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 천만번째 남자 02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8/3/0/8307e1aa4ce74ba03683c809c5107821.jpg)
[수열] 천만번째 남자 21.
어젯밤에 동영상만 주구장창 돌려봐서 아침인 지금은 얼굴이 퉁퉁부어서 졸린눈을 한채 집을 나와 회사로 투벅투벅 걸었다. 반쯤 졸며 걷는데 누군가 성열의 앞을 가로막았다. 성열이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옆으로 가려는데 가는길 마저 또 막아버렸다. "요즘 녹음한다더니, 상태가 왜이러냐?"
성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숙였던 고개를 급하게 올리니 그앞엔 가장 꼴보기싫고 증오하는 김성현이 입꼬리를 한쪽으로 말아올린채 성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와..줄래?"
"그런말도 돌던데? 녹음중단됐다며? 또 남우현 들러리서는거야?"
"...뭐?"
"남우현이 활동을 할려면 너가 필요할텐데 지금 니 프로듀싱 봐줄땐가? 그냥 돌던소문이지?"
"..."
"입꾹다물고 그 재수없는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거보니까 중단맞나보다"
"..."
"결국엔 거기서 남우현 들러리하다가 짬밥으로 남아서 추락하겠지" "말다했어 지금!!!!?"
성열이 성현에게 밀착하며 눈동자와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채로 말하니 성현은 다짜고짜 성열의 볼을 쓰다듬었다.
"넌 항상 화가나면 귀엽더라? 당황한티 팍 나게 여기랑 여기가 떨리더라고"
성현의 손이 성열의 눈동자와 입술에 닿으며 비웃듯이 씩 웃었고, 성열은 성현의 손을 내려치며 가려는데 성현이 손목을 잡아 성열을 다시 잡아 세웠다. 눈에선 눈물이 새어나왔다. 늘 그래왔지만, 김성현이 입을 열며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때마다 성열은 이렇게 조용히 눈물방울을 툭툭 떨어뜨려야만 했다. 또 잊어만 가던 과거일들이 머리속을 점점 메워왔다. "여기 온..이유가 뭐야 너"
"딱봐도 몰라? 그래도 정이 있어서 방문..."
"니따위 방문같은거 필요없어, 이거놔. 언제는 사람 제대로 골려먹고 밑으로 추락시키더니..뭐?"
"정이라고 해주니까 내가 우습냐? 내가 온 이유는 따로 있어"
성현이 안쪽주머니에서 봉투하나를 꺼내더니 성열의 가슴팍에 집어 던지듯 건넸고, 성열은 받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뜨려버렸다. 성현의 화난눈이 성열의 눈동자로 고정되었다.
"쳐 받아,"
"지금 니네 비리 터트리지말라고 이딴 돈행세나 하는거지 너네?"
"돈이면 다되는줄 알았더니, 의외로 안먹히네 이거"
"내가 왜 지금 말안하고 벼르고 있겠어, 내가 이걸 받을거같아? 이 쓰레기같은새끼야?!"
"니 입놀리면 진짜 인생 끄....ㅌ..."
"짓밟아버릴거야, 그래 나 녹음중단됐고, 남우현 들러리선다. 난 꼭 잘될거야"
"푸흡..푸하하하하!"
"꼭 미친듯이 열심히해서 다 터트릴거야"
"푸흡..사람들이 니말을 믿냐? 푸하하"
"날 믿을수있고, 나한테 꿇을수있는 위치가 올때, 그때 다 불어버릴거야"
"..."
"내가 입을 여는 순간, 니 인생은 땅바닥으로 내려앉겠지"
"뭐? 이 개새끼가!!!!"
"너도 내가 그 순간 어땠을지..너도 당해 봐야되 미친새끼야..내가..어떤기분이고..어떤..마음으로 견뎠는지.."
"..."
"왜 내가 죽지못해 계속 독하게 이짓하고 살고있는지..너도 당해보면알아"
"..."
"이딴돈 안받아, 니 손떼묻은 더러운 이돈, 가서 니 아버지한테 가서 효도나해, 아들 잘되라고 주위에 압박주고 다니시는데 맛있는건 사드려야지"
"..이 씨발새끼 너 거기안서!!!?야!!!!"
