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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 * * * *
"가, 감사해요."
"사실을 말할 뿐인걸요."
그녀는 진정될 기미가 없는 가슴을 꼭 붙잡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거침없는 남자의 대답에 더욱 얼굴을 붉혔다. 완벽하게 익은 홍시보다 더 빨갛고, 삶아진 문어보다 더 새빨갛게 달아올라 그녀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여과없이 남자에게 노출되었다.
남자는 포식자의 눈으로 먹잇감을 교활한 혀로 조금씩 조금씩 약하기 그지 없는 어린 그녀의 마음을 훔쳐내었다. 뚫어질 듯한 남자의 눈빛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묘한 흥분감이 몸안에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점점 남자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는 사랑에 쉽게 빠지는 편이지만 이토록 짧은 시간내에 빠져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자신의 이상형에 근접한 외모를 가까이 접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심하게 빠져들었다.
마치 비밀스러운 심해의 보물을 발견한 바다의 탐험자처럼 손에 쥔 보물이 너무도 갖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본능을 묵살(默殺)시켰다. 그녀는 스스로 죽음의 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사지(死地)로 걸어들어가고 있었지만 본인은 핑크빛 사랑의 장소로 걸어가고 있다며 착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남자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좀 전부터 지켜봤는데...마음에 들어서 말을 걸어봐요. 제가 마음에 들면 데이트 할래요?"
"데, 데이트요?!"
"네."
"저...저기..."
"아...싫으시면......이만..."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고백타임과 데이트 신청에 그녀는 놀라서 목소리가 뒤집힌줄도 모르고 외쳤고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긍정했다. 당황스럽고 놀란 나머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아쉬움을 가득 담은 눈길과 표정을 보여주면서 떠날 여지를 보이는 남자에게 더욱 놀라서 그녀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팔을 두손으로 꼭 잡았다.
그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가 이내 말갛게 돌아왔는데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남자는 현재 불쾌했다. 그 이유는 난데없는 스킨쉽 때문이고 너무 흥분해서 의견조차 뚜렷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냥감이 멍청해보여서 짜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관찰했으며 적절하다고 판단한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일말의 감정은 쉽게 삭제시킬 수 있었다.
"싫지 않아요. 이런게 처음이라..."
"그럼 허락하는건가요?"
"물론이죠! 당신같은 남자를 거절할 여자가 있다면 데려와보세요. 아무도 거절할 수 없을거에요!"
"칭찬 고마워요. 그리고 제가 하고픈 말이네요. 당신처럼 예쁜 여성과의 데이트를 하기 싫어하는 남자는 없을거라는 말이요."
하는 말마다 황홀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인지 그녀는 미치도록 좋았고 이 순간 죽어도 좋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길거리에서 채결된 헌팅 남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곧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곧 지워졌다. 본래 인간이란 자신의 일을 제외한 타인의 일에는 무심하고 무감각했으며 무척 흥미롭지 않는 이상 오래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호기심만 충족되면 끝이었고 선남선녀(善男善女)라도 흔한 남녀의 만남에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사람은 드물었다.
그 대상이 자신이 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남자는 북적북적한 도심에서 인적이 드문 외각쪽으로 이끌었고 그녀는 아무 의심없이 따라갔다. 위험인지능력을 상실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녀는 남자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어떠한 데이트를 할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였고 따라서 로맨스 소설처럼 달달한 데이트를 떠올렸으며 그 데이트를 할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식을 잃는 순간에도 자신이 현재 어떠한 처지에 놓였는지 알지 못했다.
남자는 넋을 놓고 있는 사냥감에게 아주 빠른 행동으로 좀 전부터 빼어둔 손수건을 쥔 손을 그녀의 코에 들이댔고 손수건에 묻은 약물이 호흡과 동시에 의식을 앗아갔다.
무릎을 꺾고 휘청이며 쓰러지려는 그녀의 몸을 받치고 가벼운 몸뚱이를 쉽게 안아들었다.
"환영한다."
무엇을 환영한다는 것이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남자는 사냥감을 발견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생기 넘치던 눈동자는 죽음 직전에 놓인 시한부의 환자보다 죽어버렸고 매력적인 표정은 인형보다 표정이 없어져서 옷가게의 디스플레이된 마네킹보다 못해보였다. 입술이 삐뚜룸하게 비틀리며 잔인한 웃음을 한번 지은 것 외에는 남아 있던 감정마저 없애버렸다.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속에서 잠깐 벌어졌던 입술 틈으로 드러난 이가 유독 하얗게 빛났다.
