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를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징계는 내 위에 있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엄마를 학교에 모셔온 날, 난 학교에서도 씹히고 집에서는 밟혔다. 무자비한 아빠한테. 아빠의 발길질은 피구왕 통키의 불꽃슛처럼 매서운 것이었다. 엄마는 몰매를 맞고 있는 내 청각이 심심할까 걱정됐는지 서라운딩 돌비 시스템 못지 않은 생생한 사운드의 잔소리를 해주었다. 너 엄마가 이러라고 지금껏 뼈 빠지게 키운 줄 알아? 엄마가 널 얼마나 믿었는데, 등등. 그 가운데 나는 지금 내 모습을 묵묵히 성찰하게 됐다. 말 그대로 오로지 성찰만 했다.태민이와 나는 아이들이 수업을 들을 때 교내 봉사에 열심이었다. 나긋나긋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던, 아름다운 춘곤증의 나날은 멀리로 가고 난 체육복 차림으로 학교 화단의 흙을 퍼날랐다. 이 상황에서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체육복이 교복보다 편해서 좋았다. 가끔 나오는 지렁이는 검붉은 흙 속에서 생동감 있게 꿈틀거리며 내게 인사를 했다. 아아. 꼴보기 싫다. 심심하면 모종삽으로 그것을 두동강내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씨발 존나 힘들어.""선생님이 열 바케스만 나르래.""열 바케스만? 장난하냐? 팔 떨어져서 뒤지겠다.""난 이미 뒤졌어.."경수 형 마음 속에서 난 이미 뒤졌단 말이다. 흙을 푹푹 퍼내며 학교 건물을 올려다봤다. 형이 공부하고 있을 교실엔 커튼이 쳐져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형이 행여나 날 보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징계를 받고 난 이후에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2학년 선배들에게까지 널리 알릴 수 있었다. 태민이가 말해준 바로는 애들 사이에서 우린 2학년 교실을 턴 용자들이었다. 그 외의 뒷담화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릴 향한 아이들의 굽신거림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실로 웃기는 일이었다. 범법 행위인 도벽질-물론 3자들만의 오해였다-에 존경심을 갖다니. 순정소설w. 아우디 남들이 나를 굽신거리든 업신여기든 간에 형은 이제 날 뭐라고 생각할까? 좋게 쳐서 짓궂은 장난꾸러기? 개념 털린 날라리? 다음 교시가 동아리임에도 전혀 설레지 않는다. 형의 눈빛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차라리 동아리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담임이 우리를 확인하러 왔을 때 나는 담임에게 사정했다."선생님. 오늘 교내봉사 한 시간만 더 하면 안 될까요. 제발요.""누구 좋으라고 몰아서 해? 너네 벌 받는 거야, 이 녀석들아. 앞으로 일 주일은 더할 줄 알아.""김종인이 미쳤나봐요. 팔 떨어지겠는데.""이만 들어가! 또 수업 땡땡이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수업 아니고 동아린데 그냥 봉사하면.."담임은 그냥 가버렸다. 젠장할 저놈의 담임은 사람 말에 귀기울일 줄 모른다. 오늘 별로 한 것도 없는 태민이는 엉덩이의 흙을 툭툭 털더니 모종삽을 집어던지고 앞장섰다. "김종인 안 가?""어, 가."교실에 갔을 땐 아직 많은 아이들이 이동하지 않은 채 교실에 있었다. 모두 교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 체육복을 입고 있는 위화감이란 나 스스로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곧장 돌진했다. 화장실이 칸마다 다 차있었다. 나 옷 갈아입어야 되는데 빨리 좀 나오지. 인내심이 버텨주지 못할 즈음, 맨 앞 칸을 발로 뻥 갈겼다."똥을 코로 싸냐?""밖에 너 뭐야?""김종인인데? 좀 나오지?""아.. 어, 얼른 나갈게."안에 있던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이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세상 살기 쉬운 걸 왜 몰랐지? 나는 들어가자마자 체육복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상의는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교복바지를 갈아입을 땐 짜증이 가중됐다. 조금만 방향을 잘못 틀어도 다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 씨, 이거 왜 이렇게 좁아.""