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이 세훈과 떠난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남은 경수가 소리지르며 교실에 있는 책상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김종인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곳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마냥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김종인은 분명히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이 틀림 없었다. 자신은 농락당했다. 쥐뿔도 모르는것 같았던 김종인에게, 아니, 쥐뿔도 모르는 것은 자신일지도 몰랐다. 김종인을 건드는게 아니었다. 경수는 미친사람처럼 자리에 서서 제 몸을 털다 안 되겠는지 입술을 꾹 쥐었다. 평소에 손톱을 질근질근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손톱이 날카롭게 나지 않아 망정이지 이 이상으로 손톱이 날카로웠다면 입술은 완전히 찢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김종인을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자신을 깔보고 농락하고 있었던 것일까. 쉽사리 생각이 나질 않았다. 김종인은 흉지면 안되겠다며 제 턱을 잡은 뒤 입술에 잔뜩 묻은 피들을 제 혓바닥으로 핥아냈다. 혐오스러웠다. 김종인은 게이새끼였던걸까? 자신을 얼마나 그런 대상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다른이도 아니고 김종인이. 자신의 밥밖에 되지 않았던 주제에 오세훈을 등에업고 의기양양해져 경수를 내려다보는 꼴이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경수는 서둘러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김종인과 함께 있었던 곳 조차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김종인이 싫었다. 정말로, 죽여버리고 싶었다. 곧장 보이는 화장실로 들어가 주위에 있는 남자아이들에게 욕지기를 내뱉으며 세면대 앞에 섰다. 남자아이들은 경수에게 무어라 할 말이 있는 얼굴로 쳐다보다 말 없이 화장실을 나섰다. 요새들어 경수의 성격이 얼마나 히스테리컬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들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는 것도. 경수는 거울에 비친 얼굴을 노려보며 입술을 닦아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김종인의 비웃는 얼굴이었다. 경수는 소리지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남자 화장실 내에서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지나가던 아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그 주체가 경수인것을 알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거칠게 숨을 내 쉬었다. 더 이상 제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경수는 교실로 돌아왔다. 난장판이 된 교실을 보며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잔뜩 씩씩대는 경수의 표정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제 책들을 집어들었다. 옆 반에 있던 찬열이 자신을 찾아다닌듯 놀란 표정으로 경수에게 뛰어왔다.
" 무슨 일이야? "
" 씨발, 죽여버릴거야. "
" 누구를? "
" 김종인 변백현 오세훈 전부. "
경수의 말에 찬열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어렸다. 경수가 이렇게 살기어리게 이야기 하는것도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다. 경수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는듯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억눌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게, 자칫 건드리면 터져버릴 시한폭탄처럼 위태위태했다. 경수는 평소에도 자신이 최고라고 믿었고, 오만했으니 이런 취급에 익숙치 않은 것에 당연했다. 경수는 사람들중 자신이 가장 윗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과 종인, 세훈은 경수가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정도 예측 할 수 있었다.
찬열은 말 없이 경수의 옆에 섰다. 경수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입술을 질근질근 씹다 찬열에게 물어왔다.
