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이 떠나고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비에 나는 한참을 빈 교실에 앉아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건물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손을 잠시 뻗어 금세 젖는걸 보다가 그러쥐었다. 비가 오는 날엔 항상 기분이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는다. 이런 날에는 항상 그랬듯 지민이가 나를 위로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장에서 간간이 말소리가 들렸고 눈을 감고 그것을 들었다.
" ...... "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박지민이 내 앞에 서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이런 날에는 넌 항상 우산을 쓰고 나를 기다렸으니까. 그런데 없네. 폰을 꺼내들고 홀드를 풀었다.
[저녁에기온많이떨어져]
[겉옷챙겨]
[오늘비온대]
[여주야우산챙겨]
내가 며칠간 읽지 않고 방치했던 박지민의 톡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지민아]
[데리러 와줘.]
나는 금세 숫자 1이 사라지는걸 보면서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액정이 어두워지고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내려다 보다가 우산을 펼쳐 들었다. 팡,하고 빗방울들이 튕겨 흩어졌다. 어느새 텅 비어버린 운동장을 혼자 찰박찰박 걸어갔다.
지민아. 너는 내가 어디에 있든 달려 와줘. 혹시나 내가 너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너는 언제나처럼 달려와서 아무렇지 않은척 나를 다독여줘.
너한텐 네 상처 보다 그 어떤 것 보다도 내가 먼저여야 하잖아. 우리는. 너는 그래야만 하잖아.
깜빡 잠이 들었다. 잠들 것이라곤 생각도 못해서 후다닥 몸을 일으켜 핸드폰 전원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부재중 전화는 수연이에게서 온 것 몇 개다. 박지민의 연락이 없는 것을 보고 일단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을 깨는 순간 너무 놀라는 바람에 머리가 아파와서 머리를 꾹꾹 누르는데 순간 눈으로 감당 못할 만큼의 빛이 터져 들어왔다.
갑자기 켜진 방 형광등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실눈을 떴다. 방문 앞에 서있는 형체는 박지민 같았다. 지민이? 불러도 대답 없는 실루엣을 보기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비에 흠뻑 젖은 몰골의 박지민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세찬 빗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설마 지금까지 나 찾으러 다닌거야...? 나는 당황해서 손으로 지민이의 창백한 얼굴에 묻은 빗물들을 닦았다. 박지민의 마른 눈과 마주쳤다.
" 박지민 괜찮아? 꼴이... "
" 너 찾느라. "
" 이렇게까지 젖으면 집에 가야지 바보야! "
" ...혹시 니가 정말로 밖에 있을까봐. "
나는 박지민의 머리칼과 목덜미를 닦아주느라 잠옷이 흠뻑 젖는 것도 모르다가 순간 팔을 멈췄다. 박지민은 알고 있다. 내가 못 된 장난을 친 것을. 내가 한 걸음 뒤로 가면 박지민이 두 걸음 앞으로 왔고 한 걸음 다시 뒤로 가면 지민이는 또 두 걸음을 다가왔다. 미안해...
" 미안해? "
" 응. "
" 장난치니까 재밌어? "
" ...... "
나 정말 재미로 한건가...? 스스로도 의문이 들어서 말문이 막혔다. 고개를 숙였다. 박지민의 손이 내 어깨를 꾹 눌러 침대에 앉혔다. 지민이의 눈을 보지 못하겠다.
" 나 너 좋아해. "
" ...... "
" 확인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이젠 찾아오지 마라고 했던 말도 오늘도. "
" ...... "
" 못됐다. "
마지막 말에 심장이 내려 앉았다. 입술만 깨물고 있는데 두려움인지 뭔지 모를 이유로 심장 소리가 머리를 가득 울리면서도 비를 잔뜩 맞은 박지민에게서 끼쳐오는 냉기에 나도 모르게 차가운 팔뚝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박지민은 그런 내 손을 천천히 잡아 내리며 몸을 낮췄다.
" 물어보고 싶었어. "
" ...... "
" 난 그냥... 니 옆에 있고 싶었거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책감이나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
" 지민아. "
" 그렇게 해준댔잖아. 그랬으면서 나 흔들었던 건 너였고 그 때마다 널 좋아한다는 이유로 흔들렸던 내가 잘못한 거야? "
" 아니... "
" 근데 왜 그랬어? "
[지민아]
[데리러 와줘.]
" 너 일년 전에 불안정 할 때마다 나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했었잖아. "
" 그거 보고 나 정신 나가서 너 찾아 헤메게 만들 만큼 내가 잘못한 거야? "
" 너가 그렇다고 하면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 그러니까 "
그러니까 제발 그러지마.
끊길듯 말듯 이어지는 그 목소리에 숨이 막혀왔다. 잔뜩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벗어나려 했는데 지민이가 잡은 손을 놓아주질 않았다.
