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내내 지민은 입을 가만두지 않았다. 오늘 TV를 봤는데 예전에 하던 프로그램이 아직까지 하더라 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나는 하루 사이에 변해버린 지민의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그 시간이 왜이렇게 긴지.
까만색 세단. 차 번호 앞에 '하'자가 붙은 것을 보아 렌트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넌 왜 렌트를 해도 하필 이 차종이었을까. 내가 차 앞에서 머뭇거리자 지민이 문을 열며 타, 했다. 나는 애써 쓴웃음을 지우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자마자 익숙하게 안전벨트부터 챙기는 지민. 너도 안전벨트를 채우면 내게 물어온다.
"밥 먹었어?"
"응."
"난 아직 안 먹었는데."
"아직도?"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저녁은 먹어야 되지 않아?"
"일단 집 가자. 집 가서 네가 챙겨줘."
마땅히 줄 게 없는데. 내 마음과는 상관 없이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는 빠르게 집을 향하고 있었다.
"미안. 먹을게 이것 밖에 없다."
나는 혼자 사느라 얼마 채워 놓지도 않은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나름 상을 차려냈다. 그래봤자 초라하지만. 다행히도 지민은 별 말 없이 앉았다. 나는 불편할까 싶어 얼른 거실로 향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는 잊지 않았다.
"어디가. 그냥 여기 있어. "
물론 들켰지만.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서 지민을 바라보았다. 응? 지민이 턱으로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앉으라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의자를 빼고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가 거절했다가는 더 어색해 질 것이 분명하다.
이래서 이 자리를 피하려던 건데. 지민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게서 얘기를 유도하려 하였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없었냐부터 다음주부터는 날 깨우고 갔으면 좋겠다 까지. 다소 다양한 주제로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항상 응, 아니, 좋았어, 그저 그랬어 가 다였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진 않았다. 나는 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눈을 굴리다 무심코 습관처럼 켜놓은 TV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어색한 우리 둘을 뒤로한 채 TV에서는 익숙한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이름은 여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돌아왔다
2년 전 그 날은 평범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아주 늦은 오후에 일어나서도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밖에는 짱짱한 햇빛이 우릴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빨간색 쿠션을 안은 채 너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러면 너는 내가 좀 더 편한 자세로 누울 수 있도록 내 어깨를 들어올려 자세를 고쳐 주었다.
"지민아, 31번 틀어봐. 지금 재방할 시간이야."
지민은 군소리 없이 보던 스포츠 채널을 돌려 드라마 채널을 틀어주었다. 그 당시에는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나는 이 드라마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여주인공이 화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인데, 여자주인공이 여우 중에 여우, 상여우다. 그래도 높은 시청률 덕에 여자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욕은 많이 들었지만 탄탄한 연기력과 청순한 외모로 인기 원탑을 달렸었다.
"헐, 저 여자 왜저래. 남자를 지금 몇 번째 홀린거야?"
드라마를 보며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나를 넌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 해주었다. 너한텐 좀 전에 보다만 야구경기가 훨씬 재밌었을 텐데. 그런 너랑 눈이 마주치면 괜히 부끄러워 드라마나 봐, 라며 너의 턱을 돌렸었다. 그러면 너는 알겠다고 고개를 돌리지만 다시 몇 분 뒤면 너의 고개는 어김없이 날 향해 있었다. 나도 끝까지 너에게 시선을 돌리진 않았지만 신경은 온통 널 향해 있었다.
"근데 저 여자 못 됐지만 진짜 예쁘다. "
"네가 더."
"뭐래. 큰 일 날 소리 한다."
"진짠데."
"그건 캐나다 기준?"
"몰라. 한국에선 아니야?"
"응. 절대 아니야. 그러니깐 딴 데에서 그런 소리 하기만 해."
"그럼 다행이고."
다,행? 쉽게 수긍해버리는 너에 난 고개를 훽 젖혀 널 째려봤다. 뭐야, 지금 나 놀린거야?
"왜 눈을 그렇게 해."
"야, 너도 눈치 참 없다. 그래도 넌 끝까지 내가 예쁘다 해야지!"
넌 여기서 아예 웃었다. 난 거기에 더욱더 미간을 좁혔고 넌 그런 나를 보며 더 크게 웃었다.
"왜 많은 사람한테 예뻐보이려 해. 캐나다에서 너 예쁘다고 무작정 좋아하는 애들 많아서 불안했거든.
뭐 믿기진 않지만 여기선 네가 덜 예쁘다니깐 나한텐 다행이지, 뭐."
지민이 서슴없이 말했다. 아,좀! 그런 얘기 가려서 해. 난 아프지 않게 지민의 허벅지를 때렸다. 그리고 나 좋아하던 애들 없었거든? 나 진짜 너 밖에 안 보이는 거 알지. 그와중에 지민이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장난스레 말했다. 저 능구렁이 자식! 나는 상체를 반쯤 일으켜 일어나려 했지만 네 팔이 먼저 날 제지했다.
"바른 말 했는데 왜 때려?"
"미워서."
"진짜 나 미워?"
너는 누워있는 내 얼굴 앞까지 바짝 얼굴을 당기며 물었다. 이 각도에서 나 진짜 못생겨 보일텐데.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단 행동이 빠르다. 나는 언젠가의 너처럼 자연스레 너의 목에 양팔을 두르고선 얼른 입술을 포갰다. 박지민, 너도 이럴려고 얼굴 갖다 댔지.
"응. 너 진짜 미운데."
입술을 떼고 장난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면 이 세상에 누구보다 해사하게 웃어주던 너. 이렇게 지나가는 하루들이 내겐 너무 고마웠다.
"김여주!"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사람이 불러도 모르고."
"아니, 그냥 회사에 있었던 일."
지민은 그 후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 십분 간 정적이 끊이질 않았다. 차려진 것 몇 없던 상도 비워져가고 너는 일어섰다. 나도 어설프게 일어나 너를 따라가는데 네가 무심코 내게 말을 던졌다.
"저 배우 변한 게 없네."
"그러게."
"그리고 너도."
곧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아직도 저 여배우의 이름 따윈 모른다.
레브입니다. 이번편은 보너스 편이라고 생각 해주세요! 제가 이 늦은 밤에 찾아오게된 계기는요... 다름 아닌 연재텀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내일 본편을 가져와야 하는데 내일 11시에 집에 돌아오는 이상 그건 무리인거 같고 이번화 내용도 마땅히 넣을 곳이 없어 겸사겸사 0.5편으로 찾아왔습니다 급하게 와서 오류 투성이겠네요 시간 나는 대로 수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저번화에 로딩시간이 너무 길다는 댓글이 많았어요 이번화 댓글로 로딩 속도 어떤지 알려주세요!
그냥 이번편은 지민이와 여주의 신혼생활 맛보기라고 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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