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8/02/1/7f20ba29cad2a26ad690c9231a0dd531.jpg)
02
이번편은 평소보다 급전개가 쩔어요. 죄송합니다. 제 손을 탓해주세요.
(1)
이석민 말에 의하면 윗집 세입자, 권순영은 아침에 짐 몇개를 가득 들고 들어왔다고 한다.
짐이라고 해도 책과 옷 몇벌, 가방 몇개, 세면도구가 전부였다지. 머리는 노랗게 염색했어도 공부는 꽤나 열심히 하는가보다.
그녀석이 이사오던 날, 부모님과 석민이는 2층에 모여 짜장면을 먹었다. 나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올라가지 않았다.
내 못생긴 얼굴을 보여서 창피했던건 아니다. 정말로.
항상 나 아니면 이석민이 있던 우리집 2층에,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평생 살면서 이웃을 가져보지 않은 나와 이석민 (+엄마)에게 이 사실은 꽤 색달랐다.
작게는 우리가족이 아닌 사람이 우리집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것부터, 배달음식을 시켜먹을때는 우리 집 주소 뒤에 1층이란 말을 덧붙여야했고,
가끔 누군가 2층을 올라가는 뚜벅뚜벅소리때문에 놀라곤 했다. 낯선 변화긴 하지만, 그닥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그런 변화를 좋아하셨다.또한 자신의 이웃집 로망- 응답하라 1988같은 -을 실현하고자 자꾸 권순영을 우리만큼 챙기기 시작하셨다.
“여주야, 윗집 가서 이것 좀 주고와.”
“석민아, 고구마 맛있게 쪄졌다. 윗집 청년 좀 주고올래?”
뭐 이런것들. 그 스펙트럼은 고구마, 귤에서 부터 파전, 과자까지 다양했다. 젊은 나이에 타지에 와서 힘들것이라는게 엄마의 말씀이다.
..타지에서 고생은 무슨. 권순영은 이미 친구를 만들었다. 누구냐고? 이석민이지뭐, 따로 누가 있겠는가.
이석민은 나에게 여전히 권순영에 대한 주의를 주었지만 (동생. 쟤랑 단둘이 있지마. 알겠지? 같은.) 정작 본인은 그 권순영과 아-주 잘맞는 모양이였다.
당연히 2층에 누군가 이사오면 실내에서 통하는 계단은 막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족은 그 계단 자체를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권순영이 그 계단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이석민은 가끔 심부름을 갈 때 그 계단을 이용했다. 자주 놀러가기도 했고.
그렇게 함께 놀던 석민과 순영은 가끔 마당에서 마주치면 오버워치 얘기를 하고, 학교에 제일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한 화학 선생님 이지훈의 썰을 나누고있었으며,
벌써 번호교환까지 한 것같아보였다. 나에게 여주야, 권순영 카톡 프사봐봐! 라고 외친적이 있는 걸 보면.
친화력 좋은 두명이 뭉치면 일주일만에 베프가 될 수 있나보다.
나도 사람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권순영은 불편했다.
어쩌다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2층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바깥문으로 돌아가, 그저 문을 똑똑 두드리고,
“저기, 이거.”
딱 두개의 지시어로 대화를 완성했다. 이틀에 한번꼴로 찾아오는 우리 쌍둥이가 귀찮거나 싫을 법도 한데, 권순영은 항상 같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여주야. 날도 추운데 안으로 오지. 고마워!”
“아냐, 맛있게 먹어."
“어! 잠깐만. 이거 그릇 어떻게할까? 같이 먹고 너가 가져갈래?”
“음, 아니. 이석민 올려보낼게. 그때 줘도 돼.”
“..그래!”
항상 이런식으로 나는 그아이를 밀어냈다. 내 나름의 배려였지만, 어떻게 보면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는 배려.
그럴때마다 순영의 얼굴에는 약간의 민망함과 아쉬움이 스쳤지만. 모르는척했다.
왠지 모르게 다른 남자아이들을 대할때와는 다르게, 무조건적인 ‘싫음’이 아니라, 뭔가 삼가하게되는, 그런게 있었다. 누가보면 그냥 남자혐오증있는줄알겠다.
하지만 나도 계속 웃는얼굴로 날 대하는 권순영에게 결국 흘러내리고 말았다. 발단도 결국, 먹는거였다.
한번은 삘이 꽂혀서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이사오고 나서 1주일 정도 되었었나.
내 책상은 창문을 향해있는데, 겨울에는 추우니까 항상 창문을 꼭꼭 닫고 커튼을 쳐두는 편이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지만, 괜히 밤에는 무섭기도 하고, 고양이가 가끔 달려 올라가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이석민도 항상 창문을 닫아두라고 으름장놓기도하고.
하여튼 새벽1시쯤, 1학년 내신등급을 말아먹은 주범인 수학에 꽂혀 열심히 수학공부를 하는 중이였다.
1학년때 수학선생님은 수학을 유독 못하는 나를 징하게도 미워하셨었는데, 2학년때는 기필코 수학선생님의 예쁨을 받겠다고 다짐하며 문제집 답지를 보며 끙끙댔다.
“아씨.. 답지를 봐도 이해가 안가잖아.. ”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 밖에서 똑똑-하는 소리가 났다.
바깥은 칠흑같이 어두워 어떤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왜 가로등빛조차 스며오지 않는거야.
뭐지-싶었지만 내가 잘못들었겠지, 고개를 휘휘젓고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미적분을 만든 사람을 실컷 욕하고있는데, 똑똑-같은 소리가 났다.
새벽 1시에 방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족들은 다 자는데.이석민은 깨있지 않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노래부르는 것 같던데. 내가 소리지르면 이석민 방까지 들릴까?
