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게이의 취향]
씨발놈
자니? 오전 12:11
씨발놈
자는구나..... 오전 12:15
씨발놈
잘자 오전 12:16
"아오 이 씹새끼...."
택운은 현재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6개월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남자친구와 깨졌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정택운의 성별. 대한민국 평균 남자의 자지 사이즈를 훨씬 웃도는 조랑말 꼬추를 자랑하며 수학여행이건 극기훈련이건 어디서나 추종자들을 잔뜩 생성했던 사지멀쩡한 남성이다. 저는 게이는 아닌데 남자가 좋아요, 라는 변명도 필요없이 택운은 여자남자 멀티플레이를 구사하는 양성애자였다. 물론 그 성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놈은 바로 지금, 한밤중에 개아련한 말투로 카톡을 걸어온 유일무이한 구남친.
택운은 카톡프사 너머로 내가 이시대의 순수청년이요 하며 귀척이란 귀척은 다 부리고 있는 닉네임 씨발놈을 차단하려다가 가까스로 참아냈다. 혹시라도 자기 차단한 거 알면 동물원을 탈출한 원숭이새끼마냥 날뛸 놈. 고런 놈. 같은 나이의 이재환.
같은 양성애자로, 정신 못차리고 이남자 저여자 건들며 다니길래 빡쳐서 미련없이 찼다. 3대가 성불구자일 새끼라고 쌍욕을 해준 것으로도 분이 풀리질 않아 쟈니♡였던 이름을 씨발놈으로 바꿔버렸는데 왜 뜬금없이 연락을 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다행히 재환과 자신은 다른 학교이긴 했으나, 왜 하필이면 (비록 고쓰리지만)새학년의 설렘을 가득 안고있는 2월 말에 연락을 했을까, 재수없게시리.....닭살돋은 팔을 문지르며 택운은 답장을 남겼다. 좆까 개새끼야. 택운이 욕하는 게 그렇게 섹시하다며 좋아죽던 재환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찝찝했지만 그것도 역시 참았다.
"이재환이 나한테 톡했어."
"의지의 한국인이네."
상혁이 얄밉게 눈웃음을 샐샐 쳐대며 감자튀김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옆학교 여자애들마저 홀랑 반한 개죽이 눈웃음이지만 뭐든 십년째 보고있으면 질리는 법, 택운은 먹던 햄버거를 내려놓고 뭐 씹은 얼굴로 콜라를 들어올렸다.
상혁은 택운의 친구 겸 재환의 친구였다. 코찔찔이 초딩 저학년 시절부터 택운과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던 상혁은 작년 봄, 학원 친구 재환과 쉬는시간에 잠깐 편의점에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택운을 보았다. 이참에 소개나 시킬까 하며 택운과 재환을 서로 인사시키려는데, 이미 택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굳어버린 재환이 있었다.
그랬다. 꼬추 사이즈와 얼굴은 전혀 관련없었다. 밀가루를 바른 것마냥 뽀얀 얼굴, 훤칠한 키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마른 몸, 그러나 어깨만은 떡벌어져 남자다운 외형, 거기다 차갑지만 쎆쓰어한 눈매에 난리나는 턱선과 콧대를 가졌으니 어느 호모가 반하지 않을까.
태생부터 섹시한 놈은 떡진머리에 츄리닝 입고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고 있어도 섹시한그야.
하지만 이재환 지도 자존심은 있는지 대놓고 소개시켜달라고는 안 하길래, 이시대의 진정한 오픈마인드를 소유한 상혁은 슬쩍 떠봤다. 쟤랑 잘되게 해줘?
약 세 번의 만남 끝에 둘은 결국 사귀게 되었으나 약 4개월 후 택운이 일방적으로 재환을 참으로써 그 관계는 쫑났다. 택운은 똥차가 가고 벤츠가 온단며 속시원히 맥주파티를 벌였으나 이재환은 어땠더라, 울었나 뛰어내렸나 잘 기억이 안난다. 그게 벌써 반년 전이라니, 세월이란 참. 상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친구를 사겨도 무슨 그런새낄 사귀냐? 걔 빅스고 다닌다며, 야 평판 졸라 나쁘지 않던?"
"아닌데? 이재환 매너 좋아, 지가 먼저 차는 경우는 거의 없어. 너네만 봐도 정택운 니가 찼잖아."
"그건 누가봐도 걔가 잘못했잖아!!!! 와, 애인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게이바 간 놈 쉴드를 치네 한상혁이가."
"목소리 낮춰, 여기 학교앞 롯데리아임."
학기 중에는 수업만 끝났다 하면 질리도록 오던 곳이었다. 야자가 의무가 아닌 학교라 그런지 수업을 마치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들어서면 이미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수업 마치고 먹는 햄버거 한 세트, 해파리고 학생들의 삶에 한줄기 빛이었다.
덕분에 해파리동 롯데리아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마 얘네들 두번째 만남도 여기였지, 과거여행을 끝낸 상혁이 다시 햄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 근데 나 새우 알러지 있는데 왜 여기 새우버거는 먹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까.
"이재환 괜찮은 놈이라니까, 너랑 좀 안맞아서 그렇지."
"웃기시네, 걔랑 맞는 인간이면 이미 몸에서 사리가 줄줄줄 흘러내릴거다. 걘 평생 그냥 혼자 고양이나 키우면서 살라 그래."
"진짜 아닌데...너 다시 시작할 마음 전혀 없냐? 이재환 너랑 헤어지고 존나 힘들어했는데."
"집어치워라, 너 아까부터 진짜 왜이럼? 뭐 잘못 먹었냐? 왜 나랑 걔 붙혀놓을라고 안달이야."
반년 넘도록 웬만하면 이재환 얘기 안 꺼내던 놈이 왜그래, 갑자기. 코끝까지 찡하게 쏘는 탄산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던 택운이 상혁에게 쏘아붙혔다. 그러자 위대하고도 대담한 우리의 한상혁이 하시는 말씀이란 게,
"....이재환 강전당해서 3월부터 우리학교 다닌다니까 그렇지."
아마 정택운에게는 사형선고 쯤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