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가 세훈에게 맞은 그 날 이후로 종인은 세훈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갑작스레 왕따의 신분에서 상승해버린 종인을 어려워했다. 예전처럼 종인을 무시할래도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세훈 덕에 할 수 없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백현은 경수와의 일 이후로 세훈, 종인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울리는 척을 시작한 것이였다. 억지로 끌려다니며 겉으론 하하 거렸다. 남들이 보기엔 백현이 경수와 싸운이후 오세훈 김종인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자세히 본다면 셋의 관계는 미묘하게 틀어져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세훈과 김종인의 관계가. 사람들의 눈이 많은 곳에서 김종인은 여전히 모범생의 탈을 쓰고 친절했으며 성실했고 조용했다. 그저 필요한 말만 하며 예전처럼 지냈다. 그 옆을 오세훈이 지키며 서로를 믿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단지 그 것 뿐이었다면 백현은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김종인과 오세훈은 무언가 이상했다. 오세훈은 김종인을 편하게 대하다가도 어느 부분에선 철저할 만큼 김종인에게 복종했다. 마치 상하관계가 확실한 주인과 개 처럼.
"백현아. 밥 먹으러 가자."
"응? 어 그래."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종인과 그의 뒤를 따르는 세훈의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던 백현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런 백현을 경수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딱히 이렇다할 모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백현은 괜히 손톱을 갉작였다. 경수가 자신의 인생에 몇 없는 친한 친구이던가?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경수가 신경쓰였다. 속을 도저히 알수 없는 저 김종인이 경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백현이 사라지자 경수는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종대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ㅋㅋㅋㅋㅋ어젠 잘 들어갔냐?
오글거려 새꺄 ㅋㅋㅋㅋ
지랄은 오늘도 콜?
ㅇㅇ 당빠
경수는 하릴없이 종대와 계속 카톡을 하다 곧 몰려오는 졸음에 고개를 파묻었다. 요즘 들어 더욱 심해진 일탈이 자신의 심신을 지치게했다. 그렇지만 그 조차도 없었다면 경수는 이 삭막한 공간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김종인 따위때문에 모든게 망가져버렸다. 고작 그 새끼 따위에게. 이미 짓씹을대로 짓씹어 엉망인 입술이 또 한번 짓이겨졌다. 베어나온 핏물의 맛에 경수가 이마를 찌푸렸다. 급식을 먹으러 간 아이들에 의해 빈 교실은 조용히 삭막하기만 했다. 눈을 감아 잠을 취하려던 경수는 곧 자신쪽으로 다가오는 소리에 백현이 벌써 왔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발걸음은 경수의 앞자리로 향했다. 의자가 드르륵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에 성질이나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쳐들자 자신쪽으로 돌아앉아있는 김종인이 보였다.
"뭐야, 이 씨발새끼야."
"다짜고짜 욕이라니. 난 그저 니가 걱정되서."
걱정되서 라고 말하는 종인의 표정은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기분이 나빴다. 저 새끼의 표정은 항상 오만했다. 처음엔 그저 이기고싶은 남자의 심리욕구였다. 나른한 표정으로 그렇게 자신을 깔보듯한 시선. 그 시선에 열이 받아 건드렸다. 당장에 반응을 보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당하고만 있었다. 개살구구나. 겉 모습만 저렇게 오만해빠져보이는거야. 하고 즐겼다. 저런 새끼가 나보다 못났어. 잘나빠진 새끼가 나한테 당하고 살아. 이 생각이 경수를 항상 머리끝까지 우쭐한 쾌감으로 몰고갔다.
그런데, 설마 하면서도 조금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김종인이..김종인이..어쩌면 우위에서 손바닥 내려다보듯 자신을 가지고논것일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절대 아닐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생각은 하지도 말자. 마음을 먹어도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저 권태로운 표정이. 또래와 걸맞지 않은 여유로운 표정이. 자꾸만 경수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제게 손을 대려던 김종인이 생각났다. 소름이 돋아올랐다.
"걱정은 개뿔. 미친놈아 꺼져 꼴도보기싫으니까. 같잖은게."
"경수야, 너 입술에서 피나."
"내 말 안들려? 어디서 친한척이야 씹새끼야."
"흉 질 것 같은데.."
종인이 손을 뻗어 경수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손을 쳐내려 했지만 헛나갔다. 떨리는 손으로 종인의 손을잡아 힘주어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 했으나 종인의 손은 꿈쩍도 안 했다. 종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살살 어루만지던 경수의 입술을 응징이라도 하듯 세게 짓이겨 경수의 입술에 핏방울이 망울망울 고였다. 경수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여전히 손은 굳건하기만 했다. 붉은 선혈에 경수의 입술을 붉게 물들었다. 종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흉 지면 안될텐데.."
종인의 손은 여전히 굳건했다.