‘똑똑-’
나는 일부러 숨을 죽였다. 없는 척 하려고. 하지만 저쪽에서는 실루엣이 다 보이겠지. 18년 인생 최대의 스릴러를 느낀 순간이였다. 아, 어떡하지.
방 구석의 다락방에 있는 야구빠따를 들고 창문을 열어볼까 싶어 슬그머니 다락방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바깥에서 누군사 속삭였다.
“야. 여주야. 나 윗집.”
아-
놀란가슴을 쓸어내렸다. 겁에 질려있었던 잠깐의 30초가 너무 화가나 커튼과 창문을 열어버렸다.
양손에 뭔가를 든 권순영이 흰색 니트를 입은채로 서있었다. 아직 찬공기가 방충망 사이사이로 새어들어왔다.
추울새도 없이, 내가 아직 권순영과 어색하다는 사시라저 잊고 나도모르게 빽 소리쳤다.
“진짜 깜짝 놀랐잖아!!! 이 시간에!!”
순간적인 화가 치밀어, 말을 뱉고나니 내가 더 민망해졌다. 하지만 권순영은 당황한 기색 하나없이 눈을 휘어지게 웃었다.
어두운 새벽 1시였지만, 내 방 불빛때문에 그아이의 노란 머리는 더욱 밝아보였다.
그리곤 미안, 미안, 이라고 말하며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말을 건넸다.
“불켜져 있길래, 이 시간까지 뭐하나 싶어서. 공부하나보네?”
“어, 뭐.. 그냥 갑자기 꽂혀서..”
민망해진 나는 괜히 그아이를 걱정하는 척 하며 질문을 했다.
“근데 왜 이시간에 밖에 나와있어?”
“배고파서 편의점 다녀왔지. 짠- 이거봐.”
말하곤 양 손에 가득 든 cu봉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많이도 샀네. 얼핏보니 온통 과자와 음료수였다.
밥 좀 사먹지, 혼자 사는 고등학생 남자애가 잘 해먹을까 순간 걱정도 되었지만, 너무 오지랖인가싶어 그만두었다.
“여주야, 수학공부하는거야? 안힘들어?”
“원래 내가 수학을 못해서 항상 힘들긴 해..”
수학이 대화의 주제로 꺼내지니 약간 토라진 나를 보더니 권순영은 또 꺄르륵 웃었다. 고놈 참 웃음이 많다.
그러곤 봉지에서 부스럭거리며 뭘 찾더니, 나에게 초코우유를 하나 건네주며 말했다.
“히히, 나 수학잘하는데. 개학하면 내가 많이 도와줄테니까 나한테 많이 물어보러와. 그리고..이거 먹어.”
“주는거야? 어, 고마워.”
나는 헐거운 방충망을 열어 순순히 초코우유를 받아들었다. 그런 나를 지긋이 지켜보더니, 권순영은 이내 또 성공했다는듯 주먹을 쥐며 말했다.
![[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8/19/2/e437ecd87d4b098daac87c698e903654.gif)
“와, 드디어 거절 안당했다. 매일 괜찮다구만 하더니.”
약간 가시돋힌 내용의 말이였지만, 그아이의 눈은 여전히 악의가 없어보였다. 괜찮은 것 같아 보였지만, 여태 내가 했던 모든 거절을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모양이다. 괜시리 미안해져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권순영은 그런 나를 신경쓰지 않고 방글방글 웃으며 뿌듯해했다.
“역시 먹는거 좋아하는구나. 다음엔 더 맛있는거 줄게.”
“아니- 먹을거라서 그런건 아니고, 진짜로 내가 낯을 가려서..”
“낯을 가리는구나. 흐음. 알겠어. 하튼 다음에도 나 거절하지 말고.”
“어, 그래.. 고마워.”
권순영은 바보같이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며 또다시 씩 웃더니 무리하지 말고 푹 쉬라는 말을 남긴채 손을 흔들며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받은 초코우유를 들곤 그 아이가 서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밋밋한 내 인생-아니 이석민때문에 딱히 밋밋하진 않았지만 하여튼-에 뭔가 소용돌이같은게 찾아온 기분이다. 바람이 꽤 쌀쌀해 얼른 창문을 닫았다.
권순영이 이과랬지, 맞아. 근처에 이과생이 사는건 꽤 좋은일수도.
편의점표 초코우유를 손에서 굴리며 그 아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게 편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걸 주다니, 권순영도 꽤 괜찮은 애인가- 싶기도 했고.
태생부터 돼지가 맞나보다.
(2)
개학 하루 전 3월 1일이였다. 쌍둥이의 개학에 가장 바쁜건 우리가 아니라, 다름아닌 엄마였다. 나와 이석민은 그저 느릿느릿 태극기 게양을 마친 뒤 다시 잉여로 돌아왔다.
마침 티비에서 옛날 아빠어디가를 재방송해주길래, 우리는 과자한봉지를 뜯어 낄낄대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여유로운 우리와 달리.엄마는 쌍둥이의 교복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이석민!! 너 마이만 있고 교복바지는 어디갔어!!”
“교복바지? 으음... 모르겠떠!”
“야. 엄마 힘들잖아. 가서 빨리 찾아.”
이석민은 투덜투덜 교복을 찾으러 갔다. 아마 2월 첫번째주에 학교를 간 뒤로 교복은 방구석에 쳐박아뒀을거다.
애도 아니고 교복을 이렇게 엄마가 챙겨줘야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나나 이석민은 이렇게 엄마가 챙겨주시지 않으면 등굣날 아침에 난리가 나버린다.
엄마! 양말 어딨어? 이거 구멍났어! 엄마, 내 치마가 왜 이석민방에 있어요? 등등. 그래서 우리는 18살이나 먹고 아직도 엄마가 챙겨주시는 교복을 입는다.
