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E & SEEK
11.
피해자인 녀석이 나서자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나는 아닐 거라고 말하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김종인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다시 한 번 말해왔다.
“선배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무슨 의미일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말 속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대답은 않고 그 순간 짧은 생각에 빠진다.
나를 믿고 싶다는 걸까. 믿는다는 걸까. 그러기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잖아, 너.
“...종인아.”
김종인이 내 편을 들자 당황한 건 장미였다. 작정하고 나를 몰아세우던 장미가 애타는 목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에 생각하던 걸 멈추고 슬쩍 장미와, 녀석을 쳐다보았다. 나와 눈을 맞추고 있던 녀석도 내 시선을 따라 장미에게 시선을 돌린다.
“내가 도경수 봤다니까?”
“…도 선배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 미치겠네.”
다시 한 번 내가 범인임을 강조하는 장미의 말에도 세훈이만 대꾸를 할 뿐, 정작 김종인은 입을 다물고 있자 당황한 장미는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김종인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그리곤 버릇처럼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선 안절부절.
불안한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가만히 장미를 주시했다. 아, 알겠다. 답 나왔네.
대놓고 김종인 편을 들면 관심이라도 얻을 줄 안 모양이다. 눈길 한 번을 더 받고 싶고, 대화라도 한 마디 더 해보고 싶고…해서. 그런데 거기에 내가 끼는 이유는 뭔데. 네가 좋아하는 김종인을 싫어하니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하필 또 주차장에 서 있는 날 봤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물고 늘어지려는 건가.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종인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도경수 거기 있는 거.”
여전히 말이 없는 김종인을 향해 재차 나를 걸고넘어지는 걸 듣자마자 장미에게 말했다.
“너 쟤한테 관심 받고 싶냐?”
“..뭐?”
“나 붙잡고 늘어지지 말고 직접 말해, 관심 받고 싶다고.”
정곡을 찌르자 장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다. 맞네, 관심 받고 싶어서 나선 거. 제대로 본 것도 아니면서 일부러 나를 몰아세운 것도 그 이유, 맞네.
“..뭐라는 거야. 야, 도경수 너 주차장에 있는 것도 내가 봤고, 나랑 눈 마주치니까 뒷주머니로 뭐 숨기는 것도 다 봤거든? 너나 나 붙잡고 늘어지지 마.”
“그래, 네 말대로 뒷주머니에 뭘 넣고 있었던 건 맞아. 근데 너랑 눈 마주쳐서 넣은 것도 아니고 미리 말했다시피 그건 핸드폰이었고….”
“…너 종인이 싫어하는 거 내가 뻔히 다 아는데, 딱 봐도 네가 한 거라는 생각 안 들겠어?”
“맞아. 나 김종인 좋게 생각 안 해. 개강 파티 때 싫다고 얘기한 것도 맞고, 노트 내친 것도 맞아. 다 사실이야.”
“거봐, 종인아. 들었지? 얘 맞아. 얘가 한 거 맞네.”
“…내가 차를 긁었다곤 안했어.”
“적당히 하고 인정해. 다 쳐다보고 있는데 질질 끌면 재미없잖아.”
“난 너처럼 안 한걸 했다고 인정하는 취미는 없어.”
장미가 나를 향해 픽 웃는다.
“너 지금 내가 김종인 관심 받고 싶어서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아니야?”
“본 걸 봤다고 한 거뿐이야.”
“나도 안 한걸 안했다고 말 하는 거야, 지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다 받아치자, 크게 당황했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씩씩거리기만 하는 장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옆에서 멀뚱히 서서 입을 다물고 있는 김종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노트 내친 건 미안. 사과 할게.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선배.”
왜 항상 너랑 엮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
“너도 내가 했다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믿어.”
정작 내가 입을 열자, 녀석은 입을 닫은 채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그런 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아니라고 해봐야 네가 그렇게 믿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니겠냐.”
이미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으면서 일부러 아니라고 하지 마. 처음부터, 장미가 나를 몰아세웠을 때부터 그런 눈이었잖아, 너.
“네가 했다고 하면 내가 네 차 긁은 게 맞는 거겠지. 안 그래?”
도저히 수업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녀석에게 그렇게 말을 하곤 가방을 챙겨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자취방으로 바로 가버릴까 하다가 혼자만의 공간에 갇히는 게 싫어, 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은지도 꽤 오래였다. 어디냐며 나를 찾는 세훈이의 문자에도 일부러 답장하지 않았다.
뒷모습에 꽂히는 시선들과 문을 열고 나설 때까지 따라붙는 수군거리는 말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정작 김종인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따지고 보면 저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건데도.
아무리 과 생활을 안 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억울함을 밝히고자 했을 뿐이고,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대놓고 여자애를 몰아세우고, 마지막엔 ‘네가 그렇게 믿으면 내가 긁은 거 맞겠지.’ 라니. 결국 내가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나를 보는 김종인의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기에 욱해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 게 문제였다.
