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범권] 구원 00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f/0/af08737ec4252fbdd4f36888c1d4ddc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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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나는 십년이고 버려진듯한 회색의 집에서 눈을떴습니다. 그곳엔 나의 어머니와 수십명의사람들,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를 뒤지는 길고양이떼들이 한데 뒤엉켜 하루를 살아가는 그런곳.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었던것은 항상 구석진 자리 한모퉁이를 지키는 우두머리 고양이 한마리이고 왜곡된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속에서 나는 나만의 시간이 그 사람들과 다르게 흘러가는것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진 대우를 받던나는 어느날밤 한마리의 고양이가되어 창문밖을 기어나왔습니다. 그제서야 달빛에 비친 나의 더러움과 죄의 파편들이 비로소 숨김없이 드러난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믿는 신에게서 그제야 등을 돌릴수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자비롭다고 말하는 신이 내게는 가장 모질고 흉악한 그런 존재가 된것입니다.
고양이가 나온밖은 그곳만큼이나 더럽고 차갑습니다. 그릇된 사랑을 받고 ,상처를입고, 셀수없는 눈물방울을 바다만큼 흘린 다음에야 나는 내가 흙바닥을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못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비로운 나의 신은 어디에도 없는것이었습니다. 오직 나의 파멸을 바라는 그곳의 신만이 나를 집요하게도 따라오고 무엇보다 악랄하게 나를 지옥불로 끌어당기며 과거보다 더한 가시채찍으로 나를 찍어내리는것을 반복할뿐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지옥으로 끌려내려 가다가 지쳐 제 발로 가시덤불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길고 편한 잠에 들수있을것같아 눈을 감았습니다. 내가 가시나무에 녹아들어가 덤불이커지게되면 이제 나를 상처주는 무엇도 더이상 가까이 오지 못할테니까요.
비참하고도 차가운 죽음에 점차 가까워질즈음에 나는 처음으로 따뜻한 누군가의 손을 느낄수있었습니다. 오랜기다림끝에 다가온 그는 나만의 신과같은 존재. 정말로 신이있다면 온전히 그의 형상을 하고있을것만 같았습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그 고운손과 살결을 다쳐가며 나를 끌어안아준 그날의 온기가 아직까지도 가슴깊이 남아있는듯합니다.
작고 초라했던 내가 이만큼이나 부쩍 자란것에 놀랐겠죠? 그렇다고 나를 귀여워해주지 말라는것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해주세요. 지금보다 더많이. 내가 정말로 눈을 감을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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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마감하고 기분좋은 새벽공기를 마시며 산책을하다가 앙증맞은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작고, 꼬질꼬질한채 잔뜩몸을 웅크리고 있는 그것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듯 가시덤불속에서 숨을 죽이고 마지막 공기를 들이마시는듯했다. 수의대를 나와 작가가되어 산속별장에 들어온지 2년째. 꺼져가는 불씨를 보는 듯, 위태로운 숨소리를 지나칠수가 없어서 가시덤불을 손으로 헤쳤다. 아끼는 스웨터가 상하고 차가워진 피부에 상처가 졌지만 결국 그것을 꺼내어 올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정지어 말할수가 없을것같다. 단지 갈색의 그것이 사랑을 필요로하는것 같았기에 뜨거운 물에 공들여 씻기고 벽난로앞 흔들의자에 눕혀 가만히 바라보았다. 얇게 찢어져 꼭 감겨있는 눈, 조각한듯 미끄러지는 코에 조금벌어져 있는 입까지, 이 아이가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여쁜 고양이였으리라.
채 지워지지않은 눈물자국위로 다시 눈물이 새어나와 손을들어 조심스레 뺨을 어루만졌다. 가늘게 뜨여지는 눈과 얼마간 짙은 교감을 했다.
굳이 말을하지 않아도, 나는 그를 사랑하기로했고, 그도 나를 사랑하기로한것을 느낄수있었다.
한날은 나무로된 집안으로 너구리 한마리가 들어왔던적이있다. 너구리에게 과일을 나눠주는 모습에 그새 자라나 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네가 질투가났던것같다. 나는 이 날 네가 질투를 한다는것에 놀라기도, 이런사실이 귀엽기도 했다. 결국 너구리를 집밖으로 몰아내고서야 내옆에 웅크린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나마 눈에 스친 두려움에 나는 가여운 너구리를 쫓아내야했지만 너는 나 없이는 다타버려 손대면 부서지는 한줌의 재와 같기에 다시 한번 너를 꼭 품에 안았다. 나약하고 작기만 하던 네가 이젠 나만큼이나 부쩍 자라있었다. 네가 자랄동안 나는 생애 처음 피운고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수있었다. 이것은 필히 너와의 묘한 인연이 영감이 된것이리라. 너는 상처입은채 내게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과도 같았다.
맞다. 아직도 묘한 고양이의 채취가 풍기는 너에게 그만큼이나 묘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유권, 나지막이 읖조려도 건너방에서 방울소리를 울리며 다가오는 너의 머리를 손으로 정성스레 쓸어넘긴다. 그럼 권, 너는 기분좋은듯 가슴팍에 귀를 대고 내 심장소리를 듣곤했다.
네가 나만큼이나 자랄때까지 너는 그목소리를 한번도 들려주지 않아 '쉽게배우는 한글책' 을 몰래 준비해 놓았던 적이있다. 너는 보기좋게 나의 뒤통수를 쳤다. 사실은 식곤증에 탁자위에서 햇빛을 받으며 졸고있던 네가 열린 문틈옆을 지나가다 내가 멈춰선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때, 반쯤 감긴눈으로 서재에 차곡차곡 꽂혀있는 책의 이름을 울음소리를 내듯 읖조린것을 몰래 엿들었더랜다. 기분좋은 그르릉 소리같기도,.. 오랫동안 쓰지않아 제 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성대의 덜 다듬어진 소리 속에서 나는 옥구슬이 도로록 구르는듯한 소리를 찾았다. 이내 눈을 감아버리는 너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원두커피를 내리러 갔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네가 잠들었을때 조용히 한글책을 서랍구석으로 넣어두었다.
2주에 한번. 내 담당자가 이 집을 방문할때를 빼고는 이곳은 완벽한 너의 안식처이자 나의 사랑을 독차지할수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갈색의 묘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있다. 내 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한지 언 1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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