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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암호닉까지 정리된 암호닉목록!
문제 있으신 분들은 꼭꼭 댓글 남겨주세요!
완결때까지는 추가 암호닉 신청 받지 않을 예정입니다 묻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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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붑붑님♥
( 넘넘 귀여운 붑붑님 제작 로고는 현재 제 작가이미지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
* 팬아트나 로고, 이미지 선물 언제나 감사히 받고 있어용'ㅅ'*
옆집에 애아빠가 산다
18
* * *
그 기다리라는 말 한마디를 끝으로, 한동안은 시우도 시우아버님도 마주칠 수 없었다.
나도 작업때문에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원고 작업으로 정신이 없었고, 권순영씨도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아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했던 몇주 전 메세지가 우리의 마지막 소통이었다.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원고작업에 눈꺼풀은 무겁고 얼굴빛도 초췌해 거울을 보니 정말 못 봐줄 꼴이었다.
그 와중에도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고, 오늘이 미팅날이라는 사실이나 가르쳐주는 휴대폰에 한숨을 푹 쉬고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나갈채비를 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도 넘어간 뒤 였다.
낮밤이 완전히 바뀌어 오늘도 역시나 식사도 거른채로 냉장고에서 커피음료를 꺼내든 뒤 집을 나섰다.
승관이의 잔소리 탓에 한동안 멀리했던 커피가 유독 입에 썼지만 이마저도 마시지 않으면 금방 기절이라도 해버릴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멍하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출판사는 직원분들께 겨우 눈인사나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다들 바쁘구나 싶어 열심히 눈을 굴려가며 승관이를 찾던 것도 그만두고 늘 쓰던 회의실로 들어갔다.
항상 미팅때마다 먼저 도착해 앉아있던 김민규가 없는 빈 회의실에 의아해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빈 의자를 빼 앉았다.
그 날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김민규였다.
생각만 해도 어색해지는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노트북을 열었다.
김민규의 사진에, 나의 글이 더해진 이 책의 작업은 어느덧 중후반을 달려가고 있었다.
김민규와 만나 중간점검을 하기 위해 만나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는데, 시간이 흘러도 이상하게 김민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이라도 해봐야하나, 생각할 때 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손부채질을 하며 승관이가 들어왔다.
" 연락 못 받았지? 오늘 김민규 안 와. "
" 왜, 무슨 일 있대? "
" 몸이 안 좋다네, 여름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
" ...감기래? "
" 어, 너 괜히 더운데 헛걸음 했네, 어쩌냐? "
" 괜찮아, 오늘은 여기서 원고 쓰다 가지 뭐. "
집은 너무 적막해서 싫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따 같이 퇴근하자, 하는 승관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지간히 바빠보이는 모습에 어서 나가보라고 턱짓을 하자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휘어 울상을 지어보인 승관이가 문을 열고 나갔다.
" - 야, 야! "
" 으응... "
" 또 요즘 제대로 안 잤구만, 일어나- "
" 뭐야... "
" 임마, 벌써 밤이다. 집 가서 자. "
자판을 치면서도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나 싶더니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급히 노트북부터 확인했는데, 다행히 잠결에 뭘 잘못 누르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인지 원고는 멀쩡했다.
한숨을 푹 쉬며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누르고 짐을 챙겼다.
문에 기대 서서 짐을 챙기는 나를 기다리던 부승관이 내가 나오자 어깨를 주물러주며 뒤뚱뒤뚱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승관이의 손길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 너 원고 작업할 때 마다 그렇게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그거 병이야 병- "
오랜만에 듣는 부승관의 잔소리도 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라는걸 알기에 밉지 않았다.
좀 늦긴 했는데- 밥 먹으러 가자. 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앞장서는 승관이의 뒤를 쫓는데 승관이의 주머니에서 요란스럽게 벨소리가 울렸다.