성열이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발로 차며 성현이 잡고 있는 손을 놓은채 뒤를 돌아 걸었고, 성현은 분통이 터지는듯 옆에 있는 돌을 발로 뻥찼다. 성열은 뒤를 돌자마자 긴장했던 마음들이 다 풀려버렸는지 눈물을 뚝뚝 떨궜고, 끝까지 제 모습을 보고 있을 성현때문에 얼굴에 손을 가까이 대지도 못한채 풀리는 다리를 애써 힘을 주어 걸었다. . . .
'남우현 들러리서는거야?'
연습실에서 우현을 기다리는동안 성열의 머리속에서 떠나가지 않는 말이였다. 차라리 회사 사람들한테 이런말이라도 들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텐데 재수없게도 그녀석 입에서 나오니 왜이렇게 화가나고 머리속에 떠오르는지 주먹을 말아쥐며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진정하려 눈을 잠시 감았다. "너 왜 이러고있냐?"
누군가의 부름에 감던 눈을 살며시 떴다. 눈앞에 있는건 제 앞에서 웃고 있는 엘이였다. 성열은 깜짝놀래 눈을 확 떴고, 명수는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냥 웃어보이기만 하였다. "...왜울어" "내가 너 얼마나 보고싶어서..보고싶어서!...흐어....흐어어어"
"애냐? 맨날 보면 울어"
"보고싶어서..흐어...보고싶어서..지금 내앞에 있는거 너맞지?...지금.."
"그럼 나지 누구냐?, 나말고 잘생긴사람이 여기 어딨어"
"..ㅎ..흐으...죽을래..?"
명수는 여전히 웃어보이며 성열을 보았고, 성열은 애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채 명수와 눈을 마주했다. 잠깐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명수는 성열에게서 한발자국 물러섰다. 성열의 눈길이 초조했다. "어디가..어디가게"
"너 연습한다며 형이랑, 빠져줘야지"
"여기있어..엘아 여기있어..가지마"
"또올게, 연습열심ㅎ..."
"엘아..여기있어 가지마..엘아!!!"
명수가 성열에게 등을 돌려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성열의 눈에선 눈물이 새어나왔다. "가지마..가지마 엘아!!!!엘아!!!"
눈을 번쩍 떴다. 꿈이였다. 성열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있고,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성열의 소리가 그저 조용히 울리기만 했다. 제 앞에서 웃던 엘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그만 저도 모르게 그자리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엘 몇일 못본거가지고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김성현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을 지금 이 시점엔 무엇보다 엘이 절실했다. 전부터 이런일이 있을때마다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며 위로를 해줬던것도 엘이였고, 기죽지말라며 응원을 넣어준것도 엘이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전화한번 없는 녀석이 원망스럽기도 해서 목놓고 울었다. "성열이 왜울어? 어? 왜울어?" "조용히해, 일이 있었나보지"
"가서 살펴야되는거..."
"내가 할게, 잠깐 저렇게 울게 냅두자, 장동우 넌 가서 니일이나해 지금 호원이 심부름간다며"
"...그래도"
"호원이한테 맞고 싶지 않으면 얼른 갔다와야지"
"그럼..성열이 잘달래, 너희둘이 연습이라며 니가 아무래도 달래는게 낫겠다. 빠이"
우현은 진작부터 성열을 보고있었다. 잠결에 엘을 몇번이나 불르던지 몇번인지 세어봤다간 손가락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다. 처음엔 그냥 뻔뻔하게 들어가볼까 하다가 녀석이 얼굴을 묻고 어깨를 심히 들썩이며 우는 순간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명수가 했던 말들이 머리속에 스쳐 지나갔다.
'성열이한테 연락해봤냐'
'보다시피 우리 핸드폰뺏겼고, 지금 내 상태도 말이아니고.' '니가 그렇게 답답하게 구니까 애도 답답해하잖아' '잠깐이라도 내생각 안하게, 앨범작업 미룬거 다시..해줘 형'
'...그건 아에 미뤄졌으니까..내가 어떻게 할수있는거아니고'
'아에 미뤄졌다니?'
'너때문에 컴백미뤄지고, 결국에 남은 기간에 솔로활동하는데, 성열이가 같이 스기로했어'
'...'
'앨범작업은 걱정하지마, 내가 성열이 꼭 다시 올려놓을거야,' '혹시. 이성열이 나에대해서 묻는다면'
'뜬금없이 뭐야..'
