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Paraller lines)
"내가 한국에서 훈련 끝날 때 까지 이렇게 하면 주영이 형 잊을래?"
"............."
"앞으로 있는 대표팀 훈련 끝나는 날 마다, 이렇게 데이트 해주면 주영이 형 잊을래?"
어느새 영화는 끝이나고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어두컴컴했던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다.
"대답"
"............"
"어허- 대답"
성용이의 다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에게 성용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뭔가 자꾸 말하는것 같은데 모르겠다.
"응. 잊을래"
그를 잊고 싶은건 확실했고 성용이라면 믿을 수 있다. 성용이라면... 잊게 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성용이와 있을 땐 항상 웃으니까.
"손"
오른손을 쓱 내밀면.. 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왼손을 들어올려 성용이의 손을 맞잡는다. 내가 하는 짓.. 잘하는거 맞니..
KI's Story
정말 오래전 부터 좋아했다. 주영이 형과 사귀기 전부터.
새로 온 팀닥터라고 소개할 때 부터 좋아했다. 일부러 깊지 않은 태클에 걸려넘어져서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 밖으로 나와보기도 했다.
아까 복도에서 내게 안겨 펑펑 우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녀를 달래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몇 년의 노력 끝에 주영이 형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자부할 만큼 그녀와 친해졌다. 농담도 서슴치 않고 할 만큼.
멀리서 보는 그녀는 어쩌면 멋진 여자일 수도 있다. 여자는 되기 힘들다는 팀닥터, 저 혼자의 힘으로 이뤄내고 누구 한테 밉보일 만큼 성격이 나쁘지도 않고
뽀얀 얼굴에 짙게 진 쌍커풀, 외모도 나쁘지 않다. 겉으로는 하하호호 즐겁게 사는것 같지만 가까서 보면 아니다.
속은 물러 터져서 상처만 가득 안고 있고 또 소심하긴 얼마나 소심한지 사랑하는 사람한테 조차 이런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그 힘든 원거리 연애를 하면서 헤어지자고 말하기는 얼마나 망설이고 망설였는지 나는 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지금 만큼은 부상 당해서 재활치료 한답시고 잠시나마 한국에서 쉴 수 있는게 감사하다, 주영이 형 보다 더 가까이에 있을 수 있어서.
차트를 넘기며, 제 다갈색 머리칼도 넘기며 부상 당한데는 괜찮냐며 물어오는 그녀에게 별로 나아진게 없다고 엄살을 피웠다.
어차피 사실은 차트에 다 나와있을거고. 또 미간을 좁히며 엄살 부린다고 잔소리를 늘어 놓는것도 예쁘다.
그냥 어제 확 사귀자고 했어야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고작 한다는 말이 훈련 끝나고 데이트 해주겠다는 말. 기성용 멍청한 자식!!!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이건 약이고 안에 들어있는 설명서 대로 사용하면 되. 오늘은 내가 그라운드에 있을거니까 니 엄살 안통한다-"
볼펜 뒷꽁지로 내 머리를 아프지 않게 두어번 두드린 그녀가 차트를 접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뒷모습 까지 예쁘다. 내 얼굴엔 싱글벙글한 바보 웃음이 잔뜩 피어 있겠지만 영 표정 관리가 안된다.
"오늘은 저녁 같이 먹을까?"
"그래"
확실히 어제 보단 기분이 좋아진듯한 그녀의 표정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것 같다. 그녀가 힐을 한 쪽에 벗어두고 운동화를 갈아신었다.
힐 신고 한번 쯤 그라운드 밟는다고 잔디가 다 죽는것도 아닌데, 경기도 아니고 훈련이니 경기장에 들어올 일도 얼마 없을 텐데 그녀는 그라운드에선 꼭 운동화를 신었다.
"그냥 힐 신어도 된다니까"
"잔디 상하잖아"
"에이 그 쪼끔 밟아서는 안 상하거든?"
주영이 형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한번만, 딱 한번만 더 잡았으면 OO인 주영이 형을 떠나지 못했을 텐데.
그렇다고 내가 주영이 형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만약 내가 주영이 형이였다면 한번 더, 아니 몇 번이고 잡았을거다.
힘들다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이기심을 부리는게 아니냐고 비난할지는 몰라도 말이다.
비록 그녀의 눈동자는 날 따라다니는게 아닐지라도 내가 공을 뺏었을 때 만큼은 날 바라봐주는게 좋다.
알고있다. 1달 후에도 OO이는 여전히 주영이 형을 좋아할거라는걸. 하지만 또 알고있다, 그래도 난 포기 못한다걸.