대체 왜 화가 났을까. 입으론 선배 아니잖아요, 하면서 선배가 했구나, 이런 눈으로 쳐다봐서? 녀석이 나를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넘겼다.
…나를, 믿어주지 않아서 화가 났나. 뭘 안다고 걔가 날 믿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도 참 웃기다. 뭐가 이래. 싫다고 그렇게 밀어내는 주제에 김종인 눈빛 하나에 고심하는 꼴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다.
책을 펼쳐놓고는 있었지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자취방에 가서 혼자가 되면 끝없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일부러 피했던 건데. 열람실이나 자취방이나 다를 게 뭐야 대체.
머리가 지끈거려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선배.”
눈을 감고 있는데,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에 슬쩍 눈을 떴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
고개를 돌려보면 김종인이 난감한 얼굴을 하고 서있다. 말없이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왔네.
문자도 없던 김종인이 직접, 찾아 왔네.
빤히 보고 있으면, 어색하게 웃으며 비어있는 옆자리 의자를 빼내어 앉는다. 그리고는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린 채 턱까지 괸다. 뭐야, 뭔데. 침묵 속엔 깜빡이는 두 쌍의 눈동자만 있을 뿐이다.
…넌 알다가도 모르겠다.
“…….”
녀석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나한테 따지러 온 건가. 내 차 선배가 긁었으니 물어내라고 말 하러 온 건가…. 근데 내가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여러모로 복잡하게 만든다. 김종인 너 참 어렵다.
삐뚤어질 마음도 없었다. 장미를 욕할 것도 없고, 김종인을 욕할 것도 없다. 그냥 더는 녀석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것도 싫고 자꾸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다. 백현이가 김종교, 김종교 할 땐 몰랐었는데 요 며칠사이에 일어난 일을 보면 다른 누구보다 존재감이 있는 건 확실했다. 별 일 아닌 사건도 녀석의 이름과 함께 여기저기 떠돌고, 금방 사그라지지도 않는다. 김종인의 원수는 곧 나의 원수. 뭐, 이런 생각들인지 나를 보는 눈빛들도 예사롭지가 않고.
그런 일은 크게 대수롭지 않은데 김종인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린다.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생각을 잠식하고, 잦은 일에 휘말리게 만들고.
오늘 일은 김종인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고 해도 어쨌든 녀석의 이름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장미의 잘못 인지, 내 잘못인지, 아니면 김종인 잘못인지.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보는 척 머리를 고정시킨 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 있는 책 위로 포스트잇 한 장이 붙는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글씨.
「얘기 좀 해요.」
그래, 얘기 좀 하자.
포스트잇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담배도 피냐?”
“..가끔요.”
중도 후문 근처 벤치에 앉았다. 평소 그렇게나 말이 많던,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던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내내 굳게 입을 닫은 채였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의외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슬쩍 물으니, 그렇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씩 웃는다.
“아주 기분이 나쁘거나, 그 반대이거나 할 때.”
기분이 나쁘다는 소린지, 좋다는 소린지 모르겠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놈이라 생각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얘기 좀 하자더니 불러놓고 왜 말을 안 해.
“..괜찮아요?”
“뭐가.”
“…저한테 화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너한테 왜.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빼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고개를 떨궈 신고 있는 운동화를 한 번 쳐다보곤 옆에 앉은 녀석을 보니, 얼마 태우지도 않은 장초를 바닥에 비벼 끈다. 흡연자는 아닌데 좀 아까워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또 웃는다. 웃기냐?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잖아요.”
“..너 때문만은 아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녀석이 천천히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죄송해요.”
사과 한 번 빠르네. 할 말 있으면 하랬더니 한다는 말이 죄송해요…. 글쎄, 잘 모르겠다. 녀석에게 사과를 받아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강의실에선 화가 많이 나있었고, 중도에 있을 때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했었고.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왜 이렇게 개운하지가 않은 걸까.
“뭔데….”
“장미 선배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네가 왜.”
“…저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녀석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넌 네 차 내가 긁었다고 생각해?”
네 생각이 궁금하다. 눈을 봐서는 읽을 수가 없는, 네 생각.
“그랬으면 사과 안 했겠죠?”
그 말에 안심이 되는 건 왜일까.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 안한다는 거네.
…다행이다.
녀석이 믿어주는 게 뭐라고 이렇게 마음이 풀리는 지…. 하마터면 웃음이 날 뻔 했다. 아차, 하며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이 말 하려고 왔냐.”
“그런 것도 있고, 그냥 선배 보고 싶어서요.”
사실은 좀 불안했다고.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다녔죠. 여기저기.”
“..수업은.”
“Pass.”
나를 믿지 않는 녀석의 눈빛 때문에.
“선배, 밥 드셨어요?”
“아니.”
“밥 먹어요, 그럼.”
“…….”
“저랑 밥 먹으러 가요.”
어떡할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평소보단 조금 길게 녀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만 확실할 뿐.
“..싫어.”
그런 와중에도 녀석과 밥 먹는 건 싫었다. 녀석과 밥을 먹게 되면, 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아서.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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