사냥꾼은 계획보다 한결 수월하게 사냥감을 획득하여 그의 '거처'로 향했다. 남자의 걸음에 흥분이 깃들어 있다고 느껴졌다면 착각일까?
그러나 착각은 아니었는지 묘한 들뜸이 잠시 느껴졌다.
* * * * *
물밑듯이 밀려오는 환자를 진료하고 오전 근무를 마친 태환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짧은 휴식을 취한 태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가운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밖으로 나왔다.
중추신경이 마비되었는지 배고픈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어제 저녁부터 커피말고 다른 음식물은 먹은 기억이 없었다. 오후 근무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먹어두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원내의 카페테리아(Cafeteria:구내식당)로 향했다.
카페테리아는 일종의 뷔폐식으로 직접 원하는 음식들을 담아 테이블에서 먹으면 되는 셀프 서비스 식당이었다. 카페테리아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있었고 의사나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들이 식사나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태환은 딱히 입맛이 돌지 않았지만 간단한 치킨 샌드위치와 카푸치노, 약간의 샐러드, 바나나 한개를 트레이에 담고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치킨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었다. 퍽팍한 닭가슴살과 신선한 채소, 새콤하고 질척한 소스가 입안에서 뒤섞였다. 많이 피곤한 탓인지 음식물을 먹고 있는 중에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한입 더 베이물고 절반가량 남은 샌드위치를 트레이 위에 내려놓으며 카푸치노를 마셨다.
"Dr.Park. Do you eat lunch alone?(닥터 박. 혼자 먹고 있는거야?)"
"Yes, I do.(그래요.)"
"Let me eat lunch together.(함께 먹자.)"
"Me, too.(나도.)"
음식을 가득 담은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빈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며 앉는 마이클과 내과 치프 라이언 록티, 레지던트 레베카 소니를 쳐다보았다.
마이클과 마찬가지로 원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라이언은 항상 태환을 보며 'Pretty boy(예쁜이)'이라고 불렀는데 태환은 그 별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레베카는 레지던트 2년차의 내과의였으며 건강미가 넘치는 여성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의 점심을 먹으면서 아침에 커피를 빼앗아간 태환에게 한소리 했지만 태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투덜대는 그에게 결국 다음에 커피 한잔 사겠다고 달래었고 그들은 어제 있었던 교통사고와 각자의 사생활을 주제로 삼아 간간히 대화하며 식사를 했다.
"Dr.Lochte. Might did you play sex a person in the night-duty room at dawn this morning?(닥터 록티. 혹시 새벽에 숙직실에서 섹스한 사람이 당신이에요?)"
"Yes. I did. How did you find out?(맞아. 어떻게 알았어?)"
식사를 마쳐갈 때쯤 새벽녘의 숙직실이 떠오른 태환은 라이언에게 섹스한 사람이 당신이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나잇'으로 유명한 남자였고 굳이 성욕을 숨기려고 들지 않았으며 바쁜 와중에도 약간의 시간이 생기면 여자와 섹스를 즐기곤 했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어떻게 알았냐며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고 이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관음했냐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였다.
"My sex play saw to you! Oh~ I'm sexually excited!(내 섹스플레이를 예쁜이가 보다니! 이거 흥분되는걸!)"
"Lick me! I did when you talk like that!(입닥쳐요! 내가 언제 그따위 말을 지껄였어요!)"
그런 그에게 미친 소리하지 말라며 소리친 후 당신이 숙직실을 차지하는 바람에 잠잘 공간을 빼았겨 못잤음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미 발동걸린 라이언은 노골적으로 태환을 놀렸으며 짜증 난 태환은 무시해버렸다.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하찮았다.
"Stop! Both stop it now.(그만! 둘 다 이제 그만해.)"
라이언의 저질 농담은 그칠 줄 몰랐고 옆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 보던 마이클과 레베카의 중재로 시덥잖은 대화가 겨우 끝이 났다. 하지만 라이언은 여전히 느물거렸고 태환은 그말을 꺼낸 자신이 병신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거칠게 트레이를 집어들은 채 자리에서 떠났다.
