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글 진짜 잘쓴다 감탄하는 말에 아냐, 멀었어 이번 백일장에서 상도 못탔는데 뭘...하며 약간의 씁쓸함을 올라간 입꼬리에 걸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작가해도 될 것 같은데 뚝. 입꼬리가 내려온다. 가라앉는다. ...작가는 무슨 나, 아직 멀었다니까. 손에 쥔 펜이 딱딱해졌다. 그래도...작아지는 목소리에 펜을 툭, 놓는다. 교실이 적막해지는것같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아이들의 목소리도, 방송하시는 선생님의 소리도 사라졌다. 작가? .....난, 못해. *** 그러한 날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소녀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작가요! 하고 밝게 대답했다. 물론 돌아오는 건 힘들텐데..하는 걱정. 열심히 해보라는 반응은 열에 하나쯤. 참, 각박한 세상. 그 세상에 물드는 소녀, 나. 부모님에게 작가가 되고싶다는 말을 초등학교 때 처음 꺼냈었다. 아빠 나 작가할래요. 그리고 소녀는 곧장 돌변하는 아빠의 행동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작가? 그걸 해서 뭐 벌어먹겠다고?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당신이 이따위로 애 키울거야? 아니 작가가 어때서요? 나는 좋기만 한데 이어지는 말다툼. 그러나 아빠의 폭력으로 끝마무리 되던 싸움. 우는 엄마의 소리를 문 너머로 들으며 글을 적고는 했던 수첩을 북북 찢어버렸다. 종이 찢기는 소리가 내 세상 전체가 찢기는 소리로 들렸다. 그리고는 나머지 글들도 찢으며 다짐했다. 작가는 하지 않겠다고. 눈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려야만했다. 그렇게 내 작은 세계는 제대로 완성되기도 전에 재개발이라는 커다란 포크레인 앞에 막혀 짓밟혔다. 그 후로 꿈이 뭐냐는 질문에는 늘 질문을 달리 했다. 헤어디자이너, 의사, 판사, 회계사, 건축가, 피디....수많은 직업들이 내 입에서 오르내릴때마다 난 언제 벌을 받을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꿈을 우롱하는 것 같아서, 내 꿈이였던것도 그렇게 우롱받고있으려나, 해서. 몇년간 쓰지않던 글을 쓰기 시작한것은 중학교 3학년 말. 꿈을 적어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충 수의사를 휘갈겨쓰고는 문득 뒷자리 아이의 종이를 봤다. 작가, 하고 단정하게 쓰여진 글자. 너, 너, 꿈이 작가야? 놀란마음에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뭐 그리 놀라? 하는 눈. 응. 내가 여태껏 했던 대답들이 그 한마디에 이명처럼 겹쳐들려왔다. 꿈이 작가야? 응. 내 꿈은 작가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열, 심히 해. 빈 수첩에 다시 글자가, 세계가 채워졌다. *** 작가는 하지 않겠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쓸때마다 되새겼다. 작가를 할 생각으로 쓰는것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인식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주위를 의식하며 숨죽여 펜을 쥐었다. 글은 매일 매일 써도 넘쳐났다. 그 동안 못 나온것들이 흘러나왔다. 매일 매일, 세계로부터. 얼마 후에 나는 몇년 전과 똑같이 종이를 찢고있었다. 입가가 얼얼했다. 글 쓰는걸 아빠에게 들켰다. 곧바로 날아온 손찌검. 다 찢어버려! 천둥이 울리듯 목소리가 내려쳤다. 적당히 해야 했는데 손에서 찢기는 종이들. 정신없이 부는 바람. 흩날리는 세계. 내 흐름은 여기까지다. 영원히 흐를 수 있는 강 따위, 내게는 없다. ..끄윽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 쓰고싶었다. 무너졌던 세계를 일으켜 세우고 재구성하면서 즐거웠다. 그곳에 데이지도 심고 팬지도 심으며 살고싶었다. 그러나 또 다시 좌절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하지않으리라. 글 따위, 쓰지않으리라. ....흐, 으으 종이와 세계가, 사라졌다. 내 바탕이 되었던 것과 내 전부가. - 컴퓨터고장으로 당분간은 짧은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추위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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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