니가 쫄바지처럼 줄였으니까 그렇지 븅신아."언제 따라들어왔는지 바깥에선 세훈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오세훈의 말이 맞다. 이미 내 교복바지는 보통 아닌 꼴통이었으니. 가뜩이나 값도 비싼데 줄인 바지는 늘릴 수도 없는 거다. 앞으로 절대 살은 찌면 안 되겠다. 세훈이는 경수 형을 피하고 싶은 내 마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내게 얼른 가자며 나를 보챘고, 가까스로 무거운 걸음으로 동아리실로 향하는 나였다.동아리실은 평소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우리 여섯을 향하는 선배들의 눈빛은 아니꼽다는 전파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경수 형은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제일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분위기 가운데서도 연습은 진행해야 했기에, 묵묵히 노래를 트는 형이었다. 나는 형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형이 나와 한 번만 눈을 마주쳐주길 소원했다. 하지만 형은 나 같은 놈한텐 무관심이 상책이라는 결론이라도 내린 건지, 날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나도 눈이 있기에 볼 수 있었다. 뒤죽박죽 섞여버린 춤의 순서나, 비트마다 엇나가는 나의 동작. 누가 보아도 오늘 난 제일 부족했다. 형에게 지적을 받기 위한 의도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개인마다 지적을 할 때에도 대놓고 날 무시했다.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오세훈 옆에 서서 세훈이에게 동작 설명을 하는 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날 좀 봐라, 날 좀 봐."백스텝을 일직선으로 밟아야지. 크로스로 밟으면 옆 사람이랑 로테이션 하는 것 같잖아.""천천히 좀 말해보세요.""아, 세훈이. 맞다. 음... 뒷, 발걸음질, 을 일직선으로 디뎌야지 대, 각, 선, 으로 디디면 옆 사람이랑 자리, 이동, 을 하는 것 같아.""선배 언어에 문제 있는 듯요.""그건 너잖아..""예?"풉. 계속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세훈이를 언어 장애인 취급하는 형과 영문을 모르는 오세훈의 어리둥절한 대답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형은 날 한 번 노려보더니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얄미운데 귀여운 이 느낌은 뭐랄까, 달지만 오렌지맛이 나는 제주산 감귤 초콜렛이랄까. 당장이라도 포장지를 까버리고 싶다. "아냐 세훈아. 선배가 보여줄게.""형! 저도 모르겠는데요?"설마 형이 내 말까지 씹어먹진 않겠지."너는 잘하던데? 저번에 내가 다 가르쳐줬잖아. 혼자 연습해."앙칼지기도 해라. 나는 형에게 관심 받기를 포기하고 거만한 자태로 벽에 앉아있던 이태민 옆에 앉았다. 태민이는 이미 마스터한 춤을 추느니 쉬는 게 낫다는 주의였다. "종인아.""어.""너 일부러 안 추는 거 졸라 티나. 혜리한테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간지 떨어져.""티났어..?""존나. 여자 하나 놓쳤다고 그렇게 상심하지 마. 언젠간 헤어지겠지. 진짜 좋아하면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거다. 내가 아는 형은, 짝사랑을 7년 했어. 그에 비하면 넌 양반이지.""그래서 어떻게 됐냐?""여자가 결혼했지.""그 형이랑?""아니. 다른 남자랑.""그게 뭐야..."기다리지 말란 소리잖아. 1절만 듣고 말았다면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교훈이라도 건졌을텐데 현실적인 짝사랑 스토리에 기분이 침체됐다. 아마 7년이란 기다림의 노력도 부족한 탓 아니었을까. 나는 형을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준비가 돼있는진 모르겠다만 지금의 마음가짐이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 마음은 어떤 일에도 무뎌지고 있는 것이다. 계속된 일탈로 해소의 탈출구를 찾은 덕분이기도 하고. 아무도 내 속이 애정의 병폐에 찌들었단 건 모른다.나는 경수 형의 화를 누그러트릴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봐야 지금 날 피하는 형에게 비겁한 변론으로밖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내 자초지종이라는 것이, 온통 형으로 인하고 형으로 비롯된 외사랑의 단편들인 것을 말해봐야 무엇하리. 