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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마 전체글ll조회 1580

 

 

 

 

 

 

 

 

HIDE & SEEK

 

9.

 

 

 

 

 

 

 

 

찬열이 내가 먼저 좋아했어.”

?”

“...잘생겼잖아.”

 

 

술이 들어가니까 별 소리가 다 나온다. 어찌됐든 자리를 마련했으니 친목이나 다지자며 미친 게이커플은 내 의견 따위는 처음부터 무시했듯이, 이번에도 집에 가겠다는 내 말을 철저히 배제한 채 저녁을 먹고 호프집으로 이동을 했다. 처음엔 잔뜩 긴장해서 나뭇가지처럼 벌벌 떨어대던 박찬열도 고기를 씹더니 점점 표정이 환해졌고, 알코올이 들어가니 순식간에 본모습을 찾아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렸다.

 

나를 배려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란히 앉았다 뿐이지 별다른 스킨십도, 눈빛을 주고받는 등의 대화도 없는 녀석들은 그냥 친한 친구 같아서 보고 있는 게 거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게이 둘이 나란히 앉아서 맞은편의 나만 보고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게 솔직히 좀 웃겼다.

 

취기가 올라왔기 때문에 웃기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실실 웃는 변백현의 얘기를 듣는데 박찬열은 술 취한 와중에도 본인을 앞에 두고 하는 고백에 부끄러운지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굴은 나를 향해있는데, 백현의 눈동자가 찬열의 동선에 따라 이동한다.

 

 

근데 생각보다 말이 많아.”

너도 많잖아.”

. 그러니까 우린 천생연분.”

“..시발.”

 

 

어쩐지 잘 참는다했더니. 인상을 찌푸려도 변백현의 눈은 화장실에 있는 님에게로 향해 있다.그래 니들 둘이 천년만년 행복해라. 나한테 피해만 주지 말고. 제발.

 

원치 않는 남자애인 소개 자리였지만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다. 변백현이 아무 놈이나 덥석 물어올 애도 아니었지만 걸린 박찬열이 의외로 많이 괜찮아서. 처음에 말없이 어색한 웃음만 날릴 땐 이렇게나 말도 많고 웃음도 헤픈 놈일지 상상도 못했다. 잠깐 본 거지만 변백현 애인답게 그 못지않은 친화력으로 나한테 온갖 친한 척을 해대는데 어이는 없었지만 나쁘진 않아서 그냥저냥 받아줬다. 친구 남자 애인이라기 보단 새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게이 바에서 만났다며.”

.”

개 버릇 남 못준대.”

아니야. 우리 찬열인 그럴 애 아니야. 그 때도 처음 온 거랬어.”

그러는 넌 언제부터 거기 드나들었는데?”

 

 

내 물음에 변백현이 입을 꾹 다문다. . 말해보시지. 언제부터 거길 찾아다녔냐고. 끈질기게 물어뜯어도 꾹 닫힌 입은 열릴 생각을 않는다. 아예 꼭꼭 막을 참인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휘휘 젓는다.

 

 

뭐야. 노코멘트 하시겠다?”

 

 

그랬더니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면서 하는 말이,

 

 

누구나 비밀은 있는 거야.”

 

 

지랄. 그 비밀 지킬 생각이면 박찬열이랑 사귀는 것도 비밀로 했어야지 미친놈아.

 

 

 

 

 

 

 

 

 

 

 

 

 

 

 

 

 

 

 

 

 

 

[도콩 설마 자냐?]

 

 

자다가 눈을 떴는데 시간이 925분이었다. 수업은 9시 시작인데. , 미치겠네. 일어나자마자 손을 뻗어 핸드폰부터 집어 들었다. 수업 안 오고 뭐하냐는 백현의 문자에 늦잠 잤다고 답장을 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그냥 빨리 잤어야했는데 그 정신으로 과제를 한답시고 노트북을 꺼내든 것이 화근이었다. 아직 과제 제출 일까진 며칠이나 남았는데 괜히 부지런 떨다가 결국엔 늦잠을 자고 말았다.

