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현 - 헤어지는 방법
Paraller lines
"가, 성용아. 나... 못하겠어. 이제야 오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봐. 절대 못 잊을것 같아. 그냥... 내 마음에라도 둘래. 우리 그만하자"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말하며 성용이를 올려다 봤다. 의외로 성용이는 담담했다. 화난 표정도, 슬픈 표정도 아닌 그냥 무표정. 아무 감정 없는 표정.
내가 그랬던것 처럼, 아주 매정했던것 처럼 성용이도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주 느릿한 걸음으로 응급실을 나갔다.
그 느린 걸음으로 성용이가 응급실을 나갈 동안 빤히 바라봤다. 그 넓은 어깨가 축 처져서는 느리고, 느리고, 또 느린 그 걸음을.
"아직도 내 좋아하나"
목이 잠긴 목소리로 불쑥 말하는 그.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면 여전히 감은 두 눈 사이로 눈물을 흘린다.
"힘들어서해서 놓아줬도만 와 더 힘들어 하고 있노. 3년간 그리 살았나"
"오빠..."
"내가.. 내가 무슨 맴으로 니 놓아줬는지 아나. 내는 진짜 니 생각만 하고 놓아줬다. 힘들대서 힘들지 말라고 놓아줬고 질질 짜서 이제 울지 말라고 놔줬다.
근데 니는 뭐꼬. 내 아픈거 꾹꾹 참아가믄서 니 놔줬는데 니는 뭐꼬. 이제는 내가 잡아줄 수도 없는데 어쩔기가"
"말했잖아. 마음에라도 담아둘거라고. 오빤... 오빤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라고. 나 같은거 신경 쓰지 말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내 손목을 잡음과 동시에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여자친구인것 같은데 받아. 나 갈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응급실을 나서는데 그의 통화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병원이다, 아이다 많이 안다쳤다, 괜찮다 안카나, 천천히 와라.
나한테만 해주는 말인줄 알았다. 나한테만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주건줄 알았다. 나만... 나만 그에게 그런 말 듣는 줄 알았다.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눈물. 닦는걸 포기하고 그냥 흘리기로 했다. 마침 병원 앞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 버스에 타서 의자에 털썩 앉아 창 밖만 바라봤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 없다. 나 때문에 힘들어할 그와 성용이에게 미안하다.
이제와서 내 마음을 알게된 그에게나, 이제야 마음 다 잡은줄 알았던 성용이에게나 나는 나쁜 사람일 뿐이다.
햇빛이 쨍쨍 내비치는 좋은 가을 날씨. 가을 답게 하늘은 높다.. 파랗고. 열려진 창문 새로 솔솔 들어오는 가을 바람이 제법 차다. 이상하게도.. 해가 쨍쩅한데 바람이 차다.
"저... 원정 경기에 못 갈것 같아요. 제가 일이 좀 생겨서요.."
"제가 경험이 없어서.... 괜찮을까요?"
"그러면서 다 배우는거죠 뭐.. 죄송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위로랍시고 내뱉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선 뒤를 돌아 도망치듯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가 미루고 미뤄뒀던 차트들을 다른 팀닥터가 다 검토한건지 책꽂이에 잘 정리되어 꽂혀있다. 바보 처럼 할 일도 제대로 못한다.
한숨을 쉬며 책상을 바라봤다. 자주 쓰는 펜이 굴러다니고 탁상 시계의 초침이 똑딱이면서 돌아간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창문을 통과해 사무실에 길게 드러웠다. 손을 가져다 대보면 검은 그림자가 진다.
마치 내가 있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똑같이 움직이는 그림자. 따뜻한 기운이 손에 닿는다.
"애 처럼 뭐하고 있어"
소리도, 인기척도 없이 들어온 성용이가 평소 처럼 털썩하고 간이 침대에 앉는다. 그럼 나는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어색하게 말을 건넨다.
"부상 때문에.. 왔어?"
"어"
짧은 성용이의 대답, 날 꿰뚫어 보는 듯한 성용이의 눈빛에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내리 숙였다.
"고개는 왜... 숙여"
"미안해서"
"........니가 뭘"
"다"
여전히 초침이 똑딱이는 사무실 안에서 성용이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듯 숨도 함께 멈추게 된다.
나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숨이 막히는 그 침묵을 성용이가 먼저 깼다.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약 다 썼어. 이제 거의 다 나은것 같아"
"영국... 언제 들어가?"
"평가전 끝나면 들어가겠지"
진열장에서 지난번에 줬던 약을 성용이에게 건냈다. 아무 말 없이 약을 받아든 성용이는 뚜벅 뚜벅 걸어 사무실을 나가려 한다.
"성용아..!!"
뚝- 하고 멈춘 성용이의 발걸음. 조금 뜸을 들이고 있는 날 기다리는듯 성용이는 그 몇 초를 가만히 서 있었다.
"미안해. 우는것도 이제 미안해서 못 울겠다.. 병원에서 한 말, 진심이야. 미안해"
"..........."
"성용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너에게 줬던 내 마음, 니 말 하나 하나에 받았던 감정 다 정리 못해. 너 혼자 정리해"
나는 염치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성용이에게 용서 받기를, 성용이가 나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를 원했던걸까? 정말...?
쾅-!! 큰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그에게나 성용이에게나 이기적이다. 난 끝까지 내 생각만 한다.
입으로는 그를 잊고 싶다고 하면서도 애초 부터 난 그를 잊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를 생각하는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원정 경기 같이 가세요? 같이 같으면 좋겠는데-"
잠시 쉬는 시간인 그라운드. 얼마 전 당한 다리 부상에서 겨우 헤어나온 선수 한 명의 다리를 요리조리 살피는데 대뜸 그 선수가 나에게 원정 경기를 같이 가느냐 묻는다.
곱상한 외모 때문에 소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이 선수.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내가 당황한 표정을 내비치면 안될것 같아 그냥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성용이와 그가 동시에 날 바라보는게 느껴진다. 굳어지려는 입가를 애써 끌어올리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이- 같이 가실거죠? 네? 같이 가요-"
"... 저는 이번에 안가기로 했어요"
깔아앉은 내 목소리에 그 선수는 당황했는지 아.. 그래요.. 하고 만다. 딱히 의도한건 아니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원정 경기를 앞둔 한국에서의 마지막 훈련. 성용이를 보는것도, 그를 보는것도 오늘도 마지막이다. 둘 중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조금 기울어진 오후의 해는 아침 보다 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감독님의 집합하라는 말에 선수들이 하나 둘 제자리르 찾아간다.
난 애써 성용이와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응급상자를 정리하는걸 도우려는듯 다가와 한 쪽 무릎을 꿇은 성용이가 붕대를 상자 안에 넣는다.
"나 때문에, 형 때문에 그러는거면 그럴 필요 없어"
"그런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는 그냥 주영이 형 마음에 담아두면 되는거고 나는 널 마음에 담아두면 되는거야. 다를거 없어"
응급상자에 차곡차곡 도구를 넣은 성용이는 자크 까지 잠궈주곤 일어났다. 비록 짧은 대화지만 우린 대화하는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응급상자를 들고 일어섰다. 자질구레한게 담긴 응급상자가 무거운 만큼 내 마음도, 내 기분도 무겁다. 터덜터덜 뒤돌아 걸어가는 성용이의 뒷모습을 본다.
그리고 성용이 보다 조금 더 앞서 걸어가는 그. 못난 나를 질책하며 그라운드를 등지고 돌아섰다. 나오려는 눈물을 또 꾹꾹 눌러 참는다.
Thank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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