입모양으로 잠깐만, 하곤 전화를 받는 승관이를 옆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 어째 전화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뭐야, 친구도 없어? 왜 날 찾아?' 하는 승관이에게 누군데? 묻자 또 입모양으로 ...김민규. 한다.
입술을 물고 잠깐 망설이다 손을 내밀었다.
무슨 뜻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는 승관이의 손에서 결국 직접 휴대폰을 빼앗았다.
' 부승관... 부탁한다고, 약 좀 사다 줘라... '
" 많이 아파? "
' ...뭐야, 부승관 아니야? '
" 어, 혼자 약 사러도 못 나갈 정도로 아픈거야? "
' 아니 뭐.. 좀... "
" 주소 찍어 보내. "
' 어? '
" 지금은 좀 늦었고... 내일 아침 일찍이라도 갈테니까. "
끊는다, 급히 전화를 끊고 다시 부승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뭐, 뭘 봐. 그 얼굴을 대충 흘겨보며 앞장서자 바로 뒤를 바짝 쫓아오며 쿡쿡 찔러댄다.
귀찮다며 부승관을 밀어버리고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빨리 옮겼다.
뒤에서 졸졸 쫓아오며 자꾸만 뭐야, 김민규를 왜 챙겨? 왜 찾아가? 종알거리는 부승관의 손을 붙잡아 억지로 택시까지 태워 보내고 나서야 한숨 놓을 수 있었다.
멀어져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괜히 꿀꿀한 기분에 발길을 돌려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맥주 몇 캔을 사들고 봉지를 휘휘 돌리며 집으로 갔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자 예전에 권순영씨와 함께 봤을 때 보다는 덜하지만 드문드문 별들이 눈에 띄었다.
그 별들을 보자 그 때 그 부끄러웠던 말도 떠오르고, 기다리라는 말도 떠오르고,
괜히 마음이 간지러워 고개를 저었다.
" 아직도 이렇게 늦게다니네? "
" ...어, "
" 앞 안 보고 걷는 것도, 밤에 혼자 다니는 것도 여전하고- "
" 오랜만이네요. "
" 그러게, 왜 이렇게 바쁘냐. "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편한 옷차림을 한 권순영씨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빙긋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쭈, 술도 있네?
그러다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힐끗 살펴보고는 자기가 뺏어들고 앞장서 집으로 향했고, 나는 그 옆에 붙어 졸졸 쫓아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딩동, 소리와 함께 집에 도착했는데, 옆으로 꺾어 헤어져야 할 권순영씨가 자연스럽게 우리 집 쪽으로 돌아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뭐냐는 듯 쳐다보자 어깨만 으쓱 해 보이며 손에 든 봉지를 흔든다.
" 설마 혼자 마시려고 했어? "
" 아니, 뭐... "
" 같이 마시자. 술 혼자 마시는거 아니랬어. "
나 내일 출근도 안해, 프로젝트 끝났거든. 고개까지 야무지게 끄덕여 보이며 문고리를 가리키는 권순영씨의 모습이
당장 문을 열지 않고 뭐하냐는 듯한 느낌이라 결국 문을 열고 나란히 들어갔다.
* * *
쭈뼛거리며 제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대충 거실을 치우며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모습에, 가리키는대로 따라가 앉았다.
혼자 뭐가 그렇게 바쁜지 뭐라뭐라 변명을 하며 집안을 치우길래 웃으며 손목을 붙잡아 끌어다 앉혔다.
됐으니까 얼른 마시기나 하자, 내 말에 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선 눈만 깜빡거리다
부스럭대며 맥주캔을 꺼내 건네는 얼굴이 붉어진게 보여 또 웃음이 났다.
하여간 부끄러운 것도 많지.
