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권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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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너봉
두 번째,
하필이면 선생님 수업이 없는 날이라 선생님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선생님을 보겠다고 교무실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머릿속에서나 떠올려야 했다.
하루종일 수업도 안 듣고 뭘 먹자고 할지 생각해봤지만 내 예상대로 나는 결정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매운 걸 못드신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 한 번 매운 걸 먹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선생님은 땀만 호로록 흘려보내고 통 먹지를 못했고 그 이후로 차라리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거 먹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냥 이번에도 선생님이 골라달라고 말해야 겠다 생각하며 가방을 싸는데, 갑자기 김민규가 잔뜩 신이 나선 말을 걸어왔다.
"얘, 얘!"
"왜, 왜!"
"오늘 저녁 콜?"
"꺼져."
"아 왜..!"
"나 오늘 약속있어."
"구라는 가볍게 무시하겠습니다."
김민규는 얄미운 표정을 만들며 구라 치지 말라고 나를 무작정 잡아끌었다.
아니 진짜 선약 있다니까..
아무래도 김민규는 지 멋대로만 행동할 수 있는 병에 걸렸나보다.
김민규의 손을 뿌리치려 애를 쓰면서도 힘을 못 이겨 질질 끌려가는데, 교무실 앞에 마주 보고 서있는 우리 선생님과 화학 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초인적인 힘으로 김민규의 거침없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선 김민규를 잡아끌어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숨을 죽여 몰래 다가갔고 점점 가까워질 수록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너 미쳤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김민규도 호기심이 생긴건지 어느새 지가 먼저 날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코 앞에 왔을 때, 우린 벽 뒤에 숨어 몰래 두 분이서 하는 말을 훔쳐들었다.
"시간 되시면 참 좋았을텐데.."
"그러게요.. 진짜 아쉽네요."
"그럼 나중에는 꼭 저랑 먹어요. 괜찮죠?"
"당연하죠."
"약속하신 거예요!"
"네, 그래요. 다음에는 꼭 같이 먹어요."
온 몸으로 아쉬워 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왠지 가시방석에 걸터 앉은 기분이었다.
나한테는 저렇게 안 웃어주면서..라고 말하면 솔직히 양심이 없는 거고 웃어주시긴 하지만 여튼 화학 선생님한테 저렇게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웃어주시는 건 싫었다. 김민규는 이런 날 아는지 모르는지 저러다 곧 사귀는 거 아니냐며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고 나는 얄미운 김민규의 정강이를 한 번 세게 차주고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선생님이 저렇게 아쉬워 하시는데 내가 감히 그 기회를 뺏을 수 없다고 생각해 울며 겨자먹기로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저 오늘 같이 저녁 못 먹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먼저 드세요.]
문자를 입력하면서도 손이 덜덜 떨려 오타를 몇 번이나 내야했다. 화학 선생님이랑 같이 하하호호 웃으며 밥을 먹는 우리 선생님을 생각하니 치가 떨리고 귀가 멍멍했으며 눈이 뒤집혔지만 선생님 또한 나보다는 저 이쁜 화학 선생님과 먹고 싶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손이 지 혼자 움직여 문자를 보냈다. 눈물을 머금고서 김민규를 데리고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는데, 갑자기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막 오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말하려고 전화한 건가 싶어 안 받고 싶었지만 나는 선생님의 전화를 안 받을 수 없는 병에 걸렸기에 나도 모르게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여보세요?"
-세봉아.
"..예?"
-뭐 할 일 있어? 저녁 같이 못 먹는 거야?
"아.. 네. 제가 원래 친구랑 먼저 약속이 있었는데 까먹었어요.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김민규를 끌고 터덜터덜 학교에서 빠져나오는데, 김민규가 내 말을 듣더니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자기자신을 가리켰다.
표정을 보니 벌써 나를 놀릴 만발의 준비가 된 것처럼 보여 급 피곤함이 몰려왔다.
-...많이 중요한 친구야?
"...네?"
-아, 아니.. 아니야. 집에 언제 올 건데?
"모르겠어요. 8시 전에는 들어갈게요."
"야! 누구 마음대로! 뭔 8시야, 지금 이제 5신데!"
"......"
-......
그럼 난 집에 안 보내줄 거니..?
뭐 대체 몇 시까지 있으려고 그러는 거니..?
8시 이후에는 할 짓도 없을 것 같은데 대체 어느 지점에서 발끈한 건지 여튼 발끈한 김민규가 갑자기 그 낮은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러 세상을 놀래켰고 순간 나와 선생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왜 정적이 흐르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 같이 정적에 동참했던 나는 김민규가 어쨌든 8시 전에는 못 간다며 으름장을 놓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세봉아. 8시 전까지 들어와. 알았지?
"..네? 아.. 친구가.."
-8시라고 했어. 선생님 저녁 안 먹고 기다릴게.
"네?? 아니에요. 먼저 드세요. 8시 전까지 가도록 노력할게ㅇ,"
-노력은 다른 일에 더 열심히 하면 돼. 선생님은 혼자 집에서 밥도 안 먹고 기다릴게.
"선생님..? 선생님!"
그리고 전화가 매정하게 끊겼다.
김민규는 여전히 내 옆에 서서 영화 한 편만 뵈도 2시간이 후딱 가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8시 전에 날 보내줄 생각을 영영 안 하는 듯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8시가 지나면 현관문을 잠그실 기세였다. 선생님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화학 선생님이고 나발이고 그냥 저녁 같이 먹을 거라고 행패라도 부릴 걸..
가끔 나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
.
.
.
.