 

늦게라도 수업은 들어야 될 것 같아서 얼른 세수를 하고, 아무렇게나 뻗쳐있는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모자를 눌러썼다.

 

 

[지금 간다.]

 

 

집을 나서며 백현이에게 문자를 한통 더 보냈다. 수업중인 건지, 박찬열이랑 문자하느라 정신이 없는 건지 아직까지도 답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변백현은 멀쩡한지 기특하게 일 교시 수업도 빠지지 않고. 나만 새됐네, 시발. 새벽동안 열심히 써내려간 과제도 새로 해야 될 거다. 분명히. 술에 취해 헤롱거리면서 무슨 과제를 하겠다고 유난을 떨었던 건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빨리했다.

 

 

[웬일이냐 니가 늦잠을 다 자고.]

[쉬는 시간에 문자해줘. 그때 들어가게.]

[오늘 안 쉴 것 같음. 겁나 달리고 있어. 야생마처럼 달림. 돌아버리겠다.]

 

 

. 망했다. 백현의 문자에 빠르게 움직이던 다리가 점점 느려진다. 이 교수는 결석보다 지각을 더 혐오하는 사람이라 쉬는 시간도 없는 이상 아예 안 들어가는 게 신상에 이롭다.

 

 

[어딘데 도콩?]

[방금 정문 지났어.]

[지금 오면 털릴 듯. 그냥 오지 말고 과방에 있어. 내가 필기 보여줄게.]

[출석은?]

 

 

수업 듣기는 글렀으니 천천히 가야겠다. 다음 수업까진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그냥 집에 있다가 다시 올까. 잠깐 서서 고민하는 사이에 백현에게서 답장이 온다. 손바닥 위에서 지이잉,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자 얼른 핸드폰을 확인했다.

 

 

[종인이가 너 대출해줬어.]

 

 

…….”

 

 

그 문자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 자꾸 이런 일로 김종인이랑 엮이기 싫은데. 본의 아니게 또 한 번 빚을 진 셈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리며 홀드버튼을 눌러 화면을 깜깜하게 만들었다.

 

왜 하필이면 네가.

 

 

 

 

 

 

 

 

 

 

 

 

 

 

 

 

 

 

 

 

 

 

 

 

싫어.”

또 이런다, .”

너 혼자 갔다 오라고.”

넌 여기서 뻘줌하게 서 있고? 그냥 같이 가자니까. 얼마 안 걸려. 이번엔 볼 일 있어서 가는 거라니까?”

 

 

수업을 마치고 나온 백현이와 캐비넷 앞에서 만났다. 쉬는 시간 없이 연강을 한 탓에 오늘은 예정보다 꽤 빨리 끝나서 다음 시간까진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과방은 죽어도 가기가 싫어 버티고 있는데 변백현이 자꾸만 팔을 잡아끌며 설득한다. 가기 싫다고. 가기 싫다니까? 온갖 짜증을 내며 버티고 있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달려든다.

 

 

크리스 형한테 책만 받으면 된다고. 그것만 받고 오자, 도콩.”

 

 

달달 볶다가 진짜 볶이겠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녀석에게 이끌려 과방근처로 자리를 옮기고 만다. 왜 자꾸 변백현한테 휘둘리는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고집 있는 녀석이라 당해낼 수가 없다. 아 짜증나.

 

활짝 열려있는 과방 앞에서 더는 가기 싫다고 말했더니 더럽게 유난이네, 하면서도 나를 두고 혼자 과방으로 당당하게 들어서는 뒷모습이 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과방에 가면 언제나 김종인이 있으니까, 혹시라도 그 녀석과 마주칠까봐 미리 피하는 것뿐이지. 그렇지 않아도 오늘 대출해준 것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물론 녀석 덕분에 결석을 면한 건 고마운데. 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 녀석은 호의일지 몰라도 나는 받고 싶지 않다고. 그런 호의.