" 김종인 그 새끼 게이야. "
" 어? "
" 게이새끼라고. "
내 입술에 묻은 피를, 지 혓바닥으로 더럽게 핥았다고. 경수의 말에 찬열이 놀라운듯 두 눈을 치켜떴다. 요새들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유가 종인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물론, 백현이 종인네로 넘어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야기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종인은 경수에게 제대로 괴롭힘 당하고 있었고, 경수는 그것을 흡족해했었으니까. 그런데, 경수에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종인이 반항을 한 것도 아니고 경수의 입술을 혓바닥으로 쓸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변해도 너무 변한 종인의 행동은 찬열은 납득 할 수 없었다. 경수는 뭐가 그렇게 분이 나는지 간간히 욕설을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찬열도 알고 있었다. 김종인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종인에게는 남다른 미묘한 기운이 있었다. 경수가 아무리 웃고 떠들며 김종인에게 모욕을 주더라도 종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범한 아이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평범한 아이 같으면 경수를 선생님에게 넘겼거나 엄마 아빠에게 일렀겠지만 종인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경수를 쳐다보는 나른한 눈빛에서 경수를 가소로워 함이 저절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찌질한 녀석들이 상상으로 괴롭힌 이를 짓밟으며 좋아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종인의 눈빛에는 자신감도 언제나 함께 깃들어 있었다. 단순히 외적으로 보이는 행동 그 이상의 것으로. 찬열은 묘한 표정으로 경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한참 걷던 경수가 자리에 멈춰섰다. 김종인이 남겼던 의미심장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경수의 입술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낮은 목소리로 하던 말. ' 얼마 남지 않았어. ' 그 말에 담긴 저의를 알 수 있어서 경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 할 수 있겠지만 경수는 그것이 결코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종인이 중얼거리는 순간 마주친 눈빛에서 나온 불쾌한 끈적함이, 아직도 생각났다. 불쾌하고, 끈적거리고, 욕망이 가득 담긴 눈빛. 더 이상 김종인은 경수의 밥이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못내 견딜 수 없었다.
찬열이 경수의 어깨를 툭 쳤다. 경수가 걷다 말고 자리에 멈춰서는게 의아한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긴 경수는 앞에 누군가가 오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찬열은 경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경수와 부딪친 이를 쳐다봤다. 김종인이,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경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경수가 종인을 쳐다봤다. 얼굴에 순식간에 노기가 차오르나 싶더니 이내 가라앉은 차가운 얼굴로 종인을 지나쳤다. 찬열은 경수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종인의 얼굴을 한 번 훑은 뒤 백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백현은 찬열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내리깔았다. 이내 찬열도 말 없이 셋을 지나쳤다. 종인 패거리의 빤한 시선에 찬열이 뒷머리를 긁적인 후 앞서 걸어가는 경수의 뒷통수를 가볍게 쳤다.
" 야! "
경수가 짜증스럽게 찬열의 손을 붙잡았다. 찬열이 씩 웃으며 경수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자 그제야 한결 풀린 표정의 경수가 찬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고3인 남자아이들이 장난스레 놀자 이상한지 뛰어다니는 경수와 찬열을 본 학생들이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봤다. 쳐다보는 학생들의 시선을 느낀 경수가 즐거운듯 웃음지었다. 찬열이 경수의 어깨를 잡는 그 순간까지 웃음짓던 경수가 찬열이 시선을 돌린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 난 괜찮을거다. '
*
졸업식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날이 갈 때마다 경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김종인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경수를 덮쳤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먹을 수도 없었다. 괜히 울컥함만 몸 속에서 올라오다 가라앉다를 반복했다. 종대를 만나는 것도 뒤로 미뤘다. 하루도 거스르지 않고 카카오톡을 보내오는 종대를 뒤로 하고 경수는 학교생활을 조용히 했다. 아이들은 무슨일이냐며 수근거렸지만 들리지 않은 척 귀를 닫았다.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분노와 증오가 크면 더 이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김종인을 혐오하는 것은 날로 커졌다. 뻔뻔스레 앞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척 하는가 하면 이제는 아이들과 친해진것도 확연히 눈에 보였다. 아이들은 경수의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고 종인에게 말을 곧잘 걸었다.
오세훈은 그러던지 말던지 앞에 앉아 잠자기 일쑤였고 백현은 아예 종인의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경수가 종인에게 시비거는 일이 없으니 경수와 종인의 마찰도 줄어들었다. 종인은 이제 경수를 없는사람 취급했다. 가끔, 경수가 숙제를 안 해 다니는 것을 아는지 경수에게 숙제를 건네는 것을 제외하고. 경수는 그것마저 웃으며 거절했다. 입학 초기와는 완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경수가 더 이상 종인을 괴롭히지 않는 것인지 오세훈 덕에 괴롭히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자주 의논하곤 했다.
