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밑 하얗고 가늘게 뻗은 발목 아래로 답지않게 큼지막한 경수의 발이 자랑하듯 쭉 뻗어있었다.
하얀 발목, 하얀 양말, 하얀 실내화...그속에선 큰 발만큼 긴 발가락이 꼬물거리며 비벼졌다.
심장소리는 쿵쿵쿵거리며 주책맞게 날 뛰기 시작했고 몸은 저절로 꼬이며 얼굴엔 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흥분제를 먹기라도 한 것 처럼 몸은 설레고 있었다.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활짝 열어논 교실 창문 밖으로 만개한 벚꽃 잎과 함께 바람이 살랑이고 있었다. 곧 바람은 교실창 으로 들어와 경수의 몸을 감싸 안았다.
하늘은 청명하며 햇살은 따사로웠다. 한마디로 죽이는 날씨였다. 그러나 그에 반비례하게 경수의 몸은 점점 더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을 타고 들어어온 벚꽃잎 하나가 자신이 열심히 풀던 문제집 위로 차분히 가라 앉았다.
몸이 꼬이고 두근거리는 와중에도 그 잎 하나가 눈에 선명히 비춰들어왔다.
"흐....."
경수는 신음을 내뱉으며 마른 자신의 가슴팍을 움켜 쥐었다.심장이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점점 다가오는 느낌.
경수의 몸은 본능적으로 알았다.아니, 알고있었다. 애정(愛情)하는 이의 가까워 짐이.
고요하던 교실 앞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언제나 가까이 하지만 멀기만한 얼굴.자신이 끊임없이 갈구하는 그 사람. 제게 희망을 주지만 절망또한 주는 사람.
그 익숙함이 교실 문턱에 서있다.
문턱에 조용히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보자마자 심박수는 서서히 멈추고, 꼬이던 몸도 발가락도 얼굴에 올랐던 열까지 어느 새 내려있었다.
그가 다시 천천히 교실문을 닫고 경수에게로 걸어들어왔다. 한 발짜국 한 발짜국 가까워 질때 마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백현이 언제나 자신에게 이렇게 다가와줬으면..경수는 간절하게 되뇌였다.
백현이 경수가 풀던 문제집 위로 자신의 가방을 내렸다. 그 덕에 문제집 위로 날렸던 벚꽃잎은 살랑살랑 백현의 실내화 코 위로 떨어졌다.
백현도 경수도 그 꽃잎이 신발코 위로 안착한걸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백현이 집게손가락과 엄지로 그것을 주워 창가 밖으로 날려 버리곤 창문을 닫아 버렸다. 따스한 바람을 타고 꽃잎은 잘도 날려갔다.
"기다렸냐?"
닫은 창 밖을 묵묵히 바라보던 백현이 무심하게 물었다.
"눈은 달려있네."
"몇분?"
"한 시간 반 개새끼야."
꽤 오랜시간동안 기다린 경수에게 백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집에가지."
"됐어. 기다려줬으니까 떡볶이나 사라."
경수가 책상 옆에 걸어놨던 가방을 어깨에 메며 말했다. 그 행동 하나 하나를 지켜보던 백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안돼.오늘은 그냥 버스정류장 까지만 같이 내려가자. 정류장 까지는 데려다 줄게."
"뭐? 왜? 돈 없냐? 그럼 내가 사줄게. 가자"
"아니.그런거 아니야."
"그럼?"
재차 물으며 제안하는 경수의 표정엔 다급함이 묻어있었다.그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예리랑 만나기로 했거든."
그러나 그 같이있고 싶은 마음도 백현의 말이 마치자 사라져 버렸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을 경수는 질리도록 혐오했다.
이름만 들어도 여성스럽고 귀여울것같은 그녀는 백현의 1년된 여자친구다.
먼저 좋아한 것은 백현쪽이고 고백을 한것도 백현이 먼저였다.작년 여름에 사귄 그들은 아직도 주위의 시샘과 부러움을 받으며 사귀고 있다.
백현은 틈날때 마다 그녀의 자랑을 경수에게 늘어 놓았고 그녀의 얼굴을 보면 언제나 처음 고백할때 처럼 떨린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경수는 그녀를 싫어할 수 밖에 없다. 경수가 백현을 짝사랑하기 시작한건 2년도 넘었는데.
