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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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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그녀를 싼 비닐을 벗기고 욕조 안에서 꺼내어 바닥에 놓아둔 단단한 받침 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쪽에 놓아둔 쇠로 만든 연장을 손에 쥐었는데 손에 들린 연장은 몹시 날카롭게 버려져 있어서 욕실의 불빛에 반사되자 더욱 섬뜩한 빛을 발했다. 마치 새것과 다름없어 보이는 연장은 도축(屠畜)용 도끼였으며 강도가 세고 아주 예리해서 익숙하지 못한 자가 사용할 경우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만큼 위험했다. 줄곧 남자가 시체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그 횟수에 따라 남자에게는 무척 익숙한 존재이기도 한 피비린내나는 도구였다.
그래서 조금의 얼룩도 없이 깨끗하나 그 날위에 무참히 썰렸을 불쌍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지독한 혈향(血香)이 코가 아프도록 찔러대는 것 같았다. 욕실 특유의 주황색 조명빛이 그녀의 창백한 피부를 비추었으나 따뜻함보다 되려 더욱 시린 느낌을 느끼게 했다. 한톨의 감정도 담아내지 않는 어두운 눈동자는 잠시 그녀를 내려보다 도끼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Good bye-(잘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가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빈 육체에게 나즈막하게 중얼거린 남자는 바닥에 눕혀진 그녀의 몸위에 차가운 도끼로 단숨에 내리쳤다. 끔찍한 파육(破肉)소리 그리고 도끼와 받침의 마찰 쇳소리가 욕실을 가득 매웠으며 한참동안 끊이질 않았다. 능숙한 기술을 보유한 남자의 손은 거리낌없이 시체를 분리해갔고 조각조각 난 토막 파편이 타일 곳곳으로 튀어 달라붙었다. 매끄럽게 잘린 단면으로 핏물이 흘러내렸고 푸른 타일과 뒤섞여 묘한 배색을 만들어 내었다.
모든 작업을 끝마친 남자는 토막난 시체를 흐르는 물로 씻은 후 욕조 안에 담았다. 푸른 기색마저 드는 창백하고 허연덩어리들이 욕조의 일부를 채웠고 물로 씻어냈지만 아직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가축을 도축하듯이 자잘하게 잘라낸 남자는 작업대로 사용한 단단한 받침을 깨끗이 씻겨내었다. 약간의 긁힘밖에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 받침대는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무척 내구력이 좋아보였고 본래대로 깔끔하게 씻은 후 한쪽에 치워두었다. 그리고 피와 살점으로 더러워진 욕실을 청소할 차례였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통증에 남자는 허리를 굽혔다.
"으윽...!"
지독한 통증이 머릿속을 짓눌러왔고 내장을 게워내고 싶을만큼 구역질이 치밀었다. 두통은 30분가량 지속되었고 메마른 육체는 식은땀으로 온통 젖어들었다. 끔찍한 고통이 지나간 후 남자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호흡했고 굽혀진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아직 청소하기 전이라 고여있는 핏물에 닿은 옷가지가 묻어 붉게 물들었다.
"하아, 하아..."
가끔씩 묵직한 두통이 찾아올 때면 남자는 몸이 노곤해질만큼 기운이 죄다 빠져서 두통을 겪은 직후에는 손가락 하나 건드리기 싫어했다. 곧장 핏물에 젖은 옷가지를 벗어 욕실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와 나체(裸體)로 바닥위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 * * * *
친구들과 약속을 잡은 태환은 시차때문에 아주 피곤했고 수면이 필요했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멀었지만 누적된 피로는 무겁게 육체를 짓눌렀고 반나절 이상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잤다지만 부족했다. 귀국날까지 혹사당한 탓도 컸고 아무리 편안하게 이동했어도 피곤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암~잠깐 자볼까."
간단히 씻은 후 침대에 누운 태환은 금세 잠이 들었고 꼬박 하루를 채운 다음 깨어났다. 그만큼 피곤했다는 증거였다.
오랜만에 푹 잠들었던 태환은 상쾌한 기분을 맞이하며 일어났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마른세수를 한 다음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옆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들어 혹시 자는 동안 연락온 것이 있을까 싶어서 확인했는데 약속한 친구의 문자메세지 2건과 부재중통화 1건이 있었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한 후 제가 하루를 잠으로 보냈다는 것을 알았고 두시간 후에 약속한 친구와 만나러 나가야하는 것도 알아차렸다. 당연스레 문자메세지는 잊지말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오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시차때문에 자느라 약속을 어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기여한 것 같았다. 두 시간이면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태환은 기내식 이후로 먹은 것이 없는지라 텅 빈 위장을 달래줄 겸 냉장고 앞에 섰다. 냉장고 안에는 그가 귀국하는 것을 알고 있는 가족이 채워놓은 몇가지 음식이 들어 있었고 모두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으면 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중의 하나를 꺼냈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전화 안했네."