 

이렇게 찝찝할 거였다면 차라리 결석처리 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모자에 가려진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변백현이 어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발장난을 치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러온다.

 

 

도 선배 여기서 뭐해요. 안 들어가고?”

 

 

이렇게 부를 놈은 하나뿐이다. 경계하느라 잔뜩 굳어있던 몸에 힘을 풀면서 녀석을 돌아본다.

 

 

팔 안치우지.”

에이, 또 왜 이렇게 예민하실까. 그나저나 오늘 미문론 왜 안 왔어요? 김 선배가 대출하던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금 신경 쓰여 죽겠으니까 그 얘기 그만 좀 해라. 조금 전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변백현도 날 보자마자 그 얘기부터 꺼냈다. , 너 종인이한테 고맙다고 인사했어? 내가 너 바로 다음이라 대답 못할 뻔 했는데 종인이가 해줬어. 진짜 착해. 그치?

 

 

“...늦잠자서.”

늦잠? , 웬일이래. 도 선배가 늦잠을.”

은근히 말 놓는다?”

알았어요, 알았어. 사회 나가면 한두 살은 다 친구라는데 거 되게 민감하시지.”

여기 사회 아니고 학교거든.”

그럼 학교 졸업하면 그땐 말 놔도 돼요?”

 

 

능글맞게 웃으며 내 팔을 붙잡고 장난을 쳐오는 오세훈을 보다가 픽 웃어버렸다. 그랬더니 오세훈이 박수를 치면서 말한다. 도 선배가 드디어 녹았다!

 

 

자꾸 헛소리 할래?”

이게 제 매력이잖아요. 선배님, 오늘도 밥 한 끼..?”

넌 진짜 답 없다. 군대는 언제 가냐. 군대 가서 좀 굴러야 정신 차리지.”

 

 

그래도 후배들 중엔 제일 귀엽게 보고 있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내가 면박을 줘도 적당한 선에서 장난을 치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편이고. 주먹을 쥐고 아프지 않게 녀석의 어깻죽지를 툭 치며 하는 말에, 세훈이 씨익 웃으며 나를 내려다본다.

 

 

저 군대 안 가요.”

“..?”

도 선배 모르셨구나. 저 한국 국적 아닌데. 김 선배도 그래서 군대 안 갔잖아요. 한국 국적 아니라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김종인이, 한국 국적이 아니었구나. 고등학교까지 외국에서 보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국적까지 한국이 아닌 건 지금 알았다.

 

 

근데 김 선배는 작년에 개인 사정으로 1년 휴학을 했고, 전 군대를 안 가니까 2학년. 선배는 군대 다녀와서 복학을 하고. 그러니까 같은 학년이죠.”

 

 

따라붙는 녀석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김종인 동기들은 다 군대에 갔기 때문에 세훈이 녀석, 크리스 선배와 어울려 다니는 거였다. 이제야 납득이 된다. 내가 왜 거기에 납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변백현 왜 이렇게 안 와. 괜히 아직도 나오지 않는 백현이에게 짜증을 부리며 열려 있는 과방 문을 들여다봤다. 책만 받아오면 된다더니 밖에서 저를 기다리는 나는 까맣게 잊은 건지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신이 났다. 그 얼굴을 슬쩍 보다가 다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

 

 

그러다가 과방 안에 앉아 있던 김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녀석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휘어진다. 개강 파티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라도 걸 작정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까지 보고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에요?”

 

아직도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세훈이 이제야 팔을 내리며 말한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무심하게 물었다.

 

 

“..뭐가.”

김 선배한테.”

…….”

 

 

시선을 외면해버린 이후로 별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김종인은 여전히 과방에 앉아있는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티 나게 고개를 돌려버렸는데. 굳이 여기까지 나와서 말을 거는 게 더 이상하지. 그래, 그렇지.

 

 

나한테 이렇게 막 대하는 사람은 선배가 처음이야!”

