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T IT 02
Want It, Warn It, Own It
원하다 ,위험하다, 소유
written SOW.
02-1.
고양이가 낮게 그르렁댔다. 여주의 손을 핥짝이던 고양이가 여주와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달아났다.
여주는 고양이가 달아나자 아쉬워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 내가 미쳤지, 여기서 잠들다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잠을 꽤나 푹 잔거 같음에도 여주는 뻐근한 어깨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곳에 온지 이틀 ‥ 이 아니구나 이틀연속으로 잤으니 공식적으로는 4일 째 인 셈이었다.
그동안 정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분명 이 잡듯이 자신의 행방을 뒤질 터, 만약 지민의 정체가 정국에게 틀켰다면 진작에 자신을 데리러 왔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정국은 지민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지민은, 어떤 사람일까.
침대에서 일어난 여주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눈에 익은 집구조에 여주는 자신도 사람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자신은 적응을 했으니 사람이다.
손 끝을 타고 흐르는 명백한 진실에 여주는 그만 목놓아 울 뻔했다. 나도, 살아있구나.
최근에 약을 못 먹었더니 더욱더 심해진 증상에 여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식탁 의자를 잡아 지탱했다.
항상 정국이가 챙겨줬는데.
끊임없이 생각나는 정국에 손이 잘게 떨렸다. 정국이 너무 보고싶다.
"일어났어? 너무 잘 자길래 안 깨웠는데."
씻고 나왔는지 목욕가운을 걸친 채 머리를 탈탈 털며 나오는 지민에 여주가 멍하니 지민을 쳐다봤다.
뭐랄까, 포르노의 한 장면 같았다. 남자가 이런 분위기를 낼 수도 있구나. 언제나 목욕가운을 입은 채 유혹하는 건
여자의 역할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신이 홀릴 지경이었다.
지민은 무서운 사람일까 , 다정한 사람일까.
간간히 풍겨오는 피 냄새와 보이는 자잘한 상처들은 지민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이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착각이 든다.
편안하진 않지만, 불편하지도 않다. 물론 이곳에 눌러붙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 나 그렇게 쳐다보면 좀 위험한데."
지민은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나 성인임은 확실했고, 여주 자신도 성인이었다.
성인 남녀 둘이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지민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위험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저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질 않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넘겨준다던가.
제 3자의 눈으로 본다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행동이었지만 지민은 아랑곳 않고 크고 작은 애정을 자신에게 쏟았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적정선을 지키는 지민에 마음 놓고 있었지만.
저렇게 목욕가운을 입은 채로 저런 말을 하면 자신도 얼굴이 달아오를 수 밖에 없다.
"왜 또 얼굴이 빨개져. 이상한 상상 했구나, 우리 여주."
여주가 제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감싸쥐며 뒤돌았다. 자꾸 휘둘리기만 하는 자신이 싫었다.
어찌보면 자신은 납치당한건데 ‥ 혹시 자신이 지민을, 아, 그럴리 없다. 내게는 정국이가 있으니까.
정국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지민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현재 자신의 세상은 지민의 집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세상의 주인은 지민이었다. 거스르게 되면 그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압박감이 여주를 붙잡고 있었다. 만약 이 집을 빠져나가게 되더라도 , 지민이 자신에게 충고한 것 처럼
언젠간 자신을 찾아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족쇄가 되어 지민을 외면할 수 조차 없게 하고 있었다.
"뭐 먹고 싶은거 없어?"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밥맛도 없었다. 애초에 정국에게서 벗어난 자신이
잘 지내는 것이 이상했다.
여주의 거부에 지민이 흐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여주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럼, 밥 안 먹을꺼야?
여주가 제 앞에 다가선 지민을 올려다보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손을 들어올려
여주의 뒷목을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쓸었다. 느리고 ‥ 더디게.
여주는 부르르 올라오는 소름을 애써 누르며 지민의 손가락을 피했다. 순식간에 끈적해진 분위기에 여주가 뒷걸음질 쳤다.
