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봉은 뿌옇게 김이 살짝 서린 유리창에 살짝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응시했다. 어젯밤부터 비가 슬슬 내리더니, 오늘 아침까지 내리는 모양이다.
고급 세단 안의 조용함과 적막함이 칠봉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슬슬 낯 익은 검은 지붕과 높은 회색의 담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에 칠봉은 손에 들고 있던 애꿎은 가방끈만 세게 쥐었다.
"아가씨, 다 왔습니다"
"!...."
얼마나 딴 생각에 젖어있었던 건지, 김비서 아저씨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저 인간이 칠봉을 아가씨라고 부르며 뒷 좌석의 문을 열어주러 오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확실히 있는 모양이다.
'아니 ...아가씨라 부를거면 얼음처럼 굳어있는 표정이나 푸시던가요'
4년 전 그녀를 그렇게 모질게도 쫓아냈으면서 아니 그 이전에는 칠봉을 없는 사람 취급해왔으면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 표정은 꾸준히 구겨져있지만, 굉장히 예의바른 김 비서 아저씨의 행동은 그녀를 의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몇 년 만에 왔는데도 이 집은 그 동안의 세월을 비웃듯 낡아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보는 사람은 거만하다고 느낄 정도로 높은 담벼락에는 손 때 하나 끼지 않았다. 정말 달라진 것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아침의 적막을 깨듯이 집 앞은 소란스러웠다.
조금 이른 시간부터 이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검은 양복을 입고 그 커다란 집의 대문 앞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이사진 같아 보이는 아저씨들 앞에서서 걷고 있는 젊은 청년은....
조금 낯설지만 분명했다. '그'다.
"어?"
"오빠? 승철 오빠..."
'승진 소식은 예전에 듣긴 들었는데... '
몰라볼 뻔 했다. 저게 그 예전의
맨날 싸돌아 다니긴 했어도 머리 하나 좋은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지 내가 한 번에 알아본 것이 용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수트를 빼 입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시계를 연신 쳐다보는 잘생겼지만 살짝 신경질적인 인상을 주는 청년을 보니
정말 내가 예전에 알던 최승철이 맞나 싶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항상 달고다니던 멍이나 깁스, 피어싱, 엉망인 교복이었는데
정갈하게 차려입은 맞춤 수트나 고급 커프스 단정한 넥타이를 갖춰 입은 그는 영락 없는 젊은 사회인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예전에는 정말 잘 웃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 전무님, 오랜만이에요. 저 기억하세요? 김칠봉..."
"...정말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어요?"
"그럼.. 넌 잘 지냈어? 아 일단 여기서 서 있지 말고 들어가지"
나의 기어들어가는 안무를 묻는 인사에 말로 대답하기보다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를 보자 심장이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다.
'야! 넌 바보냐? 저 인간들이 너 맨날 괴롭히는데
넌 왜 가서 따지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어? 아 ... 진짜... 보는 내가 더 짜증나... 신경쓰인다고'
이제 처음 보는 여자아이에게 대뜸 바보냐고 묻던 ,
자기와 관련도 없는 여자아이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고 자기 일처럼 화를 내던 ,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잘 웃었던
소년은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것 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 쪽이 아렸다.
그를 따라 들어간 저택의 가장 안쪽 방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직계 가족들이 하얀 병상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호흡기를 매단 회장님이 계셨다. 아니 내 아버지라 해야하나?
반 년 전부터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해 여러 신문사에서 신나게 찌라시를 뿌려대는데도
회사에서 대응을 안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 처음보지만 알 수 있었다.
수성그룹의 김수연 회장은 지금 임종을 맞고 있었고. 이건 유가족들이 유언을 듣는 현장이었다.
그 현장에 나를 불러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건 또 뭐야?"
눈물 바다인 침상에 차마 다가가진 못한 채 방 한쪽 귀퉁이에서 엉거주춤 있으니 뒤에서 익숙하고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이 집을 떠나던 그 날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다시는 듣지 않길 원했던 목소리였는데
낮으면서 장난끼가 여려있는 목소리가 신경 하나하나를 얽매어오는 것 같았다.
"아주 아버지 돌아가실 때 되니까 집 안에 별 게 다 모여드네... 이 여자는 누가 불러온거야 대체"
"돈 냄새 맡고 몰려드는 이리떼라 해야하나? 아니면..."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내 얼굴을 한 번 훑어보더니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한 번 쳤다.