" 경수야, 프린트물 받아. "
앞에서 건네오는 남자아이의 말에 경수가 어? 하며 프린트물을 받아들었다. 순간,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종인이 순식간에 경수의 눈을 피했다. 제 딴에는 스쳐지나가듯 본 것이라고 본 것이겠지만 눈이 마주쳤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경수가 미소지었다. 경수의 미소를 본 옆 짝꿍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앞을 쳐다봤다.
" 오늘 하루도 평온하겠다. "
즐겁게 중얼거리는 짝꿍 소리를 경수는 듣지 못했다.
혼자 남은 경수가 걱정이 됐는지 찬열은 매 시간마다 경수에게 찾아왔다. 경수는 백현이 떨어져 나가기 전과 다름없었다. 장난을 잘 쳤으며 아이들에게 고루 잘 해 줬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세훈과 변백현, 김종인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는 거였다. 가끔 종인이 거는 말을 제외하고 경수는 그 패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또 전과 다르게 자주 멍한 표정으로 사물을 쳐다봤다. 오늘도 경수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따금 웃으며 경수의 말에 맞장구쳤다. 경수가 하는 행동은 전과 다름 없었다. 그 사이에 느껴지는 미묘한 기류를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종인은 아이들 사이에 낀 경수를 쳐다보다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책상 위에 잔뜩 그여진 커터칼자국들이 보기에 흉했다.
말없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달라진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이 해가 뉘엿뉘엿 져 석식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할 때 쯤, 경수가 백현과 세훈과 함께 급식실로 향하려는 종인을 멈춰세웠다. 그 날 이후로 말도 걸지 않은 경수가 먼저 말을 걸어 오는 것이 당황스러운지 어? 하고 되묻던 종인이 이내 활짝 웃어보이며 경수의 부름에 응했다. 경수의 부름에 백현은 다소 긴장어린 표정을, 세훈은 꽤 날카로운 눈초리로 경수를 노려봤다. 경수는 아랑곳않고 종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시간 좀 내. 사과 할 게 있어서. "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말투는 명령조였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오만함이 경수를 싸고돌았다. 빤히 보이는 속에 종인은 진심으로 기쁘다는듯 웃어보이며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경수를 쳐다보는 세훈과 백현을 먼저 급식실로 보냈다. 따라와. 말을 남기고 경수가 앞서 걸었다. 종인은 말없이 경수의 뒤를 따랐다. 앞서 걸어가는 경수의 뒷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이는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종인을 뒤뜰까지 불러낸 경수가 체육창고 앞에 섰다. 종인은 경수를 응시했다.
" 나…. "
작게 벌어진 입술에 멍한 눈동자는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종인은 경수의 입술만 쳐다봤다. 없는 표정에서 움직이는 입술이 괴기스러웠다.
" 너 때문이야. "
" 응? "
" 다 너 때문에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잖아. "
경수의 눈가에 초점이 돌아온것 같다고 느낄 때 즈음, 종인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대로 된 초점이 아니었다. 동공이 잔뜩 흔들리고 있는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은 모양이었다. 이내 경수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주머니를 뒤적였다. 순간 종인이 직감했다. 저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썩 유쾌한 것이 아닐 거라는 것을. 종인이 골치아프다는듯 머리를 긁적였다. 경수가 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을 확인한 종인이 작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잭나이프. 어디서 저런 것을 구했는지 칼을 쥔 채로 경수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 죽여버릴거야. 내가,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잘 되고 있던 내 인생이…. "
잭나이프를 든 경수가 성큼성큼 다가오다 말고 고개를 쳐들어 종인을 노려봤다. 눈에 결의가 가득했다.
" 죽어버려. "
종인이 짧게 어..? 하고 신음을 내뱉은 순간 경수가 종인에게 달려들었다.
| 펜네임입닌다 |
드디어 시험이 끝났네요 흡.. 곧 팬픽이 마무리지어지는 가운데 댓글 남겨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짐승의 향기가 끝나면 2부로 찾아 뵐 생각입니다. 어.. 이제 곧 메일링을 해 드릴때가 다가오네요! 혹시 암호닉이 없으신 분들은 빨리빨리 신청해 주세요! 댓글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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