자신에게 연락 온 것만 확인하고 피곤해서 자느라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잊었던 태환은 음식을 데우며 전화를 걸었다. 얼마간의 통화음 뒤에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사이에 전자레인지는 제 역할을 끝마쳤고 차가운 음식은 따뜻하게 데워져 김이 모락모락 났다. 전자레인지에서 접시째 데운 음식을 꺼내 테이블에 놓은 후 수저를 골라 손에 쥐며 전화통화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태환이니? 잘 도착했어?]
"네. 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어제 도착했는데 그대로 자버려서 지금 일어나버렸어요."
[아냐. 시차적응도 필요한데다...네가 놀다가 온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고 온 건데...너무 신경쓰지마렴.]
"후후...그간 잘 지내셨어요?"
[물론이지. 네가 다녀간 이후에 별일 있을려구. 호호.]
"곧 찾아뵐게요. 귀국했는데 인사드려야죠. 그때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기대하세요."
[아니야. 집밥 그립지 않아? 외식은 나중에 하고...그런 건 언제든 기회가 많으니까.]
"그럴까요? 하하..."
[그래. 그게 좋겠어.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해봤니?]
"아직까지...몇몇 친구들이랑만 했어요. 오늘 약속도 잡았고...조금 있으면 나가야되요."
[그래? 그럼 이럴게 아니라 준비해야지. 이만 전화 끊고 다시 통화하자.]
"네. 그럼 들어가세요. 작은 엄마."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눈 태환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고 앞에 놓인 음식을 입안으로 옮겨담기 시작했다. 아주 맛있었고 가족의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태환은 고아(孤兒)였다. 몇년 전에 그를 제외하고 사고로 가족들을 떠나보냈다. 그 이후로 숙부와 숙모가 거두어주어 함께 살았는데 혹여 태환이 슬퍼하고 아파할까봐 많은 사랑을 쏟아부어주었고 그덕에 태환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가족들을 잃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슬프지만 산 사람은 그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야하는 법이었다. 또한 외로울 틈새도 없이 새로운 가족이 된 숙부와 숙모, 그리고 사촌들까지 사랑해주고 아껴주었기 때문에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사랑이 없었다면 현재의 태환도 없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 먹은 접시는 개수대에 놓아두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한 후 시간을 확인한 다음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좀 느긋하게 밥을 먹은 탓인지 남은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하고 옷만 껴입고 나왔지만 더운 여름날씨때문에 조금만 지나면 다 마를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약속장소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한 다음 뒷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태환은 택시승강장으로 가서 택시를 기다렸다.
곧 택시가 와서 승강장에 정차했고 뒷좌석 문을 열어 몸을 실으며 택시 운전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한 후, 가죽시트에 몸을 묻었다. 그다지 승차감은 좋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차창 너머로 새털 구름이 파란 하늘 위에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쑨양은 퇴근 준비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서둘러 준비하고 있었도 하나같이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부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이 났고 그것은 한동안 야근에서 해방되었다는 뜻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후처리가 남아 있지만 그들의 기쁜 기색을 끌어내리진 못했다. 새롭게 선보일 신약(新藥)은 기존의 약제와 차별화된 고기능성 약품(藥品)이었다. 물론 기능이 빼어나면 위험도도 증가하기 때문에 그 중간 지점을 조율하는 게 몹시 까다로웠다. 이번 약품 또한 그 위험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실험을 통해 안정화 수치에 달성했다. 물론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때문에 실용화는 아직 먼 이야기였고 개발된 신약은 영업부를 통해 각 병원들에 제품을 피력하여 그들과 협상이 체결되면 기존 약제로는 병을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후 결과치를 얻어야했다.
일단 연구원으로서의 할일을 끝마친 그들은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며 퇴근 준비를 서둘렀고 사이좋게 연구동을 빠져나와 헤어졌다. 동료들과 헤어진 후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쑨양은 집방향과 다른 곳으로 차를 몰았다. 거의 대부분 다람쥐 쳇바퀴돌듯이 집과 회사를 반복했던 쑨양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며칠 전부터 잡았던 약속으로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오늘에 맞춰 약속을 잡은 터였다. 오랜만에 볼 친구 생각에 마음이 들떴고 따라서 운전대를 잡은 손은 그 기분을 반영한 것인지 톡톡 두들기며 리듬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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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쓰는 거지만 참 잔혹하네요...=_=;;;
다 토막냈어ㅠㅠ 불쌍한 그녀...뭐 그녀뿐만 아니라 희생자들 모두 불쌍하죠;
그리고 각자의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두 사람...
서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것일까요^^
독자님들 원하시는대로 진행될지..아닐지...ㅎㅎㅎ
※ 오타 지적 환영.