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너" 내말에 얼굴이 빨개져 아무말도 못하고 그 자세 그대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그에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 남자는 사랑스러웠고, 귀여웠고, 예뻤다.
"남우현. 다음에 할때는 참지 말고 내이름 불러줘."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수줍게 웃는 그에 내 가슴이 떨려온다. "니 이름도 알려줘."
"김성규." # W.남군 02.
처음 본 남자와 섹스를 하고,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여태껏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그처럼 순수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를 좋아하는 내가 만들어낸 상상이기도 했다.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예뻐서 나도몰래 처음 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내주었다. 아는것이라고는 이름뿐이었지만 절대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어제 잠자리를 가졌던 침대로 다가갔다. 어제 격렬했던 잠자리 이후로 쓰러진듯이 잠이 든 김성규를 보고 실쭉, 웃었다. 자는 모습도 귀여워.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뒤처리를 해주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꽤 추웠던 건지 이불을 끌어당기는 모습도 귀여웠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런 그의 이마에 쪽.하고 뽀뽀를 해 주었다. 잠든 그의 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아. 그가 나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가 너무 좋은데,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그의 옆에 누워 곰곰히 생각하다가 잠든 우현이었다. 그 시간 이후로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던 성규가 갑자기 눈을 떴다. 아...지금이 몇시지?... 어...?여긴 어디지? 자신의 방은 아니었다.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옆에는 모르는 남자가 누워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벌써 12시였다. 아...망했다. 다른사람과 잡았던 약속 하나를 놓친 성규가 어젯밤 일을 기억하려고 애써 고민하고 있었다. "아...그러니까...!!"
이제서야 어젯밤의 일이 기억났다. 히트 사이클(Heat Cycle)기간에는 다른 오메가들보다 더 핀트가 나가 조절을 못해 길거리를 아무데나 돌아다니는 그의 버릇에 그는 히트사이클 기간만 되면 집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어제는 잠시 약속이 있어서 나갔는데 시간을 못 지켜 늦게 들어오다가 그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어제...문앞에서...문을 열어달라고...하다가..' 문을 열어달라고, 자신을 좀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치며 문을 두드리는 모습, 문을 열어준 남자에게 안겨 이상한 소리를 내뱉다가. 섹스를 하자는 그에게 긍정의 답을 표하고 그와 같이 잤다...그것도 생판 처음보는 남자와 함께....?
"으아아악!"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지르는 성규에 갑작스러운 비명에 잠이 깬 듯 우현이 일어났다.
"아아...왜. 무슨일인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그에 성규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아니,자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놨으면...사실 자신이 승낙한 거였지만 모른척 하는 것은 너무했다고 생각했던 성규는 그의 팔을 털썩 잡았다. "저기요."
"왜...." "당신이 어제 저랑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어제 저랑 잔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하실래요, 저 어제 처음이었는데!" "내가 책임지면 되지." 책임져...그래 책임져? 책임진다고 그게 될 일인가? "나랑 같이 살아. 내가 너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내가 책임진다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같이 살기는 또 왜 같이살아요?" "나. 너 어제 보고 반했어. 진심이야. 내가 문 열어줄때 너 내품에 안긴 거 기억나? 그때 너 정말...남자한테 이런 말 하는거 미안하지만, 예뻤어. 그리고 나한테 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웠고, 자는 모습은 귀여웠어. 처음 본 사람한테, 그것도 내 마음을 이렇게 고백하는 것도 처음이야. 진심이라는 것만 알아둬." 난생 처음 히트사이클 기간에 밖으로 나와, 발정이 나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채 길거리를 아무데나 돌아다니다 어느 집 문 앞에 도달했다. 누구든 날 좀 살려줘, 라는 생각으로 그집 문을 미친듯이 두드렸던 것 같다. 결국 어떤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남자는 한눈에 봐도 빛이 날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난 그에게 반했다. 정신을 잃은 내가 쓰러졌을 때, 나를 받쳐주던 그 눈빛을 아직까지 잊을 수 가 없다. 그런 그가 나에게 같이 자자고 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알파들은 오메가를 업신여기고 매우 하찮은 동물정도로 생각해서 막 대한다고 하던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이 밤만 지나면 나를 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어제가 처음이었다는 거짓말이라도 해서 그를 붙잡아두려고 했었다.
진지해지는 그의 말에 벙-진 성규였다. 장난인 줄 알았건만 전혀 웃음기도 없었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우현에 오히려 당황한 성규였다. 그냥 자신의 욕구만 풀려고 나랑 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제는 히트 사이클 기간이라 정신이 나가서 아무 생각 하지 않았는데, 그도 나처럼 욕구를 풀려고 나와 자자고 한 줄 알아 오늘이면 내쳐질 줄 알았다. 이남자, 정말 진심인건가? 속아주는 셈 치고 한번 넘어가보기로 했다. 성규가 아무 대답이 없자 우현은 속으로 어쩔 줄 몰랐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오메가들이 원래, 다 그렇지 뭐. 자신이 만났던 오메가들은, 아니 잤던 오메가들은 우현이 부자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고백을 해도 우현을 받아주지 않고 막 대하다가도, 돈이 많다는 것만 알면 저절로 순한 양이 되었다. 이남자도, 돈만 보겠지, 속물이겠거니 하며 체념하려던 그순간.