거친 몸싸움에 한번씩 넘어지고 나서 그녀를 보면 괜찮냐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난 항상 오케이 싸인을 보낸다.
수비수에게서 공을 받아 주영이 형을 보고 공을 찼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상대편의 거친 태클로 주영이 형이 넘어진다.
그라운드 밖을 보자 그녀는 주영이 형에게서 눈을 때지 못한다. 누가 봐도 안절부절한 눈동자로 바라본다.
딱히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제 하도 체념이 되서. 근데 기분은 나쁘다. 주영이 형이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 그녀를 향해간다.
"오빠 괜찮아?"
"괘안타"
별거 아니라는듯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웃으주는 주영이 형. 락커룸에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넌지시 말하던 형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바보같은 OOO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좋아할텐데. 말로는 축하해요 형 이라고 했지만 진짜 이게 뭐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차트를 정리하려는데 막.."
"여기 묻었어"
여느 여자나 그렇듯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말하는걸로 푼다, 그녀는. 지금 처럼 뭘 먹으면서 쫑알쫑알 얘기할테면 더 없이 귀엽고.
입가에 묻었다며 휴지로 닦아주자 헤헤 하고 웃는데 너무 귀여워서 낮에 안좋았던 기분은 다 날아가버린다. 너는 참 날 쥐었다 폈다.. 잘도 가지고 논다.
"성용아"
"응"
새우를 좋아하는 그녀인걸 알기에 내 접시에 있는 새우는 그녀의 접시로 옮기며 대답했다. 아, 이거 까먹기 어려우려나- 조개도 줄까.
"너는 왜 여자친구 안만나?"
"여자친구 있으면 축구에 집중이 안되잖아"
"에이- 다른 선수들은 잘만 하던데?"
"아냐 난 아니야"
사실은 니가 내 여자친구라면 축구에 더 집중이 잘 될것 같아. 그라운드 밖에 있는 너한테 더 멋있게 보이고 싶고 한 골이라도 더 넣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내가 다치면 니가 치료해주고 부상 당하면 니가 봐주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랬으면 좋겠어.
"야 그만 줘- 나 진짜 살 찐단 말이야"
점점 그녀의 접시에 쌓여가는 해물들을 보며 그녀는 그만 주라며 날 말렸다. 통통했던 옛날의 그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남자친구 생겼다고 관리한다더니 귀엽고 통통했던 몸매는 사라지고 왠 깡마른 젓가락이 걸어다니니 내가 보기엔 안쓰러웠다.
문제는 주영이 형과 헤어지고도 살이 안쪘다는거. 지금 부터라도 찌우지 뭐-
"이제 너 남자친구 없잖아. 먹어도 돼. 해물 좋아하잖아-"
"니가 언제부터 나에 대해 잘 알았다고 그러셔"
"말랐다고 남자들이 다 좋아하는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좀 먹고 다녀. 맨날 커피만 마시고 잠은 안자고 그러니까 그렇게 젓가락 같은거 아냐"
"젓가락은 무슨 뱃살이... 어휴.."
"먹는데 자꾸 그런 얘기 할래?"
"네 네- 안하겠습니다"
포크로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 한 입에 먹는 모습에 왜 부모님들이 자식들 밥 먹는거보고 안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식사가 끝나고 결국 끝끝내 계산은 저가 하겠다고 해서 결국 계산은 그녀가 했다. 아 이거 남자로서 자존심이 확 구겨지는데..
그녀를 데려다주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계속 망설여졌다.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나는 언제가 제일 멋있어?"
"뭘 그런걸 물어보고 그래-"
"그래야 여자친구를 사귀던 말던 하지"
"음.... 프리킥이나 코너킥 찰 때"
"하긴 그 때 내가 좀 많이 멋있긴 하지. 내가 찬 코너킥 누가 골 넣으면 진짜.. 와 나.."
"주영오빠가 헤딩으로 딱 넣으면 멋있는데"
자신이 말 해놓고도 당황했는지 어버버 거리는게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질투심이 들끓어올랐다.
"주영이 형... 확실히 잊는 방법 알려줘?"
"..........."
"주영이 형 여자친구 생겼데. 나이는 우리랑 동갑이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고, 사귀는지는 좀 됐고"
"..........."
"이미 뭐... 상견례 이런거 한것 같더라. 딱히 너한테 말을 안했다기 보다는...."
"..........."
내가 본 그녀의 표정 중에 제일 슬퍼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 난 곧 바로 후회했다. 내 순간의 시기심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
주저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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