내 교복은 일찌감치 빨려 바깥 건조대에서 말려지고있었다. 1년동안 지긋지긋하게 입어댄 저 회색 교복을 다시 입어야한다니.. 이젠 벌써 2학년이구나. 2학년때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지. 담임선생님이 괜찮은 분이면 좋겠다.
소파에 앉아 바깥창문을 보며 2학년에 대한 걱정을 펼치고 있는데, 아직도 교복바지를 못찾은 이석민때문에 화가난 엄마의 불똥이 나에게 튀었다.
“이여주!! 가만히 앉아있지만 말고 밖에 나가서 너 교복 걷어오고 다림질해!!”
“네 엄마.”
엄마가 저렇게 화나계실땐 피하는게 상책이다. 이석민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온 집안을 누비고 있었다. 쟤는 이상한게 맨날 교복바지만 잃어버린다. 쓸데없이 마이만 온전하고.
나는 바깥의 건조대에 가려 후드집업을 입었다. 3월이라 많이 풀린 날씨였지만 여전히 약간 쌀쌀했다.
수면바지와 슬리퍼차림으로 마당으로 나가 널린 교복을 빨래집게에서 빼내고있었다.
1년동안 입은 내 치마의 엉덩이부분은 반질반질해져있었다.
아.. 이 지겨운 리본타이.. 보풀이 잔뜩 일어나있는 조끼.. 지겨운 야자실.. 또 학생부장은 누가될까- 하며 감성에 젖어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집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안녕- 어어, 가지마. 나 윗집에 이사온 사람인데. 어어 애기야-”
권순영이였다. 예지력 상승 쩌네..
권순영은 항공점퍼를 입고 마당에 쭈구려앉아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새끼고양이들을 품에 안으려 애쓰고 있었다.
사실 우리 고양이들은 아니고, 우리집에 자주 찾아오는 길고양이들. 내가 중학교 2학년일때 말라서 쓰러질듯한 고양이 한마리를 보고 먹이를 주었는데, 그 아이가 쑥쑥 커서 새끼를 순풍순풍 낳더니 아주 대가족이 되어버렸다.
햇수로 벌써 4년째 보고있는 아가들이다.
“아,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자꾸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고양이들에게 하는 말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석민과 내가 얼마 전 나눈 대화가 떠올라 괜히 찔렸다.
‘동생, 세입자 좀 이상한거같지 않아?’
‘좀 이상한건 맞는거같아’
아, 좀 미안해지네. 괜한 죄책감에 걷던 옷을 건조대 위에 대충 올려놓고 고군분투하고있는 권순영에게 다가갔다.
“걔네들 원래 자기한테 자꾸 다가오는 사람은 싫어해.”
“엄마야! 어, 여주야! 좋은아침!”
내가 계속 옷을 걷고있던걸 못본 모양인지, 내가 다가가니 권순영은 화들짝 놀라며 이사오던 그 날 처럼 좋은아침-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곧 멀리 도망가는 고양이들을 시무룩해져 바라보았다.
“혹시 고양이 좋아해?”
“당연하지! 귀엽잖아.”
“길고양이 싫어하는 사람 많던데, 다행이다. 그리고 걔네는 먼저 다가오는거 싫어해.. 나중에 사료를 주던지, 해봐.”
내가 약간 멀찍이서 쪼그려앉아 조언을 하니, 권순영은 내게로 고개를 휙 돌려 말했다.
“어- 너도 고양이같다.”
“..?”
“너도 내가 다가가면 엄청 싫어하잖아.”
“어- 싫어하는게 아니라 말했지만 낯가렸던거야-”
“알아, 그냥 농담한거야. 놀라지마.”
놀라지마. 네글자에 많은 의미가 담긴 듯 했다.
머쓱해진 나는 ‘우리집에 사료 있으니까 나중에 석민이한테 달라고 해-’라고 하며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권순영은 일어나는 날 붙잡았다. 그녀석은 내 후드집업소매를 꼭 잡으며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6/20/1/dd8a1b93c74532b8e7e093b42494e301.gif)
“있잖아, 아직도 내가 낯선거 아니면, 나랑 같이 어디좀 가줄래?”
밑에서 쳐다보는 권순영이 너무 당황스러워 눈마주치기를 포기했다. 나 밑에서보면 턱살대박인데.
“야- 언제까지 낯가리려구. 우리 이제 지겹도록 많이 볼텐데?”
“..”
“싫으면, 말구..”
내 후드집업을 살며시 놓는 권순영의 옷자락을 내가 다시 덥석 잡았다. 왠지 그렇게 떨어지게 두면 안될것같은 기분이였다.
“저저저, 같이 가줄게, 아니 같이가자!”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외쳤다. 시무룩해지려던 권순영의 얼굴은 밝게 활짝 펴졌다. 모르겠다. 일 친것 같다.
-
수면바지차림으로 바깥에 나갈 순 없으니까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화장을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오바하는것같아 포기했다. 어차피 첫만남부터 쌩얼이였는데 뭐.
이석민은 아직까지도 교복바지를 찾고 있었다.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후다닥 뛰쳐나가는데, 그 사이에 이석민에게 걸렸다. 교복 안다리고 어디가냐는 물음에, 갑자기 친구가 만나자고 했다고 둘러댔다.
사실대로 말하면 또 나서서 말릴것같아서. 미안해 석민아..
대문 밖에서 기다리는 권순영을 콕콕 찔러 함께 길을 나섰다.
만난지 얼마 안된 남자애랑 단둘이 어딜 간다는 자체가 내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였지만, 왠지 다시 이 아이를 거절하면 다음은 없을 것 같았다.
어- 되게 다음이 없으면 아쉬운듯이 말하네 나. 아 몰라. 그냥 직감이 그랬다. 경직되어 걷고있는 나를 찌르며 권순영이 물었다.
“여주야. 여기 근처에 미용실 아는 곳 있어?”