정말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피를 말리는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새끼 여우?"
"김민규 그쯤 해둬. 회장님 앞이야 "
"형은 아직도 얘 편이나 들고... 언제까지 그럴거야?"
"도련님 그만하시죠. 보는 눈이 많습니다."
"승철 형..."
갑자기 김민규의 말을 막아선 승철 오빠 덕분에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승철오빠를 바라보고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박 변호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김칠봉양?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이리 오세요"
순간 곳곳에서 꽂히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서둘러 다가갔다.
이 집에 있었을 때도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봤던 적은 손에 꼽지만, 호흡기를 꽂은 채 볼이 쑥 패인 김 회장은 그 어떤 때보다도 수척해져있었다.
"칠봉양 더 가까이 오시죠.. 회장님이 시력이 나빠지져서 칠봉양을 알아보시지 못하십니다"
"회장...님..."
그야말로 산송장같은 모습의 회장님은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거친 숨을 내쉬고 계셨다.
나에겐 한 번도 웃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은, 남보다도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사람마저 떠나고 가면 나는 정말 천상 고아다..
"미안....하구나.... 내 ... 딸.... "
호흡기를 꽂은 채 못 믿겠는 말만 하는 회장님의 입술만을 쳐다보고 있는데 눈에 눈물이 맺혔다.
'회장님은... 아버지는 이제 정말 곧 돌아가신다...'
"지금까지... 고생만 한 ... 내 딸 김칠봉을... 커헉... 나의 친자로 인정.... 인정하며
기업 계승권 또한... 인정한다....."
"회장님!!!"
/"여보!!!"
순간 곳 곳에서 큰 고함소리가 터져나왔지만 회장님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박 변호사 아저씨가 유언을 빠르게 받아적는 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수성 통신을 김칠봉에게 상속하며.... 수성 전자의 지분 반을 김칠봉에게 나머지는 김민규에게 증여한다....."
"회장님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전자 지분의 반이라니요!!!! 다시 제고해주십시오"
"회장님!! 회장님...도련님이 계신데"
갑자기 사방에서 다급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 아저씨와 주치의가 환자 앞이라며 진정을 시키기 위해 나섰지만
다들 듣지도 않은 채로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귀까지 먹먹하다.
머리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방금 들은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거야?"
김민규, 그도 나와같은 상태였는지 인상을 살짝 구긴채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옆얼굴이 반 쪽밖에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느껴졌다. 이러려고 이 곳에 온 건 아니었는데. 정말 아니었는데
두 발로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자꾸만 풀렸다.
"칠봉아 이리와 ....!"
갑자기 뒤에서 허리를 굳건하게 받쳐주는 손이 있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에"
승철오빠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 큰 눈이 당혹감으로 젖어있었다.
오빠와 한 동안 시선이 마주쳤지만 둘 모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이건...
그는 칠봉이 입을 떼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는 것을 느꼈는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전까지 자신도 당황한 눈빛을 보냈으면서.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어른 행세 하려는 그가 어이없었다.
"오빠... 저는... 정말로 이럴려고 돌아온 게 아니에요... 아시죠?
저는 ... 저는 정말"
"됐어 됐어... 그만"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진 방 안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것처럼 느끼는 나를 다독여주는 그가 어느때보다도 고마웠다.
내 어깨에 올려져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안 보이려고 노력은 해도 그도 역시 긴장한 모양이다.
"회장님은 ... 끝까지 칠봉이에게는 짐만 주고 가시네요"
혼잣말을 하며 날 내려다보며 살짝 웃는 그에게서 소년 시절의 그가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 아마도 작가의 말 |
와 진짜 오랜만에 글 쓰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써서 민망하기도 하고... ㅎㅎㅎㅎㅎㅎ유학을 와서 바빠서 글이고 뭐고 쓸 겨를이 없다고는 하지만 참... 얼마만에 글을 쓰는 건지 모르겠읍니다ㅠㅠ... 그래서 오랜만에 쓴 글이라고는 뭐 그냥 클리셰에 클리셰에 클리셰 범벅떡칠한 글 나부랭이구... 비루하네요.... 하지만 오랜만에 글 올렸다는 거 자체가 참 기쁩니다 ㅎㅎㅎㅎ 네 솔직히 갑자기 이런걸 쓴건 도련님 민규가 ... 보고싶어서... 그리고... 승철이 수트입은게 눈 앞에 자꾸 아른거려서인 건 비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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