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그래프꼭짓점 인물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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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그래프꼭짓점 19화 |
[흐어어엉… 어떡하면 좋아, 성규야아…]
동우가 운다는 말에 운전석에 타있던 호원이 벌컥 문을 열고 나와 전화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흐윽, 성규야아…흐아앙!]
동우의 마지막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뭐해요! 빨리 안타고!"
행동은 호원이 빨랐다. 운전석에 앉아 재촉하는 호원때문에 더 다급해진 성규가 서둘러 조수석에 타 벨트를 맸고 얼떨떨한 우현도 얼른 뒷좌석에 올라탔다. 뒷좌석 문이 닫히자마자 호원이 무서운 속도로 동우의 고깃집을 향해 질주했다. 무슨 일인지 도통 감이 안오는 우현이 불안한듯이 손톱을 뜯고 있는 성규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호원이 핸들을 왼쪽으로 거칠게 홱 꺾었다. 덕분에 뒷좌석 가운데에 앉아있던 우현이 오른쪽으로 데구르르 굴러 창문에 머리를 퍽, 박았다.
"아! 어떡해…."
성규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맺혔다. 저기 연기…. 성규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창문 너머의 검은 연기를 가리켰다. 호원의 인상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소방차 세 대가 불을 진압하고 있었다. 옆 건물로 번져가는 불길은 가까스로 꺼졌지만 동우의 가게에선 여전히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불이 동우의 가게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대는 것 같았다. 급히 차를 세우고 호원과 성규가 서둘러 동우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동우야!"
두 손을 물론, 얼굴에 온통 잿가루가 묻은 동우가 엉엉 울며 타들어가는 고깃집 바로 앞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급히 달려왔길래 이 쌀쌀한 날씨에 반팔 차림이다. 신발도 짝짝이고 짝짝이 신발의 한 짝마저 벗겨져선 엉뚱한 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성규를 끌어안은 동우가 더욱 서럽게 울어댔다.
"흐어엉…어떡해, 성규야아…."
몇 초밖에 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피부가 따끔할 정도로 느껴지는 열기에 끌어안고 있는 동우와 성규를 우현이 멀리 물러나게 했다. 신발을 줏어온 호원이 묵묵히 동우의 발에 신발을 신기고 정장 마이를 벗어 동우에게 덮어주었다. 괜찮아, 울지마, 울지마. 동우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는 성규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
사람들의 탄식 소리와 함께 고깃집 간판과 벽이 불속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들기시작했다.
*
인생그래프꼭짓점
19.
"그만 울어. 보험도 들어놨고 아무도 안 다쳤어. 가게 다시 고치면 돼. 그러니깐 울지마, 동우야."
동우를 일으켜세워 옷가지와 함께 욕실로 들여보낸 성규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목 마른데. 물 좀 줘요. 주스도 좋고. "
우현의 말에 성규가 '지금 이 상황에 그 말이 나와요?'하고 우현을 흘겼다. 마를 수도 있지…. 소파에 놓인 기린 쿠션을 끌어안으며 우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후, 샤워를 마친 동우가 코와 눈가가 빨게진채로 욕실에서 나왔다. 동우를 방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잘 덮어준 성규가 토닥거려주며 옆으로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쳐냈다.
"흐윽…가게 어떡해…."
베게에 얼굴을 묻은 동우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꼈다. 그 가게에 동우에게 어떤 가게인지 잘 아는 성규는 그저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또 울어요?"
방문을 닫고 나온 성규, 부엌으로 가 컵을 꺼내 냉장고에 있던 주스를 따라 우현과 호원에게 건넨다.
"목 마르다면서요. 마셔요."
정말 목이 많이 말랐었는지 성규가 건네주는 주스를 꿀꺽꿀꺽 원샷으로 들이마신 우현이 입을 슥 닦으며 빈 잔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동우, 내일 눈뜨자마자 또 울텐데 혼자 두고 가기가 쉽지않다. 조용히 집을 나와 호원의 차에 올라타면서도 성규는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들어가세요 호 대리님. 오늘 태워주셔서 감사했어요."
