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멀쩡한 사람 호모 만드는 방송
"안녕하세요~"
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경쾌한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열 손가락 입에 넣고 다리를 달달 떨며 피가 나도록 깨물고있던 제작진을 안심시키는 발랄한 인사에 그제서야 제작진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녕하세요 학연씨, 바쁜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있는 스케줄도 취소하고 와야죠!"
"저, 정말요?"
"당연하죠! 데뷔하면 꼭 우결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악감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해맑은 대사에 제작진은 다시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결. 우결이라 함은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준말로, 대한민국 대표 연예인들을 가상 부부로 만들어 내보내는 신개념 버라이어티 방송. 팬들은 눈물을 흩뿌리며 결사반대를 외친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대환영인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근데 과연 사지 멀쩡한 대한건아를 게이로 만드는 그런 방송도 해보고 싶어할까.
"근데 상대방은 누구예요? 아 완전 기대된다."
저 순수한 얼굴에다 대고 차마 당신 남자랑 결혼해요, 라는 말은 죽어도 할 수가 없다 이거였다.
"음...학연씨, 있잖아요. 요즘은 우리나라도 굉장히 개방적인 시대로 바뀌었잖아요."
"네? 아, 맞아요! 요즘은 옷차림도 그렇고 문화도 엄청 서구적이더라구요. 전 벌써 늙었는지 못 따라가겠어요."
못 따라가면 안되는데요...절대....저 십대의 투명함을 간직한 얼굴이 무너져내릴 걸 생각하니 제작진은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었다.
"저기...학연씨 저번달에 종영한 시트콤 있잖아요, 서인국씨 주연이었던...."
"아, 대답은 너니까 말씀이세요?"
"네...저희가 학연씨를 거기서 보고 캐스팅 했거든요, 20대 초반인데 고등학생 역할이 되게 잘 어울려서 신선하다고 피디님이 그러셔서...."
"아,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차학연은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까만 피부에 대조되는 특유의 귀염상 마스크와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요즘 한창 뜨고있는 슈퍼 루키였다. 얼마전 출연한 인기 시트콤에서 남자 주인공의 동생 역으로 또한번 얼굴을 알린 배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데 학연이 유명해진 것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21세기 영화, 드라마는 퀴어의 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작가들은 여자 시청자들을 늘리기 위해 미친듯이 동성애 코드를 발랐고 연출팀은 평범한 장면에서도 야릇한 BGM(ex/클래지콰이-She is...)을 깔기 마련이었다.
그러한 비디오 문화의 최대 수혜자들은 단연 십대와 이십대 신인 배우들이였다. 진부한 러브라인에 지친 시청자들은 남녀 주인공들의 케미보다 메인남주와 서브남주 혹은 주조연들의 애정전선에 더 관심을 기울였고 연말 시상식마다 베스트 커플상 후보에 재미로 한팀씩 껴있는 남남커플, 여여커플에 미친듯이 투표를 해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트콤에서 주인공들보다 더 각광받았던 인물들은 주인공 남동생 학연과 그의 학교 친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정택운이었다.
택운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5세때 한 인기 교복사의 모델로 발탁된 것을 계기로 청소년 성장드라마에 출연한 후부터 유명해진 배우였다. 까칠한 성격에 창백하고 차가운 외모를 가졌지만 의외로 동물과 아이를 좋아하는데다 넘치는 수줍음으로 여느 아이돌 못지않은 덕후들을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둘의 케미는 웬만한 생계형 호모질에 꿈쩍도 하지않던 수많은 부녀자들을 줄줄이 쓰러뜨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차치댐과 정환장. 광고기획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그들에게 동반 러브콜을 날렸고 인터뷰마다 서로를 언급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렇지, 멀쩡히 대한민국 남성으로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스물둘 남정네들한테 호모 결혼이라니, 호모라니...힘없는 막내작가는 학연의 앞에서 더욱 작아질 뿐이었다. 과연 얘기라도 꺼낼 수 있을지. 저 선량한 청년에게 뺨이라도 얻어맞는 건 아닌가 싶어 막내작가는 조금더 움츠러들었다.