“미용실..? 아, 염색하려고?”
"응, 내일 개학인데,. 이상태로 가면 선생님들한테 엄청혼날걸.”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권순영이 말했다. 하긴, 전학생주제에 머리까지 노랗다면 선생님들이 가만두지않겠지.
어차피 덮을거 왜저렇게 파격적인 염색을 했나 궁금해 물어보니, 권순영은 "오히려 짧고 굵게 엄청난 염색을 하는게 간지나지 않냐"라고 말했다. 응. 정상은 아니다.
나는 온가족이 자주가는 동네 미용실에 권순영을 데려갔다. 아주머니는 반갑게 우릴 맞아주셨다.
권순영은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머리에 대해 설명했고, 그아이는 염색을 시작했다. 미용실 아주머니와 자연스럽게 수다떠는 모습이, 참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타입이구나-싶어 부러웠다.
“어휴 학생 참 잘생겼네-! 어떻게 여주랑 같이왔어?”
“아, 제가 석민이네 2층에 이사왔거든요, 여주한테 미용실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어요.”
“석민이엄마가 2층 내놓는다더니 빨리 들어왔구나~”
말 많은 아주머니의 질문을 웃으며 받아주는 권순영을 구경하는데, 권순영이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고마워-’라고 말했다.
권순영은 무슨 염색약을 치덕치덕 바르고, 이상한 외계인같은 모자를 썼다. 거울로 몰래 힐끗힐끗 쳐다보다 눈이 마주쳐 빵 터져버렸다.
날 보더니 권순영은 부끄럽다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다가 핸드폰을 건네며 내 모습좀 찍어줘- 부탁했다.
‘찰칵-’
“아, 너무 웃기다. 이거봐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울로 보는거보다 더 웃기게 생겼는데? 너가 웃을 만 하네.”
"너 그거닮았어, 이티?ㅋㅋㅋㅋㅋ"
"아ㅡ 진짜 너무하네, 근데 닮은거같기도하고 ㅋㅋㅋㅋㅋ"
나는 어느새 권순영의 옆자리에 앉아 사진을 보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권순영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 카톡프사 해야겠다. 하고 중얼거렸다.
곧 웃음이 멎고 어색한 기류가 흐르자 나는 아차싶어 얼른 일어나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옮겼다.
순영이는 하려던 말이 있었던 것 같지만, 이내 아주머니가 오셔서 머리에 이상한 약품을 더하시느라 입을 합 다물고 말았다.
..나는 그걸 멍하니 쳐다보다가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여주야, 일어나. 나 염색 다했어.”
“..헐. 나 잔거야? 아, 미안해..”
“ㅋㅋㅋㅋ 침까지 흘렸는데? 괜찮아, 일어나. 읏챠.”
권순영은 비몽사몽해하는 내 팔목을 약하게 쥐어 일으켰다. 그 짧은 순간에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다.
침을 훔쳐 닦고 안녕히계세요, 허둥지둥 인사를 하고 바깥에 나오니 그아이의 머리색깔은 밝은 갈색이 되어있었다. 금발일때보다 뭔가 앳되어보였다.
금발일땐 사실 스무살이 넘어보였는데, 갈색으로 염색하니 약간 제 나이로 보이는 것같기도 하다.
봄바람이 그아이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니, 생머리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영양을 했는지 머릿결이 굉장히 좋아보였다.
윤기나는 머리칼에 시선을 빼앗겨 걸으면서도 계속 그아이의 머리만을 쳐다보았더니 눈치를 챘는지,권순영이 머리를 낮추며 내쪽으로 다가왔다.
“왜, 신기해? 만져볼래?”
어-, 하며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이게 뭐하는짓인가 싶어 손을 휙 내렸다. 아니야, 하고 부끄러워 앞서나갔다.
권순영은 또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킥킥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왠지 농락당한(?) 기분. 그 녀석의 눈에서 느낀 약간의 위압감이 사람을 놀리는 능글맞음으로 변한 것 같았다.
권순영은 나와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날 보면 항상 재밌다는 듯 웃었고, 나에게 자주 다가왔다. 낯섬의 감정이, 점점 친근함으로 변해갔다.
내가 뾰루퉁하게 걷고있으니 내가 아까 그랬던것처럼 권순영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외면해도, 굴하지 않고 쳐다본다.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갔다. 사실 돌리질 못하겠다. 왠지 얼굴이 빨개질것만 같아서.
집에 도착할때까지 모르는척하려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내 관자놀이가 곧 뚫릴것만 같아 결국 아는척을 해버렸다.
“저기, 왜.. 할말있니..?”
“으응? 아니, 그냥. 신기해서.”
“뭐가 신기한데?”
“처음에 만났을때, 너가 나한테 말했던거 생각나?”
순간 걸음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 녀석이 처음 우리집에 온 날, 이석민과 집을 소개시켜주고.. 둘러앉아서 서로 얘기를 했지. 권순영이 나한테 질문들을 퍼부었고..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
‘넌 내가 벌써 편해?’
누가 들어도 시비였던 내 질문. 권순영은 그저 내가 익숙하다고 대답했고,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석에게 던진 질문이였다.
“내가 편하냐고 한거?”
“응응. 우리 진짜 처음만났을때.”
“아- 그땐 미안했어.. 내가 진짜- 음, 누누히 말하지만 낯을 많이 가려서..”
“에이, 신경쓰지마. 그냥 너가 나한테 그렇게 물어봤을때만 해도, 너랑 친해지기 어렵겠다, 싶었거든,”
“아..”
“근데 벌써 우리 많이 친해진거같다. 그치?”
“...”
응, 나도 너가 편하다. 라고 대답하면 될것을 내 입술은 꾹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듯한 권순영이 내 옆에서 계속 기웃거렸다.