착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져갔다. 영화 한 편만 봐도 2시간이 훅 간다는 김민규의 말대로 영화를 한 편 보니 벌써 7시 40분이었다. 김민규는 정말 8시 전에 날 보내줄 생각이 없는지 와플이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되도 않는 변덕을 부리며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길 한복판에서 그걸 고민하느라 시간을 쓸 바엔 차라리 둘 다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둘 다 가자고 말했다가 김민규에게 돼지 취급을 받았다.
돼지를 보듯 날 쳐다보는 그 시선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날릴 뻔했지만 겨우 참아내고서 와플 집으로 무작정 김민규를 끌고갔다. 난동꾼 김민규는 와플 집으로 가서도 자신이 뭘 먹을지 골라달라며 난동을 부렸고 나는 나와 똑같은 걸 두 개 사켜야 했다.
"그거 진짜 맛있어?"
"아 그거 진짜 맛있다니까. 내 인생 와플이야."
"근데 왜 자꾸 아까부터 시계 봐? 그냥 포기해. 8시 전에 안 보내 줄 거니까 ㅋ"
"..김민규.. 나 진짜 집에 들어가야 한다니까!"
"갬맨걔 나 쟨쨰 지베 드러개얘 핸대내꺠~"
진짜 너무 얄미워서 주먹이 다 쥐어졌다. 이제 이 주먹으로 맹렬하게 김민규를 때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안 되니까 열불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정말 날 8시 전에 보내 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여 결국 반쯤 포기 한 채로 김민규와 와플을 집어먹으며 친한 여자애들 둘이 만난 것 마냥 떠들어대길 몇 분, 뜬금없이 김민규가 날 거칠게 일으켜 세워 잡아끌며 와플 집을 박차고 나갔다. 이번엔 또 어딜 가는 거냐고 묻자 김민규는 내게 쓰잘데기 없는 느끼한 윙크를 날리며 젠틀하게 짓거렸다.
"집에서 늦게 들어왔다고 눈치 줄 거 아냐.
역시 민규는 존나 착해."
역시 민규는 존나 노답이다.
안 데려다줘도 된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김민규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쳐듣지 않고 나를 끌고 기어코 우리집까지 갔고 나는 얼떨결에 에스코트를 당했다. 그렇게 김민규를 끌려 집까지 가야했고 아파트 현관에 다다른 순간, 그때였다.
"어?"
"어,"
"....헐."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은 추리한 복장으로 아파트 정문 앞에 쪼그려 앉아 계셨고 그걸 제일 먼저 발견한 건 김민규였다. 선생님이 왜 나와있는 건지 너무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민규가 내게 선생님과 같은 아파트냐며 물었다. 어버버거리며 선생님의 눈치를 보자 선생님은 마치 우연히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어, 민규랑 세봉이 아니야?"
"헐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 사셨어요? 김세봉도 여기 사는데.. 헐 나 왜 이제까지 몰랐지."
"오 진짜? 세봉아 너도 여기 살았었어?"
"..아..? ㄴ,네.."
"선생님 근데 뭐하시는 중이셨어요?"
김민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서서 선생님께 뭐하시는 중이냐며 물었고, 선생님은 날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능청맞게 대답하셨다.
"아, 같이 사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집을 뛰쳐나가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친구요?"
"응. 말 안 듣는 토끼 한 마리 키워."
"헐 선생님 토끼도 키우세요? 와.. 안 어울려.."
"그래, 민규야. 영어일기 쓰고 싶다고?"
"..너무 잘 어울리세요. 선생님과 토끼라니.. 정말 환상의 짝꿍이세요. 자, 모두 박수."
"..늦었으니 빨리 가라 이제. 세봉이는 이왕 나온 김에 내가 데려다 줄게."
김민규는 날 지구 끝까지 데려다 줄 것처럼 얘기할 땐 언제고 이제 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치의 고민도 없이 나를 선생님에게 토스했다. 그리고선 누구보다 빠르게 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선생님과 나는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오랜만에 어색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괜히 손목 시계를 확인하자 시간은 이미 8시 2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녁을 먹었냐 물어보는 선생님에게 벌써 먹었다고 할 수가 없어 안 먹었다고 구라를 치자 선생님이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다행이라 말하며 밉지 않게 날 노려봤다.
양심에 가시가 돋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저녁을 두 번 먹을 생각에 신이 다 난다.
선생님께 왜 오늘 화학 선생님이랑 같이 저녁을 안 먹은 거냐며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스토커 취급을 당할 것 같아 꾹 참아야 했다.
"친구가 김민규였어?"
"아, 네.."
"흐음.. 둘이 8시까지 뭐하고 놀았어? 대체 뭐하고 놀았길래 집 앞까지 둘이 손 꼭 잡고.."
"예??? 아니 그거 제가 잡은 거 아니에요! 김민규가 멋대로,"
"알았어, 알았어. 그냥 장난인데 되게 과민반응 하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선생님은 날 놀려먹는 게 재밌으신지 호탕하게 웃으며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한참동안이나 뾰루퉁한 표정으로 집 앞에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선생님에게 있어 나는 그저 수 많은 제자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느낌은 굉장히 싫었고 지겨웠지만 어쩌면 그저 제자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활은 언제나 행복할테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저 봉방봉이에요!!!
앗 저 너무 바빠요!! 얼른 3화 올리러 가야해요!!!
ㅇ느피ㅏㅠㅐㅑ헤얼ㅇ얼ㄹ르느으이릉너ㅔㄹ
암호닉 3화에 다 올려드릴게여!! 일ㄷ나 지금은 너무 바쁘니..
암호닉 신청해주신 사랑스러운 독자님들 3화에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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