대 나오면 다시 양 한마리잖아.
-아.. 그런가? 뭔가 잔인하다, 동물의 세계….
중얼거리듯 말하니까 경수가 나를 보다가 피식 웃었어
그런데 왠지 그 웃음에 뭔가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이 들었어
-애네, 애야.
경수가 머리를 헝클이더니 웃고는 다시 머리를 쓸었어
-양 일곱마리. 양 여덟마리. 양 아홉마리. 양 열마리.
나는 괜히 이상해진 기분에 경수를 보다가 문득 경수를 불렀어
-…도경수.
-어?
-고마워.
-…뭐가.
-뭐든.
경수는 나의 말에 뭐라고 답하려는 듯 하다가 경수의 전화기가 울려서
잠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네, 어머니. 별일 없어요. 네. 괜찮아요.
경수가 통화하는 걸 물끄러미 지켜봤어
경수네 부모님은 지금은 시골에서 조용히 집필활동 중이시지만,
예전에 어머니는 교수, 아버지는 의사셔서 (우월한 집안..)
경수는 유독 혼자인 시간이 많았어. (그러고보니 지금도 혼자긴 혼자네.)
그래도 요즘은 부쩍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어.
-어머니도 조심하세요. 네. 주말에 갈게요.
경수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나한테 왔고
나는 냉큼 다시 경수의 무릎을 베고 누웠어.
-양 세기 말고 노래 해줘.
-애라고 애라고 하니까 진짜 애됐냐?
-응.
하는 수 없다는 듯 경수가 노래를 불러줬어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제야, 바람이 부는 소리도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도 점점 희미해지고
나는 서서히 몰려오는 잠에 빠져들었어
그래서 하마터면 못들을 뻔 했지뭐야.
잠들기전 경수가,
-애를 두고 내가 어떻게 가냐.
라고 하는 말을.
-
으아 산만해! 글이 산만해!
죄송해여ㅠㅠ
급하게 마무리를 하게 되어버렸네요
됴경스님 핫바님 유후님 홍홍님 미어캣님
라퓨타님 동네북님 오레오님 소희님 노란우산님
도리님 딤첸님 비타민님 참새님 됴륵님
다 내꺼 내 사람들
그리고 늘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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