우현과 성규를 집앞에서 내려준 호원이 유유히 동네를 벗어났다. 성규는 연신 소매로 눈가를 훔쳐내며 훌쩍훌쩍 울고 있다. 그런 성규가 신경쓰이는 우현이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깟 가게쯤이야 다시 세우면 되는데 왜,"
그러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성규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말이 딱 끊겨졌다. 성규, 도끼눈이 되어선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다.
"그깟 가게쯤이라고 했어요, 방금?"
톡 떨어지려는 눈물을 얼른 소매로 훔친 성규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끼고 또 아껴가면서 지 돈으로 직접 차린 가게가 순식간에 모조리 불탔어요. 걔 전 재산이 날라간거나 마찬가지라구요."
마지막으로 눈물을 훔친 성규가 대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혼자 남은 우현,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
집으로 돌아온 호원은 샤워를 하고 나와 TV를 켜고 시끄럽게 떠드는 예능 프로를 보고있으면서도 생각은 온통 동우에게 가있었다. 지금도 계속 울고 있을지, 아니면 울다지쳐 잠이 들었을지….
*
다음날 아침.
"어제, 그건 말실수였어요."
결국 한참 고민하던 우현이 먼저 사과를 했다. 괜찮아요. 성규가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기운 좀 차려요. 친구일은 안타깝게 됐지만 그렇다고 김성규씨까지 축 처지면 어떡해요."
그래도 영 기운이 나질 않는다. 뜨거운 물에 푹 삶은 시금치처럼 흐물흐물해서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성규의 모습에 우현은 속이 상했다. 성규는 청량한 탄산수처럼 톡톡 튀겨야 제 맛인데….
가게 여는 시간에 자동으로 번쩍 눈이 떠진 동우는 세수와 양치를 하고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어제 자신의 차는 가게앞에 세워두고 왔기때문에 택시를 잡아타야했다. 차키와 지갑을 들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아침 일찍부터 띵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누구세요. 잠긴 목소리로 말하며 문을 열었다. 호원이다. 커다란 과일바구니를 끌어안고 회사 출근길인지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였다.
"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동우가 애써 밝게 웃어보였다. 정말 애써서 웃는 게 다 보일 정도로 측은한 웃음에 호원은 쓴 침을 삼키고 과일 바구니를 동우의 품에 안겼다.
"이거 받아요."
동우의 손을 꼭 붙든 호원이 잠시 머뭇거리다 동우를 한번 꽉 끌어안고는 쿠당탕탕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왜 저러지? 호원의 찐한 마음을 눈곱만치도 알리없는 동우는 그저 머리만 몇 번 긁적거리고 과일바구니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
날이 밝은 상태에서의 가게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두 손을 늘어트린채 한참을 재가 된 가게앞에 서있던 동우가 훌입문도 없이 벽 전체가 허물어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새까맣게 그을린 수저가 간간히 보이고 뼈대만 남아있는 테이블이 곳곳에 쓰러져있었다. 어디하나 다시 쓸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눈앞이 깜깜하다.
"사,사장님! 가게 왜 이래요?"
아침 시간에 출근하는 두 명의 알바생이 가게 모습을 보곤 기겁하며 다가와 묻는다.
"영민이랑 은정이. 일찍 출근했네."
1년 넘게 꽤 오랜 기간동안 일했던 영민과 은정이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다시…세워야지."
말은 그렇게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직 보험회사에 전화도 안 한 터라 처리반이 오지도 않았고, 보험패키지에 처리반이 있었는지도 불확실했다. 영민과 은정을 돌려보낸 뒤에도 동우는 그저 멍하니 가게만 바라봤다. 정말 모든게 한순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
"다음주 수요일에 희망의 집 봉사활동이 있습니다. 모금은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내세요."
거남 대리의 말이 끝나고 직원들이 하나둘씩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일단 분위기를 봐선 모금을 해야할 것 같아 성규도 얼른 지갑을 꺼내며 옆자리 호원에게 물었다.
"희망의 집 봉사활동이라뇨? 처음 듣는 얘긴데"
지갑을 열고 잠시 고민을 했다. 만원은 너무 적고, 이만원은 애매하고…. 고민하던 성규가 '얼마 내실거에요?'하고 호원에게 물었다.
"전 10만원이요."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려던 성규가 얼른 다섯 장을 꺼내 모금을 했다.
"그나저나 동우는 뭐하고 있을까요. 지금 시간이면 영업 준비할 시간일텐데…."
