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Parallel lines)
쓸데없는 생각으로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 그와의 끝 처럼 짠 눈물이 내 입 속으로 흘러 들어왔을 때가 되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걸 알았다.
살짝 쳐져있던 블라인드를 더 짙게 치고는 창문에서 뒤를 돌았다. 창가에 있는 티슈 두어장을 뽑아 눈물을 닦고 거울 앞에 다시 서봤다.
눈가와 코끝이 빨개진게 아무리 봐도 운 얼굴이다. 안돼겠다 세수라도 좀 하고 와야지. 기성용 만나면 또 뭐라고 하겠네.
훈련이 끝마쳐지기 전에 얼른 다녀오려 문을 딱 여는 순간 당황한 얼굴로 서 있는.... 그 사람, 박주영.
"니 울었나"
나는 고개만 푹- 숙인채 고개도 못 들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이렇게 추한 모습을 그에게 들키게 되서는..
생각해보니 나 오늘 안경 썼지.. 아.. 거기다가 울었으니 얼굴은 가관.. 머리는 한갈래로 질끈 묶어서는 대한민국의 성실한 일꾼 같은..... 아...
"고개 들어봐라"
절대 들지 못한다. 운 얼굴도 보여주기 싫은데 안경까지 쓴 모습이라니. 난 말 없이 고개를 저었고 그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막 탁- 하고 소리 나게 잡히는 내 손목. 3년 전이였다면 손목이 아닌 손이였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러는 내가 싫다 정말.
"와 울었는데"
이런 식이다 그는. 헤어지고 같이 보낸 3년이란 시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해왔다. 나에게 그렇게나 쉽게 정을 뗀건지..
"그냥.. 노래가 슬퍼서.."
되지도 않은 거짓말에 그가 속아 넘어갈리 없다. 그래도 스르르 풀리는 손목을 매만지며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니 엉망진창인 얼굴. 들켰으면 일날뻔했네..
찬 물을 틀어 정신 없이 어푸어푸거리며 세수를 해댔다. 머릿속도 깨끗하게 비우고 싶은 마음이다. 3년 전 일을 아직까지 생각하면서 울다니.
아직 나는 힘들다. 알고있다. 내가 힘들어할 자격이 없다는걸. 힘들다고 헤어져서는 더 힘들어하고 있으니 난 그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자격 조차 없다.
그는 많이 힘들었을까? 내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는 많이 힏들었을까? 내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힘든것 처럼...
수건으로 얼굴을 꼼꼼하게 닦고 화장실을 나오자 저 복도 끝에서 기성용이 여- OOO 이러면서 오는데 애써 외면하면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다다- 하는 소리가 나면서 기성용이 달려오는걸 느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아프다는 자식이 왜이리 멀쩡한거야.
옆에 척- 하니 따라 붙어서는 말이 없다. 평소 같으면 장난도 걸고 훈련 끝나고 뭘 하자느니, 밥을 먹자느니 이런 말이 나와야하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를 올려다 봤다.
"울었네"
"아닌데"
"맞는데"
"아냐"
"아닌 얼굴이 그 모양 그 꼴이냐? 너 또... 아니다"
"............"
"............"
"맞아, 성용아. 나 한심하지? 3년 전 일 아직도 못 잊어서 어린애 처럼 맨날 엉엉 울어. 아직도.. 아직도.. 못 잊어"
검은 뿔테 안경을 벗기고 안경 다리를 접어 가운 넥 부분에 걸터 놓고는 난 빤히 바라보는 성용이.
내 어깨에 손을 두른 성용이는 고개를 숙여 그새 눈꺼풀을 비집고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줬다. 찌질이 처럼 맨날 운다며 타박하는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형 말 처럼 좋은 남자 찾아. 너 처럼 능력 있는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3년 전 애인을 못 잊고 그래-"
낮고 다정한 성용이의 목소리에 내 눈물은 더 많이, 더 많이 흘렀다. 여자들은 달래주면 더 운다고 했던가. 맞나봐, 그 말.
