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요즘 들어 백현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몇 번이고 말을 걸었다가도 이내 시선을 피하고 아니야 하며 싱겁게 말을 끊어버리는 행동은 며칠 간 계속 되었다. 백현이 그럴때마다 찬열도 무언가 알 것 같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경수를 향해 묘한 시선을 던졌지만 경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백현이 싱거운 녀석이려니 하고선 넘겨버릴 뿐이었다. 백현은 그런 경수가 답답했지만 딱히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수는 여전히 김종인의 머리를 툭툭 쳤으며 급식의 음식물을 섞었고 갖가지 유치한 행동은 다 했다. 그럴 때마다 종인의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하는 것은 백현이였다. 그 날 종인의 시선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한 이후로 백현은 종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종인이 딱히 경수에게 반항을 한다거나 제제를 가하지는 않았으나 백현은 종인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김종인의 눈은 위험했다. 백현은 경수와 달리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백현이 보기에 경수는 정말 눈치가 없었다. 경수는 툭하면 버릇처럼 저 말을 내 뱉었다.
"종인이는 어쩜 그리 말을 잘 들을까?"
"글쎄, 말을 잘 듣는다기보다는.."
"무슨 소리야?"
아, 아니야. 하며 어물쩡 넘어가자 경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젓곤 다시 책상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백현이 볼때 김종인은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니었다. 김종인은 말을 잘 듣는 척할 뿐이었다. 방심시키고 안심시켜 물어뜯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백현은 자신이 예민한 것이길 바랬지만 아마 그럴 확률은 적은 듯 했다. 김종인은 위험하다. 마치 짐승같이.
하루는 여느 때처럼 흘러갔다. 아침에 조금 늦게 등교한 경수는 종인에게 다가가 얇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밀며 굿모닝 종인아 하고 인사를 했고 점심시간엔 실수 한 척 급식판을 종인에게 엎었다. 종례를 하고 가방을 챙기며 하교 준비를 하는 김종인을 경수는 재밌는 것이라도 생각났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쓰레기 소각장으로 불러내었다. 항상 함께이던 찬열은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경수와 백현만이 소각장으로 나간 상태였다. 이윽고 종인이 기다란 다리를 쭉쭉 뻗으며 나타났다. 경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겉으로 보면 김종인은 절대 경수에게 괴롭힘 당할 군번이 아니었다. 경수도 그것을 느끼는 듯 했다.지금의 표정은 가끔 종인이 자신보다 잘났다고 느낄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겉 모습만 본다면 확실히 김종인은 월등한 생물이었으니까.
"빨리 뛰어와 미친 새끼야."
경수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걸어오고 지랄이야. 어? 어..종인이 주춤주춤 뛰어오자 경수는 종인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종인이 짧게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움켜쥐었다. 경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종인과 마주 쭈구려 앉았다. 종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들어올렸다. 눈을 마주하자 경수는 종인의 뺨을 쳐 올렸다. 종인의 고개가 휙 돌아가고 백현은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야 이 병신새끼야. 건방지게 걸어오고 그래. 나오라면 제때 제때 후딱 나와야지. 어? 경수는 종인의 볼을 쿡쿡 찔러대며 날카롭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종인은 눈을 내리깔며 경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내 경수는 종인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갑을 꺼냈다. 종인은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였다. 지갑을 열어 돈을 세어보던 경수의 얼굴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펴졌다. 항상 두둑하네 우리 종인이. 지갑의 한쪽 모서리로 종인의 부어오른 볼을 툭툭 친 경수는 소각장 옆쪽의 쓰레기통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종인의 머리위로 온갖 오물을 쏟아내었다. 미처 다 비워지지 않은 우유곽, 빵봉다리, 끈적끈적한 알 수 없는 오물들이 결좋아 보이는 종인의 머리카락 위로 쏟아져내렸다. 종인은 여전히 경수의 눈을 빗겨나가 내리깐 채였다. 경수는 종인이 자신에게 겁을 먹어 눈을 피한다고 생각했다. 우쭐해졌다. 이렇게 덩치 크고 잘나 보이는 새끼가. 실상은 자신에게 당하고 산다. 별거 아니다. 그 것이 경수에게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
"백현아! 먼저 갈테니까 가방 좀 대신 가져와주라!"
"니가 가져가지 새끼야."
"히히, 한 번만 봐줘!"
경수는 기분좋게 지갑을 종인의 얼굴에 던졌다. 정통으로 지갑은 종인의 얼굴에 맞고 튕겨나갔다. 얏호! 명중! 여전히 종인은 경수의 눈을 보지 못했다. 찌질이새끼. 기분이 좋은 듯 경쾌한 걸음으로 경수는 먼저 소각장을 벗어났다. 경수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백현만이 종인과 함께 남아있었다. 어색한 공기가 휘감아 왔다. 백현은 소각장 한 구석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종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종인은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였다. 귀엽네. 백현은 경수와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든 순간 귀에 들려오는 조용한 목소리에 멈추어 굳어버린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종인이 어느샌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넌 멍청하진 않은 모양이야."
"..............."
"도경수한테 눈치주지마. 멍청한게 어디까지 하나 귀여워 죽겠으니까."
좆나 깨물어 씹어버리고 싶을 만큼. 종인이 소각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백현은 긴장감에 목울대를 꿀꺽 움직이며 종인의 나른해 보이는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종인이 혼잣말을 하듯 작게 읊조렸다.