한숨을 쉬는 성규를 따라 호원도 한숨을 내쉬었다.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성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우현에게 서류를 내민다.
"여기…결재 서류요."
모니터에 향해있던 시선을 힐끗 성규에게 넘긴 우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물러터진 인상만 하고 있을거에요."
'그게 어울리니깐'부분은 작게 중얼거린 우현이 서류를 휙휙 넘기며 검사를 했다.
"김성규씨."
성규의 큰 목소리에 직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미쳤어요? 여기 회사안이에요. 목소리 낮춰요. 여기 오타 안 보여요?"
우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지출'이 '찌출'로 쓰여있다. 이건 엄연한 자신의 잘못이다.
"…죄송해요. 고쳐서 다시 제출할게요."
인사를 꾸벅하고 느릿느릿하게 자리로 돌아가는 성규를 보며 우현이 잠시 고민을 하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권이형? "
어려운 건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중에….
*
한가한 레디락 점심 시간. 대걸레질을 하던 명수가 어느새 성열의 앞에 앉아 고등학교때 사고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성열은 간간히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 명수의 뒷통수를 누군가가 찰싹 내려쳤다.
"아씨! 누구, 아, 선웅이형."
유유히 레디락을 나가는 선웅의 뒤에 대고 명수가 중얼중얼 궁시렁거렸다. 선웅이 닫고 나갔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아뿔싸. 미희가 걸어들어온다. 전에 미희가 명수에게 꼭 건네주라던 선물을 중간에서 횡령한 죄가 있는 성열이 식겁하며 고개를 숙이고 명수가 갖다준 레몬에이드 잔만 만지작거렸다. 대걸레질을 하던 명수, 뒤늦게 미희를 발견하고는 똥이라도 본 마냥 얼굴을 확 찌푸린다.
"니가 여긴 왜 왔냐."
헉. 성열이 초조한 표정으로 가방끈을 꼭 쥐었다. 손에서 잔뜩 땀이 새어나온다.
"무슨 스카프?"
미희가 성열을 보고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다가와 성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그 때 옆집분 맞죠?"
으힉, 어떡해. 성열이 식은땀을 흘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뭐라 말하지?
"맞네, 그 때 그 분! 내가 그 때 선물 전해달라고 그랬는데…."
미희, 이번엔 톡톡이 아닌 툭툭 성열의 어깨를 건드린다. 야, 그만해. 명수가 성열의 어깨를 툭툭 치는 미희의 손을 거둬냈다.
"아, 나 진짜 억울하네! 이봐요. 직접 입으로 말해봐요. 내가 선물 주면서 전해달라고 했잖아요."
명수가 진짜냐는 표정으로 물었고 한참 고민하던 성열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명수야. 나 그런거 받은 적 없는데…."
미희가 당황하며 손부채질을 했다.
"분명 그때 내가 전해줬잖아요! 어머어머, 그거 도둑질이에요, 도둑질! 아무리 스카프가 탐났어도!"
명수가 대걸레질로 미희의 구두를 밀어내며 레디락 밖으로 미희를 끌고 나갔다. 미희, 너무 분해서 발을 동동 구른다.
"진짜 억울해서 말도 안 나오네! 내가 얼마나 성심성의껏 준비한 선물이었는데 그걸 중간에서 가로채고, 게다가 오리발까지 내밀어? 명수야. 저 사람 뭐야?"
억울해하는 미희를 훠이훠이 쫓아낸 명수가 문을 쾅 닫았다.
"미안. 쟤가 좀 이상한 애라서."
성열이 볼을 붉히며 살짝 웃어보였다. 한편 분하고 억울해 씩씩거리며 택시를 잡아타려는 미희 뒤로 예쁘장한 스카프를 매고 있는 강아지가 유유히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
니체가 말했다. 사랑으로 행해진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고.