'내가 아프다는 말은 절대하지마, 그 쳐진눈에서 또 눈물 줄줄 새어나올라, 누구때문에 다쳤다는 식으로도 말하지마'
'...' '지금 다치게 한애도 힘들어하고, 무엇보다 더 축 쳐질 이성열 보기싫으니까..그냥, 모른다고해' '...' '그게 이성열을 위한거고, 나를 위한거고, 다른 그애를 위한거야, 부탁해 그리고..이성열 잘챙겨, 방심하면 다른데로 새버리니까'
'...알았어.'
우현이 눈을 꼭 감다가 뜬채로 문고리를 잡아열었다. 성열은 문소리에 놀라 뒤늦게 눈물을 벅벅 닦으며 손부채질을 했고, 우현은 못본척 아무렇지 않은척 성열과 마주하지는 않고 컴퓨터로 향해 음악을 틀었다. "연습해야지, 늦어서 미안해." "..아니요..저도 방금..왔어요"
"그럼 다행이다, 콘서트때 했던대로만 하면되니까 그새 잊어먹진 않았겠지?"
"네.."
성열이 벌개진 눈으로 일어나 어떻게든 운 티를 안내려 눈동자를 이리저리굴렸다. 우현은 아무것도 모르는척 성열과 눈을 마주할때마다 가슴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성열은 노래에 맞춰 동작 하나하나를 연습했고, 우현역시 살며시 웃으며 연습에 매진했다. 몇시간을 연습했을까, 땀으로 가득한 성열은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닦아냈고, 우현역시 선풍기앞에 얼굴을 대고 서있었다. "오늘, 새벽에 바닷가갔다올까? 아무도모르게"
"네?.."
"나도 지금 마음이 마음이 아닌거같고, 너도 이제 곧 나때문에 힘들걸 대비해서 갔다올까?"
"차는.."
"지금까지 벌어논돈으로 차한대 안사놨겠어?"
"..."
"가자, 마음 답답하고 그때가면 사람들도 없을거고, 조금만 연습더하고 갔다오자"
"네.."
"자 이제 다시 연습!"
오늘 하루종일 성열이 명수 생각할 틈도 안주게 우현은 쉬는 시간을 상당히 짧게 주며 오로지 연습에만 매진시켰다. 땀을 줄줄 흘려가며 제 옆에서 같이 해주는 성열을 보고 보지 않을때 살며시 웃었다. 바다에가자고 먼저 말을 한것도, 요즘 성열때문에 복잡해진 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것도 있지만, 이제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스쳐지나가듯 들을 한마디 '팀에서 빠지고 들어가더니 고작 한다는게 남우현 들러리?' 이 말을 듣고 또 뒤에서 혼자 울 성열을 위해서, 또 요즘 명수떄문에 가슴앓이 하고 있는 성열을 위해 간접적으로나마 작은 위로를 해주려 말을 꺼낸것이였다. 안갈줄 알았는데, 순순히 간다는 녀석의 말에 우현은 적지않은 설렘을 받았다.
. . .
새벽3시, 근처 바다로 향하는 차에는 정적이 흘렀다. 성열은 맥없이 어두운 하늘에만 시선을 고정했고, 우현은 운전대를 잡으면서도 옆을 보고 있는 성열의 옆모습을 간간히 살폈다.
"배안고파?"
"방금까지, 빵먹어놓고선..배가 고프냐는 말이 나와요?"
"아맞다, 그랬지.."
"괜히 할말없으니까"
"아니거든"
"바깥이 참 어둡네요, 사람들 이렇게 자는 시간에 나와있는 자체만으로도 가슴뻥뚫리고 좋네요"
"오길 잘한거같네"
"지금쯤..뭐하고 있을까요..엘....은"
"응?뭐라고?"
"아니에요, 새벽공기가 좋긴하구나"
성열이 창문을 살짝 내리며 바깥공기를 맡았고, 우현은 살며시 웃으며 근처 바닷가에 도착하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내리자' 한마디에 성열과 우현이 동시에 내렸고, 추운 바람이 일며 내리치는 파도가 그렇게 시원할수가 없었다. 성열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가슴이 뻥 뚫리며 덩달아 눈물샘도 뻥뚫려버렸다. 우현은 차뒤에서 잠바하나를 더 꺼내 빤히 바다를 보고 서있는 성열의 어깨에 덮어주었고, 옆에 나란히 섰다.