…….”

뭐 이런 거 기대하는 거예요? 에이, 천하의 도 선배가?”

“..미쳤냐.”

그런 거 아니죠?”

 

 

하지만 과방 쪽에서, 그 곳에 앉아있을 김종인에게서 얼굴을 뚫을 듯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왔다.

 

 

헛소리 할 거면 가라.”

알았어요. 안 할게요. 안 하면 되잖아.”

반말은 하지 말고.”

선배 진짜 재미없는 건 알죠?”

“...”

 

 

그래도 끝까지 모른 척 모자를 꾹 눌러쓰며 헛소리를 늘어놓는 오세훈의 목소리에만 대꾸할 뿐이었다.

 

 

 

 

 

 

 

 

 

 

 

 

 

 

 

 

 

 

 

 

 

 

 

 

 

 

 

 

 

선배, 어디 아파요?”

 

 

당연하게 옆자리를 차지한 김종인이 나를 들여다보며 묻는다. 걱정이 담긴 목소리에 대꾸를 한 건 내가 아니라 백현이었다.

 

 

아프긴. 그냥 늦잠 잔거야. 어제 좀 무리했거든.”

“...”

어제 친구랑 셋이서 새벽까지 술 마셨는데, 도콩은 더 늦게 잤나봐. 나이 생각해야지 지가 아직도 스무 살인 줄 알아.”

 

 

백현의 말에 김종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아프신 줄 알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속은 괜찮으세요?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러나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번엔 내가 대답할 줄 알고 나를 쳐다보던 백현이, 내 표정을 힐끔 살피곤 또 다시 대신해서 입을 연다.

 

 

도콩 숙취 없어. 간이 어마어마하게 튼튼하거든.”

선배는 괜찮아요?”

, 난 아침에 해장하고 와서 괜찮아.”

 

 

후문 근처에 국밥 맛있더라. 너 가봤어? 안 가봤지? 다음에 같이 가자. 국물이 진짜 끝내줘. 속이 뻥뻥 뚫리더라니까?

 

나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앉은 둘의 대화가 끊임없이 오간다. 학식도 안 먹어봤다는 김종인은 국밥도 안 먹어 본 모양이다. 백현의 말에 호기심을 보였다.

 

 

다음에 같이 가요, 선배.”

일단 그 전날부터 같이 달리고 나서 아침에 해장하러 가는 거야. 오케이?”

“... 도 선배도 같이.”

 

 

그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내게 걸어오는 말에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교재만 넘겼다. 아침 수업을 못 들었으니 이번 수업은 제대로 들어야 될 거였다.

 

여전히 녀석이 내게 베푼 친절이 영 찝찝했다. 백현이도, 세훈이도 대출해준 김종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라고 했지만 글쎄.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제 마음대로 대출 해준 것도 모자라서 이젠 걱정까지 하는 녀석이 엄청나게 거슬렸다.

 

그래서 이렇게 심사가 뒤틀려서 꼬일 대로 꼬인 상태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얼마나 옹졸한지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비뚤어지는 내 마음을 다잡을 길이 없었다. 차라리 혼자 있게 뒀으면 금방 회복이 될지도 몰랐는데 녀석이 자꾸 나를 들쑤신다. 곁에서 얼쩡거리며 말을 걸고, 걱정을 하고,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러니까 내가 이토록 병신같이 구는 것도, 다 네 탓이라고.

 

너만 아니면 내가 이렇게까지 치사하고 더러운 인간인지도 모른 채 살았을 거야, 나는.

 

 

…….”

 

 

페이지 한 장을 넘기는 데 꽤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김종인도, 변백현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다문다.

 

온갖 마음이 뒤엉킨 게 그대로 드러났다.

시발, 진짜. 마음에 안 들어.

 

 

“.., 도콩 너 왜 그래.”

