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 스트레스...
오늘따라 시럽을 넣지않은 아메리카노가 유달리 쓰게 느껴진다.
아니..애초에 어쩌다 여기까지 나오게 된건지 ...답답함에 머리를 움켜잡았다. 한적한 회사뒤 카페.
그냥갈까..? 아냐... 괜히 작가님께 피해가 갈지도 몰라... 아니..알아서 조사할수도 있을것같이 말했으면서 굳이 날 부른 이유가 뭐지? 하는 중구난방의 생각들로 이미 머릿속은 과포화였다.
별별생각이 다 들어 관자놀이가 쿡쿡 쑤시기 시작할 때 쯤 드르륵, 하고 맞은편 의자가 느리게 당겨졌다.
"정말 나와 주실줄은 몰랐네요"
조금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지 여자가 살풋 웃어보인다. 긴 생머리와 도드라진 버건디의 입술이 그녀의 옆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꼭 한번쯤 뒤를 돌아볼 그런 비주얼이었다.
정말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구나..
"커..커피 주문하실래요?"
바보같이 말도 더듬고,
"아뇨 괜찮아요. 주소만 듣고 갈거니까"
"...아"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는다. 이런것은 확실히해야할 필요가 있으므로
죄송한데요, 주소를 가르쳐드리려 나온게 아니라 아무것도 말씀해 드릴수가 없다는 걸 알려드리려 나온 거에요.. 무슨 방법으로 작가님 댁을 알아 내실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기위해 개인공간을 가지신 작가님께 찾아가셔서 혹 원고에 문제가 생긴다면 저희 쪽에서도 곤란한 입장이라서요. 급한 일이시라면 말씀을 전해드릴게요..
하는말에 그녀가 픽 하고 웃는다. 뭐가 웃긴거지? 내가?
"말을 전해준다고요? 내가 뭘믿고 그쪽한테 사적인 이야기를 말해줘야 하죠?"
"...그렇긴 하지만...작가님께선..."
"할 이야기는 끝났네요. 안 가르쳐주신다고 하니 좀 꺼림칙하더라도 알아서 알아보는 수 밖에"
한치의 미련도 없이 휙 일어나버리는 모습에 머리가 멍해졌다. 저런 제멋대로인 사람과 그가 맞물리지 않는 톱니마냥 조화롭지 못해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꺼림칙한 방법은 또 뭐야... 괜시리 기분이 나빠져 카페를 나와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묘하게 어긋난 기분이드는 하루다.
*
오늘은 매일과 같았다. 다만 눈이 매섭게 한번더 몰아치고 나서인지, 유달리 바람이 예리할 뿐. 몇해만의 강추위라고 했던가. 너와 산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내 무릎을 빌리고 누운 니가 잠에 취한 모습마저 아름다워서, 나는 왠지모를 씁쓸함을 잊은지 오래였다.
♩♪♬♪
유리를 강하게 때리는 바람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돌렸다, 막 단잠에 들기시작한듯한 너를 보곤 이내 알람이 울린 메신저를 확인하러 가길 포기해 버린다. 저녁메뉴는 살짝 매콤한 봉골레로 할까? 생각하며 유권의 뺨을 쓸었다. 코끝을 치고올라오는 매운향에 고운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주는것은 거부하지 않겠지, 조금 못된생각이지만 이후에 얼얼한 혓바닥을 흐르는 수돗물에 대고있는 모습도 나름 귀여우니까. 절로 미소가지어지는 탓에 입꼬리를 애써내렸다.
진하게 내린 커피를 음미한다. 애써 책상을 창쪽으로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오늘은 햇빛이 좋았다. 대게 이런날은 볕은 좋으나 바람은 날카로운 경우가 많아 밖에 나가면 살을애는 칼바람을 맞기 일쑤이다. 매일 출퇴근을 하는 재효씨에게 감기 조심하라는 안부메시지라도 보내야겠단 생각에 노트북을 켰다.
맞다, 그러고 보니 어제왔던 알림이 있었지
문득 든 생각에 메신저를 띄우다가 마우스를 누르던 손을 멈추곤, 이내 머리를 감쌌다.
까맣게 잊고있었던 십년도 더 된 이야기. 눈을 의심하던 민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트북에는 어젯밤 왔던 재효의 메시지가 띄워진 채 였다.
'작가님... 유세영씨라고 아세요? 작가님을 찾던데요...어디 계시던지 찾아뵌다고...'
공교롭게도 때맞춰 눈을 밟는 자동차바퀴소리가 들린다. 마른세수를 한 민혁이 코트를 집어들다가 울리는 노크소리에 흔들리는 눈빛을 바로잡았다.
"...나 안들여보내줄거야?"
"나가서 이야기하자"
"많이 변했네...내가 기억하는 민혁씨는 훨씬 다정했는데..."
"...여러번 말하게 하지마."
"12년"
"..."
"12년만이야...한국에 온거..."
"날 버리고, 12년만이겠지."
그녀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왜 이렇게..,무서워졌어..? 눈물이 차오르는 눈이 가증스럽기까지해. 민혁이 이마를 짚었다. 울어도 소용없어.
이대로라면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나의고양이가 깰지도 모른다. 이런 까마득한 이야기는 알게하고싶지 않아서, 입구에 비스듬이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런거, 별로 안좋아했잖아."
"..."
"귀찮게 엉겨붙는거"
"..."
"입술 예쁜건 여전하네"
"하.."
"제멋대로인것도 여전하고"
"민혁씨...알잖아...나도 혼자 호주에서 정말 힘들었어...일방적으로 통보만하고 간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내가...."
-딸랑
하는소리에 민혁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가"
"...뭐?"
"여러번 말하기 싫다."
나가줘
코앞에서 문이쿵하고 닫긴다. 잠시 제자리에 서있던 그녀가 넋이 나간듯 있다가 제 화에 못이겨 문짝을 걷어찼다.
쓰레기 같은 새끼 꼭 복수할거야
거칠게 세단을 출발시킨 그녀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2층 창틀에 걸터앉은 유권이 눈을 가늘게 뜨고 차 꽁무니를 시선으로 쫓았다가 침실로 향한다. 확실히 그와 나의 공간은 알듯말 듯 조금씩, 침범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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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왔죠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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