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은 그런 사이니까 04
출근시간 버스는 굉장히 북적거렸고 그 틈에서 백현은 더워서 흘리는건지 긴장해서 흘리는 땀인건지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옆에 자리한 작은 소녀를 주시했다.' 아저씨 두명이요. ' 우와,누가 자신에게 이런 마음을 배푼건지 환하게 웃으며 바라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 도경아. '
왜지, 도무지 알수없는 경아의 행동에 갈피를 잡지못한 백현의 마음이 다시 김칫국을 들이켰다. 원샷!
두근두근.
*
우여곡절 도착한 어린이대공원. 벌써 중학교때부터 몇번째로 오는건지 지긋지긋했다. 와봤자 볼것도 없는거 대충 때우고 가야겠다 생각한 백현은 도착하자마자 경아와 담임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귀가 잡혔다.
" 아,아 쌤! 아! "
" 시끄러 이자식아 그러게 누가 종례때 졸으래? 허이구 잘한다 둘이 "
경아 너는 그때 깨어있었으면서도 왜 늦은거야? 담임의 얼굴은 의아한 기색이였다. 경아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돌릴 뿐이였지만,
" 저때문에 늦은거에요 제가 버스비가 없어서.. "
버스비도 대줬겠다 괜히 미안한 마음 반,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허세 반. 기세좋게 경아를 감싸던 백현은 한대 맞고는 한장의 종이를 경아와 받았다.
" 감상문이니까 니들 알아서 써와 "
귀찮아 죽겠다는 담임의 표정에 해맑게 웃은 백현이 네! 크게 대답하고는 경아의 손목을 잡아 쏜살같이 도망쳤다. 혹시라도 또 트집이 잡힐까봐 도망간것이다. 자신이 미처 경아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을 생각못한 백현은 한참을 빨리걷다 뒤에서 옷이 잡히고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인상을 쓰고있는 경아의 얼굴에 시선을 내리니 자신이 꽉 붙들고있는 경아의 얇은 손목. 손목을 보다 얼굴을 보다, 손목을 보다 얼굴을 보다. 바보같은 백현의 얼굴에 경아는 사납게 인상을 굳히며 백현에게 쏘아붙였다.
" 좀 놔줄래? "
" 어? 아..... 미안. "
젠장, 첫만남이나 지금이나 자신은 도경아한테 이미지가 무례한빙구로 찍히게생겼다. 여자에 무지한 자신을 속으로 저주하며 이럴때 찬열이 부러웠다. 찬열은 여자친구 전적이 화려했기 때문이였다. 한번도 없는 자신에 비해서. 손목을 문지르는 경아의 모습에 백현은 입술을 짓이기다 먼저 앞서가는 경아를 조심조심 따라갔다. 동물원으로 향하는 샛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경아는 자신을 두고가려는 생각이였는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여간, 왜 애꿎은 애 손목을 쥐어잡아가지고는! 뒤에서 백현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든 말든 경아의 걸음거리는 거침없었다. 아무래도 많이 화가 난것같기도. 아니,화가 났겠지 그럼. 언뜻보니 붉게 자신의 손자국이 남은것같기도 했다. 혹시 멍드는건 아니겠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경아 뒤에서 낑낑대던 백현이 어느새 걸음을 멈춘 경아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솜사탕?
" .......야 "
큼큼, 저기 도경아. 두어번 부르니 흘끔 자신을 흘겨보는 눈꼬리가 어지간히 화가났나보다 그런 경아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백현이 이전보다는 약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벤치에 앉혔다. 기다려봐.
" 솜사탕 제일 큰거 두개요. "
조금은 좋아할까? 아니 그냥 화만이라도 풀어줬으면 좋겠다. 응,호감부터 시작하고 싶었는데 앞길이 막막하다. 솜사탕을 기다리다 뒷편에 편의점이 있는것을 발견한 백현은 잠시만요! 를 외치며 편의점으로 재빨리 들어가 데일밴드를 사들었다. 그리고 마저 솜사탕 두개를 들고서 다가가니 조금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경아.
" 자, "
" ........ "
" 먹고싶은거 같길래. "
싫음 말고, 말하자마자 획 뺏어가듯 경아가 솜사탕 막대를 낚아채고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입도 작지 이걸 뭐 저리 아깝다고 야금야금 먹는건지. 토끼 같다.
" 맛있어? "
조금은 화가 풀렸을까 물어본 백현에 경아는 흘끗 백현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존나 귀여워 백현은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얼굴을 주접이라며 손바닥으로 탁탁 치고는 급히 솜사탕을 다 먹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솜사탕이 다가 아니라..
" 손목 줘봐. "
" ..? "
의아한듯이 경아가 손목을 내밀자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쪽 말고.
" 아. "
" 미안, 멍들면 얘기해 "
경아가 워낙 하얗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정말 세게 잡은것인지 아직도 붉게 남아있는 손자국에 백현이 밴드를 조심히 붙여주었다. 편의점에서 산 앙증맞은 뽀로로 데일밴드가 경아의 손목에 썩 어울렸다. 멍하니 밴드가 붙여진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는 경아의 모습에 멋쩍어진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자.
