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닫고 방 안을 한번 휘이 둘러보았다. 건의 어린 조카들이 썼던 책상 두 개가 이마를 맞대 놓여 있고, 귀퉁이 장식장에는 거실에서 본 것과 같은 구닥다리 기념품들이 몇 점 진열돼 있었다. 동남아풍의 향로나 촛대 같은 것, 장난감처럼 보이는 끝이 뭉툭한 화살과 활, 낡아가는 뱃사람 모자 따위…. 의자에 조용히 앉아 그녀는 방의 느낌에 적응되기를 기다렸다. 생경한 풍경이지만 불편한 마음은 아니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 가운데서 건의 시집을 발견했다.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시집이지만 여기서 만나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행간 너머 그의 체취를 더 깊게 느끼는 기분. 페이지를 펼치는데, 책날개 속지에 사인해놓은 건의 필체가 눈에 띄었다. 시 같기도 하고 메모 같기도 한. 넌, 늘 춘향 같은 마음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가만히 그의 필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진솔은 마음이 이상해졌다. 바늘에 찔린 것처럼 심장도 따끔거렸다. 받는 사람의 이름이 없는 짧은 편지. 아마도, 건네주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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