+
"저 잘못 들은거죠? 제가 남자랑 뭘 해요?"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한 손에는 카톡창이 켜진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소파에 드러눕듯 걸터앉아 다리를 꼰 채 삐딱하게 말을 잇는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다 한들 그 아래로 보이는 이목구비는 가히 훌륭하다 할 만 했다. 저것이 그림인가 조각인가, 제작진이 느낀 첫인상은 개쩔었지만 입을 여는 순간 더 쩔었다.
"아, 진짜 초면이라고 존댓말 쓰면서 생글생글 웃어주니까 이 누나가 날 호구로 보나."
"...."
"야."
"...네?"
"지금 나랑 놀자는 거 맞지, 내가 이런 저질방송 할 급으로 보여? 뭐?? 남자랑 결혼을 해?!!!!"
씨발 나 안해!!! 남자가 반도 안 마신 아메리카노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만약 이 남자가 시킨 커피가 아이스 카페모카였다면 제작진은 그걸 홀랑 뒤집어썼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연예인인데. 공인인데 최소한의 이미지관리 정도는 해주면 참 좋으련만. 카페 바닥청소 담당인 어린 알바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정작 본인은 신경도 안 쓴다는 게 문제다. 팬 하나가 떨어져나가면 새로운 팬 둘이 들어온다. 그게 이 남자의 신조였다.
"저기, 홍빈씨...."
"뭐 시발, 나 실장님이 마음대로 너랑 선약 잡아서 지금 소녀핑크랑 한 약속도 깨고 여기 왔다? 근데 내가 지금 기분이 좋아보이니?"
"...아뇨...."
"알았으면 꺼져, 너도 집어던지기 전에."
두살 때 명품 유모차 CF 모델로 시작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아역을 거쳐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남자 배우로 자리잡은 덕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만인의 아들, 만인의 남친, 만인의 희망인 존재였다, 이 남자는.
누나팬들은 잘 키운 아역배우 열 연하남 안 부럽다며 촬영장마다 밥차를 쐈고, 아줌마들이 뽑은 아들&사위 삼고싶은 연예인 투표에서는 몇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이홍빈. 원빈 현빈 다음으로 떠오르는 배우가 얘였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너무 어려서 돈맛을 보면 겉모습은 번지르르하나 그 속은 인간답지 못하고 성격은 개같다는 것을. 증권가 찌라시들 사이에서 항상 언급되는 낮에는 엄친아, 밤에는 미친개 두 얼굴의 남자배우 L씨는 백발백중 이홍빈이었다.
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의 환상은 깨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오늘 집에 가자마자 이홍빈 팬카페 <Real RedBin>을 탈퇴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불쌍한 제작진은 눈물을 글썽인 채 핸드폰을 꺼냈다.
"어...난데, 이홍빈씨는 출연이 어려운가봐. 라비씨랑은 얘기가 됐다고? 후보로 또 누구누구 있었지?"
"...야, 너 잠깐만 서봐."
자기보다 네 살 어린 홍빈에게 폴더인사를 하고 전화를 받으며 종종걸음으로 카페를 나서려던 작가를 홍빈이 건들건들한 말투로 불러세웠다. 달달 떨며 고개를 돌린 우리의 제작진은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박으며 홍빈에게 물었다. 왜...그러세요...?
"방금 누구라고? 라비?"
"네...."
"...내 상대방이 라비였어?"
"네, 근데 홍빈씨가 안 된ㄷ...."
"그걸 왜 이제 얘기해요, 누나. 앞으로 잘해봐요, 우결 파이팅!"
0.1초만에 다시 생글생글한 얼굴로 돌아온 홍빈이 텔레비전에서 봤던 바로 그 미소 그대로 환하게 웃으며 카페를 빠져나갔다. 벙쪄버린 제작진은 어찌할 바를 모른채 거짓말 안하고 그대로 한 5분은 굳어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이거 때려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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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륜젤피....어째서 노래 제목을 드라마 제목으로 써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겁니까.......
우결은 속히 폐지해야 할 악마의 씨앗입니다만, 픽 소재로는.....뭐.....릴레이의 정석 아니겠슴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레람쥐 되겠습니다. 돌쇠님과 함께 으쌰으쌰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안되면....할수 없구요......ㅋ.......
그리고 우결 제작진들, 게이커플 넣을 거 아니면 당장 그만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