날 끌어안은 성용이는 내 등을 계속해서 토닥였다. 휑한 복도에 울려야할 내 울음소리가 성용이 가슴팍에 막혀 내 귀에 증폭 되어 들렸다.
오늘 여러모로 우는 구나. 내 울음소리가 조금 사그라들자 성용이는 내 어깨를 잡고는 날 살짝 밀쳐내었다.
"너 우니까.."
"못생겼다고?"
"응"
"이씨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근데 귀여워"
"됐어 나쁜 자식아!"
세수 한게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난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가운에 걸터 놓았던 안경을 다시 쓰고 식당에 내려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정말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성용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고 그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아, 근데 내 사무실엔 왜 왔는지 안물어봤네..
기분전환 필요하면 문자하라며 씩- 웃고는 그라운드로 뛰어가버리는 성용이. 고맙다고 해야되나 어째야되나 망설이는 사이 성용이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얇디 얇은 힐에 혹여 잔디라도 상할까봐 잔디밭 바깥쪽으로 나가려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와 울고 그라나"
당신 때문에요. 당신이 맨날 생각나서요. 3년이 지났는데도 안 잊혀져서요. 끔찍히도 잊고 싶은데 자꾸만 생각나서요.
"얼굴이... 더 많이 탔네. 훈련 할 때는 자외선 차단제 바르라니까"
사귈 때 부터 해왔던 잔소리를 오늘도 어김없이 늘어놓자 그는 말 없이 웃는다. 그 웃음 예쁘니까 어디가서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마.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썬블록 샘플을 그에게 건냈다. 멀뚱 거리며 바라만 보는 그의 손을 끌어다가 손에 쥐어줬다.
"너무 많이 타면 피부에 안좋으니까 훈련 할 때 만이라도 발라. 얼굴만 바르지 말고 목에도 좀 바르구"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그.. 3년 전이라면 내가 발라줬을 텐데 이제는 모른척 그냥 뒤돌아 갈 수 밖에 없다.
가을 바람에 가운이 조금 펄럭이는걸 느끼며 잔디밭을 벗어나 사무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번도, 단 한번도 뒤 돌아 보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난 선수들의 오후 훈련이 끝나는 대로 집에 가서 잠이나 잤겠지만 그의 얼굴을 한번 보고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문자로 성용이에게 SOS를 쳐놨다. 훈련 끝나면 보겠지 뭐.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일을 했다. 하루종일 그 놈의 차트만 붙잡고 있으려니 어깨가 다 뻐근하다.
기지개를 한번 피며 창문을 바라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는게 보인다. 곧 훈련도 끝날것 같고. 묶었던 머리를 다시 예쁘게 묶고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훈련이 끝났는지 해산!!!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그라운드에 쩌렁쩌렁 울렸고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에 기대어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수업 끝났다고 기뻐하는 초등학생들 같달까.. 외관상 다친 선수는 없는지 살피다가 성용이와 눈이 마주쳤다.
입모양으로 문자라고 말하자 손을 들어 오케이 표시를 한다. 바보 처럼 빙구 웃음을 짓더니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대어 있던 창문에서 떨어져 가운을 벗고 자켓을 입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내 몸뚱아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만들어낸 긴 그림자가 오늘 따라 슬퍼보인다.
내가 움직이는대로,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똑같이 따라하는 그 긴 그림자가 많이 슬퍼보인다. 또 울것 같아서 창문에 블라인드를 짙게 치고 가방을 챙겼다.
오늘 검토를 끝낸 차트를 옮기고 내일 검토해야할 차트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일은 내가 그라운드에 나가야하니 아마 다른 팀닥터가 보게 되겠지.
거울을 보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묶은 머리도 괜찮고 부었던 눈도 가라앉아 괜찮아졌다.
