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편 오기전에 잠깐 보고가는 단편...! 예전글 리네이밍입니당 다른곳에서 다른이름으로 보셔도 쉿!
※ 치환기능에 본인의 이름이 아닌 세븐틴 멤버의 이름을 넣어주세요
수녕이로 바꿨었지만 다 잘 어울리길래 (쭈굴)
줏대가 없어서 결국 독자분들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습니닿ㅎㅎ
(추천 : 최승철, 전원우, 이지훈, 부승관, 권순영)
눈 떠보니, 10시였다. 망했다. 잠수탈까.
자각
W. 뿌라스
퍼드득 잠에서 깨어나 내 얼굴 아래 깔려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쓰러져 잠들기 전 저장버튼을 눌렀었는지, 그나마 파일은 멀쩡한 상태였다. 그런 정신력이면, 애초에 잠들지 않는게 더 좋았을 텐데.
아무튼, 입가의 침을 슥슥 닦고 노트북 위에 지저분하게 묻은 커피자국도 말끔히 닦아냈다. 방 안을 슥 둘러보니 총체적 난국이었다. 근 일주일여를 원고만 붙잡고 사니 사람이 돼지가 되지는 못해도 사람 사는 곳이 돼지우리는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하, 열반에 오른 듯한 느낌에 크게 한숨을 쉬다가, 입에 감도는 역한 냄새에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칫솔을 들고 나와 몽롱한 정신으로 열심히 이를 닦아냈다. 그러면서 노트북 옆에 쌓여있던 종이컵을 차곡차곡 모아 쓰레기통에 한번에 던져놓았다. 며칠 밤을 커피와 함께 보냈더니 입 안에서 커피내가 아주 진동을 한다. 진동?-
그래, 아까부터 윙윙대는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아마 화장실 캐비넷 안에 있을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였다. 작업중에는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우리 집에서 제일 추운 화장실에 줄로 꽁꽁 묶어서 쳐박아놨지. 그러면 뭐하나. 병신같게도 이는 본래 의도와 다르게 덜덜 떨며 화장실에서 몇분이고 몇시간이고 내 소설의 반응을 서치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으니, 사실 하나마나 한 조치였다. 야광별, 이질감, 통증 뭐 이런 류의 반응을 살피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으니.
수신 : 세븐틴
예상대로 진동의 출처는 핸드폰이었고, 수신자는 세븐틴이었다. 상단에 떠 있는 숫자는 분명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난지가 한참이고, 아마 븐틴이는 이미 총편집장에게 제대로 깨진 뒤일 것이다. 담당 작가 관리를 그 정도 밖에 못하냐며, 짤리고 싶냐며 갖은 욕을 들어먹었겠지. 괜히 미안해진다. 아니, 내 감정이 어떻든 간에 나는 당장 잠수를 타느냐 마느냐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물을 머금고 핸드폰과 동화되어 덜덜 떠는 캐비넷 안을 빤히 들여다보며 고민했다. 받아, 말아? 받기로 결심하곤 후련하게 물을 뱉었다. 아, 그 사이에 전화가 뚝 끊겼다. 그제서야 바탕화면에 부재중 전화 수신 현황이 떠올랐다.
부재중 : 세븐틴 - 17통
아, 이거 일났다- 나름 고민하던 것이 쓸 데 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칫솔을 제 자리에 놓아두기도 전, 초인종이 울렸다. 그것도 여러번.
