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상황은 무엇이라 표현하기 애매모호한 상황이였다. 경수는 눈을 꿈뻑꿈뻑 거리며 그 상황을 관망하기만 했다. 김종인이 자신을 물어뜯고 있었다. 분명 저기 자신을 물어뜯고 있는 짐승은 김종인이었다. 모양새는 짐승이었지만 경수는 저 것이 김종인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제 삼자가 되어 경수는 물어뜯겨 갈기갈기 찢기는 자신을 보았다. 끔찍했다.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굳어버린 석고마냥 돌아가지 않았다. 꼼짝 없이 그 광경을 망막에 담아야했다. 어느 덧 짐승이 자신에게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경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마주친 얼굴이 찢어지듯 씨익 웃어보였다. 포만감에 가득 차 보였다.
"으윽!"
흐윽, 경수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왜 김종인 따위가 내 꿈에. 경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슴프레한 새벽이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갈증이 느껴졌다. 물을 마시려 거실로 나갔다. 한심하기 짝이없는 꿈이었다. 자꾸만 머릿속에선 김종인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저런 꿈을 꾼 것이겠지. 왜 어째서 그 짐승이 당연히 김종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신경쓰였지만 재수없는 새끼 생각은 그만하자. 쓸데없는 정신력 소모이다. 경수는 고개를 휘휘젓곤 찬물을 위장으로 냅다 들이부었다. 속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지겹기 짝이없는 부모님의 무관심에 대한 상처도 오세훈에게 얻어터져 상한 자존심도 재수없는 김종인에 대한 증오도 잠시간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경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많은 저에겐 수면이 필요했다.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필이면 늦잠을 자 버렸다. 경수는 이게 다 김종인 때문이라고 또 책임을 전가해버렸다. 어제 놓고간 가방이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어차피 빈 가방이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쓰잘데기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안줄부절하는 백현이 보였다. 어제의 그 답장 이후로 백현은 연락이 없었었다. 경수는 싸늘한 표정으로 백현을 무시하곤 앉아 여느때 처럼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이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듣기 싫었다. 일어나 이어폰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경수야."
"뭐."
저의 싸늘한 대답에 백현이 우물쭈물하는 것이 보였지만 친절히 대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백현이 그 상황에서 세훈을 어떻게 해줬어야된다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백현에게 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나름 삼년이라는 시간동안 친하게 지내오던 친구인데 상황을 피해버렸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 내내 우물쭈물 하던 백현이 결심을 한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경수야. 이따가 점심시간에 따로 얘기 좀 하자. 경수가 신경질 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마친 백현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경수는 양 귀에 이어폰을 끼고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교실의 소음이 묻혔다. 백현은 그런 경수에게 힐끗 시선을 주곤 앞을 바라보았다. 거의 맨 앞 자리에 앉아있는 김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김종인은 이미 한참 전 부터 백현을 보고 있던듯 했다. 김종인이 입술을 달싹이며 입모양으로 벙긋거렸다.
"너."
"멍청하게 굴지마."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리는 김종인에 백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아이들을 살폈지만 김종인을 보고있던 사람은 저 뿐인 듯 했다. 아이들은 김종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김종인은 어디하나 흠 잡을 곳 없는 조용한 모범생일 뿐이었고 경수에게 괴롭힘이나 당하는 왕따일 뿐이었으니까. 백현은 초조해졌다. 그럴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백현이 경수에게 말 하기로 결심한 것이 들통난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찬열이 반으로 찾아왔다. 경수가 일어서며 백현을 힐끗 보자 백현은 경수야 먼저 가 이따가 카톡할께 하며 책상을 정리했다. 경수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찬열과 함께 뒷문 밖으로 사라지자 백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종인의 자리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종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백현에게 다가왔다. 교실 안은 이미 점심을 먹으러 가버린 아이들로 인해 종인과 백현 세훈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몇몇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이나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왠 일인지 오늘은 텅텅 비어있었다. 백현은 목울대를 꿀꺽 삼키며 종인을 바라보았다. 종인이 백현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천천히 한 쪽 다리를 접어 책상의 가방걸이에 걸친 종인이 백현의 필통을 집어들었다. 필통을 열어 뒤적거리던 종인이 이내 빙긋 웃으며 커터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이내 필통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필기도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백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잘 생각해봤는데."
"............."
"니가 내 말을 이해한건지 아닌지 확신이 안 서서."
"............."