가방을 챙겨매고 그라운드로 내려가 성용이를 기다리자니 다르 선수들은 저마다 인사 한마디씩 하면서 가는데 왜이리 늦게 나오는건지..
아직 그와 성용이만 나오지 않은것 같다. 마지막 선수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나니 그제서야 둘이 하하호호 웃으며 느긋하게 나오는데 얼마나 미워야지.
"형 그럼 내일 봐요"
"OO이도 잘 가고"
성용이에게 눈 인사를 한 그는 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나 역시 눈 인사로 대답하고 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좋아? 형이?"
"미칠만큼"
"잊지도 못할 만큼?"
"응"
짧은 한숨을 내쉰 성용이가 영화나 보러가자며 날 이끈다. 내가 한심해 보이겠지? 바보로 보이겠지?
"내 차로 가자. 내일 너 데리러 갈게"
"나 기분 안좋다고 너무 선심 쓰는거 아냐?"
"그러게. 내일 갑자기 데리러 가기 싫어지면 어떡하지.."
아휴 저게 진짜. 말이라도 못하면. 조수석 문까지 열어주는 성용이. 얘가 갑자기 왜 안하던 짓을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여자 아낄줄도 알고 철 좀 들었구나 싶다.
성용인 차를 빙- 돌아 운전석에 타서는 시동을 건다. 무슨 영화 볼까, 멜로 영화, 무슨 멜로 영화야- 야한 영화 보자, 싫어! 멜로가 좋다고, 야한 영화가 좋지!
"그렇게 밝히다가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차인다 너-"
"여자친구 앞에서는 안 밝힐거거든?"
티격태격 여느 친구 처럼 다투면서 영화관에 도착했고 다행이도 결국 내가 우겨서 보게된 영화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팝콘과 콜라를 사서 입장한 영화관. 영화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됐음에도 사람들이 얼마 없어 편히 관람할 수 있을것 같았다.
영화는 식상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자주인공을 도와주는 재벌집 아들 남자주인공. 가문의 격차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산다.. 뭐 이런 얘기.
정말 안봐도 뻔한 얘기였다.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내달리고 있었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고 영화의 긴장감을 풀리는듯 했다.
"OOO"
"응 왜"
영화에 정신이 팔려 성용이의 부름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서 키스하는 순간. 진짜 예쁘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해봤으면..
"내가"
"으응.."
해가 지는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에 앉아 진하게 나누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키스신은 정말 예뻤다.
정말 나도 저런 남자를 만나 저런 낭만적인 사랑을 해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정말 멋있지 않느냐고 성용이에게 물으려 성용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성용이의 진지한 눈을 마주했다. 그 눈동자가 뭐라고 나에게 말을 하는것 같은데 못 알아듣겠다.
"내가 한국에서 훈련 끝날 때 까지 이렇게 하면 주영이 형 잊을래?"
"............."
"앞으로 있는 대표팀 훈련 끝나는 날 마다, 이렇게 데이트 해주면 주영이 형 잊을래?"
어느새 영화는 끝이나고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어두컴컴했던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다.
"대답"
"............"
"어허- 대답"
성용이의 다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에게 성용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뭔가 자꾸 말하는것 같은데 모르겠다.
"응. 잊을래"
그를 잊고 싶은건 확실했고 성용이라면 믿을 수 있다. 성용이라면... 잊게 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성용이와 있을 땐 항상 웃으니까.
"손"
오른손을 쓱 내밀면.. 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왼손을 들어올려 성용이의 손을 맞잡는다. 내가 하는 짓.. 잘하는거 맞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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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분들을 배려해서 글을 써야할것 같아서요! 그래서 사진도 안 올리는건데 괜찮나요...?
아마 내일은 못오고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올것 같네요.. 이해해주실거죠?ㅠㅠㅠㅠㅠ
Thanks to.
기성용하투뿅님, 뿡뿡이님, 짤랑이님, 갸루상님, 홍초녀님, 마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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