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은 그런 사이니까 06
아무래도 아침에 겨우 잠든 탓인지 백현은 엎드린지 얼마안돼 잠이 들고 말았다. 2교시가 시작하는 종소리에 겨우 깬 백현은 비몽사몽 교과서를 사물함에 집어넣고 수업을 들었다. 물론 한번 든 잠은 쉽사리 깨지못해 글씨인지 지렁인지 구분 못하는 무수한 곡선과 큰 점들을 프린트 곳곳에 새겼지만, 그래도 계속 꾸벅꾸벅 조는 백현이 안쓰러웠는지 아무도 백현을 깨우려하지 않았다.그렇게 내리 3,4교시를 자고나니 찬열이 백현을 깨웠다.4교시를 연속으로 졸았으니 좀 정신이 돌아오냐며 찬열이 백현을 놀렸지만 백현은 자신의 책상위로 쌓인 각각의 프린트에 어리둥절 했을 뿐이였다. 자신이 채우지도 않았는데 채워져있는 프린트에 곰곰히 생각하던 백현은 어디서 많이 본 분홍색 팬심에 휙 빈 옆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물어보고는 싶지만.. 자신의 짝의 귀여운 배려를 궂이 꼬집을 만큼 백현은 속이 좁지는 못했다. 그렇게 실실거리는 백현을 찬열이 이상하게 쳐다봤을 뿐이였다.
" 너 이상해 "
" 몰라도 돼 새꺄 "
보다못한 찬열이 넌지시 물어보자 백현은 씨익 웃으며 그런 찬열을 향해 헤드락을 걸었다. 지금은 뭘 들어도 기분이 좋다.
*
" 오늘 청소남고 주번 교실관리 잘하고 나머지는 집가라 "
네~ 이럴때만 우렁차게 대답하는 아이들이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찬열을 따라 집을 가려던 백현은 자리를 정리하는 경아를 잠시 쳐다보다 잡았다.
" 도경아. "
개미똥구멍만한 목소리를 용케도 들은 경아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여느때나, 지금이나 도경아는 항상 자신이 부르면 대답이 없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아,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큼
" 큼큼, 저기 너.. "
" ? "
" 그.. 알바 오늘도 하냐고 "
기타치는거, 만약 오늘도 그런다면 백현은 충분히 누나를 둘러대며- 정확히는 팔아먹으며 - 고품격 라이브치킨카페를 갈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아니, 차고 넘치면 넘쳤지 없진 않았다. 조마조마한 백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왜? 하고 물었다.
" 어? "
" 왜? "
왜냐니, 니가 보고싶어서. .......는 절대 대답못하고 그냥. 나도 그런 알바 해보고싶어서? 대충 둘러댄 백현이 멋쩍게 하하 웃었다. 그런 백현을 경아는 빤히 바라보다 대답을 하고는 휙 돌아 교실을 빠져나갔다.
" 8시. "
8시? 뭐가 8시야. 찬열이 눈앞으로 손을 흔들때까지 멍하니 8시,8시 중얼거리던 백현은 곧 씨익 웃으며 주먹을 하늘로 뻗었다. 애꿎은 찬열이 백현의 주먹에 턱을 들이받았지만 그것도 못알아챌만큼, 백현은 기분이 좋았다. 아싸! 연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는 백현의 뒤로 찬열의 매서운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그러건 말건 백현은 하하 웃으며 찬열의 등을 두들겼다. 집을 가는 길 내내 신이 난 백현의 흥얼거림이 찬열의 턱을 더 쓰라리게 했다. 너 진짜 이상해! 맞아, 나 원래 이상해 하하!
*
턱이 아프다며 찡찡거리는 찬열을 무자비하게 보낸 백현은 집에오자마자 기타를 조율했다. 자신은 이런 남자다! 라며 평소 피아노보다 게을리했던 기타를 간단하게 쳐보기도하고, 뒤에 키보드도 있을지 모르니 손풀겸 교향곡 몇곡을 쳐보며 백현은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그렇게 있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8시에 다다라있었고 시계를 보자마자 곱등이 뛰듯 펄쩍 뛴 백현이 바로 욕실로 뛰쳐갔다. 시간이 없으니 대충 입욕제를 몸에 둘러대고 향수도 칙칙 구석구석 잘 뿌리고 허둥지둥 나갈채비를 하니 도착하면 9시쯤 될것같았다. 평소 잘 안차는 손목시계에 도수도 없는 안경까지,완벽하게 멋을 낸 백현이 기타가방을 매며 집을 나섰다. 오늘은 깔창도 두개깔아 평소보다 자신감도 넘쳤다. 대신 넘어질까 뛰지는 못했지만. 급한 마음에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던 백현은 시계를 내려다봤다. 최대한 빠르게 나온 백현이 무색하게도 시침은 이미 9를 다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것같다. 경아가 10시까지 할것같진 않았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백현은 버스정류장을 향하던 발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버스는 더 늦을것같으니까..