"보험같은 거 라고 해야하나.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하니까."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뭔데? 너도 경수한테 말 해도 못알아 먹을거라고 했잖아."
드르륵 소리와 함께 커터칼의 날이 세워졌다. 장난스레 커터칼을 넣었다 집어넣다 하던 종인이 갑자기 백현의 책상에 냅다 커터칼을 박아 넣었다. 백현은 자신의 손과 불과 1cm도 안되는 거리에 밀착되 박혀있는 커터칼의 싸늘한 온도에 손을 움찔했다. 백현의 말대답이 거슬렸던 것 인지내내 온화함을 가장하던 김종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백현은 이도저도 못한채 종인의 눈치만 살피며 입을 꽉 다물었다.
"두번 얘기하는거 안 좋아하는데."
"............."
"입 다물고 들어."
김종인은 어떻게 하면 이리 깊숙히 박힐 수 있을까 했던 커터칼을 뽑아냈다. 백현은 살갗에 스치는 서늘함에 다시한번 손을 움찔했다. 김종인이 그 꼴을 보곤 피식 웃었다. 뽑아낸 커터칼을 백현의 앞머리 쪽으로 뻗었다. 조금 길게 자란 백현의 앞머리를 위화감 없이 커터칼로 휙휙 저어 백현의 눈이 완전히 드러나게 했다. 백현의 눈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김종인이 다시 읊조렸다. 멍청하진 않은 모양이네. 다시한번 말 할께. 종인이 백현의 얼굴 선을 따라 커터칼을 내리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백현은 그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 채 꼼짝도 안 했다. 몸이 덜덜 떨려왔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날이 선 칼이 얼굴을 배회했다. 무엇보다도 김종인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서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확실히 해둘께. 도경수한테 아무런 언질도 주지마."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조금 재밌어지려 하니까."
"잘 알아 들은 걸로 하고. 나 두번 말 하는거 싫어해. 기억해둬. 얼굴에 흠집나는 건 싫잖아. 그렇지?"
김종인이 특유의 나른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볼 일이 끝났다는 듯 풀썩 책상 밑으로 내려가 떨어진 필기도구들을 줏었다. 다시 모범생 김종인을 연기하는 김종인이 징그러웠다. 백현아 여기. 화난거 아니지? 필통 일부러 그런거 아니야 정말 미안해. 백현은 어쩔줄 모르는 표정으로 사과하는 김종인에게 어...어 괜찮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침 들어오는 아이들이 무슨일이야 하며 지들끼리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오세훈이 일어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가는 오세훈의 뒷모습을 보던 김종인이 그럼 백현아 나 이만 가볼께. 그리고 아까 그 말 진심이야. 하고 오세훈의 뒤를 따라나섰다. 경수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백현은 선택권이 없었다. 앞으로 경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별 일 아니길 바래야했다. 백현은 멍해지는 정신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경수는 이제 막 급식을 다 먹은 상태였다. 찬열과 시끄럽게 밥풀을 다 튀겨가며 떠들던 경수는 아까전 백현의 말이 생각나 찬열에게 야 나 먼저간다. 하고 일어선 참이었다. 카톡을 하겠다던 백현은 아직도 연락이없었다. 뭐하자는 건지 살짝 열 받은 경수는 그냥 교실로 올라가자 하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가니 몇몇 아이들은 이미 밥을 다 먹었는지 착석해 책을 피고 공부중이었다. 제 자리 쪽을 보니 백현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경수가 다가가 백현을 툭 쳤다.
"할 얘기 있다며. 왜 말 안해?"
"어..어? 아 미안 생각해보니까 별 거 아닌 거 같아서."
사과해야할 일은 아니지만 사과라도 기대하고 있던 경수는 백현의 말에 황당해졌다. 굳어가는 경수의 표정에 백현은 그래도 안심했다. 경수가 단순해서 다행이다. 별 거 아니라는 말에 그냥 넘어가버리는 경수에 백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수가 조금 만 아주 조금만 더 예민했더라면 백현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였다. 경수가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한동안 경수와 아무렇지 않게 지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수업 종이 울리자 김종인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 뒤로 들어오는 오세훈의 얼굴에 피딱지가 생겨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EPP 입니다. |
이건 뭐....분량이 호구네요 ㅠㅠㅠㅠㅠㅠㅠ 최대한 맞춰보려했는데 전 분량조루인가봅니다. 펜네임님은 분량 잘 맞추시는데 전 왜이럴까요...? 엉ㅇ엉 하여간 재밌게봐주셔요...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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