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란 무엇입니까?
남준이의 하루는 윤기의 멱살잡이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알람을 듣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알람의 첫부분만 울려도 벌떡 일어나는 윤기 덕분에 남준이는 늦잠을 자게 되는 날이 현저하게 줄었으면.
알람을 듣고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챙겨야할 것들을 챙기다보면
어느새 침대에는 다시 잠에 든 하얀 토끼 한 마리가 보였으면 좋겠다.
남준이 너는 여느 때의 아침처럼 가만히 윤기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둘 사이에서 조용히 흩어질 아침 인사를 남기고 학교로 향했으면.
학교에서 남준이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내는 대학생의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강의실에 들어서고, 과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도서관이나 과방, 혹은 동아리실에서 빈 시간을 채우면서 하루를 흘려보내는.
다만 그 사이 사이, 강의책 한 켠에 윤기의 얼굴이 둥둥,
윤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도 윤기의 모습이 둥둥.
결국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 배경화면인 자고 있는 흰 토끼를 빤히 바라봤으면.
하루가 끝나고 저녁을 먹겠냐는 동기들의 말에 웃으면서 집에 갈 것이라고 하고 천천히, 어쩌면 조금은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남준이가 보고 싶다.
그리고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안고 있는 강아지, 길가에 있는 분양샵, 간혹 보이는 애완용품 가게, 동물병원 등등을 지나갈 때마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윤기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오늘은 특히나 토끼 귀 모양으로 되어있는 강아지 옷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멈춰버려서 가만히 있다가 결국 그 용품점 안으로 들어가버렸으면.
종종 들려서 토끼 간식을 사가던 남준이였기에 가게 주인도 금방 남준이를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새로 들어온 옷이 있다며 애완 토끼 용품들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 혹은 옷을 고르고 나서 남준이 너는 네 재정상황을 돌아보았으면.
딱 사고 싶었던 모자와 신발을 위해 남겨두었던 돈만 남아있는 것을 깨달은 뒤에 잠시 고민했으면 좋겠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에
용품점을 나오는 남준이의 품에는 윤기를 위한 물건이 차곡차곡 담긴 종이백이 안겨있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사지, 뭐.
윤기와 같이 살게 되고, 나누는 마음이 깊어지고, 추억이 쌓이면서 남준이에게 생긴 변화 중 하나는 종종 이런 모습으로 드러났으면 좋겠다.
정작 남준이 본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자각을 하지 못하는.
윤기의 물건들을 사느라 자신이 사고 싶었던 물건을 포기했으면서
남준이는 집에 들어가면 자신이 사온 물건을 보고 좋아할 윤기를 생각하며 더 큰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
걸음이 한 없이 가벼워진 채로 다시 움직였으면 좋겠다.
윤기가 기다리고 있을 집을 향하면서.
버스를 기다리느라 정류장에서 걸음이 잠시 멈추었을 때는 자신이 탈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 확인한 뒤 의자에 앉았으면 좋겠다.
그 잠시 동안에는 핸드폰 갤러리를 열어 그동안 윤기를 몰래 찍어놓은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입가에 가득 웃음을 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의 틈을 넘어 온 생활에 번지고 있는 윤기를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버스가 도착해서도 윤기가 만약 자신의 옆에 있었다면 또 어색해서 소매깃을 잡지 않았을까 상상하다가
비죽 튀어나온 웃음을 가까스로 삼킨 채 남준이 너는 문득 생각했으면 좋겠다.
연애라는 게 원래 이런건가?
문이 살짝 닫히는 소리가 귀를 움찔, 움직인 윤기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으면서 깊게 잠에 빠졌으면 좋겠다.
오전에서 막 오후로 건너갈 즈음,
그제서야 눈을 뜨고는 잠시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와 품에 안고 남아있지 않은 남준이의 온기 대신, 남준이의 체향을 찾으면서 잠의 여운을 덜어내었으면 좋겠다.