그래서 매일밤 꿈에서 경수는 그녀를 해하는 꿈을 꾼다.
그녀와 백현이 나란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실제로 속으로 해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때도 있다.
순간 굳어지는 경수의 얼굴을 보던 백현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경수가 예리를 싫어하는 마음을 알게된건 오래됐다.
실제로 경수는 그에게 그녀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헤어지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 헤어지라는 말을 들었을때 백현은 처음으로 경수와 주먹다짐을 하였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사랑하는 연인의 욕을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경수는 그녀를 욕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얘기만 듣게되면 저렇게 얼굴을 굳혀버리곤 한다.
"..미안."
"됐어. 난 그냥 공부좀 하다 가야겠다. 먼저가."
두근거리며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었다. 선물을 받았다가 뺏기는 기분이 이런기분일까.
경수는 다시 가방을 내려 책상 옆에다 걸었다. 그리곤 서랍에서 좀 전에 풀던 수리 문제집을 꺼내 펼쳤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 같은 경수에 백현은 목이 텁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다시 한번 한숨이 터저 나왔다.
그 순간 백현의 바짓 주머니에서 전화 벨소리가 퍼져 빈교실을 울렸다.
더듬거리며 빼낸 핸드폰엔 예리의 이름이 떠있었다.백현은 힐끔거리는 경수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리야?"
'응! 나 백현이 보고 싶어서 교문 까지 올라왔다?'
"응..그랬어?"
애교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텁텁했던 목에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안면엔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목소리 또한 한 층더 부드러워졌다. 이런 백현의 미묘한 변화에도 경수의 심장은 쿵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만날건데 왜 또 찾아왔데. 통화내용이 들리는지 경수는 그녀가 가식적이다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필통을 뒤지며 샤프를 찾았다.
지난 생일에 백현이 선물로 줬던 샤프를.
은색 바탕에 민트색이 둘러진 샤프는 꽤 고급스럽게 보였다. 샤프를 꺼낸뒤 괜히 뒷부분을 눌러 딸깍거리던 경수는 힐끔 백현을 쳐다보았다.
백현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창밖에 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신을 대할 땐 전혀 찾아볼수 없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역겨웠다. 저 표정.
그 누구보다 경수는 잘알고있다. 자신이 맨날 백현을 보며 짓는 표정이기 때문이다.
토기가 치밀었다. 손에 저절도 힘이 들었다. 화가 나서 손에 힘을주어 왼 손은 바들거리는 데도 오른 손은 잠잠했다. 백현이 준 샤프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역겨운건 저들이 아니라 자신이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나 쳐다보는 역겨운 게이새끼.
귓가에 저 말만이 웅웅 울렸다.
"경수야."
"어..어?"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백현에 깜짝놀라 얼빵하게 대답했다. 분명 그 표정또한 얼빵하게 볼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현은 웃지 않았다.
"너무 늦게 가지마."
"..응."
"저녁 밥 굶지말고."
"응."
"그럼 나 먼저 갈게."
"..응."
다정하게 자신에게 부탁아닌 부탁을 하는 백현에 경수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런 경수의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백현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백현의 표정을 보자 경수의 심장이 두근댔다. 저 얼굴을 자신한테만 보여주면 좋을 텐데...경수는 쓴 웃음을 삼켰다.
어느 새 백현은 교실 앞문 턱을 향해있었다. 그런 백현을 경수는 고집스럽게 눈으로 쫓았다. 그의 모든 행동들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그러다 문득 백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경수와 시선이 부딪혔다. 자신을 끝까지 쳐다보는 경수에 백현은 손을 들어 휘휘 저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교실의 앞문을 닫으며 또 한번 손을 흔들어 경수에게 인사했다.
이런 백현에 행동에 경수는 화르륵 얼굴에 열이일었다. 이제 완전히 백현이 눈 앞에서 사라졌지만 설레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상태라면 수리 문제집 하나 정도는 거뜬하게 풀수있을것같은 기분이었다.
얼른 경수는 오른 손을 들어 문제 1번 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문제를 풀기전에 백현이 준 샤프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난뒤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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