형 눈엔 변백현밖에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형은 내 뜻대로 행동해주지 않았다. 동아리 시간이 끝나고 나를 부르는 형이었다. 감히 형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나는 태민이를 먼저 보내고 동아리실에 남았다. 곧 모두가 나가 텅 빈 동아리실 안에 우리 둘만 서있었다. "왜요.""너 어떻게 나한테 사과 한 마디 없을 수 있어.""미안해요."내 딴엔 최대한의 의사 표시였지만, 형에겐 성의 없는 사과 한 마디였다. 형이 밉다는 잔감정이 섞여 비꼬는 투로 들렸을 수도 있고. 이젠 부정할 수 없는 거다. 나는 형을 미워하고 있다. 그 미움은 순수한 증오의 감정이 아닌, 나를 등진 것에 대한 서운함이다. 형은 기가 막힌다는듯이 하, 진짜 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고 쏘아붙였다. "그게 사과야? 니가 날 조금이라도 생각해줄 줄 알았어.""형이 뭘 안다고 떠드는데요."나는 형 생각만 한단 말이에요. 형이 대체 뭘 아는데요."나는 너 믿었어. 너랑 친해진 줄 알았단 말이야..."형은 작게 읊조리고 동아리실을 나가버렸다. 우린 제자리다. 아니, 뒷걸음질이다. 시작조차 한 적 없는 우리의 사이의 골은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홧김에 괜한 바닥을 발로 찼다가 발가락을 찧었다. 힘조절이 문제였다."아, 아, 아파, 씹.."아파서 죽겠다. 한쪽 발을 쥐고 외발로 뛰고 있는데 형이 다시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뭐해? 나가. 문 잠가야 돼."그냥 존나 가만히 있을걸 그랬다.종례가 끝나자마자 오세훈은 사물함에서 조각도를 챙겨와 주섬주섬 책가방 안에 넣었다. 저건 왜 챙기는지 모르겠지만 리틀 사이코와 조각도는 잘 어울린다. 굳이 조각도의 용도를 묻기 귀찮아서 세훈이가 그걸 다 챙길 때까지 기다렸다. 기껏해야 방바닥에 지 이름 새기기겠지. 오세훈과 나는 하교길을 같이 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세훈이는 아마 루한쌤 생각을 했을 것이고, 나는 평소처럼 경수 형 생각을 했다."야. 나 형 포기할까?""왜 또 지랄이야.""그냥..""니가 입으로만 하지 진짜 포기하겠냐? 답답하다. 날 보고 배워."그러더니 오세훈은 교내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마치 살인마처럼 한 손에는 뾰족한 조각도를 든 채다. 나는 어기적어기적 세훈이의 뒤를 따랐다. 세훈이는 저번에 우리가 탔던 루한쌤의 차 옆에 서더니 가차없이 앞문부터 뒷문까지를 조각도로 죽 그었다. 자동차의 코팅이 벗겨져 선명한 회색 라인이 생겼다. 개념을 상실했다고도 말은 못하겠다. 원래 미쳐있는 놈인 거다. 나는 도대체 오세훈이 어쩔 작정인지 궁금했다. 누군가 부디 이 또라이의 행진을 막아주길 바란다. 세훈이는 손을 탁탁 털더니 여유롭게 팔짱까지 끼고 차에 기댔다. "미쳤어? 너 이거 걸리면 뒤져.""기다려봐."주차장에 차를 빼러 온 다른 교과 선생님들이 우리 둘을 흘끔거렸다. 손에 쥐어진 조각도와 차문 위에 선명한 직선, 누가 봐도 오세훈이 만든 기스였다. "루한이 온다. 야, 너 좀 저리로 가봐."나는 살짝 자리를 비켜줬다. 이따위로 막 나가는 오세훈에게 배울 점이란? 물론 없다. 루한쌤은 세훈이를 발견하자마자 안색이 불안하게 바뀌더니 시선을 차로 뒀을 땐 아예 미간이 일그러졌다. 쯧쯧. 비싼 돈 주고 산 차일텐데 진짜 불쌍하다. "세훈아.. 손에 그거..""네 쌤. 제가 그었어요.""너!!""예쁘게 그었죠?""이거 어떡할 거야!"세훈이는 들고 있던 서류가방으로 세훈이의 등을 후려치려던 루한쌤의 팔목을 붙잡더니 목소리를 한참 낮추고 말했다. 진지병자 같은 목소리였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선생님, 하고 말한 것 같다."왜 이러세요. 이거 그냥 돈만 있으면 흠집 없앨 수 있어요. 보상금 받고 싶죠? 저랑 사귀면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보상할게요." 오세훈의 또라이식 고백에서 현재까지도 배울 점은 제로. 저런 건 정상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겐 먹히지 않는다. 루한쌤은 세훈이의 손을 뿌리치고 성급히 차에 탔다. 차에 난데없이 생긴 기스에 끊이지 않는 오세훈의 막무가내 고백질에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나였다면 세훈이의 귀싸대기를 날리고 학교를 관뒀을 것이다."왜 대답을 안 하지?""세훈아. 정신차리고 가자.""맞아. 고민할 시간은 줘야겠지."고민할 시간이고 자시고 영영 대답은 안 받을 거 같은데 어쩌냐. 이런 경우는 안 받는 게 아니라 못 받는 거였다. 