“ 택시 ! ”
조마조마한 백현의 마음을 타고 시침이 째깍,째깍 흘렀다.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고품격라이브치킨카페.어디서 많이 본듯한 닭인형탈이 열심히 파닥이고있었다. 웬지 짠한 마음에 백현은 박수를 쳐주고는 급히 들어갔다. 저녁시간이여서인지 가게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특유의 왁자지껄함에 2층에서 기타소리는 들리지않았다. 제발,있어라 두칸씩 올라가 서둘러 2층또한 둘러보았지만 어떤 못보던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있었을뿐, 경아는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혹시 키가 작아 보이지않는건가? 그렇게 작지않은 키를 못 볼리 없음에도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백현은 경아가 없단것만을 더 자세히 확인하고는 아쉬움에 돌아섰다. 피아노를 치던 검은 남자가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 저기. ”
“ ? ”
“ 경아누나 보러 오셨어요? ”
경아누나?누나/? 친근하게 경아의 이름을 부르는 남학생의 말에 백현은 시선을 삐딱히 고정했다. 키가 커보이니 최대한 어깨를 피고서
“ 경아,알아요? ”
“ 네. 친한데요. ”
아,그러세요? 경아를 누나라 함으로보아 자신보다 어린게 꿋꿋히 시선을 맞춰옴에 백현은 웃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몇초간 서로의 사이에 전류가 흐르듯한 눈싸움이 지나고 백현이 입을 열었다.
“ 우리경아, 어디갔는지 알아요? ”
경아가 누나던,니들이 친하던 난 우리경아다 인마! 백현의 ‘ 우리 ’ 란 수식어에 잠시 남학생의 눈썹이 꿈틀거리는것같기도했다. 좀 많이 찔리지만 뭐 어때,도경아는 모르는걸.
“ 방금 나갔어요. ”
알려주기 싫은듯 미간을 구긴 남학생이 못내 대답하자 백현이 화사히 웃으며 돌아섰다,아니 돌아서려했다. 저 말만 아니였으면!
“ 누나 번호 없으신가봐요? ”
ㅋ번호도없는게. - 이런 말은 없었지만. - 백현은 손에 힘줄이 솓는 걸 느끼며 웃으며 응수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 도경아랑 사진 찍은 적 없으신가봐요? ”
난 도경아랑 스티거사진 찍었거든.
검은 남학생이 한방 먹은듯 멍청히 쳐다보든 말든 백현은 쏜살같이 내려가 매장주변을 둘러보았다. 도경아! 크게 외쳐보지만 뒤도는 사람은 없다. 초조하게 입술을 짓이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백현은 저멀리 낯익은 걸어가는 기타(?)에 반갑게 뛰어갔다.
“ 도경아. ”
넌 작은게 뭐그리 뽈뽈 빨리도 가냐. 백현은 숨을 고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경아를 향해 씨익 웃었다. 집에가는거야? 데려다줄게. 늦어서 미안하다. 주절주절 쏟아내던 백현을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어리둥절 바라보던 경아가 이내 백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걸었다. 일방적인 백현의 주저리였음에도 경아의 간간한 대답과 뒤따르는 희미한 미소가 백현의 말을 멈추게했다. 백현의 목소리가 멈출 때마다 갸웃 올려다보는 경아의 얼굴에 멋쩍게 웃으며 다시 대화가 이어졌고 어언 10분을 걸었을까,한적한 아파트단지로 길이 들어섰다. 늦은 밤 경아를 데려다주는 모양새가 꾀나 남자친구같은게... 삽시간에 백현의 볼이 붉어졌다. 큼큼,
“ 기타.. ”
“ 어? ”
“ 들고왔길래. ”
아,아..실은 너한테 보여주고싶었는데 늦게오느라.. 차마 저리 말은 못하고 조금?하하. 어색히 대답한 백현이 아파트 구석의 놀이터를 발견했다.그러고보니 여기 아파트 이때까지 놀이터를 한번도 못봤네.백현의 시선을 따라 놀이터를 발견한 경아가 백현이 궁금한것을 알았는지 대답해주었다.
“ 여기 개발한다고 놀이터 다 없애서 저것만 남아있어 ”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좋은게 생각이 났다는듯 경아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왜? 잠시만,
“ 큼큼. ”
원래는 카페안에서 멋있게 조명받으며 보여주고싶었지만 조용한 이곳도 나쁘지않다 생각한 백현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자는 차가운 곳에 앉으면 안됀다며 벤치위로 경아에게 자켓을 벗어줘서인지 손이 찬게 긴장으로 굳어졌다. 기타줄을 손가락 끝으로 뜯기 시작하며 곧 사라졌지만.
나를 보는 니가 좋아
춤을 추는 니가 좋아
활짝 웃는 니가 좋아
그런 니가 난 좋아
처음 긴장으로 굳은 모습은 군데간데 없고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와 익숙하게 연주하는 기타소리. 달이 뜬 밤에 백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
필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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