지민은 여주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여주를 바라볼 뿐 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걸치려 했던 자켓 안주머니에서
총 하나를 꺼내고 여주의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네가 잠들어 있는 이틀 동안, 사람 하나를 죽였어."
" ‥."
"그리고 네가 깨어나고 이틀 동안은 사람 2명을 죽였어. 이 총으로."
여주는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한것을 겨우 다잡고 지민을 빤히 응시했다. 지지 않겠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여주에
매력적인 조소를 입가에 걸친 지민이 말을 이었다. 무섭지, 그래. 무서울거야.
여주는 자신이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무섭다고 하면, 좋은 반응은 아닐거 같고.
그렇다고 무섭지 않다고하기엔 무서웠다. 태생부터 거짓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인게 들통날 터.
그 후폭풍은 어떻게 될지 총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난 내가 잘못 됬다는 생각은 한 적 없어. 내가 하는 건 살인이 아니라 도살이야.
사회에 악이 되는 축들을 모두 제거하는거지.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 흔히들 말하는 거잖아?"
미쳤어. 미친거야, 그냥.
여주는 이 모든게 꿈이길 바랬다. 지민이 제게 왜 이러는지도 모르는 채 이런 공포감에 휩싸이긴 너무나 힘든 고통이었다.
정국이 올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릴 수는 없다. 자신이 나가는 길을 개척해 나가야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02-2.
"아직도 신원 파악 못했어?"
정국이 푸르스름한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끄덕였다. 면도하는 것도 잊은 채 여주의 행방과
CCTV 속의 남자를 열심히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아무리 찾아도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들에
이제는 점점 지쳐갈 따름이었다.
"내가 찾은거 같아. 그 남자."
"뭐? 그게 무슨소리야. 니가 그걸 어떻게 …."
"우리 팀이 작년에 쫓던 조직의 중간급 보스 되는 남자더라고, 그 남자가. 1년 지나니까 좀 가물가물 했었는데, 어제 찾아보니까 맞았어."
정국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흥분하며 당장 그 남자의 자료를 넘겨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은은 고개를 저으며
쉽게는 안된다고 했다. 자신이 팀의 팀장도 아닐 뿐 더러, 일개 부하인 지은은 그 자료를 언뜻 보기만 했을 뿐
자세히 본 것도 아니기에 상세한 정보를 읖어줄 수도 없었다.
"아 씨발,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니가 우리 팀 보안을 뚫으면 되잖아. 아니야?"
경찰이 경찰의 보안을 뚫는다, 라. 꽤나 위험한 발언이었다. 들키면 한 마디로 좆되는 상황.
처벌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경찰직에서 물러나야 할 지도 몰랐다.
"니가 도와줄꺼야?"
정국은 지은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부정의 반응이었다.
지은은 이 사건에 일절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조그만 조력을 주려 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정국과 여주의 관계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그럼 보안 비밀번호는?"
"나도 몰라. 우리 팀장님이랑 … 너네 팀장님이 아실 껄."
이제 되었다.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듯 했다.
02-3.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호석이 자신에게 연신 부탁하는 정국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참으로 미친 제안이었다.
팀장의 컴퓨터를 해킹하자니. 그것도 우리 부서.
"형, 그 자료하나면 김여주, 찾을지도 몰라."
하지만 호석은 그 미친 제안을 거절하기엔 여주와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어찌보면 여주의 실종에 자신이 관여되어있었고, 무엇보다 자존심 강한 정국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건
형으로써 의리가 아닌 듯 싶었다.
호석의 내부에서 갈등이 일었다, 멎었다. 결정은 내려졌다.
"하,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정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늘 밤, 아무도 없는 팀장실에 잭을 꽂아 호석의 컴퓨터로 연결한 후, 정보를 옮기면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든 암호는 호석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02-4.
"잔챙이들이 꼬였네. 귀찮게."
지민이 잠든 여주의 머리카락을 들었다가 가지런히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내용은 ‥ 지민이 그 때 그냥 보낸 남자의 신원이 경찰에게 들키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였다.