아까는 정말 실수였는지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 솜사탕을 사주고 데일밴드를 붙여준 백현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는지 보폭을 맞춰주는 백현의 옆으로 경아가 나란히 걸었다.
*
" 야 똥백!! "
대충 감상문을 작성한뒤 담임선생님께 내고서 경아와 나란히 나왔을까, 음흉히 웃으며 다가온 찬열이 백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올~ 빠른데~ 빠르기는 뭐가빨라 하나도 시작 못했는데 이놈이! 분노한 백현의 발이 찬열의 정강이를 깠고 찬열은 엄살을 부리며 눈물을 훔쳤다. 흑흑,아들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얄밉게 백현을 놀리던 찬열은 뒤를 돌아 어린이대공원 입구를 바라보고있는 경아를 보고 씨익 웃었다.
' 잘해봐라 '
" 뭐? "
뭐라 입모양으로 중얼거린 찬열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주춤하던 백현의 예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언뜻 뒤를 보는것같아 뒤로 고개를 돌리던 백현을 찬열이 경아를 향해 밀어버린것이다. 으악!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경아의 코앞으로 다가간 백현은 저 멀리 도망가는 찬열을 언젠간 엿맥이리라 생각했다.
" .....뭐야? "
" 어,그러니까. "
박찬열 이 시발. 도움이되는게 없어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백현이 경아가 바라보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도 보이는 조명이 반짝였다. 커플들의 놀이공원 마지막 종착역,이름하여 관람차. 헐.
" ......헐. "
" 헐? "
점점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경아의 시선에 백현은 멍청히 관람차를 바라보던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경아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아니 이건 내가.. 뭐 바라는건 아닌데 니가 타고싶어 하는거 같아서 라는 말도 안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사심 반 + 사심 반 을 담아.
" 관람차, 탈래? "
" 정말? "
어?어. 큼큼 거리며 조심스레 물어본것에 경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물었다. 정말? 흡사 슈렉의 고양이같기도. 아 코피나는건 아니겠지. 멍한 백현의 대답에 그제서야 자신이 지나치게 좋아했단 것을 안 경아가 입을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돌렸다. 뭐, 좋아. 이제와서 새침하게 대답해봤자 더 귀여워보일 뿐이였지만 이미 정말?에 가버린 백현은 그런것을 신경쓸 틈도 없었다.
그렇게 팔랑팔랑 걸어 도착한 관람차. 아무래도 어린이 대공원에 관람차를 타러 오는 사람은 적어서일까 관람차 앞에 선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 아니, 놀이공원 자체에 두사람밖에 없었다. 월요일 저녁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누가 놀이공원에 올까 생각하니 그럭저럭 이해가 갔다. 두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끼긱거리며 천천히 관람차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높이 올라가는것이 놀이공원의 야경이 볼만했다. 흘끔 경아를 보니 어린아이와도 같이 발그레한 볼을 띄우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것이 정말 타고 싶었나보다. 의외의 모습으로 좋아하는 경아의 모습이 백현도 나쁘지는 않았다. 언뜻 자신의 입도 미소를 띄웠던것같다. 천천히 관람차를 타고서 나오니 이대로는 웬지 똥싸고 안닦은 기분에 백현은 유쾌하게 경아의 손을 잡고 둘만의 놀이공원을 즐겼다. 혹시라도 꼭 잡을까 조심조심. 손목은 또 다칠까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는 것은 아주 후에,알았다. - 이걸 알고서 백현은 얼굴이 터지는 줄 알았다. - 어린이 대공원이라는 이름덕에 그다지 스릴있고 심장 떨릴만한 기구는 없었지만 어쩐지 둘만의 세상이란 기분에 들떠 회전목마도 신나게 탔던것같다. 마지막으로 탄 회전목마에서 내리고 구석에서 발견한 스티커 사진기. 백현은 해맑게 경아를 보채 좁은 공간으로 둘이 들어갔다. 어색히 머리장식을 쓰고 눈을 동그랗게 뜬 경아와 연신 해맑게 웃다 웃긴 표정을 지은 백현. 스티커 사진은 둘의 놀이공원을 마지막으로 장식했다. 오랜만에 어릴적으로 돌아가 신나게 놀은것같다며 만족하던 백현이 그제서야 이상함을 깨닫고 서서히 입꼬리를 내렸다.
" 아, 사진 나왔다. "
사진을 받아 신기한듯 보는 경아,그리고 경아와 둘이서 보낸 오늘 하루.
순식간에 귓가에 열이오르고 얼굴이 홧홧했다. 멍청이 변백현.
" 왜그래? "
다가오는 경아에 황급히 고개를 저은 백현이 경아의 시선을 피했다.어두워져서 다행이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밝았으면
잘 익은 토마토를 제 얼굴에서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 완전, 데이트잖아. '
*
오늘은 조금 길게길게 써보도록 해봤는데 진도 너무 빠른가요?ㅋ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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