종인이 자리를 비운사이 어색함이 세훈과 백현을 감돌았다. 사실상 종인이 있으나 없으나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둘 만 남을적마다 백현은 곤란했다. 저 오세훈은 조용한 성격이였다. 평소 백현이 본 세훈은 그랬지만 그 날 경수에게 드러낸 모습은 절대 평소의 그가 아니라 생각될 만큼 날카로웠고 다혈질이었다. 그래서 더욱 의심됬다. 김종인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믿어의심치 않을 사실이었고 그 결과 오세훈에게 김종인이 그런 반응을 이끌어낼만큼 소중하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대체 무슨 사이일까. 분명 작년이나 제작년, 늘 종인을 괴롭히던 경수였지만 오세훈은 신경쓰지 않았었다. 물론 학교를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었지만서도 갑작스레 진전되보이는, 아니 어쩌면 서로 입을 맞춰둔걸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갑작스레 서로의 관계를 슬며시 드러낸 종인과 세훈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긴 백현의 수저질이 점점 느려졌다.
"넌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
"뭐?"
"관찰력도 좋고 예민해. 제법 돌아가는 머리도 있고."
"밥 먹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더 조심해. 깊게 생각하지 말란소리야. 도경수는 똑똑해질필요가 있지만 넌 멍청해질필요가있어."
넌 멍청해질필요가 있어. 그 말은 즉슨 깊게 생각하지마라. 더 이상은 자신과 김종인의 관계를 알려들지 마라. 이런 뜻인가. 백현의 표정이 모호하게 변하자 세훈은 설핏 웃으며 역시 눈치는 좋아 넌. 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일어서 급식실을 벗어나는 세훈에 백현은 자신도 수저를 내려노았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김종인이나 오세훈이나 징그럽게도 인간미가 없었다. 징그럽게도.
저 만치 앞서있는 세훈을 향해 바삐걸음을 옮겼다. 워낙 장신인지라 걸음도 빠른모양이었다. 종종걸음으로 가까스레 세훈을 따라잡은 백현을 무심하게 흘낏 보고 다시 고개를 돌린 세훈이 교실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이 씨발새끼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경수의 욕지껄이가 들렸다. 오세훈은 빠른 반응을 보였다. 당장에 뛰쳐가 교실문을 열어젖히는 세훈에 덩달아 백현도 뛰어 교실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안은 난장판이었다. 경수의 자리 주위론 책걸상이 모조리 엎어져있었고 종인은 저만치 나가떨어져있었다. 오세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빠르게 걸음을 옮겨 경수에게로 향하는 오세훈은 말릴새도 없이 경수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순간 경수와 눈을 마주친 백현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김종인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어느새 일어서 김종인의 표정은 건조했지만 누가 볼새라 금새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변했다.
"세훈아, 오세훈."
어리버리하게 오세훈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는 김종인의 얼굴은 싸움에 어쩔줄을 몰라 안절부절 하는 듯 보였지만 세훈의 어깨를 잡은 손에 도드라지게 돋은 힘줄은 김종인의 본래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세훈이 경수의 멱살을 풀고 뒤로 물러서자 종인이 억지로 입술을 끌어올리는 듯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경수에게 말했다.
"경수야. 미안. 기분나빴다면 말하지 그랬어."
"이..이 미친새끼! 욕도 못 알아먹어? 내가 너 싫어하는거 몰라? 니 존재 자체가 기분나빠 씨발아!"
분에 못이겨 토해내듯 내뱉는 경수였다. 경수는 정신없이 종인에게 욕설을 했다. 오세훈의 얼굴이 주체할수 없을만큼 어두워졌으나 반면에 종인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이내 경수가 정신을 차리고 종인을 바라봤을때 종인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손틈새로 보이는 입술이 피식 피식 공기를 내뱉었다. 경수는 순간 멍해졌다. 미친새끼. 미친새끼였다. 자신이 알던 멍청하게 당하던 김종인이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불길한 예감이 더 깊숙히 마음 한 구석을 찔렀다. 김종인이 이상했다.
신난 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가는 종인의 뒤를 세훈이 따라밟으며 급하게 말을 붙였다. 대체 무슨생각이야?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종인이 멈춰섰다. 뒤돌아 세훈의 얼굴을 뚫어저라 내려다 보던 종인이 기분좋다는 듯 웃어보였다.
"요즘 내가 정말 기분이 좋아."
"도경수 그 새끼 좆나 건방져 감히 누구한ㅌ.."
"세훈아. 시끄러워."
경수는. 좆나 귀엽단말이야.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게 참을 수 없을만큼 귀여워. 멋도 모르는 애새끼를 보는 기분이랄까. 애새끼는 싫지만 도경수는 흥미로워.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종인에 세훈은 한숨을 내쉬며 김종인 오늘 차 불렀어 차 타고가. 하며 뒤를 쫓았다.
EPP입니다. |
안녕하세요 EPP입니다. 정말 오랜만이죠? 그 동안 연재텀이 좀 느려졌었네요..허허 이제 슬슬 전개가 빨라질거에요. 카디가 언제 행쇼하냐고 기다리시는 분들 많으실텐데 보시다시피 짐향은 좀 어두침침한 소설입니닿ㅎ... 그래도 꼭 행쇼로 마무리 지을테니 기다려주세요! 짐향은 1부와 2부로 나눌 예정이기때문에 1부는 10편으로 마무리 지을것 같아요 2부는 좀 더 많은 횟수로 마무리 지어질 계획이구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주시면 정말감사드립니닷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려요! 그리고 펜네임님 화이팅입니다. 우리 잘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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