눈만 깜빡거리며 얼굴을 붉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맥주 캔을 따자마자 걱정이 될 정도로 꿀꺽꿀꺽 술을 들이키는 모습에
나라도 제정신이어야겠구나 싶어 슬쩍 내 앞에 놓인 맥주캔을 밀어놓고 턱을 괸 채 앞에 앉은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한참을 달리더니 슬슬 주량을 넘어가고 있는지 몸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고개도 제대로 가누질 못하고 까딱거리길래 슬쩍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자 살짝 풀린듯 한 시선과 마주쳤다.
" ...취했어? "
" 권수녕이네에... 수녀엉, 권,수녕... "
" 그래, 아직 내가 누군지는 아는 모양이네, 다행이다. "
" 나빠... 너 나쁘다구- "
" 내가 왜 나쁜데? "
혀가 꼬여 발음이 힘든지 내 이름을 몇번인가 중얼거리다 짜증을 부리는데,
그 모습도 마냥 귀여워보여 큭큭대며 웃었다.
나도 병이다, 이렇게 술 취해서 주정 부리는 것도 귀여워보이고.
고개를 저으며 어서 말하라고 까딱거리는 고개를 붙잡고 볼을 쿡 찌르자 작게 인상을 찌푸린다.
" 지 맘대루 흔들리지 마라- 기다려라- "
" ..."
" 내가 원래 누구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거등요? "
" ... "
" 그래서- 권수녕씨 말도 그냥 무시하고 시픈데... "
" ... "
" 정신 차려보면 내가 또 얌전히 기다리구 있자나... "
" ... "
"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요? 그거라도 알려줘야 참고 기다리지... "
손가락을 쭉 뻗어 내게 삿대질을 하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내가 조금은 용기를 내도 된다는 뜻인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도, 나와 같은 마음인건지.
한참을 아무런 대화도 없이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숙여 다가갔다.
고개를 숙인 김여주의 양 볼을 붙잡아 얼굴을 마주 보고 잠깐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 그만 기다릴래? "
" ... "
" 나, 용기 내도 돼? "
" ... "
" ...내가,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해. 여주야. "
" ... "
" 내가 너를 좋아하는게 너한테는 부담이고 짐일 것 같아서, 사실 좀 겁나서 도망친거야. "
내 말을 듣기는 하는지 눈을 느리게 깜빡이던 김여주는 내 고백아닌 고백이 끝나자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웃음이 났다. 살다살다 술 취한 여자한테 고백을 하게 될 줄이야.
술에 취해 내일이면 이 고백을 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완전히 잠든 여주를 조심히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이불까지 잘 덮어주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잠든 얼굴을 바라봤다.
그 때, 발랄한 목소리가 열두시를 알렸고, 무심결에 밝아진 휴대폰을 확인하자 날짜가 눈에 확 들어왔다.
" 나 오늘 생일인데. "
" ... "
" 올해는, 내 소원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
" ... "
" 너무 큰 소원이라고 안 들어주시려나... "
잠든 김여주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넘겨 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살면서 한번도 내 소원 들어주신 적 없으니까, 이번 소원은 들어주시겠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가려 뒤를 돌자마자 눈에 들어온 익숙한 옷이 이 방 한켠에 꽤 눈에 띄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났다.
뭔가, 내가 이 여자에게 이만큼은 큰 존재인 것 같아서.
물끄러미 옷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힐끗 뒤를 돌아 잠든 얼굴을 한번 더 확인하고 혹시 내가 내는 소리에 잠이라도 설칠까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왔다.
좋은 꿈 꾸길.
그리고 그 꿈 속에, 언젠가는 내 자리도 생기길.
* * *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권순영씨와 마주앉아 맥주를 마시던게 마지막이었다.
술자리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권순영씨가 언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무것도 기억 나는 것이 없었다.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가 옆을 더듬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이것저것 시덥잖은 메세지들을 눈으로 훑다가 눈에 띈 김민규의 메세지를 확인했다.
집주소에 덧붙인 진짜 올거냐는 물음에 그대로 답장 버튼을 눌렀다.