우현의 입술에 말캉한 무언가가 닿았다.
우현은 잠깐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 무슨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한테 입을 맞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채 멍하니 벙져 있었을 뿐이었다. "나도 좋아해요."
"......" 그렇게 멍하니 벙져있던 우현을 보던 성규가 풋, 하고 웃었다. 성규가 웃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우현이 다시 성규를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먼저 입을 갖다 댔지만 발그레해진 볼과 빨갛게 달아오른 귀, 떨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자기가 먼저 해 놓고선.
"당신,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그말에 성규가 뭐라고 반박을 하려 하자, 우현이 재빨리 그의 두 볼을 잡고는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맞춰오는 우현의 입술에, 놀라서 벌어진 성규의 입안으로 들어오는 달콤한 혀에, 성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현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우현이 입을 떼고,
" 나, 키스할건데? 뽀뽀말고." 성규가 살포시 웃고는 우현을 가까이 끌어당겨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우현은 그런 성규를 잠시 쳐다보다가 그의 허리를 잡고 다시 입술을 맞댔다.
#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로, 둘은 계속 그자세로 한동안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 길고 긴 키스가 끝나고 성규가 하아- 하며 거친 숨을 내쉬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이에 우현도 아, 힘들다 하며 성규의 옆에 앉았다. 둘의 사이를 뭐라고 정의하기는 그렇지만, 좋은 사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김성규."
나지막하게 자신을 부르는 우현에, 성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 우현이 없다. 라고 생각이 든 순간, 자신의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고개를 밑으로 내려보니, 우현이 눈을 감고 자신의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누워있었다. 우현이 눈을 감은 채 몇분을 일어나질 않았다. 자는건가? 가까이에서 보는 그의 얼굴은, 꽤나, 멋있었다. 그의 머릿결을 살짝, 쓸어주기도 하고, 그의 자그마한 눈, 쭉뻗은 코, 굳게 닫힌 입 하나하나 찬찬히 매만졌다.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성규의 손길에 우현의 감은 눈이 살짝. 떠졌다. 다정하게 우현을 쳐다보던 성규가, 잠에서 깨어난 우현을 보고 어!어! 하며 재빨리 손을 떼려 했다. 하지만 우현이 손을 떼려 움직이는 성규의 팔목을 턱. 하고 잡았다.
"누가 마음대로 내 얼굴 만지래." 갑작스럽게 굳어진 우현의 얼굴에 당황한 성규는 어?어? 하며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성규를 보며 남몰래 웃음을 참던 우현이,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침대로 성규를 끌어당겨 꽉- 안았다. 우현의 행동에 긴장해있던 성규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아..흐윽...나..나는.." 깜짝 놀라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귀여운 성규를 보고 싶었건만. 예상대로가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우현이 머뭇머뭇거렸다. 자신은 우는 사람을 달래 본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이 울고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라고 생각한 우현은 끅끅거리며 울고 있는 성규를 더 꽉 안았다.
"성규야." "으..으아..." "성규야." "으아...흐흑...진짜..." "미안해. 장난이었는데...." 자신의 사과를 받고도 계속 훌쩍이는 성규를 보며 우현이 안되겠다. 라고 생각하며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성규야~ 우현이 사과 안받아주면 삐질꼬야~ 흐응흐응! 뚝! 나 삐진다!"
설마 우현이 애교를 부릴 줄 몰랐던 성규는 갑자기 우현이 부리는 애교에 울음을 멈추고 하하하. 하면서 웃었다. 이게 안먹히면 어쩌나 하며 고민했던 우현도 웃기 시작했다. 잠시동안 진지했던 방안은 어느새 두 사람의 웃음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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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방 안에서는, 단지 통성명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많이 가까워진 두 사람이 있었다. 만난지 하루만에 섹스를 하고, 키스를 하고 또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너무 빠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진심이었기에 상관없었다. 우현은 자신이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에 서툴렀지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연애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건 성규도 마찬가지였다. 한순간의 자신의 실수로 생에 처음으로 모르는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한 다음날에는 후회를 정말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실수가 오히려 고마웠다. 자신의 처음을 가져간 남자, 자신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가슴이 뛰었던 그남자. 그사람과 함께이고 싶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은 알 수 있었다. 서로가 함께이고 싶다는 것을 .
# 우현이 때늦은 점심을 준비해주겠다며 성규를 방안에 나두고 나갔다. 성규는 그제서야 우현의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책장, 그의 노력이 다분히 묻어나는 그의 책상, 깔끔히 정리된 벽지. 딱 봤을때 깔끔하다 라는 느낌의 방이었다. 방을 둘러보고 난 후 심심해진 성규가 가만히 앉아있다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문을 살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 다른 사람이 온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