"하고 싶은 말할까?"
"형 먼저요," "남우현 대박나라!!!!!인피니트 대박나라!!!!이성열 넌 내가 꼭 책임질게!!!!미안해 성열아!!!!"
성열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우현을 보았다. 바보같이 씨익 웃으면서 말이 끝나자마자 성열과 눈을 마주했다. "너차례야," "..." 성열이 입을 어물쩡거리며 망설였다. 속이 후련한지 헥헥 대며 숨을 몰아쉬는 우현은 손을 꼼지락 대고 있는 성열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두었다.
"우현이형 고마워요, 저도 열심히할게요, 그리고.."
"..."
"그리고..엘아..."
"..." "보고싶다, 나쁜새끼 보고싶은데 그 비싼얼굴도 안비춰줄꺼야!!!?"
결국 눈물이 같이 터져나오며 성열이 윽박을 질렀고, 우현은 성열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져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성열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내가 얼마나 보고싶은지 넌 모르지!!!? 넌 지금 어디서 뭘하고있는거야..물어보면 아무도 대답안해주고!!!"
"..." "너가 원망스러워 정말 싫어 근데도 보고싶어.." 성열의 꾹 눌려진 입술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눈에선 눈물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까 녹음실에서 봤던것보다 더 목놓아우는 성열을 우현이 다가가 뒷목을 끌어와 꽉 안아주었다. 성열은 우현의 옷깃을 잡으며 엉엉 울었고, 우현은 성열의 등을 계속 손으로 쓸어내려주었다. 이렇게 울어도 말해줄수가 없었다. 분명 녀석이 더 울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말해주면. 정신상태를 붕괴해버릴거같은 녀석의 모습과, 얼른 엘에게 가자며, 지금 제일 편안한 이 순간에서 도망가버릴 녀석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상황에서 이성열을 누구에게도 보내기가 싫었다. 지금 둘이 같이 이 순간을, 못됐지만 둘만의 시간을 즐기며 보내고싶었다. 성열은 우현을 더 꽉안았고, 우현역시 성열이 빠져나가지못할만큼 세게 안았다.
"그만울어, 보는 사람 마음타들어가.." 성열의 뒷통수를 제 품에 더 끌어안으며 우현은 성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고, 어느새 진정이 되었는지 세게 잡고있던 우현의 옷깃을 살며시 놓았다.
"죄송해요, 참 별거가지고 울죠 제가.."
"그렇게 친한친구가 안보이면 서운할수도 있지..."
"친한친구..?...친한친구..네 친한친구죠"
"부탁하나만 해도될까"
"네..?"
"지금 이후로부터, 울지않기, 여기서 마음 다 풀어놓고 가기"
"..."
"너가 자꾸 우니까,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연습 빡세게도 못시키고..어? 이게 다 수작부리는거지"
"..."
"울지말자, 울거면 지금 기회줄게 맘껏 울어, 속시원하게 다 풀릴정도로"
정말 울어보라고 하자마자 성열은 방금 울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들을 수두룩하게 짜냈다. 꼭 안고 있었던지라 어깨가 성열의 눈물로 젖어가 축축해졌고, 우현역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떨어져내렸다. 성열은 우는 그 순간순간에도 머리속에 명수를 담았다. '날 위해 살아줘' 지금도 널 위해 살고 있는데, 이렇게 버티면서 사는데, 넌 무슨일이 있길래 말한마디없이 그렇게 잠적해버린거니 엘아, 성열이 우현의 젖은 어깨를 보고 품에서 조금 떨어졌고, 또 한번 우현과 서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채 눈을 마주했다. 성열이 우현의 떨어지는 눈물들을 손으로 닦아주었고, 그 순간, 눈물을 닦던 성열의 손을 제 손과 포갠채 다른 한손으로는 성열의 뒷목을 끌어와 그대로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놀라던 성열의 눈이 서서히 감겨 눈물이 툭 떨어져내렸다. 파도소리조차 잠잠해지고 우현은 입술을 놓을세도 없이 성열의 입술을 더 깊고 부드럽게 파고 들어갔다. 눈물젖은 입맞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바닥에 떨궈진 성열의 핸드폰에선 미세한 진동이 끝없이 울렸다. '엘♡'
010-xxxx-xxx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