이내 내 표정을 살피더니,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뭘 그렇게 또 심각해지려구그래. 앞으로 계속 마주치면 친해질건데. 그렇지?”
“..어, 그치.”
권순영은 걸음을 멈추고 내 앞에 섰다. 계속 발 끝만 쳐다보며 걷던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드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한 권순영이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뭔가, 하는 눈으로 그아이를 쳐다보니 이내 나와 눈높이를 맞추곤 내 양 어깨를 잡았다.
“여주야.너는 싫다고 해도 우리, 어차피 친해질거야.”
“..?”
“왠지 알아?”
“..어, 같은학교니까..?”
“그것도 그렇지, 근데.”
“...”
“내가 우리, 엄청 친하게 만들거거든. 꼭.”
"..?"
"그러니까 나 싫어하지만 마. 알겠지?"
내가 계속 느끼던 그 눈빛은, 역시나 약간의 위압감을 띠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붙은 그아이 얼굴에 대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고, 이내 권순영은 다시 눈을 휘어지게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씩씩하게 나를 앞서 걸어갔다.
미용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약 10분동안, 그녀석은 어색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집에 다다르자, 권순영은 대문을 여는 나를 지켜보곤 살 게 있다며 다시 골목을 빠져나갔다.
막상 그녀석과 함께 한 시간은 2시간 남짓인데 불구하고 난 왠지모르게 피곤해져있었다. 오늘 나는 그아이와 친해진건가, 아니면 .. 모르겠다.
대문앞에서 잠시동안 서있다가, 열쇠를 찾아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교복바지를 찾은듯, 자기 교복과 내 교복까지 다리고 있는 이석민이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이석민의 옆에 앉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석민아. 너 권순영이랑 얼마나 친하냐.”
“순영이? 그냥 가끔 카톡하고, 같이 게임도 하고. 아, 어제는 같이 준비물사러 드림디포 갔다왔는데? 그건 왜? 걔가 너한테 연락해?”
“뭐래, 그냥 궁금해서. 너 벌써 엄청 친해졌구나.”
“어. 괜찮은애같음. 너도 친해져. 아, 단둘이 만나진 말고.”
“..그게 무슨 개논리냐.. 근데 너 내꺼까지 다려주는거야?”
“그래. 오빠밖에 없지 이기집애야? 내일 매점에서 빵이나 하나 사주든가.”
“ㅋㅋㅋㅋㅋㅋㅋㅋ두개사준다. 고마워.”
그런 이석민을 지나 내방으로 들어왔다. 자꾸만 너와 친해지겠다고 한 그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맴돌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고요한 내 인생에 왜 끼어든거니. 그녀석이 너무 당황스럽다가도, 약간 상처받은 눈빛만 생각하면 내가 너무 그아이를 내쳤나 싶어 죄책감도 들었다.
내일 학교 우리랑 같이갈래, 라는 말이라도 했어야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몇반인지 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상처를 준것같아 미안했다. 침대에 드러누워 나는 바보다-하며 내 머리를 퍽퍽 치고있는데,
‘똑똑-’
이 소리는, 그 날 새벽 공부하던 날 권순영이 찾아왔을때 낸 소리다. 바깥이 아직 밝은 탓에 그 아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후다닥 달려가 창문을 여니, 역시나. 권순영이 서있었다.
두번째지만 , 방충망 하나를 두고 그아이를 마주하면 왠지모를 애틋함이 생겼다. 무슨 검정고무신에서 기영이랑 그 여자친구가 창문을 호호 불어가며 닦는 그런 장면도 생각나고. 망측하게시리.
“어, 갔다 왔나 보네.”
“응- 이거 사러 갔다왔어. 이거 열어 줄래?”
방충망을 열고, 권순영이 건네준 것을 받았다. 근처 카페의 초코라떼였다.
“..나주려고 산거야..?”
“응. 오늘 나 놀아줘서 고마워. 덕분에 염색도 싸게 잘 했다.”
“어- 근데 이런거 안줘도 되는데.. 수고한것도 없고.. 그냥 너 먹어.”
이것까지 받아들면 내가 너무죄인같을것같잖아! 그 감정을 피할 자신이 없어 초코라떼를 권순영에게 다시 내밀었다.
권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음료수를 내 손에 다시 꽉 쥐어줬다.
![[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7/23/0/cac29be740a9fa396ac3e11482d4ca4c.gif)
“너 고양이같아서. 친해질때까지 노력해보려고. 나 들어갈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권순영은 웃으며 내 창문의 방충망을 닫고 계단을 따라 사라졌다. 나는 그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 아이의 말을 곱씹었다.
고양이 같아서, 친해질때까지.. 고양이. 고양이.. 아-
‘고양이는 먼저 다가오는거 싫어해. 사료를 주든지, 해봐.’
그러니까, 이 초코라떼는 나한테 주는 사료같은거고, 이렇게 해서 나랑 친해지겠다-는 건가.
와, 이새끼.... 이석민을 이은 프로 놀림러같다. 내 인생에 이석민같은 놈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뎅-하고 맞은 기분이였다.
저 녀석은 이렇게까지 해서 왜 나랑 친해지고 싶어하는걸까. 그리고 친해지는 방식은 또 왜이렇게 독특한거지. 이석민이랑 친한 이유가 있구나, 저놈.
모르겠다. 맛있다. 아, 또 맛있으니까 기분좋다. 저 능글맞은놈이랑 함께 다니는 학교라니. 나 괜찮을까.
“아-어떡해-”
잠시 뒤,이석민이 노크를 한 뒤 내 방문을 덜컥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내 교복을 들고 있었다. 방문 손잡이에 내 교복을 걸더니, 방좀 치우라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석민이는 내 발 근처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는 책을 책꽂이에 꽂아넣고, 내가 벗어놓은 후드집업을 의자등받이에 걸쳐두었다.