 

 

빚지고 사는 건 딱 질색이었다. 대가 없이 받는 그 어떤 것도 싫었다. 그런데 녀석에게 자꾸만 빚을 지게 된다.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끝도 없이 원하게 될 거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던 걸 모르고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 결국엔 큰 것을 바라게 되고. 상대가 내게 주었던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고마움을 모르게 될 거다.

 

자연스럽게 다가와 내 일상에 발을 들이는 녀석이 거슬렸다. 내게 자꾸만 주려고 하는 것도 싫었고, 거기에 익숙해지려는 나도 싫었다.

 

 

선배, 괜찮으세요?”

 

 

내내 내 눈치를 살피다 슬쩍 물어오는 녀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나와 눈을 맞추려고 모자 사이에 가려진 내 눈을 찾아 고개를 숙인다.

 

 

…….”

 

 

제일 처음으론 녀석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엔 코, 그리고 볼, 그리고,

 

.

 

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내 얼굴이 보인다. 그 속에 담긴 내 모습도 참 까맣다.

 

 

선배.”

 

 

이렇게 점점 네가 주는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더 큰 걸 바라게 될까.

 

그럼 나는 너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게 될까.

 

 

부르는 목소리에도 대꾸하지 않으며 녀석의 눈만 빤히 바라보았다. 녀석의 속눈썹이 내리 깔렸다 위로 들리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몇 분간 그러고 있었을까. 느리게 깜빡이던 녀석의 눈이 이내 휘어진다.

 

 

선배, 아침 수업 필기한 거 보여드릴까요?”

“..어 그럴래? 도콩, 내 노트보단 종인이거 보는 게 더 나을 거야.”

 

 

조심스런 백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녀석이 가방에서 노트를 주섬주섬 꺼낸다. 그 모든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나를 대신해 대답한 것은 김종인이었지만 오히려 녀석은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출을 했다는 말도, 생색도 내지 않았는데 난 뭐가 이렇게 꼬여있는 걸까. 난 뭐가 그렇게 거슬리고 싫어서 이러고 있는 거냐고.

 

녀석이 노트를 찾아서 내게 내밀었다.

 

 

필기 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시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여전히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어떤 반응을 하던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진짜, 조금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구나.

 

 

“..저리 치워.”

 

 

내 쪽으로 내밀어진 노트를 손으로 내팽개쳐 버렸다. 툭 내 손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노트를 멍하니 보는 시선이 있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냉정한 목소리가 강의실을 울렸다. 큰 소리가 아니었는데도 귀에 박혀드는 그 소리에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노트와 멍한 김종인의 얼굴, 그리고 그 앞에서 날을 세우고 있는 나.

교수님을 기다리던 그 많은 시선이 내 쪽으로 와서 박힌다.

 

 

“..정도껏 해.”

도콩, 너 왜 그래.”

 

 

순식간에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된 녀석과 나보다 더 당황한 것은 옆에 있던 백현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장난인 척 무마하려 하는 걸 못 본 척 넘기며 김종인을 향한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냈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몰라?”

 

 

말이 이어질수록 김종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여태까지 그렇게 무안을 주고, 무시를 해도 내내 웃는 얼굴이던 김종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갔다.

 

 

도콩.. 너 왜 그러냐, 진짜. 그만해, 그만 해라.”

 

 

내 팔을 잡는 백현의 손을 뿌리쳤다.

 

 

넌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없는 척 하는 거야?”

도경수 그만해. 여기서 이러는 거 아니야. 다 쳐다보잖아, ?”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난 분명히 보았다. 굳어있는 김종인의 얼굴을.

 

 

, 종인아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 할게. 도경수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예민해.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라.”

 

 

내 팔을 붙잡고 말려 봐도 아랑곳 않자, 한숨을 쉬던 백현이 녀석에게 사과한다. 그러자 멍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던 녀석의 시선이 나를 지나쳐 백현에게로 가 닿는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거 맞아요.”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는 얼굴. 물론 평소의 그 얼굴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었지만 백현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던 녀석이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노트를 주워든다. 손에 쥔 노트를 탁탁 털면서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는 시선이 있다.