" 어디 가. "
" 지민아 잠시만 "
" 너 나가면 내가 또 찾아야 되잖아. "
비 맞는거 싫어. 박지민이 고개를 떨구며 아이처럼 내게 중얼거렸다. 빠져 나가려던 힘이 풀렸다. 다독여 주어야 할지 어떤 변명이라도 해야 할지 머리속이 하얗기만한데 자꾸만 빗물이 온 몸에서 뚝뚝 흐르는 것이 안쓰러워서 그 애의 손 위로 내 손을 얹었다. 어렴풋 그 손등에서 흉터 자국이 느껴졌다. 왜 하필 손등이여서 박지민의 눈에 띌 때마다 그 시간을 떠올리게 만들고 지민이를 힘들게 했던 건지 원망할 수도 없다. 왜냐면...
드륵-
협탁에 올려놓은 폰이 요란한 진동 소리를 냈다. 박지민이 계속되는 진동 소리에 몸을 일으켜 폰을 내게 건냈고 이내 끊겨버린 통화의 발신자는 수연이었다. 이 새벽에 전화할 애는 아니라서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민이가 티슈를 집어들어 덩달아 젖은 내 손과 팔을 꾹꾹 눌러 닦아주는 걸 보며 울지 않으려 입술을 물었다.
" 수연아. "
혹시 너 박지민이랑 같이 있어?
" ...어떻게 알았어? "
다들 걔 찾고 난리났는데 걘 대체 왜 너랑 있어?
나는 이어지는 수연이의 말에 박지민을 멍하니 봤고 그 애는 내 표정을 보고 이내 얼굴을 굳혔다. 왜 그래? 나는 두서 없이 이말저말을 꺼냈다. 박지민은 바로 집을 뛰쳐나갔고 나는 아침이 될 때까지 꼬박 그 애의 뒷모습을 보던 그 자세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지민이 아버지의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한다. 요즘 들어 몸이 좋지 않다던 아저씨는 늦은 밤 갑작스런 통증으로 응급실로 실려가셨다. 박지민은 응급실에 앉아 가족들과 함께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고 그 후 아저씨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다들 사라진 박지민을 찾는 난리통에 소환 되었던 김태형과 같이 있다는 수연이의 계속되는 연락 때문에 결국 해가 뜬 후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병원으로 향했다. 멍하게 병실 복도로 들어서는데 김태형이 화난 얼굴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뒤에서 수연이가 급하게 쫓아와 김태형의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
" 야. "
" 태형아- "
" 나쁜 년아. "
" ...... "
지민이는 언제부턴가 정신이 나간듯 앉아있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김태형과 수연이의 자축 파티에서 내 술주정을 듣고나서야 김태형은 지민이가 요즘 정신줄을 놓고 사는 이유를 눈치챘고 그 애에게 넌지시 말을 먼저 꺼내보았지만 박지민이 말 없이 고개만 휘휘 젓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내가 민윤기를 만나러 갔던 날 그 애는 아파트 밑에 서서 우리집 거실에 불이 켜지고 나서도 한참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고 했다. 김태형이 미련한 새끼라며 타박 주고 집으로 먼저 떠날 때도 미동도 않았다고 한다. 요 몇 일 동안은 말 한마디 듣는게 힘들 정도로 맛이 간 상태였다고 한다. 어젯밤 응급실 얘기를 덧붙이고 말을 끝낸 수연이는 휴게실 테이블 유리를 긁으며 내 눈치를 봤다. 아... 정말 김태형까지 화날 만하고
" 나는 나쁜 년 맞네. "
" 야... 넌 몰랐잖아. "
" 난... "
" 알고 있었어. "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그렇게 다 보여주는 애였는데.
너한텐 네 상처 보다 그 어떤 것 보다도 내가 먼저여야 하잖아. 우리는. 너는 그래야만 하잖아.
그래서 그 어떤 것 보다도 내가 먼저인 걸 알게 되니까 속이 시원해?
" 일년 전 일 상처인 거 이해하는척 하면서 그 애 들쑤셨어. "
왜냐면 내 상처는 다 나았거든.
" 취한 날 키스한 거 기억 났는데 모르는 척했어. "
내가 하는 대로 그 애가 휘둘리는게 재밌었거든.
" 민윤기 만났던 날 박지민이 아파트 밑에 서있는 것도 봤어. "
봤는데 언제까지 저러고 서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어. 거실 불 꺼지고 그제서야 돌아가는 그 애 뒷모습을 커튼 뒤에서 보기만 했어.
" 연주고 뭐고 상관도 없어. "
난 민윤기랑도 잘만 노닥거리는데 그 여자애 알게 뭐야. 근데 넌 그러면 안되잖아, 그치? 박지민.
" 이제 찾아오지 마라고 했어. 그게 박지민한테 제일 힘든 일인 거 잘 아니까. "
그치만 만약 내가 박지민이 보고 싶어지면 부르면 돼. 왜냐면 걔는 언제든 달려 올꺼거든.