[ 진짜 갈거니까 기다려. 죽이랑 약 사갈테니까. ]
내 메세지를 읽고 또 무슨 답장이 올 지 몰라 얼른 휴대폰을 멀찍이 밀어뒀다.
정말 예전 그 때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해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김민규의 집은 우리 집에서 딱 여섯정거장만 가면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얼마 전 신축공사를 마쳤다며 우리 동네까지 붙어있던 광고지 속 바로 그 건물이었다.
유명 죽 체인점에 들러 가장 인기라는 소고기죽을 포장하고, 어젯밤 술을 들이부은 속이 시끄러워 근처 해장국 집에서 콩나물해장국도 포장해 양 손에 싸들고,
안 봐도 뻔히 비어있을 김민규 집의 냉장고가 신경쓰여 오지랖으로 대충 장까지 보고 나니 한정거장 전에 있는 시장에 오기 위해 일찍 내린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어엿한 여름 날씨에 이 짐들을 들고 걸어가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만 욕을 씨부리며 최대한 그늘을 찾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높다란 오피스텔 건물 앞에 도착해서야 길게 한숨을 내쉬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수시로 욱하면서도 아프다는 애를 미워할 수는 없어 스스로를 달랬다.
출입구 앞에 서서 다시한번 메세지를 확인한 뒤 호수를 누르고 호출 버튼을 누르자 곧 김민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진짜 왔어?
" 더워. "
- 어?
" 덥다고, 빨리 문이나 열지? "
뭐라 웅얼거리는 김민규에게 덥다고 짜증을 부리자 그제야 어어, 하는 바보같은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현관문 틈새로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김민규가 보였다.
누워 있었던 건지 삐죽 솟은 뒷머리도 모르고 눈만 깜빡거리며 어딜 보고 있는지,
그 모습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커다란 강아지 같아 웃음이 났다.
내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내 쪽을 보더니 벌컥 문을 열고 달려나온 김민규가 얼른 내 손에 들린 봉투들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곤 뭘 이렇게 사왔냐며 봉투 속을 살핀다.
그 한마디를 꺼내는데도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쇳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빨리 죽을 먹이고 약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앞장을 섰다.
제 집으로 걸어가는 내 뒤를 졸졸 쫓아오던 김민규가 제가 문을 열어주겠다며 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자꾸만 문고리에 헛손질을 했다.
됐다며 도어락 비밀번호를 묻자 조용히 불러주는 네 자리 숫자로 직접 도어락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한발짝을 내딛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몸을 감쌌다.
감기까지 걸려놓고 정신이 나갔나 싶어 거실 테이블 위에 짐을 내려놓는 김민규의 등을 내리쳤다.
" 미쳤어? 감기걸려서 골골대면서 에어컨을 이렇게 틀어놓는 사람이 어디있어! "
" 아니, 너 더울 것 같아서... "
" 야,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춥게 해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
그냥 선풍기나 부채만 있어도 충분한데, 내 말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고개를 젓는 김민규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 도련님 댁에 그런게 있을리가.
결국 에어컨 온도를 적정온도로 다시 설정하는 것으로 타협하고 사온 것들을 부엌으로 옮겼다.
또 쪼르르 뒤를 쫓아오는 김민규의 어깨를 붙잡고 방 쪽으로 밀었다.
" 내가 불편하니까 너 그냥 얌전히 이불 덮고 누워 있으라고- "
" 왜, 나 별로 안아파! 뭐 할건데? 내가 도와줄ㄱ... "
" 그 목소리로 안 아프다면 퍽이나 믿겠다. "
" 진짜 괜찮은데... "
" 말 듣지? "
내 말에 울상을 짓고 서 있다 돌아선 김민규가 방에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하고 사온 것들을 정리했다.