이번엔 열까 말까하는 쓸 데 없는 고민 없이 현관으로 달려나가 문을 열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내 담당 편집장인 븐틴이는 내가 이 시간이면 집에 있을 거란걸 확신하고 있을 터였다. 내 생활 패턴을 전부 꿰고 있는건 우리 엄마 아빠도 아니고 내 남동생도 아닌 그 못지 않은 오랜시간을 함께 해온 븐틴이었다. 내가 내내 탱자탱자 놀다가 마감 일주일 전쯤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을 담당 편집장이 되기 전부터 알고 있던 븐틴이라 마감이 꽤 남은 시점부터 독촉을 해와 미칠 노릇이다. 내 전 편집장이 나 때문에 고생하던걸 실시간으로 지켜봤으니, 나를 맡게 된 이상 독촉은 필수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븐틴이는 내가 집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잉여라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전에 찜질방으로 도망갔을 때도 5분만에 잡아낸 것을 보면, 부재중이 10통이상 걸려온 시점부터 나는 이미 독안에 든 쥐였다. 무려 10년지기 친구인데 내 도주경로 정도를 눈치 못챌 짬밥은 아니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화를 삭이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븐틴이 눈에 확 들어왔다. 동시에, 핸드폰을 꼭 쥔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까지도. 븐틴이는 잘근잘근 입술을 씹다가 번뜩 눈을 뜨더니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 눈빛에 겁이 나 안녕히 계세요- 하고 슬그머니 도로 문을 닫으려는데, 븐틴이의 손이 휙 닫히려는 문을 덥석 잡고 열었다. 야, 손 다칠 뻔했잖아!- 하고 새된 비명이 터져나오려는데, 내가 지금 그걸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븐틴이는 우뚝 선 나를 지나쳐 현관으로 들어와선 언제나처럼 내 슬리퍼 하나를 신발장에서 꺼내 문 사이에 끼워놓았다. 저번에는 오른쪽 슬리퍼였는데 이번엔 왼쪽이네, 하고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븐틴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지은 죄가 있어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데, 그럴 생각도 말라는 듯 븐틴이는 내 양 어깨를 꼭 붙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작가님, 장난해?"
"음.... 아니... 방금 일어났어."
"오늘이 며칠이지?"
"17일..."
"탈고 기한은?"
"17일 오전 9시...."
"아. 다행이네. 아예 까먹은거였으면 몇대 쥐어박을 뻔 했잖아."
애써 웃으며 븐틴이는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븐틴답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이 간질거려 괜히 고개를 휘휘 저어 털어냈다. 븐틴이는 별 불쾌한 기색 없이 내 머리에서 손을 떼더니 곧 몸을 돌려 노트북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커피 쓰레기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던 내 침대에 엎드려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기에 나도 옆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엎드려 븐틴이 보는 부분을 시선으로 따라갔다.
오늘까지, 정확히 말하면 약 1시간 20분 전까지 탈고를 약속했던 원고는 나름 회심의 작품인 소꿉친구 로맨스. 븐틴이 나를 따라서 근무하고 있는 출판사의 로맨스 라인업에 꼭 알맞게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항상 어두운 글만 써오던 나라, 라인업에 지원했을 때 븐틴이 꽤 황당해했더라지. 네가 여기 참여하겠다고?- 만류에도 내가 뜻을 굽히지 않으니, 그럼 한 번 해보라며 건성으로 말하더니 표현과는 다르게 시놉시스부터 꽤 흥미를 가지고 읽어온 븐틴이었다. 전 편집장과는 다르게 내용에 크게 관여하지 않던 븐틴이 넌지시 주인공들의 미래를 물어올 만큼. 그렇게 븐틴이 기대하고, 독자들도 기대하는 이번 작품이지만 사실 큰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항상 그랬듯 마감 일주일 이전에 울린 독촉 전화같은건 싹 무시해주고 7일 전부터 꼬박꼬박 븐틴이에게 현황을 보내다가 어제 후반부 원고까지도 송신 했는데, 그 뒷 내용이 전혀 써지지가 않는다는 게 바로 문제. 줄곧 진지한 눈으로 원고를 살피던 븐틴이는, 이야기가 애매하게 끊기는 지점에서 입술을 꾹 깨물고는 찌푸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아, 그냥 몇대 쥐어박아야겠다."
"어우 야..."
"솔직히 말해봐 너. 나 혼나는 거 즐기지?"