" 어제도. "
내가 비오는 날 싫어하는 거 알잖아. 대체 어디서 뭘 하길래 날 기다리게 해?
" 사귀는 거? 관심 없어졌어. "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 박지민은 나한테 그 이상으로 해주거든. "
그치만 모르는척 했어. 나 혼자만 상처 받은척 했어. 너는 과연 어디까지 나를 좋아할까. 니가 나를 밀어낸 거니까 상처 줬으니까 너는 증명해야 돼 내가 알 수 있게. 니가 아프든 말든
" 끊임 없이 증명을 해 봐. 난 잘 모르겠거든. "
휴게실 문 입구에 가만히 서있는 박지민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 했다. 이렇게 된거야 지민아. 니가 나보고 못됐다고 했는데 내 생각엔 그 이상인 것 같아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 차라리 너도 나쁜 년이라고 화를 내. 니가 그렇게 상처 받은 눈을 하면 내가 마음이 너무 너무 아프거든. 이런 순간까지 내가 아픈게 우선일까 사람이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는지 체험하는 것만 같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수연이가 어쩔줄 몰라하는 새에 박지민이 내 팔을 잡고 끌었다.
" ...... "
" ...... "
조용한 병원 복도에 서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목에 감겨있던 박지민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세게 쥐어서 울긋불긋해진 내 손목을 지민이의 손이 가만히 쓸어내리다가 내 얼굴에 약하게 달라붙은 머리칼을 정리해주었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스스로가 최악일 것 같아서 그 애의 눈을 보지 못했다. 그냥 박지민의 입술이 까슬한 것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마르고 갈라져 있다. 그 것을 보듬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보듬어 줄걸. 나는 박지민이 떠난 자리에서 한참을 서서 후회했다.
만약 우리가 불행했다면 아마 난 다시는 박지민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지만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괴롭혔다. 일년 전 내가 박지민에게 죄책감이 되었듯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좋아하잖아. 이기적인 행동을 한 건 맞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너도 알잖아. 그런 변명을 늘어놓기엔 우리의 감정은 더 복잡하고 자연스러워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 물살을 만난다면 떠내려 보내야만 하는 거다. 지민이의 마음이 어떠한 물살을 만나 먼 길을 떠났다 하더라도 이유가 뭐냐고 그러지 않으면 안되냐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젠 더 이상 내 옆에 머물지 않는 그애에게 미안하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들어주는 사람 없는 그 말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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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0808 0815 10041230 1157 1205 1214 1230태태 2학년 #모찌모찌해 MM 가위바위보 감자도리 계피 고답이 골드빈 굥기 귤 깐돌이 꽁냥꽁냥 꽃잠 꾸꾸 꿀돼★ 뀰 나너조아 나침반 낙동강오리알 남준이보조개에빠지고싶다 내지민 다비듀 단아한사과 더쿠 데이먼 도로시 도손 돌고돌아서 동그라미 두글 두동치미 둘셋방탄 또또 또이 뚜까 띠리띠리 라일락 레인보우샤벳 룰루랄라 마농 마라치킨 마름달 막꾹수 맙소사 망개한지민 망개한침침 망고가얼망고? 모끌♡ 묭댕이 미니꾸기 미시적관점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민슌기 민이 밍뿌 박침침 밤열한시 방봄 방울이 별찬 보라괴물 부랑이 뷔뷔빅 붕붕마왕 붕붕카 브디엘 블락소년단 블룸 비데 비븨뷔 빙그레 빡찜 삐삐까 사막여우 살구잼 새벽별 새벽세시 세젤예세젤귀 솔트말고슈가 수박마루 순살 숩숩이 슙쿵 슙크림 숭금 숲 씅 ㅇㅇㅈ 아이쿠야 아침2 앙기모티 얏호 애기동자 어른꾹꾹 에이치 여릉잉 여하 열원소 왕밤빵 오빠미낭낭 오타 오허니 요랑이 워더아이 위드유 윌리웡카 유레베 웅떡웅떡 윤기모찌(모찌님들을 찾습니다! 세분이나 계신거 같은데 맞나요! ) 윤기안녕 윤듀 요2 의대생 이브닝 인디핑크 자기 자라 자몽 자몽자몽♥ 자몽쥬스 정닺뿌 종구부인 주지스님 지니 지민이랑졔훈 지민이바보♥ 지팔 진진♥ 쮸뀨 찌미낭 찐빵 찬아찬거먹지마 체셔리어 춍춍 충전기 치미니바붜 카라 크악 태정태세 태태요정 태형아 토끼풀 토맛토마토 파티 파란 파송송 푸른밤 피에타 피타츄 핑몬핑몬핑몬업 하리보 하얀설탕 해사 현 호시기호식이해 호비 호빵호빵 홉스 홍시 화양연화 화연 화학 흥탐 히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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