역시나 텅 비어있는 냉장고에 혀를 차며 사온 것들을 채우고 있는데,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불을 몸에 칭칭 감은 채로 방에서 나오던 김민규가 문 소리에 저도 당황했는지 눈을 깜빡거리다 헤, 하고 웃어버린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 다시 냉장고를 채우자 살금살금 걸어온 김민규가 식탁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입까지 벌린 채로 쳐다보고 있길래 다가가 입을 닫아주며 너 뭐 잘 해먹잖아, 냉장고 좀 채워놓고 살아- 하자 혼자 밥 먹는게 싫어서.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열린 냉장고 문 뒤에 숨어 침을 꼴깍 삼키고 문을 닫으며 김민규를 마주봤다.
" 그럼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 "
" ...야, "
"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사랑 받겠네. "
왜인지 상처받은 눈을 하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김민규를 계속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분명 김민규에게 상처를 받았던 것은 저인데, 방금 김민규는 내가 저에게 상처를 줬다는 듯 원망스런 눈을 했고,
나는 그런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치 못했다.
" 죽 금방 데워줄게. "
" 너는? "
" 나는 내가 알아서 해, 네 죽이나 먹으라고. 거기 약도 있으니까 챙기고. "
" 근데... 나 목감기인 거 어떻게 알았어? "
내 말에 약봉투를 뒤적거리던 김민규의 물음에 순간 아차, 싶었다.
익숙한게 무서운거라더니.
어려서부터 김민규는 감기에 잘 걸렸다.
특히 목감기에 잘 걸려서 안 그래도 낮은 편인 목소리가 더 가라앉곤 했었다.
감기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약국에 들어가 목감기 약을 찾던 아까의 내 모습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어제 너 목소리 이상하길래. 제대로 샀으면 다행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따가운 뒷통수를 애써 모른 체 하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뜨겁게 데운 죽을 김민규 앞에 놓아주고, 내 앞에는 그릇에 옮겨담은 콩나물국을 놓았다.
김민규가 커다랗게 해장국집 이름이 박힌 비닐봉지를 들어보이며 어제 술 마셨냐 물어왔고 고개만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말 없이 밥을 떠먹는데, 김민규가 멀뚱멀뚱 손을 움직일 생각을 않고 앉아만 있었다.
뭐 하냐는 듯 빤히 쳐다보자 눈싸움 하자는 것도 아닌데 눈도 깜빡 않고 똑같이 쳐다봤다.
그 모습에 결국 한숨을 내쉬며 김민규의 숟가락에 죽을 뜨고 반찬까지 얹어주었다.
그런데도 보고만 있길래, 여기까지. 빨리 먹지? 하자 잠깐 삐죽거리던 김민규가 그제야 천천히 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다섯살짜리 애를 데리고 밥을 먹는것도 아닌데, 김민규는 참 손이 많이 갔다.
죽을 숟가락에 올리고 무언갈 기다리는 듯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쳐다볼 때는 반찬을 하나 얹어주어야 했고, 자꾸만 그릇 옆에 죽을 흘려 잔소리를 퍼부으며 휴지로 닦아줘야 했다.
식사시간 내내 나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김민규는 실실 웃기만 했다.
"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실실거려? "
" 너한테 잔소리 듣는거. "
" 욕 먹는게 취향인 줄은 몰랐네, "
"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서 좋다고. "
" ... "
" 너한테 챙김 받는 것도, 잔소리 듣는 것도. "
진짜 다시 옛날처럼 편해진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아. 미소 띈 얼굴로 마저 죽을 먹는 김민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말,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무 문제 없이 서로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고, 티격태격 하면서도 행복했던.
쓸데없는 생각 말라고 한마디 하려다 입만 벙긋거리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 * *
조용히 식사를 마친 후 여주는 내가 아무리 말려도 이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고집을 부리며 식사 뒷정리에 집 청소까지 해버렸다.
몇년만에 겨우 다시 만난 너인데, 이런 궂은 일을 시킨다는게 말이나 되나 싶어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끝까지 말리려는데, 어려서부터 유명했던 김여주의 고집은 역시 꺾을 수 없었다.