그러다가 얼빠진 나를 그제야 발견했는지, 내 눈앞에 저 손을 들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얘 이상하네. 내가 반응이 없자, 책상위에 있던, 권순영이 준 초코라떼를 살며시 들고 빠져나갔다.
제 여동생이 왜 이런상태인진 별로 안궁금한가보다.
아, 이상한건 권순영이 아니라 나였나. 머리가 뒤죽박죽이였다. 내가 왜 이렇게 고민하고있는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저녀석과 함께 다닐 학교에 대한 고민인지, 아니면 내가 느끼는 이 오묘한 감정에 대한 고민인지. 뭔가 엄청 고민되는데, 고민거리가 뭔지조차 모르겠으니 미칠거같았다.
그래, 어느 누군가가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 시간을 뺏기는게 가장 큰 시간낭비라고 했었지.
생각을 그만두고 빼앗긴 초코라떼를 되찾으러 이석민을 따라 거실로 나갔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3)
3월 2일
아침은 전쟁이다. 언제나 전쟁이다. 이석민은 머리도 짧은 주제에 한번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올줄을 몰랐다.
"이석민 나 급하다고!!!!!"
"나 못끊어 안방화장실가~~~~~~"
"아, 쫌!!!!!! 아빠계신다고!!!!!"
이석민과 함께살면 평생 이런아침을 보내야한다. 불쌍한 나.
출근준비하랴, 쌍둥이 등교 신경쓰랴 엄마도 굉장히 바빠보였지만- 나도 나대로 바빴다.
왠지 모르게 어제 챙겨둔 교과서는 이석민의 방에서 나뒹굴고 있었고(아마도 지걸로 착각한 모양이다), 스타킹을 신으려고 집어들면 어김없이 올이 나가있었다.
내 방에서 우당탕 거리며 교복을 입고 있는데, 2층에서 누군가가 내려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커튼을 쳐두어 볼 순 없지만, 권순영일것이다.
창문을 열고 ‘우리랑 같이가자-’말걸까도 싶었지만, 괜한 오지랖같아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어련히 만나겠지, 라는 심정으로.
치마를 입고, 와이셔츠를 입고, 니트조끼까지 입었다. 난 1년째 리본넥타이를 쓰고 있지만, 난 그걸 묶는 방법을 도통 습득하지 못했다.
분명 입학할때 한시간동안 엄마한테 특훈을 받았는데도, 내가 묶으면 리본의 형태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냥 지렁이같았다.
그래서, 내가 항상 리본을 묶는 방법은-
“석민아. 나 리본묶어줘.”
![[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5/22/1/8e219bc15049982868b5ff3879bd30ca.gif)
“이그, 바보야, 언제 혼자 맬래. 너 오빠없으면 이제 벌점 폭탄이야.”
“아 빨리 매주기나해. 밥먹을시간없어.”
“난 먹었는데. 너만 먹으면 되지롱.”
바로 이석민에게 부탁하기. 말은 밉게해도, 내가 리본을 매어달라고 하면 양말을 신다가도 일어나 묶어줬다. 엄마는 항상 그런 날 보고 타박하셨다. (18살 먹은 애가 리본하나도 제대로 못묶고-! 라는.)
이번해 목표는 혼자 리본 묶는방법 터득하기다. 아, 나 운동화끈도 못묶는데. 그것도 배워야겠다.
부모님은 교복을 입은 우리를 보시더니 “이놈들을 2년이나 더 키워야한다니..”하며 혀를 차곤 출근하셨다.
나와 이석민은 서로의 시간표를 체크하고, 바깥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버스를 타러 나갔다. 지각을 간신히 면한 시각이라 버스정류장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석민아. 너 담임선생님 누군지 알아?”
“어. 아마도 체육..”
“헐- 승철쌤? 망했네... 힘내..”
“진짜 무서울거같아.... 졸지도 못해....그 쌤, 누가 어떤 시간에 졸았는지 다 안대..”
“그건 다행이네. 너 그만좀 졸아라. 집에서 안자고 학교에서 자냐,”
“그래도 내가 4교시랑 방과후때는 수업 얼마나 잘듣는데, 그래서 지훈쌤이 나 이뻐했잖아.”
“지훈쌤이 누굴 예뻐한다니 말이 되는소리를 해라.근데 왜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예비소집일날 안오신걸까..궁금하게..”
“새로 오는 선생님이라 그런거아닐까? 이사를 안오셨을수도있지.”
“으악- 제발 괜찮은 선생님이였으면 좋겠다.”
“내가 기도했으니까 좋은 선생님일거야. 걱정하지마. 버스온다.”
우리는 조잘조잘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펼치며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학교는 예비소집일날 각자의 다음학년 반을 알려주고, 담임선생님을 소개해준다.
문과 일본어를 선택한 나와 석민이는 떨어져 각각 1반과 2반이 되었다. 석민이의 담임선생님은 엄하기로 소문난 체육, 최승철쌤이였다.
잘생기고 매너있어 여자아이들에겐 인기가 많지만, 남자아이들에겐 두려움과 질투의 대상이였다.
그래서 예비소집일날, 최승철 선생님이 2반 담임으로 소개되자 여자아이들의 환호성과 남자아이들의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와 오묘한 소리가 났었지.
내심 공부에 관심이없는 이석민을 확 잡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고있다. 우리반 담임선생님이였어도 괜찮았을텐데. 조례 종례마다 눈호강은 제대로 했을텐데..
하지만 정작 그날, 우리반 선생님은 소개되지 않았다. 새로오시는 쌤인데, 개학일로 소개를 미룬다고 했다.
작년 담임복이 좋지 않아 반장을 하며 고생을 했던 나로선, 좋은 담임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다.