턱을 잡고 내 고개를 억지로 끌어와서는 눈을 보면서 응? 응? 거리며 말 하는데, 오랜만에 가까이서 본 눈이 너무 예뻐서 숨이 턱 막혔다. 새삼 잘생겼다. 10년이란 시간동안 무뎌졌나. 눈, 코, 입 찬찬히 뜯어보니 세상에 이렇게 생긴 이런 남자도 없었다. 생긴 것만 그런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라 그 동안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븐틴이는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녀석이었다. 나랑 어딜 가든 해가 넘어가는 순간 집 문 앞까지 꼭 데려다 주는 거라든지, 아니면 아까 전 슬리퍼 건이라든지. 븐틴이 내 담당 편집장이 되었던 1년 전부터 꾸준히 그렇게 슬리퍼를 두어왔는데 계속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가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독자들과 자유문답을 하다가 여자를 궁금하게 하는 남자의 독특한 행동에 대한 질문이 들어와 생각난 김에 이걸 적어봤는데, 한 독자가 답글을 남겨줬다. 남여 둘만 한 방에 있을 때 스스로의 행동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그러는 거라고. 답글을 읽는데 어찌나 간질거리던지. 언젠가 소재로 써먹어야겠다고 끄적거려뒀다. 친구 하나는 정말 잘 뒀다고 생각한다. 이런 남자가 어디 있겠냐고.
생각해보면, 하나 존재하기는 한다. 내 소설속의 남자.
누구에게도 밝히지는 않았다만 소설 속 남자, 종현의 모델은 븐틴이었다. 외모나 성격, 주변 관계나 자잘한 설정까지 븐틴을 쏙 빼닮았는데, 우습게도 본인은 눈치를 못 채는 듯 했다. 소설의 전반을 총괄하는 븐틴이라면 보자마자 바로 야, 이거 나냐?- 하면서 질문을 던져 왔을 텐데, 그러질 않는 걸 보면. 사실 본인은 본인이 잘 안다고들 하지만, 스스로를 면밀히 관찰하려 하지 않는 인간의 특성상, 본인보다는 본인과 오래 시간을 보낸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랬다.
"왜 마무리를 못 지어 항상. 응?"
"뒷 내용이 생각이 안 나는데 어떡해."
"뭐야. 여주랑 종현이랑 둘이 잘 되고 끝내면 되는거 아니야? 뭘 고민을 해."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잔뜩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생각해봐. 계기가 있어야지. 방금 전까지 소꿉친구였던 둘이 갑자기 왜 사귀는데? 종현이는 여주를 좋아하는데, 여주는 그걸 모르잖아. 종현이는 여주한테 표현도 안하는데다가 여주는 종현이를 계속 신경쓰면서도 자기가 종현이를 좋아한다는 자각이 없고. 하, 나 왜이렇게 얘네들 답답이로 만들었을까."
한숨을 푹 내쉬고 븐틴이 잡고 있던 턱의 손을 떼내고 고개를 돌려 모니터 속 글자에 집중했다. 여주의 종현이에 대한 인식을 어떤 계기로 바꾸는 게 좋을까, 하고 진지한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야."
"어 왜."
"나 봐봐."
씨이- 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븐틴이의 얼굴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 숨을 훅 들이쉬었다. 어, 그게, 왜, 불렀는데- 입을 뻐끔거리자 븐틴이는 대답 없이 쪽 하고 내 입술 위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1초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순간 와닿은 따끈한 온도가 내 입술 위에 머물러 있었다.
당황해서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까, 해사하게 웃던 븐틴이는 다시 한번 입술을 가져다댔다. 븐틴이 눈을 감기에 따라 눈을 감았다. 그저 입술을 부딪히는 단순한 행동일 뿐임에도, 마음 속 견고한 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10년 동안 지켜온 친구라는 이름의 벽이.
예고없이 이루어진 짧은 입맞춤 후에도 븐틴이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보내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걸까, 무슨 의도였을까 하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들을 싹 지워버린 하나의 결론이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각자의 복잡한 생각 속에서 어색한 정적이 오가고, 븐틴이가 모니터를 힐끔 눈짓으로 가리켰다.
"종현이는 표현했어. 이러면 어때?"
"...."
종현이. 알고 있었구나, 너.
잠시 븐틴을 쳐다보다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결론은 맞았다.
여주는 마음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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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라스 사담 |
사담할게 딱히 없네용 암호닉 이번엔 당당히 달구 왔습니다 ㅠㅠㅠ 하지만 다들 사라지셨구... (우울 에잇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전부 사랑해요!! 바슾도 오늘안에 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