어느정도 잠에서 깨면 몸을 데굴 굴려서 두 손을 모아 앞으로 쭉 밀고 엉덩이를 들어올리는 고양이 자세를 취하면서 기지개를 키고,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우선 남준이가 잔소리를 할테니 냉장고를 열어 당근 하나를 꺼내 씻고 자르지도 않고 와작, 한 입 베어물고,
옷걸이 아래 어딘가를 굴러다니는 반바지 하나를 주워 입고,
노트북 앞에 앉아 예능 하나를 틀었으면.
아마 남준이를 아침에 깨웠을 때 멱살 잡기 직전 주워입었던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집 안을 활보했으면 좋겠다.
그나마도 가끔 답답해서 잘 입지 않는 편이었으면.
그리고 남은 시간은 게임, 낮잠, 예능, 드라마 등등으로 흘려보내면서도 남준이가 올 시간을 꼼꼼하게 확인했으면 좋겠다.
오늘 김남준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오늘은 좀 일찍 오는 날이니까 저녁을 먹고 잠깐 산책을 나가자고 할까,
오늘은 초콜릿 안 사오려나?
초콜릿 사오느라 늦는거면, 뭐, 조금 봐줄 수도 있는데.
바짝 세운 하얀 토끼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침대에 앉아 시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얼른, 저 긴 바늘이 돌고 돌아, 짧은 바늘을 움직여 김남준을 보게 해줬으면 싶어서.
남준이가 올 시간이 다가오면 윤기는 가만히 침대에 앉아 토끼로 변해 제 머리 위를 덮은 옷가지를 헤치며 주섬주섬 나왔으면.
두 뒷발로 서서 작고 하얀 두 앞발로 제 귀를 쓸어내리며 그루밍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꼼꼼하게 제 온몸을 쓸어내리며 헝클어진 털을 고르고, 깔끔해진 모습을 한 뒤에 만족을 하고 다시 사람이 되어 옷을 챙겨입었으면 좋겠다.
바지는 답답한데 꼭 입어야 하나, 김남준이 보면 또 잔소리를 할까 싶어서 고민하는 사이에
현관벨소리가 울려 윤기의 귀가 쫑긋 세워졌으면.
누구세요?
김남준입니다.
남준이에게 배웠던대로 누구인지 묻는 말에는 장난스러운 대답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윤기 너는 배싯 새어나오는 웃음을 꾸욱 눌러참으며 현관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바로 보이는 김남준의 얼굴에 윤기는 살짝 볼을 상기시킨 채 뒤로 물러나 신발을 벗고 짐을 내려놓는 남준이 옆을 지켰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원하는 대로 큰 손이 제 머리를 부드럽게 부벼줄 것을 알기 때문에.
종종 봤던 가게의 로고가 찍혀진 종이백을 발견하면 윤기의 얼굴은 만족감에서 기대감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호기심도.
쪼르르 종이백을 가져가 먼저 원룸 한복판에 앉은 윤기가 열어봐도 되냐는 듯 종이백을 흔들었으면 좋겠다.
남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윤기의 옆에 앉으면, 그제서야 종이백에 예쁘게 포장된 물건들 하나하나가 나왔으면 좋겠다.
분명 저를 생각하고 사준 것이 분명한 뜻밖의 선물에 윤기는 기다림을 보상받은 기분이라 저절로 입꼬리를 올렸으면.
그러고보니 너 사고 싶다고 한 거 있잖아. 그거사면 돈 딱 된다면서 이건 어떻게 사온거야?
아, 그거 그냥 다음에 사려고요.
그래도 돼?
돼요, 토끼야.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말고 정 미안하면 그거 꼭 입어줘요.
남준이가 씩 웃으며 다시 제 머리를 쓰다듬다가 씻고 올테니 저녁을 먹자면서 일어나면
문득 든 생각에 윤기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좋겠다.
연애라는 게 원래 이런건가?
잠시 제 앞에 늘어진 선물들을 보다가 조용히 두 귀를 잡아 열이 오른 것 같은 제 볼을 가리듯 꾸욱 눌렀으면 좋겠다.
이런건가보다. 연애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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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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