나와 이석민은 1반의 담임이 제발 괜찮은 사람이게 해주세요!하고 매일 밤 빌었다. 이석민은 오바해서 물까지 떠놓고 기도했다.
예비소집일때모다 더 많이 모인 학생들과, 새싹이 돋아나 싱그러운 교정이 아직 추운 봄이였지만 따스했다. 완연한 새학기의 분위기였다.
이석민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내가 선배라니!!’를 외치고 있었다. 이럴때면 쌍둥이인걸 격렬하게 숨기고싶다.
강당으로 이동하기위해 본관으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동시에 툭 쳤다. 돌아보니-
![[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8/19/3/6aaf8b999952d4ae758020573028576f.gif)
“야 쌍둥이들아! 잘 지냈냐!”
김민규였다. 이석민과는 중학교때부터 친했고, 작년 우리반, 1학년 3반의 부반장이였던 녀석. 반장은 나였고.
안좋은 선생님 밑에서 우리둘이 갖은 고생을 하며 전우애를 키웠다. 민규 얼굴만 보면 작년에 했던 고생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예를 들어 ‘무슨일이 있어도 여름방학 방과후 전원 다 신청하게 해-’라는 명령때문에 밤새 카톡을 돌리고, 사비를 털어 맛있는걸로 유혹해, 1학년 3반 전원 여름방학 방과후 참석이라는 기염을 토해냈던 기억이라던가, 스승의날을 약소하게 챙기자 변해버린 선생님의 태도때문에 다시 돈을 걷어 비싼 팔찌를 해드렸던 기억.
저런사람이 선생인가-하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옆에서 나보다 더 죽을것같이 힘들어하는 김민규가 있어 1년을 버텼다.
사실 김민규는 작년 야자시간, 교실에서 나 부반장하기싫어-하며 엉엉 울었던 적도 있다. 너무 웃겨서 동영상까지 찍어놨는데, 아직 모르는것같다. 언젠간 써먹어야지.
1학년 3반 친구들의 대부분이 2학년 1반으로 올라왔는데, 그중에는 김민규도 껴있었다. 고로, 나와 김민규는 2년동안 같은반이 되었다는 말.
김민규는 나와 이석민사이를 파고들어 어깨동무를 걸쳤다. 이상하게 나만 뚝 떨어진 형태가 되었다. 뒤에서 보면 좀 웃기겠군.
“민규 하이.”
“오랜만이다 김민규~”
“이석민이랑은 방학때 피씨방에서 하도 많이 봤고. 이여주 넌 진짜 오랜만이다. 작년엔 하도 봐서 얼굴만 봐도 질렸는데. 간만에 보니 반갑다?”
“넌 방학사이에 더 까매졌다. 어디 해외라도 갔다왔니?”
“아 진짜 짜증나 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더 까매졌댘ㅋㅋㅋㅋㅋㅋㅋ”
나와 이석민은 사이좋게 김민규를 놀리며 강당에 도착했다. 강당에는 이미 1,2,3학년들로 북적였다.
나와 김민규, 이석민은 서로의 반을 찾아 흩어졌다. 그래봤자 바로 옆줄이라, 비슷하게 서게 되었다.
우리반에 서있는 친구들과 대충 인사를 하고, 이 강당 어딘가에 내 담임이 있을거야! 라는 일념으로 사복차림의 사람들을 모두 스캔했다.
열심히 입구부터 뒤지고있는데, 벌써 담임 소개가 시작되었다. 귀찮은걸 싫어하는 교장선생님은 입학식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훈화를 생략하고 ‘1학년 1반 담임이자 1학년 부장쌤- 한문, 한성수쌤-’을 외치고 계셨다.
담임을 소개할때마다 곳곳에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인기가 있는 선생님이면 그 소리가 더 컸다. 순간, 내가 잊고있었던 존재가 생각났다.
권순영!
담임을 찾느라 권순영을 새까맣게 잊었다. 이석민에게 권순영이 몇반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석민은 모든 선생님에게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부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어차피 이과니까 있어도 엄청 멀리있겠지, 싶어 찾기를 그만두었다. 그냥 좀 이따 집갈때나 이석민이랑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8반까지 있는 1학년의 절반정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김민규가 나를 톡톡치더니 뒤에서 귓속말을 했다.
“야. 내가 예비소집일날에 교무실 청소하면서 대박인거 들음.”
“뭘들었는데?”
언제 쯤 2학년 선생님들이 단상에 올라올까 싶어 앞에 시선을 고정하고 되물었다.
“사실 쌤들끼리 말하는거 엿들은거긴 한데. 너가 들으면 완전 좋아할듯. 우리 담임 있잖아.”
민규가 ‘담임’이라는 말을 꺼내자 마자, 몸을 통째로 뒤로 돌렸다. 나는 김민규에게 담임에 대한 모든것을 털어놓으라며 다그쳤다.
김민규는 대박 찌라시를 물어온 기자마냥 비밀스럽게 말했다.
“엄청 젊고, 이번이 교사 첨인 쌤이래. 키도 크고 잘생겼다는데.”
“헐, 대박. 진짜?”
“어. 역대급이라더라. 승철쌤 뺨친다고 하던데.”
“뭐? 잘생김이 승철쌤급이라고? 미친거아냐?”
“개쩔지. 이름이 뭐랬더라. 아... 맞다. 권ㅅ-”
“이제 2학년 선생님들입니ㄷ-”
“헐, 대박!”
“야 누구야? 쩔어.”
“미친 대존잘!!!”
김민규 말은, 교장선생님의 말과 아이들의 환호성에 묻혔다. 옆에서 여자아이들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흥분해, 여기저기서 존잘! 와, 씨! 나 왜 1반아니냐. 하는 탄성과 비속어가 남발했다.