 

나와 마주하자 웃는 얼굴을 지우며 입이 바싹바싹 말라오는지, 살짝 혀를 내어 입을 축인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 했어요 선배.”

 

 

너는 진짜, 속이 없는 거냐. 아니면.

 

 

죄송해요, 선배.”

…….”

앞으로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화 푸세요.”

 

 

그렇게 쓴 소리를 들어놓고도 사과부터 해오는 그 태도가 나를 더 무너뜨리고 만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책상 앞에 펼쳐놓은 책을 보았다가 화면을 보았다가, 번갈아 보느라 목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결국엔 더 이상 문장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손을 떼고 말았다. 미안한 감정이 온 몸을 휘감는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사람 많은 데서 왜 하필. 왜 그때 노트를 내치고 그런 소리를 했을까. 답지 않게 당황하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또 다시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책상에다 갖다 박았다. 쿵쿵, 그냥 죽어, 죽어라 도경수.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쳐다보던데, .

 

그러게 왜 하필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어서 날 꼬이게 만드냐고. 괜히 김종인 탓으로 돌려보지만 이건 백번 내가 잘못한 게 맞다. 아깐 잠시 이성을 잃었나보다. 아니면 귀신한테 홀렸든지. 그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할 수가 없다.

 

.. 진짜 나가 죽어야 돼.

 

왜 그랬을까. . 왜 난 이성을 잃고 덤벼들었을까. 좀만 더 참지. 왜 그 사람 많은 데서 개망신을 줬을까. 내 이미지 나빠지는 거야 둘째 치고, 김종인이. 그 녀석이 걱정이었다.

 

좋은 쪽으로 주목받는 데엔 익숙해져있어도, 그런 식의 시선들은 익숙하지 않아보였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물에 빠진 놈 건져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딱 내가 그 꼴사나운 짓을 한 거였다.

 

시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맞다. 사과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무릎을 꿇어도 모자랄 판이다. 대체 왜 그랬냐, 도경수. 너 대체 왜 그랬냐고. 이 병신새끼야.

 

펼쳐진 책에 얼굴을 묻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냥 고맙다고 할 걸. 대출 해줘서 고마워. 한마디만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텐데.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그게 뭐라고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놨는지.

 

사과해야 돼, 진짜. 사과해야 된다고.

 

내가 아까 잠시 미쳤었나봐. 미안하다. 미안.

 

 

…….”

 

 

고맙단 말도 못했던 내가, 사과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마음은 불편해 죽겠는데 입은 안 떨어지고. 미칠 것 같아서 애꿎은 머리만 쿵쿵 책상에 박아대고 있었다.

 

그런데 지이잉, 진동이 울린다. 지금 문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노트북 옆에 올려진 핸드폰을 무시하고 있는데, 숙인 머리가 덜덜 떨린다. 진동이 느껴져 왔다. 문자가 아니었나보다.

 

누가 또 전화질이야.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

 

 

그런데 웬걸. 김종인의 전화였다.

 

평소였다면 받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겠고 또,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사과하는 게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서.

 

망설이던 것도 잠시,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선배..?

 

 

놀란 기색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져온다.

 

 

“....”

 

 

그 반응에 괜시리 더 민망해져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이렇게 무심한 척 할 때가 아닌데. 얼굴을 찌푸리며 후회 해봐도 이미 나간 목소리를 거둬들일 수는 없는 법이다.

 

 

안 받으실 줄 알았는데, 받으시네요.

 

 

이 와중에 또 웃는 건지, 녀석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에 조금 전 강의실에서 난리를 치던 나를 겨우 떼 낸 변백현이 하던 말이 번뜩 생각났다.

 

종인이가 착해서 다행인 줄 알아. 병신아. 걔 진짜 보살 아니냐? 누가 봐도 네가 억지 부린 게 맞는데, 거기다대고 사과하는 것 좀 봐. 넌 진짜.