*
동우, 보험회사에서 걸어나오며 한숨을 쉰다. 제일 싼 보험을 들어놓은 탓에 보험비로 가게를 다시 짓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쥐꼬리만한 보험비를 타는 과정도 복잡했다. 보험회사가 손해사정회사에게 의뢰를 주고 의뢰를 받은 손해사정회사는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화재 경위와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그 서류와 자체 조사한 서류를 대상으로 피해액을 산정해 보험사에게 다시 서류를 제출하는 식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이 대체적으로 한달에서 45일 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단다. 당장 영업에 문제가 있는데 45일이라니. 뭐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 다른 알바생들이 가게로 출근할 시간이라 서둘러 시동을 걸고 가게로 차를 몰았다. 조금 있으면 고기도 배달올 시간인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할지. 현실이 무섭고 막막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괜시리 시골에 계신 어무니,아부지도 보고 싶어진다. 후드티 소매로 눈을 벅벅 닦아냈다. 울어봤자 눈만 퀭해진다. 이 상황에서 눈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어?"
의아한 표정으로 서둘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회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화재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초록색 굴삭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진 건물 잔해를 트럭에 실었고 물탱크차 다. 보험사에서 온 처리반인가? 아닌데. 처리반은 접수 후 일주일 뒤에나 온다던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춤거리는 동우에게 보호안경과 안전모를 쓴 남자가 다가왔다. 안전모와 조끼에 'SD건설'이라는 로고가 밝게 쓰여있다.
"장동우씨 되시죠?"
정말 얼떨결에 사인을 마쳤다. 근데 서동건설이라면 서울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빌딩들을 짓고 있는 기업인데 왜 자신의 가게를 치워주고 있는 걸까?
"…저기, 근데 왜 제 가게를 치워주시는거에요?"
내 가게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이 사람아. 동우가 멀찍이 떨어져서 작업현장을 멍하니 지켜봤다. 정말 빠른 속도로 잔해물들이 거둬져나가고 물탱크를 실은 살수차가 오더니 탄 재와 거뭇거뭇한 자국들을 깨끗히 씻어내리기 시작했다. 속전속결. 한 시간도 안 되어 작업이 마무리 됐고 작업 차량과 굴삭기가 유유히 사라졌다. 말도 안 되게 깔끔해졌다. 물론 앞면이 모두 허물어져 언뜻 보면 공터같았지만 어쨌든.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진 동우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번엔 고급스러운 차 두 대가 가게앞에 멈춰서더니 시크한 검정 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뒷좌석에서 내렸다.
"장동우씨?"
오권, 트렌치 코트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동우에게 건넨다.
"……디자이너?" 선글라스를 벗은 오권이 동우에게 찡긋 윙크를 날렸다.
"남우현 부탁 받고 왔는데 그 자식은 안 보이네요? 똥물에 튀겨죽일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오권, 손을 두어번 짝짝치면 두 대의 차에서 여러 사람들이 내려 황무지가 된 가게를 꼼꼼히 살핀다.
*
볼네드 점심 시간.
"…아, 진짜. 팍팍 좀 먹어요. 평상시엔 수저도 씹어먹을 기세였잖아요."
우현은 자신의 식판에 있는 고기를 성규의 수저위에 올려준다. 힐끗 우현을 본 성규가 뚱한 표정으로 수저를 입으로 가져간다. 전화벨이 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성규가 액정에 뜬 동우 이름을 보고는 얼른 폴더를 열어 귀에 가져다댄다.
"어, 동우야!"
동우라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호원이 후다닥 성규의 옆자리에 앉아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댄다.
[성규야.]
동우가 팀장님 바꿔달라네요. 성규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우현에게 건네자 성규 옆자리에 앉아있던 호원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우현의 옆자리로 향한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우현이 전화가 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통화를 했다.
"아닙니다, 뭘요. …아니에요. 그럴 필요없어요. 네. 그 쪽에서 다 알아서 작업할꺼니깐 그냥 편히 있으면 되요. 네. 정말 괜찮습니다. 네."
우현이 다시 성규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어, 동우야. 팀장님은 갑자기 왜?"
그러니까 아까 서동건설에서 사람들이 오더니 어쩌구저쩌구 이러쿵저러쿵 이랬다저랬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마친 성규가 잠시 멍하니 우현을 쳐다봤다. 대충 감을 잡은 호원은 우현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씨익 웃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푼 우현이 어쩔 줄 몰라하는 성규를 보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밥 좀 제대로 먹죠?"
그리고 살짝 웃어보이는데, 그 웃음이 너무나 근사하고 멋져보여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제,제대로 먹을게요."
얼굴이 발게진 성규가 우걱우걱 입에 밥을 쑤셔넣었다.