깔끔해진 집안을 뿌듯하게 돌아보던 여주가 불현듯 정신이라도 차린건지 급하게 나갈 채비를 했다.
그 모습에 이대로 보내기엔 내가 너무 아쉬워서 여주를 붙잡았다.
" 밖에 아직 햇빛 엄청 셀텐데, 해 좀 떨어지면 가. "
" 됐어, 빨리 가 봐야지. 남의 집에 오래 있는 것도 실례고. "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여주에 어쩔 수 없이 현관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는데,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바로 내리쬐는 햇빛에 나가지 못하고 순간 멈칫했다.
뒤에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잘 가라고 인사를 하자 잠시 고민하는 듯 머리를 긁적이던 여주가 다시 뒤를 돌아 들어왔다.
" 아니, 생각해보니까, 너 아직 병자니까- "
" 그래서? "
" 간호가 필요하잖아! 내가 간호, 그거 해줘야 될 것 같...지 않아? "
" 풉, "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색하게 말끝을 흐리는게 귀여워 그대로 품에 안아버릴 뻔 했지만 참았다. 그랬다가 무슨 화를 당하려고.
역시 한결같이 연기에는 소질이 없는 김여주에게 맞춰주기 위해 그럼 그러던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얼른 현관문을 닫아버린다.
둘러대기 위해 꺼낸 말이기는 해도, 명분은 지켜야하니 나를 침실로 밀어넣은 여주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까지 야무지게 덮어주었다.
덥고 답답하다며 인상을 찌푸리자 잠깐 망설이더니 슬쩍 배까지 이불을 내려주는데 그 모습도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
웃는 나를 보고는 기분나쁘게 왜 웃냐며 어깨를 주먹으로 때려대는데, 그 솜주먹도 여전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빨리 잠들라며 신경질을 부리더니, 시간이 흐르자 자기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미소를 띄운 채 꾸벅거리는 고개를 지켜보다 한순간 훅, 하고 떨어지는 고개를 얼른 받았다.
그대로 잠이 든 여주가 깨지 않게 조심히 몸을 일으켜 편하게 눕혔다.
방금 전과 완전히 뒤바뀐 위치에서 여주를 내려다봤다.
곤히 잠든 얼굴이 5년 전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이 똑같았다.
그저 귀엽게 눈썹 언저리를 머물던 앞머리를 길러 뒤로 넘기고, 늘 단정히 묶고 다니던 머리도 풀어내리고, 이젠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겉모습이 바뀐 것은 쉽게 눈에 띄는 몇가지 안되는 것들이 다였지만, 우리 사이 관계는 이미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변할 게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이름을 들으면 다들 알법한 대기업 임원직에 계신 아버지와 교사 출신의 어머니 아래서 태어나 속히 말하는 금수저 집안에서 자랐다.
쳇바퀴 돌 듯 달라지는 것 없는 지루한 삶에서 여주는 유일하게 나를 진심으로 웃음짓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여주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 김민규가 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 여주는 내게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평판이 신경쓰였던 부모님께는 아들의 드러나는 모습이 중요했고,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유학길에 올라야했다.
한마디 인사도 건네지 못한채로.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리라는 것은 5년여의 시간 동안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막상 눈 앞에서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을 담고 있는 얼굴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픈 일이었다.
다시 예전처럼 마주보고 웃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지금 내 눈 앞에 곤히 잠든 여주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더 욕심을 냈다가는, 홀연히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겁이 났기 때문에.
잠든 여주를 가만히 바라보다 그대로 엎드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웅웅대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뒤척이는 여주를 토닥이며 급히 진동이 울리는 곳으로 향하자 여주의 휴대폰에서 왠지 낯익은 이름의 전화가 오고 있었다.
권순영.
분명 예전에 마주쳤던 옆집 남자였다.
부승관과의 대화 중에 몇번 튀어나와 그 이름이 그때 마주쳤던 남자라는 걸 알았더랬다.