세훈이는 진짜 보상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변수는 생각치 않은 걸까."씨이발."아침 자습시간부터 내 귓구멍 언저리에 오세훈의 욕설이 내려앉았다. 아주 임팩트 있는 한 단어에 앞에 앉은 아이들 모두가 뒤돌아봤다. 세훈이는 지금 심기가 불편했다."꼬라보지 말고 공부나 해, 병신들아."태민이를 등에 업은 일등 수혜자는 나 아닌 오세훈 같다. 원래 이럴 녀석이 아닌데도 다수에게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날리는 걸 보니 이건 심기가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잘 지나간 줄 알았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다시 찾아온 것인가. 그렇다면 옆 자리인 나로썬 그닥 달갑지 않은데. 난 세훈이의 눈치를 보다 은근슬쩍 물었다."뭔 일 났어?""루한이가 엄마한테 전화했어.""뭐라고 했는데..?""차 긁었다고 지랄했겠지. 존나 도도해처먹어서 고백은 씹어먹고, 빡친다."보편적인 대한민국 윤리에 입각했을 때 선생과 제자, 그것도 남선생과 남고생의 열애가 가당치 못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세훈이야말로 두뇌가 도도해서 상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나도 참 불쌍하지만 세훈이도 불쌍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세훈이 선생님을 포기하길 바란다. 지금은 짓궂은 장난 정도지만 더 나가면 의미 부여 불가의 삽질이다."그러니까 꼭 루한이랑 사겨서 지금 이 수모 보상 받을래."그렇지만 세훈이의 의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대처는 세훈이의 불타는 마음을 독촉했을 뿐이다. 나는 세훈이라도 루한쌤과 잘 풀리길 바라며 불쌍한 내 처지나 제대로 돌보자 싶었다.1교시 종이 치고 태민이와 나 둘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우린 애들이 수업을 들을 동안 교내 봉사 시간을 가졌다. 수업에 강제로 빠지게 되는 시간이 많았지만 교실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뺑이치는 건 똑같다. 징계를 받는 동안엔 우리는 그 기간만이라도 선생님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묵묵히 내려진 벌을 수행할 뿐이다. 그 덕분에 내 일상은 너무나도 모범적이게 흘러갔다. 이 평화로운 흐름에 굳이 돌을 던진 건, 2학년 선배들이었다.병진이와 태민이, 세훈이 그리고 난 평소처럼 급식을 일찍 먹었고 아무도 앉지 않은 급식실은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애들이 점점 몰려들고 자리가 차기 시작했지만 옆 자리는 여전히 텅 비었다. 뒤늦게 푸름이와 준우도 와서 앉았다. 그렇게 우리 여섯이서 밥을 축내고 있는데, 저번에 날 때린 주먹킹 선배가 급식판을 들고 껄렁하게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회상되는 광대의 아픔에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다. 그 선배의 뒤에는 다른 선배들도 여러명 있었다. 변백현 포함. 근데 왜 다른 델 안 앉고 여기로 오지?"아이구, 우리 위대한 1학년님들 식사하시네?"그 선배는 시비를 걸어왔다. 병진이의 반찬을 뺏으려던 태민이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태민이의 표정도 함께 굳어버렸다. 아이들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입에 물고 있던 음식물을 꿀꺽 삼키고 더이상의 쌀밥 흡입을 멈췄다. "아닌가? 위대하잖아. 2학년 교실에 단비도 내려주고."옆에 서있던 선배들이 킥킥댔다. 태민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턱 끝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더는 안 건드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인데, 선배의 마지막 말은 시비털기를 완벽히 수행했다. 우려하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이를 어쩌나. 위대한 분들이 앉으신 데에서 급식을 좀 먹어야겠는데."분명 다른 곳에도 자리가 있었다. 나는 태민이가 꿋꿋히 자리에서 버틸 줄 알았다. 하지만 태민이는 야 일어나자, 하더니 먼저 일어났다. 우리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변백현 앞에서 굴욕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선배한테 개겨봤자 좋을 거 없다. 