퇴근을 하고 나오는 명수에게 여고생들이 우루루 달라붙었다. 명수는 근방에 위치한 여고에 꽃미남 알바생으로 팬클럽이 생길 만큼 유명했다. 요새 들어 하나 둘씩 여고생들이 나타나더니 며칠 안 되어 그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명수 혼자선 이 여고생무리를 뚫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한참 여고생무리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레디락 건너편 까페보네에서 명수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린 성열이 니트 소매를 올려부치며 나타났다.
"어? 성열아! 잠깐, 아오, 야! 좀 비켜봐! 퇴근 좀 하자!"
명수의 고함에 여고생들이 '우오오'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명수가 얼른 무리에서 빠져나와 성열의 손목을 잡고 냅다 정류장으로 뛰었다. 한 폭의 순정만화같은 모습에 여고생들이 넋을 잃고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자기네들끼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야. 미친, 방금 봤어? 명수오빠가 저 하얀 오빠 손목 잡고 가는거?"
여고생들이 둘의 사랑을 기원하며 각자 도서실, 혹은 집으로 흩어졌다.
"요즘 기지배들 장난아니네. 아, 따가."
손등에 길게 손톱자국이 났다. 여고생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난 상처였다. 명수의 상처에 미간을 찌푸린 성열이 가방을 뒤적거려 밴드를 꺼냈다.
"그런 것도 가지고 다녀?"
둘리가 그려진 밴드를 매만진 명수가 힐끗 성열의 가방안을 보며 물었다.
"그 악보는 뭐야?"
명수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콧가를 간질거렸다. 향수 냄새라기보단 본래 가지고 있는 명수의 살내음이랄까. 암튼 은은하고 남자다운 향에 성열의 가슴이 저릿저릿 떨려왔다.
"작곡 악보인 것 같은데?"
드디어 명수에게 이 악보를 보여줄 날이 온건가? 성열이 심호흡을 하며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 두 눈을 질끈 감고 명수에게 악보를 내밀었다. 악보가 파르르 떨리는 걸 의아하게 여긴 명수가 성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성열, 흠칫하며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꿈이 아니라 생시. 정말 자신의 손을 꼬옥 잡고 있는 건 명수의 손이 맞았다.
"너 손 시려? 왜 이렇게 떨어? 가을치곤 춥긴 하지만 아직 바들바들 떨 정도는 아닌데…. 흠…"
손을 뗀 명수가 악보를 찬찬히 훑었다.
"제목이 Want to see MS?"
성열이 꿀꺽 침을 삼켰다. 두근두근두근.
"MS? 나랑 이니셜이 똑같네."
명수의 그윽하고도 진지한 눈빛에 성열은 온몸의 근육이 바싹 굳어지는 것 같았다.
"……."
명수에게 음악으로 감동을 주기엔 너무 무리였었나. 명수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악보를 다시 성열에게 건넸다.
"근데 MS가 누구야?"
그럼…내가 널 좋아하는걸까, 명수야.
어젯밤, 동우 걱정을 하며 제대로 못 잔 탓에 하품을 하며 퇴근준비를 한 성규가 기지개를 펴며 우현에게 다가갔다.
"팀장니임~ 퇴근시간이에요오~"
말꼬리를 늘이는 성규는 참 귀여웠다. 그러나 우현은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을 했다.
"마,말꼬리는 왜 늘어트려요. 혀에 살쪘어요?"
성규, 메고 있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는다.
"도와줄 건 없고. 심심하니깐 앉아서 말동무나 해줘요."
의자를 끌고 와 테이블 앞에 앉은 성규가 의자를 좌우로 흔들거리며 핸드폰으로 동우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장오권이 누구에요?"
우현이 피식 웃으며 서랍에서 USB를 꺼내 컴퓨터에 꽂았다.
"왜 웃어요? 미심쩍게."
그 후 우현은 정말 묵묵히 일만 했다. 말동무를 해달라면서 정작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에 성규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발가락과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서서히 졸음도 몰려온다.
"졸려요?"
졸린 눈을 비비며 휴게실로 들어가는 성규를 보며 우현이 기분좋게 웃었다. 사무실 안에 자신과 성규, 딱 둘만 있다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왜 안 오지."