"하기사, 눈치를 줘도 못 알아 쳐먹으니 경고는 하나마나인가."
종인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경수는 잘 못 걸렸다.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김종인는 그냥 평범히 공부만 잘하는 애송이따위가 아니였다. 백현의 예상대로였다. 김종인은 짐승이다. 백현은 잠시 멈추었던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급히 박동하기 시작했다. 경수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만두게 해야했다. 이대로 간다면 무슨 일이 터져도 제대로 터질 것이 분명했다.
"흐아암, 졸려."
경수는 피곤했다. 어제 종인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오랜만에 예흥과 호프집을 가 실컷 즐기다 온 참이었다. 백현에게도 같이 가길 권유했지만 백현은 왠지 모를 어두운 표정으로 피곤하다며 거절했다. 경수는 그러려니 하고 예흥과 여러 다른 아이들과 밤새 퍼 마시고 놀았다. 아침에 일어나 쓰려오는 속에 학교를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시작 될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주섬 주섬 교복을 주워입고 등교했다. 왠일인지 항상 경수보다 먼저 와 교과서를 들여다보던 종인은 자리에 없었다. 아직 등교하지 않은 듯 했다. 경수는 괜히 미안해졌다. 어제 일 때문인가?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하릴없이 앉아있던 경수는 급작스레 느껴지는 노골적인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저 구석 자리에 세훈이 있었다. 저 새끼 정학 풀렸나? 경수는 괜히 민망한 마음에 세훈에게 말을 걸었다.
"어, 오세훈 학교 나왔네."
그러나 세훈은 경수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어 창밖으로 돌렸다. 경수는 뻘쭘해졌다. 경수와 세훈은 그렇게 말을 자주 하는편이 아니었다. 세훈은 이 근방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으나 경수는 싸움은 쥐뿔도 못하지만 가오나 잡는 그저 그런 생양아치였다. 그런 세훈에게 경수는 자주 말을 붙이고 친해지려 노력했으나 세훈은 그런 경수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듯 항상 무시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경수는 속으론 저 씹새끼 좀 나간다고 째네 하며 욕을 했지만 겉으론 하하 웃으며 물러났다.
수업이 시작됬다. 한창 졸며 고개를 책에 파묻고 있던 경수는 드르륵 하고 열리는 문소리에 눈을 번쩍 뜨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종인이었다. 왠일로 늦었냐고 핀잔을 주는 선생님에게 꾸벅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곤 제 자리에 앉았다. 수업할 책과 필기도구를 꺼내는 종인을 보던 경수는 키득거리며 백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백현이 의아한듯 경수를 바라봤다.
"야 왕따 새끼 어제 꼽먹더니 상처받았나보다. 이 시간에 오고."
조용하던 교실에 경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선생님이 도경수! 너 이 새끼 말뽄새가 그게 뭐야! 하며 핀잔을 주었지만 크게 제제를 가하진 않았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경수는 종인에게로 뛰쳐가 종인의 책상위로 걸터앉았다. 백현은 불안한 듯 둘을 지켜보았다. 어제 이후로 백현은 경수가 제발 저 짓을 그만 뒀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경수가 종인의 교과서를 들어올려 종인의 머리를 퍽퍽 치기 시작했다. 종인은 꼼짝도 않고 맞고 있었다.
"씨이발, 어제 잘 들어가셨나용. 종인씨? 전 어제 종인씨가 준 돈으로 즐겁게 놀았답니다."
"............."
"왜 말이 없으세요 시발놈아. 감사하다 했으면 대답을 해줘야지. 예의없는 새끼야."
경수가 언성을 높였다. 아이들은 종인을 답답하단 듯이 바라보았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종인을 불쌍하다 여겼지만 백현은 경수가 걱정되 어쩔 줄을 몰랐다. 종인의 경고를 들은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백현은 종인이 두려웠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걸상이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출처는 경수가 아닌 세훈이었다. 세훈은 천천히 경수를 위아래로 훑으며 경수쪽으로 다가왔다. 의외의 인물에 백현이 놀라 멈칫했다. 경수는 세훈이 왜 저러나 몰라 벙벙하게 눈만 뜨고 세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훈이 경수의 손에 들려있던 교과서를 빼앗아 경수의 머리를 내리쳤다.
"씨발좆같은 양아치 새끼야. 지저분하게 비비적대지 말고 좀 얌전히 사려라. 어?"
세훈의 험악한 욕설에 교실의 분위기가 한 층 더 가라앉았다. 경수는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듯 멍청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내 사태파악을 한 경수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는 지 새끼는 양아치 아닌 줄 아나 시발. 경수가 중얼 거리자 세훈이 교과서로 경수의 얼굴을 후려쳤다. 경수는 픽하니 엎어져 버렸다. 씨발 가오죽게 씨발. 씨발. 경수는 억울함에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았다. 저가 뭘 잘 못했다고 저러는지 열받기만 했다. 그때 경수는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한 종인의 얼굴에 경수는 정신이 멍해졌다. 김종인이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EPP입니다. |
뭔가 많이 떨리네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암호닉 남겨주신 쿠쿠다스님 식빵님 도블님 꿈이뤄21님 프라다님 찬찬님 외에 댓글로 관심 남겨 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아직 미흡하지만 차차 열심히 써나가는 EPP되겠습니다. 펜네임님이 앞서 말씀해주셨듯이 짐승의 향기는 EPP와 펜네임이 함께합니다. 다소 문체가 다를 수 있으니 알아주셔요! 즐감하세요! ^^*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