이제 퇴장만 제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태민이는 예상 밖으로 행동했다."어라? 잔반통이 여기와있네?"억양이 다소 의도적인 멘트를 날리고 선배의 가슴팍에 급식판을 엎어버린 태민이었다. 식판은 쨍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직 다 먹지 않은 밥이며 뜨거운 국물이며 반찬이며 모두 선배의 교복 상의에 너저분하게 들러붙었다. 그 모습이 아주 봐줄 만했다. 주먹킹에서 잔반통으로 전락한 선배는 태민이의 멱살을 잡고 죽일 듯한 눈빛으로 태민이를 노려봤다. 전교생의 이목이 우리에게로 집중됐다."너넨 안 버려?"태민이는 멱살을 잡히고도 우리에게 안 버리냐는 말을 했다. 상대방의 흥분에 개의치 않는 여유로운 태도. 이것이야말로 싸움의 고수다. 제대로 열받은 선배는 태민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저거 되게 아픈데. 아, 보는 내가 더 아프다. "으, 드러운 음식물 쓰레기. 드러워."태민이는 이 말과 함께 선배의 그곳을 발로 차버렸다. 선배가 거길 쥐고 고통에 몸부림칠 때 정강이도 발로 찼다. 그렇게 무서워보이던 주먹킹이 뒤로 자빠지던 순간이었다. 태민이는 바닥에서 주운 식판을 선배의 얼굴 위에 엎어놓고 발로 꾹 밟았다. "아!!!""앞으로 잔반통 관리 좀, 어? 제대로 해야겠어요."태민이의 승리로 보였다. 모든 게 좋았지만 자연스럽게 내 레이더망에 포착된, 건너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던 경수 형은 본인이 당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두려움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형은 곧바로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다. 집요하게 형을 쫓는 내 시선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어떤 좋은 변명을 붙여도 이 상황이 좋게 느껴지진 않겠지. 우린 뒤쪽에 서있던 넋 나간 표정의 선배들을 지나쳐갔다. 난 일부러 지나가면서 변백현의 어깨를 툭 쳤다."양아치 새끼."나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읊조리는 백현이었다. 양아치 새끼? 포장지 다르다고 사돈 남말 하네.보복을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선배들은 우릴 찾아오지도, 위협하지도 않았다. 후배한테 까인 게 쪽팔린 줄은 아나보다. 내가 감지할 수 있었던 변화는 나를 예전보다 더 열심히 피하는 경수 형,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날 바로 등지는 경수 형, 동아리 시간에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경수 형이었다. 한 주 두 주가 흐를수록 우리는 완전한 타인이 돼가는 것 같다. 혼자서 교직원화장실 구석칸에 앉아있던 날이었다. 구질구질한 교내 화장실과 달리 청결하고 조용한 이 층의 교직원화장실. 정작 선생님들은 이곳을 이용하지 않고 교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이용한다. 흡연 장소 선택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선인들의 지혜-라기보단 태민이의 두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난 거기서 맨 끝에 달린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태웠다. 시작은 호기심이었지만 형의 무관심과 외면이 두 번 세 번을 만들었다. 담뱃재를 다 털어내고 무심코 창문의 열린 틈새로 아래를 보는데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학교 뒤뜰이 보였다. 구석탱이에 몰려있는 여학생 다섯 명도 보였다. 누군갈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딱 봐도 린치를 가하는 중임이 분명하다. 흥미가 생긴 나는 실눈을 뜨고 그 불쌍한 한 명이 누굴까 살펴봤다. 단정한 머리, 동그란 정수리, 더 동그란 눈.경수 형이 거기 있었다.형이 왜 저기? 나는 당황했다. 당장 내려가기 전에 숨을 죽이고 형과 형 앞에 있는 여학생 둘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형의 대답은 잘 안 들렸지만 하이톤의 목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너 완전 웃긴다. 변백현이랑 사귀는 게 누군가 했더니 너였여?""아니야 그거...""왜 자꾸 아니래? 소문 도는 것만 들어도 딱 너잖아. 너 진짜 내가 만만하니? 이걸 확 그냥.."나에겐 한 살 누나로 추정되는 여자였다. 