가만히 울리는 전화를 바라보다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시우가 보고싶다고 난리네, 해장도 제대로 못했을텐데 잠깐 와서 같이 저녁 먹자.
" 안녕하세요. "
- ...누구신데 여주 전화를 받으시죠?
" 여주가 지금 옆에서 자고 있어서요. 김민규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 모르겠네. "
우리 전에 봤거든요, 여주 집 앞에서.
뼈가 있는 내 말에 잠깐 대답이 없던 상대편에서 곧 어딥니까, 주소 좀 보내주시죠. 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한번쯤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기에 메세지로 보내주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소를 보내기 위해 문자 창에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원래 누군가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여주의 성격을 알고 있는데, 메세지 목록의 절반 이상이 바로 그 권순영이라는 사람과 나눈 대화였다.
그 길게 이어지는 대화창을 보고 있자니,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어떡하냐.
나는 너를 다시 만나고, 이렇게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꾸 다시 욕심이 나네.
* 언제나 하고싶은 말이 많은 옆집쓰 *
안녕하세요!
애아빠로는 거의 한달만에(쿨럮) 인사드리는 것 같은 옆집쓰입니다~
많이들 기다리셨나요ㅠㅠ
많은 독자님들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시험기간인지라, 찔끔찔끔 시간 날 때마다 써두고 늘 임시저장함에 저장만 되어 있었답니다...
그 아이들 모아서 올리는거라 아마 오늘은 분량이 좀 많을거예요! 평소보단...
시험 끝나면 열심히열심히 달릴게요ㅜㅜ (맨날 이래놓고 글은 안 올림)
그리고, 제가 사실 보기보다 컴맹이라... 이제서야 필명관리라는 항목을 발견하고... 그것을 누르면 구독자 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큼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제 글을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다니(동공지진)
생각지도 못했는데...
(옆집쓰의 부담감이 +1358 증가하였습니다)
어쨌든... 구독자님들께서 모두 댓글을 달아주시는건 아니다보니 실감하지 못했었거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다니까 더더 열심히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콘서트 티켓팅으로 한창 시끄러웠지 않습니까
저는 물론 일상이 덕질을 방해하는 고3이기에,
공식 1기도, 공카 가입도 하지 않은 상태이고 콘서트는 당연히 못가므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독자님들은 많이들 가시나요...?
아마 그 날 날씨가 좋고, 비가 안오고, 어마무시하게 덥지 않다면
그곳에서 혼자 스물스물 어둠의 기운과 함께 떠돌아다니는 쓰를 보실 수 있으실거예요'ㅅ'
놀러갈거거든여 혼자서'ㅅ'
진짜 가게되면 글 올릴게 피하지 말고 놀아주세요... 저 왕따니까.....
또, 빼놓을 수 없는 합작 이야기!
요즘 세븐틴 글잡계에 합작바람이 부는 듯 하지요
거기에 제가 또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예전에 예고드렸던대로 저 옆집쓰와 안드로메다 자까님, 원우의개 자까님 세명이 함께 순조롭게 합작을 준비중이랍니다~(빵빠레)
제맘대로 스포하면 나머지 두분께 혼날 것 같으니까 조용히 있을거예여
입이 근질거리니까!
옆스포 살짝 발동하자면,
세계관의 대가 안메짱과 찌통의 대가 원개와 함께하는 해맑^ㅅ^의 대가 옆집쓰가 처음으로 옆집에 애아빠가 산다와 정 반대의 장르에 도전했다고 하는ㄷ...?!
여기까지 말해드릴게여ㅎ
저 이런거 처음 도전해봐서 진짜 지금 좀 겁나지만, 두 분께 얹혀간다는 느낌으로 이번 기회에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헤헤
합작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오늘도 옆집 권순영씨에게 많이들 설레셨길 바라며,
내일 하루도 행복하시길!
엄지 춱춱 추천 꾹, 댓글 한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