오죽하면 아이들의 목소리때문에 마이크소리가 묻혀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조용히시켜야할 판이였다. 마주보고있던 나와 김민규는 아이들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주위를 살펴보던 김민규도 앞을 보더니, 아. 진짜네. 라고 자그맣게 말했다.
뭔데? 하니, 김민규는 말없이 내 어깨를 잡고 내 몸을 돌렸다. 단상에 2학년 선생님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8반 선생님, 7반 선생님, 6반 선생님...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반, 1반 선생님.
나는 앞에 꽤 키가 큰 친구가 서있는 바람에 까치발을 들며 구경해야만했다. 김민규는 도와준답시고 내 마이의 뽕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쭉 올려주었다. 이게 무슨 옷걸이냐.
화낼겨를도없이 내 담임선생님들 보기 위해 애썼다.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큰 키에, 검정색 정장, 갈색머리, 흰 피부의 남자가 맨 끝에 서있었다.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니,
어?
꽤 익숙한 사람이 서있다.
아이들이 좀 진정되자. 교장선생님은 몇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시며 말을 이어간다.
“자, 여러분. 젊은 선생님 봐서 흥분되는건 이해하겠는데, 조용히좀합시다. 여기 여고 아닙니다.”
여자아이들은 부끄러운듯 꺄르륵 웃었고, 남자아이들은 엄지를 아래로 향하게 하며 우-우- 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장선생님은 무심하게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2학년 선생님입니다.. 자, 우리 학교 최연소시죠.”
와. 설마. 잠깐만.
“수학담당이시고..-”
‘나 수학 잘하는데. 많이 물어보러와.’
'음, 우선 이과지.'
“1반 담임이신-”
‘내가 우리 친해지게 만들거거든’
“권순영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1반인 여자아이들은 기쁨에 미쳐 날뛰었고, 다른반의 여자아이들은 내가 왜 1반이 아니냐며 울기시작했다.
우리 담임이란 사람은, 너무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한발자국 앞으로 나와, 또 너무 익숙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 설마. 이건 꿈일거야. 그렇게 믿고싶었다.
뒤에선 김민규가 야. 왜. 니스타일 아니냐? 하며 쿡쿡 찔러댔고, 나는 권순영-권순영쌤-을 쳐다보며 벙쪄있었다.
인사를 하고 다시 뒤로 들어가던 담임은, 우리반을 보더니 손을 크게 흔들었다. 우리반 아이들은 꺅꺅거리며 함께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을 흔들기는 커녕, 웃지도 못했다. 우리 2층에 사는 그 사람과 너무 똑같이 생긴, 담임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할때면 항상 느꼈던 왠지 모를 일말의 위압감과 따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정확히 우리 담임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씨익 웃었다. 내 방의 창문 밖에서 웃었던것처럼. 나는 굳어버렸다.
“..여주야.. 저거 권순영 아니야..?”
“...맞나본데...?”
“뭐야, 너네 우리 담임이랑 아는사이야?”
눈치없는김민규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세상이 무너진듯이 서로를 쳐다봤다.
“..좀 알지..그냥 어디 사는지 정도..?”
“...아.. 나 상황파악이 안돼 석민아....”
“쟤 뭐야,아니 저분 뭐야.......”
나와 이석민이 멘붕에 빠져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 사람은 단상위에 서서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왜 우릴 속인거고,
왜 하필 내 담임인거고,
교사인 주제에, 어떻게 18살이라고 말 할수가 있지?
나한테 자꾸 다가오던건 뭔데.
만나면 물어보고싶은게 산더미같았지만, 얼굴을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내 걱정도 쓸모가 없어졌다.
“여주야, 정신차려라. 우리 이제 담임시간이라 반으로 이동한대.”
아- 망했다.
학교 무너졌으면 좋겠다.
"자ㅡ, 1반은 절 따라오세요!"
너무 익숙한 음성이다. 김민규는 얼빠진 나와 이석민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했다. 야, 니네정신좀 차려봐!! 라며 흔들어댔지만 나와 이석민은 꿈쩍도 할 줄을 몰랐다. 그때,
![[세븐틴/권순영] 윗집 세입자=담임 선생님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5/10/22/eb1947da4377d8cefe71c6f659ee88c3.gif)
"저- 뒤에있는 여학생이랑 남학생도, 빨리 따라오세요!"
담임이 우리를 콕 지목해서 말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어제도 봤던, 너무 익숙한 윗집애가, 나를 쳐다보고있다.
그래, 우리 담임.
윗집 세입자 권순영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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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제가 진도를 빨리 빼고싶은 마음에..한화만에 이렇게 많이...죄송합니다ㅠㅠㅠ
점점 작붕오네요...아..그런데 제가 어ㅈ쩔수가없...아..모르겠..아..죄송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글 쓸 수 있을때 최대한 많이 빼놓고 싶어서 ㅠㅠㅠㅠ무리를 한 것 같아요.
참 꼬인것도 많고 떡밥투척한것도 많은데, 그것들 다 회수하면서 애기들 예쁘게 만나게 해볼게요.
이번화에 드디어 권순영이 담임이란것도 알았고, 민규도 나오고, 승철쌤이랑 지훈쌤의 이름이 등장했네요... 여주 복받았네....
민규는 그냥 친구랍니다 (찡긋
실제로 소설 속에 나오는 집구조는 저희집을 참고한건데, 서술이 어색하게돼서 읽으면서 이게 가능해? 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거같아요....ㅠㅠㅠ
제 글솜씨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할것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빠 석민이를 좋아해주셔서 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해요. 저도 오빠가 없어서 어떻게 그려내야할까, 하다가
그냥 제 상상속의 오빠를 꺼내왔거든요.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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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는 모든 분, 신알신 해주시는 모든 분, 읽고 댓글 남겨주시는 독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꾸벅)
날 더운데 몸조심하시구 현생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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