앞뒤 잴 것도 없이 그 누나가 손을 들었을 때 난 바로 일 층으로 뛰쳐내려갔다. 일 초라도 빨리 형에게 가야 한다. 누구와 부딪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숨이 가쁘다. 뒤뜰에 다다랐을 때 난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경수 형!"서있던 누나들 전부가 일제히 나를 뒤돌아봤다. 나는 당당히 그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눈시울이 붉어져 땅만 바라보고 있는 형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얌전히 있던 형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려 하는 것 같다. 나는 내 앞에 눈을 찡그리고 서있는 누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명찰엔 유지영이라고 써져있다. "너 뭐야?""형이랑 친한 동생이요.""이제부터 친한 동생 하면 안 되겠다 얘, 경수 게이래. 너 좋아할지도 몰라."그 말에 옆에 있던 누나들이 쿡쿡댈 때 확 얼굴에 귀싸대기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애써 참는 나였다. 진정하자.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번 주에 형 여자친구랑 더블데이트도 했는데.""...그래? 내가 잘못 알았나..""잘못 알았으면 사과해야죠.""어, 음.. 경수야 미안! 내가 잘못 알았나봐.""앞으로 우리 형 건들면 누나들 재미없을 줄 알아요.""으으응~ 이만 갈게~"그 누나가 억지 눈웃음을 지으며 친구들을 몰고 멀어져가는 걸 확인한 뒤에, 난 형의 어깨에 올렸던 팔을 슬쩍 내렸다. 이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졌다."괜찮아요?""소문은 네가 다 내놓고..""소문내긴 누가 소문을 내요. 나한테 말하기 전부터 알만한 애들은 다 알았었는데..""아무튼 고마워."나와 대화를 길게 할 이유가 없던 형이었기에 형은 이번에도 날 등지고 먼저 걸어갔다.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형을 보내면 다신 형과 가까워질 수 없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달려가 형 앞을 막고 섰다."형 잠깐만요. 형이랑 이렇게 지내기 싫어요. 세훈이한테 말한 거 잘못한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다른 건 형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 형한테 잘하고 싶었으면 했지 못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적도 없고요 전..""너 울어?""억울하잖아요...""울지 마.."찌질하게 울먹거리긴 싫었는데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형은 키도 작으면서 나를 끌어안고 손을 뻗어 내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형의 행동에 놀라기도 했지만, 원래 누군가 달래면 더 서러운 법. 나는 쪽팔림도 망각하고 형의 어깨 위에 내 지난 마음 고생을 전부 흘려버렸다. *** 늦었죠.. 죄송해요 ^.T 불금부터 노느라 정신이 없었네요드래곤 플라이트 왜 이렇게 재밌나요 제 창작을 방해하고 있어요암호닉 정리는 제정신일 때 제대로 해드릴게요 (__)♡오타 알려주시고 항상 감사합니다 26다음 글[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5>13년 전이전 글[EXO/백도] 엘리트 키드의 생애 上, 中, 下13년 전 아우디 l 작가의 전체글 신작 알림 설정알림 관리 후원하기 이 시리즈총 0화모든 시리즈아직 시리즈가 없어요최신 글최신글 [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5> 2913년 전위/아래글[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5> 2913년 전현재글 [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4> 2913년 전[EXO/백도] 엘리트 키드의 생애 上, 中, 下 4613년 전[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3> 4613년 전[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2> 4013년 전[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1> 3813년 전[EXO/카디백도] 순정소설 <10> 3413년 전공지사항[EXO/카디백도] 순정소설 <3> 7113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