그 남자의 신원이 들키게 되면 여주는 물론이고 자신의 정보까지 밝혀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정보야 뭐, 남준이 잘 막아놓겠지만 여주는 무방비했다. 경찰만 자신을 뒤쫓는게 아니라 윤기까지
여주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좀 위험했다. 귀찮기도 했고, 여주가 직접적으로 해가 갈지도 몰랐으니 지민은 초조할 수 밖에.
-지민아, 그럼 어떡할까. 난 그냥 이대로 네 정보만 잘 막아놓으면 돼?
" ‥ 어, 일단은 그렇게 해줘."
지민의 정보가 뚫리지 않아야 여주의 정체도 뚫리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지금 여주는
지민에게 속해있었으니 지민이 여주를 데리고 있다는 것만 윤기에게 들키지 않으면 여주는 안전했다.
지민은 일단은 남준에게 자신의 정보의 안전을 부탁한 후 전화를 끊었다.
다만 좀 많이 걸리는 게 있다면 여주였다.
자신을 찾는다는 걸 ‥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떠나려 발버둥 칠 것이 뻔했다.
어떻게 여주를 다뤄야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지민이 손가락을 맞부딪히며 딱-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여주가 있는 방안으로 넣었다.
"좋은 수가 떠올랐다."
02-5.
여주는 난데없이 들여보내진 고양이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소를 지으며 나가는 지민을 바라보았지만
지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갔다. 여주는 의아해했으나 제 앞에 놓인 귀여운 고양이에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고양이는 그르렁 거리며 여주의 손길을 받았다.
제 손에 볼을 부비는 고양이에 기분이 좋아진 여주가 살포시 웃자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떨어졌다.
마치 그 모습이 쥐를 잡아 먹기 전의 방울뱀같아 여주는 그만 떨고말았다.
음침하고, 불결해.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거야."
귀여운 고양이를 앞에 놔두고 불결하다니, 자신도 어느 새 이런 마왕의 집에 동화되었단 말인가.
그래, 휩쓸리지 말자. 나는 그저 정국이가 나를 데리로 올 때 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거야.
문 틈 새로 보이는 여주의 모습에 지민이 조소를 머금었다.
걸려들었다. 지민의 덫에, 여주가.
02-6.
"형, 일단 잭은 연결했는데. 할 수 있는거 맞아요? 이거 걸리면 형도 나도 끝장이에요."
아무도 없는 강력계반 안, 팀장의 컴퓨터에 잭을 연결한 정국이 불안하다는 듯 주위를 휙휙 쳐다보며
호석에게 언질을 주었다. 하필 비는 왜 오는지, 비릿한 냄새도 나는게 비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정국이 느끼는 불안함은 출처없이 나타나는게 아니었다. 형사로 지내는 동안, 거의 대부분을 자신의 '감'을 믿고 활동한
정국은 자신의 '감'을 꽤 신뢰하는 편 이었다. 거의 맞는 편 이기도 했고.
"기다려봐, 해킹이 그렇게 쉬운 줄 아냐."
호석이 자신을 재촉하는 정국에 손을 휘휘 저으며 꺼지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자
정국이 못미덥다는 표정을 지으며 호석의 곁에서 떨어졌다. 해킹을 하지 못하면, 정보를 따내지 못하면,
여주는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자 하는 형사들도 없었고, 혹여 담당 하게 되더라도 정국과 호석만큼 열의를 가지진 못하리라.
정국은 차라리 자신이 이 사건을 맡는게 속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남의 손을 거쳐 여주를 돌려받을바엔,
자신이 직접 데려오는 것이 좋으니까. 그리고 그 편이 여주를 보호하기도 쉬울 것 이다.
"아, 야 전정국 … 큰일 났어."
그때였다, 호석이 사색이 된 얼굴로 정국을 바라본 게.
그리고 ‥ 호석의 뒤에는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칼을 호석에게 겨눈 채.
고요함이 하나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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