그런 태환을 보며 라이언은 '예쁜이! 부끄러워하는 거야?' 휘파람까지 불며 끝까지 능글맞게 행동했다. 마이클과 레베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국제공항.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공항으로서 항상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출국, 입국하는 자국민과 외국인 관광객, 경유로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 그곳에서 일하는 공항 직원부터 승무원까지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유독 큰 키의 남자가 대형 슈트케이스를 이끌고 출구(出口) 를 지나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고 앞서 서 있던 사람들 뒤에 서서 대기했다. 그의 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항상 있어왔던 일이라 개의치 않았다. 앞의 사람까지 보낸 후 다음 택시의 트렁크에 짐을 싣고 뒷좌석 문을 열고 탔다.
"손님 어디로 가세요?"
택시 기사의 질문에 남자는 목적지를 말했고 약간 어눌한 발음에 택시 기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출발했다. 택시는 공항에서 벗어나 도로 위를 달렸고 택시 기사는 좀 전의 궁금증을 조심스레 풀어보았다. 생김새나 검은 머리색을 보고 한국인으로 생각했는데 어눌한 발음이 영 걸렸던 것이다.
"저기...손님? 혹시 외국인이세요?"
"네? 아, 네."
"아, 그러셨구나. 한국말 잘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꽤 살았거든요."
"오~ 그럼 어디서 오셨어요?"
"중국이요."
"중국인. 오~"
택시 기사는 더 묻고 싶었지만 남자가 눈을 감고 시트에 몸을 파묻는 바람에 더이상 묻지 못했다.
왠지 어색한 마음에 라디오를 틀었고 마침 발라드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남자, 쑨양은 중국인으로 한국에 장기 체류중이었는데 마침 비자 기간이 만료(滿了)되어 중국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자를 연장(延長)한 이후 중국으로 간김에 부모님도 오랜만에 찾아뵙고 친구들도 만나 며칠 간 중국에서 머무른 다음, 오늘 자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었다.
택시 기사의 쓸데없는 호기심을 더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이내 들려오는 발라드 음악에 귀를 기울였는데 마침 그 노래가 쑨양이 좋아하는 노래여서 은은한 멜로디를 타고 고운 음성이 부르는 노래를 달게 들었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여기..."
시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고 지갑에서 지폐를 몇장 꺼내 택시 기사에게 건네주며 거스름돈을 받아 내렸다. 트렁크에서 슈트케이스까지 내리고 택시가 떠나는 모습까지 지켜본 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쑨양이 살고 있는 집은 대로변에 위치한 상가복합형 단층 오피스텔로 장기 거주자와 단기 거주자가 뒤섞인 곳이었다.
쑨양은 장기 거주자였으며 몇년 동안 계약을 갱신해서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낸 덕분에 같은 장기 거주자들과 가벼운 친분도 있었다.
건물 한켠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그가 살고 있는 층수를 눌렀고 이내 안내음성과 함께 문이 닫혔다. 쑨양은 엘리베이터 블랙 액정의 붉은 색 숫자가 변해가는 것을 쳐다보다가 바지에서 진동 느껴져서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휴대폰 액정 위에 뜬 것은 다름 아닌 직장 동료에게 온 문자메세지였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쑨양씨. 한국에 도착했나요? 내일부터 출근하는 거 아시죠? 늦지말고 오세요.
알겠다며 답장을 보냈고 엘리베이터는 착실하게 올라가 그가 살고 있는 층수에서 멈추었다. 쑨양은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을 지나 오피스텔 특유의 복도를 걸어 자신의 집앞에 도착했다.
손에 익은 비밀번호를 눌렀고 곧 해제음이 들려왔다.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슈트케이스를 손에 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중국으로 떠나기 전과 변한 것없이 똑같았고 그새 쌓인 먼지 냄새가 맡아져서 환기할 겸 슈트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창가에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어느 오피스텔이 그러하듯 창문을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정체된 집안의 공기를 순환(循環)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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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록티 등장~ 쑨양도 등장~^^
영작하기 힘드네요;;; 영어고자는 힘듭니다...U_U;;;
어서 태환이 한국으로 귀국했으면 좋겠어요. 영어 안쓰게;;;
빨리 이야기를 진행시켜야겠음ㅎㅎ
다음 편에 성용과 자철이가 다시 나오겠네요^^
※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