커피 원두를 따러 자메이카로 갔나? 아님 원두를 빻으러갔나…. 결국 일하던 서류를 잠시 미뤄두고 휴게실로 가 불투명한 유리문을 벌컥 열었다.
"……."
성규는 손에 커피 믹스를 꼭 쥐고 테이블에 얼굴을 댄 채 잠들어있었다. 커피포트에 담긴 물은 식은 지 오래였다. 커피포트 전원을 끄고 성규에게 다가간 우현이 무릎을 낮추어 성규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살짝 벌린 입술, 높은 콧대, 작지만 매력있는 눈, 흐트러진 갈색톤의 머리. 나중에 머리색깔가지고 시비 한 번 걸어야겠다.
"…피부 되게 뽀얗네."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살결 한 번 끝내준다. 약간 구릿빛 도는 자신의 피부톤과 달리 성규는 두부처럼 허여멀겋다. 새근새근 내뿜은 성규의 숨결이 우현의 이마에 와 닿았다.
"……."
우현, 살짝 손을 들어 성규의 뺨을 쓰다듬듯이 건드린다. 전에도 느꼈지만 참 푸딩같다. 스물여덟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탱탱하고 매끈거렸다. 그때 성규가 부스스 눈을 떴다.
"흐읍. 아, 침 흘렸다."
침 때문에 촉촉히 젖은 입술을 성규가 손등으로 훔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뇌는 깼지만 몸은 아직 수면 중인지 다리에 힘이 서질 않아 성규가 으헉,하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우현이 재빨리 그 허리를 붙잡았다. 어색한 분위기에 성규가 빠져나오려고 몸을 살짝 뒤틀자 우현의 손에 힘이 바싹 들어간다. 마치 그대로 있으라는 것처럼. 레이저가 발사될 듯한 우현의 눈빛에 성규가 커피믹스를 꼭 쥔 채로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김성규씨."
'일단 이것 좀 놔요'하고 말하려는데 여전히 잡고 있는 손은 끄떡도 하질 않았다. 참 이상한 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는 점이다. 우현의 얼굴이 점점 성규 코앞으로 다가왔다. 저번과 똑같은 상황이다. 우현의 코와 성규의 코가 맞닿았다. 성규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 믹스가 투둑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
우현의 눈동자가 흔들흔들거리는게 훤히 보이는 거리. 아마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키스를 할 지, 아니면 저번처럼 그냥 물러설지. 그리고 그때, 성규가 먼저 고개를 들이밀어 입을 맞추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하는 우현의 모습에 묘하게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그런 거지같은 오기.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게 느껴져 얼른 눈을 감았다.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속으로 생각하며 좀 더 편안하게 뒷통수를 잡아오는 우현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키스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성규에겐 정말 수년만의 키스였다. 그리고 그 상대가 우현이라는 점이 썩 나쁘진 않았다. 우현이 키스를 잘해서였을까? 아니면….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제서야 가출했던 정신이 스물스물 들어오기 시작하고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우현의 근육질 잡힌 팔뚝이 느껴지고 지금 입안을 헤집고 있는 우현이 느껴지고 상대가 무려 남!자!라는 것도 느껴지자 머릿속에서 위이이잉하는 사이렌이 울렸다. 비상, 비상! 얼른 입술 철수하고 도망가라, 오바. 성규의 뇌에 위치한 지휘부 장관이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에 성규는 즉각 반응했다.
"…하아."
꽤 긴 시간의 키스에 둘 다 숨까지 거칠어져있었다. 성규는 혼란스러웠고 우현은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너,너무 느,늦었어요. 먼저 가볼게요."
휴게실을 박차고 나온 성규가 가방을 냅다 집어들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회사 입구에서 멈춰선 성규가 주먹 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계단에 주저앉았다. 농후한 키스에 입술이 아렸다.
"…위험해."
우현에게 드는 감정이 너무 위험했다. 한편 휴게실에 혼자 남아있던 우현, 평소 안 하던 욕까지 나지막하게 내뱉으며 커피 포트 옆에 있던 커피 믹스통을 집어던졌다.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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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주말에 만나요 우리 ♥
수능을 앞둔 동갑 고삼피릿! 전 붙었답니다! 수능보러가서 죄다 깔아드릴께요!!!
비가 오면서 날씨가 쌀쌀해졌답디다.
옷, 단단히 입고 다니세요. 감기 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