 

그래, 맞는 것 같다. 얘 보살 맞는 것 같다. 변백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

 

 

내가 잘못한 일인데도 끝까지 내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자세를 낮춘 녀석 때문에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 짧은 말이 입안에 맴돈 채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않는다. 사과조각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괜히 입술만 달싹였다.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아서.

 

그런 나를 아는 듯 녀석도 침묵을 유지한다. 통화는 계속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어느 한 쪽도 말이 없었다.

 

미안. 미안하다.

 

이 말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어 보지만 아직도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저기.”

 

 

그러다 겨우 용기를 내, 입을 여는데 불쑥 녀석이 내 말을 가로 막는다.

 

 

선배.

“..?”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잘못한 일은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결국엔 네 입에서 먼저 그 소리가 나오게 하는 걸 보니.

 

원래는 내가 사과를 하고, 네가 괜찮다고 하는 게 맞는 건데.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먼저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거였다.

 

 

신경 쓰실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

전 진짜 괜찮아요.

 

 

그런데 녀석이 이렇게 나오니까 턱 끝까지 차올랐던 미안하다는 말이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버리고 만다.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눈만 꿈뻑였다.

 

그러자 할 말을 마친 녀석이 조금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한다.

 

 

선배, 그럼 월요일 날 학교에서 봬요.

 

 

잔잔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반짝이는 액정을 가만히 바라보니 1분여간 통화 했던 기록이 나타난다. 1분 동안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까맣게 변해버린 액정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도 덮어버리고, 노트북도 손을 대지 않아 화면보호기 상태로 머물러 있은지 오래였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숨만 쉬면서.

 

그러다가 짧은 한숨을 쉬며 습관처럼 다이어리를 찾았다. 책꽂이 사이에 숨어있던 다이어리를 꺼내들고 아무장이나 펼쳤다. 드문드문 낙서가 있는 페이지를 넘겨보면 김종인의 이름만 적혀있는 페이지가 한 가득이다.

 

며칠 전 종대와의 통화중에 아무렇게나 써내려갔던 그 페이지를 마지막으로 넘기며, 펜을 쥐었다.

 

 

 

녀석이 자꾸만 노크를 한다. 굳건히 닫혀있는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똑똑, 들려오는 노크소리가 잦아질수록 이중 삼중으로 문을 잠갔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고.

 

나를 어지럽게 하는,

한없이 치졸하게 만들기도 하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김종인.”

 

 

한숨을 내쉬며 팔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

오랜만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늦었습니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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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진짜 와 이건 명작이에요 사랑ㅎ해요 저의 감수성을 이렇게 파도치게 만든글은 진짜 오랜만에 봐요ㅠㅠㅠㅠㅠㅠ꼭 완결내주세요ㅠㅠ연중은 절대 아니되오ㅠㅠㅜㅜㅠㅜ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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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ㅠㅠㅠ 진짜ㅠㅠㅠ 경수나 종인이나 아슬아슬하네요ㅠㅠ 걱정도되고 틀어지지않겠지만 지겨봐야할것같아요!!!! 제가 카디를 지킬게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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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제가 왠만해선 댓글 안남기는데 이건 꼭 남겨야되겠네요 잘보고있습니다 동성애자가 아닌남자가 한남자에게 이끌리고 신경쓰이는 마음을 섬세하고 현실감있게 표현하신것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다 작가님 빨리오셔야되용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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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외줄타는것같아요 경수가 한발짝 물러서 틈을 보이면좋은데ㅜㅜㅜ잘보고갑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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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경수가 과연 언제 마음의 문을 열어줄지...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을때의 경수가 기대됩니다ㅎㅎ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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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ㅠㅠ경수가 정말. . 조금만 더!! 어? 경수야!! 엉엉..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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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아 재밌다 ㅎㅎㅎㅎ 종인이가 정색하면 우짜지 ,,하고 걱정했는데 ㅠ 담화가 궁금해서 보러 갑니다 ㅎㅎ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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